2014-15 송구영신 40일 새벽기도회(1월12일, 박종길 목사)
시편 84:1~12
양재를 2년 동안 섬겼었는데 오늘 양재를 오는 발걸음이 왜 이리 무거운지, 차도 안 나가는 것 같았다. 꿈땅 유초등부 아이들이 시편 83편을 암송하는바람에 저는 여러번 읽었는데 아이들이 암송하는 바람에 기가 죽었다. 굉장히 저희들이 익숙한 구절이 있는 내용이고, 시편은 우리 삶에 상황과 형편을 솔직하게 드러내기 때문에 우리에게 감동이 있지 않은가? 나이가 많이 들수록 고난과 어려운 상황 가운데 처할수록 깊은 감동이 있는 것은 그것이 바로 우리의 솔직한 마음이고 고백이기 아닌가 싶다. 시편 84편을 쓴 시인은 어떤 사항인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의 성전에 나갈 수 없는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지만 예루살렘 성전을 사모하지만 어떤 이유인지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없는 형편 속에서 예루살렘 속에서, 성전을 향해 나가면서, 순례자들을 바라보면서, 부러움에 가득 찬 성전에서 일하는 제사장들, 성전에서 살고 있는 제사장들을 부러워하면서 심지어 성전 그늘진 곳에 둥지를 튼 새들을 부러워하면서 오늘의 시편을 기록하고 있다. 저희들이 새벽에 예배당에 나와서 함께 예배하고 찬양하고 말씀 듣고 기도하는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어떤 사정과 형편인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예배당이 없고, 예배드릴 수 있는 성도들이 없고, 예배드릴 수 없는 형편 가운데 놓여졌을 때 시편 84편을 기록한 시인의 마음이 이해되어진다.
저는 오늘 세 가지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다.
1. 주의 전을 사모하는 마음을 나누고 싶다. (1-4절)
1.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2.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3.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4.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셀라)
2절에 보면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이 시인은 그 영혼과 마음, 육체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을 향해서 너무나 사모하고 사랑해서 심지어 쇠약해질 정도까지 하나님의 전을 사모한다고 했다. 왜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냐? 거기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성전은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임재의 상징이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을 도와주시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는 그곳이 성전이다. 시인은 그렇게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고 사랑했다. 사모하다란 말이 열망하다, 갈망하다는 뜻이다. 심지어 사모하는 것이 얼마나 큰지 얼굴이 창백해질 정도로 그리워하고, 열망을 나타낸다고 한다.
제가 생각했을 때 얼굴이 창백해질 정도로 함께 있고 싶을 때가 있나? 중학교 때 시간이 있었다. 제가 중1때는 학교를 20분 정도 걸어갔다. 언덕이 있었고, 슈퍼마켓이 있었다. 겨울이 되면 가게 앞을 지나갈 때면 통 안에 호빵이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나는 호빵을 사서 따뜻한 것을 받았을 때의 감동, ‘호빵을 받았을 때 너무 환상적이지 않습니까?’ 그 곡선이 … 너무 몸살을 앓은 것은 아니지만 아침마다 학교를 가고 싶은 것이 아니라 호빵을 사먹고 싶었다. 겨울에만 호빵이 있고, 봄여름가을에는 호빵이 없지 않나. 그럴 때마다 겨울을 사모하면서 기다렸던 세월이 바뀌어서 마트에 가면 언제나 있다. 호빵을 그렇게 좋아하고, 아침마다 기다렸던 그런 사모한 마음이 있는데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는 마음과 비슷하다. 이 시인은 하나님의 전을 사모해서 몸이 쇄약해질 정도로 그래서 이런 고백을 한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하나님 주의 전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습니다. 저 참새는 주의 집에 성전에서 거할 수 있고 제비도 할 수 있는데 나는 그렇게 갈 수 없는 마음, 주의 집에 사는 자들, 주의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 부러움 속에서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고 싶어 하는 마음” 그런 부러움을 말한다.
저희 교회는 없지만, 교회마다 꽃꽂이가 있다. 꽃들이 놓여 있는데, 마치 그런 것이다. 마치 내가 하나님 전에 갈 수 없다면, 내가 하나님의 전에서 예배할 수 없다면 내가 꽃이 되어서 그 꽃이 성전에 준비되어 있듯이 그 꽃이 얼마나 부러운가? 예배 때마다 찬송도 드리고, 기도도 하고, 말씀도 들으니까 얼마나 좋은가?
제가 양재에 있을 때 큰 화분에 난을 놓았던 적이 있었다. 오래전에 그랬을 때 밑에서 설교하려고 쳐다보니까 큰 화분에 난을 보며 말하는 것 같았다. “이번에 목사님이 설교하시죠. 기대할게요.” 영적인 식물과 대화를 나눈 것 같았다. “너는 모르는구나. 설교하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성도들은 다 너 마음 같지 않단다.”라고 대화를 나눴던 난이 있었다. 어느 날 난이 없어졌을 때 ‘없어졌구나!’했다. 수요 여성 예배가 기쁨홀에서 했을 때 한 전도사님이 “목사님 저희 큰 화분이 있는데 치우기가 너무 어려워서 힘드니 치워주세요.”하고 집사님들이 치웠다. 내려가서 보니까 대화를 나눴던 그 난이었다. “그렇구나 너는 참 하나님 전에서 예배 드리고 말씀도 많이 듣고 세월이 지났구나, 너도 이제 끝났구나, 넌 훌륭하다.”정든 맘에 잘가라고 이야기하려는데 큰 화분에 있던 난이 조화였던 것이다. 제가 너무 실망되어 내가 나눴던 영적인 대화는 뭔가? 했었다. 그치만 하나님 앞에 있으면 얼마나 귀한가를 느꼈었다.
이 시인은 자기가 성전에 올라가야 하는데, 하나님의 전에서 예배를 드려야하는데 어떤 형편인지 가지 못하는 참여하지 못하는 아픈 마음으로 “하나님 내가 여호와의 전에 얼마나 사모하는지요, 내가 쇄약해질 정도로 사랑합니다. 저 새들은 제 제사장들은 저 성전을 향해 올라가는 순례자의 모습들은 얼마나 귀한데 저는 그리하지 못합니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의 전을 사모하는 시인의 마음이 있다. 우리는 예루살렘을 향해 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가지 않아도 된다. 그 성전을 향해 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그 예수님으로 우리로 하여금 우리를 만나게 해주셨다. 고린도전서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사도바울은 말한다. 그런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성전을 보내주셔서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 하나님의 성전이 어딨는가?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셔서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한 모두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이다. 마음 안에 계시는 예수님, 마음 안에 계시는 성령님이 느끼고 깨닫고 알게 해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시인의 마음과 같이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고, 거하길 원하고 하나님을 만나길 소망했던 것처럼 우리 안에 하나님으로 계심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는 마음이 있으시다. 우리 안에 성령을 만나길 원하는 간절함이 있는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있는가? 하나님의 예배하는 예배에 대한 사랑이 있는가? 저와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뜨거움에 대한 사랑이 불일 듯 일어나길 축원한다. 그리고 우리가 예배드리는 이 예배당이 있는 곳, 섬길 수 있는 교회가 있는 것,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지요.
2. 주의 전을 사모하는 자의 복
주의 전을 사모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복이 있다.
5.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6.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7.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여기보면 5절 말씀처럼 시온에 있는 곳으로 나가기 원하는 사람들, 열망하는 사람들 하나님의 전을 향해서 올라가고 있는 사람들, 마음에 하나님을 사모하고, 사랑하고 열망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눈물 골짜기를 지나갈 때 많은 샘을 만나고 이른 비가 그들 가운데 내려지는 복을 받는다고 이야기한다. 아마도 눈물 골짜기란 히브리어로는 에네크바카란 뜻인데, 벨리 오브 바카, 바카의 골짜기라는 것인데 어떤 사람은 이 지명을 가지고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는 길 가운데 순례자들이 통과해야 되는 지점이 있는데 거기는 험악하고, 힘들고, 물이 없고 갈증이 나서 굉장히 고통스러운 그 곳을 통과해서 성전에 이르게 되는 지점이라고 한다. 캘리포니아에 라스베가스가 있는데 라스베가스를 가다보면 데드벨리가 있는데 죽음의 골짜기처럼 아주 힘든 지점이 있다. 그런 것과 같은 그런 지명을 말하지만, 어떤 점에서 보면 그런 곳이라고 할 수 있고 바카 골짜기, 눈물 골짜기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하나님 성전에 예배를 드리러 가는 사람들, 믿음으로 가는 사람들이 믿음 때문에 겪게 되어 지는 고난과 고통과 어려움의 삶을 말해주고도 있다.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뜻 때문에 살아가는 삶 속에서 부딪치는 어려움들, 시련들, 하나님 천성을 향해서 천국을 향해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만나게 되어지는 고통들 환란들, 막다른 골목들, 끝이 보이지 않은 터널들 가운데 긴 수렁에 빠진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가 어려운 일, 시련을 당하고, 고통의 한 가운데 있을 때에 그래서 눈물 골짜기를 지나가는 시간을 보내는 것 같은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과 평안을 구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속에서 다시 당신의 길을 가게 되는 축복이죠. 눈물 골짜기를 지나가는 끝없는 목마름, 지쳐있는 자들이 푸른 목마름을 만나게 되는 것처럼, 이른 비를 내려주는 것, 가을에 내리는 비 (9-10월에 내리는 비)인데 이 건기 동안에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진 가운데 파종을 해야 되는데 메마른 그 땅 가운데 비가 내려서, 촉촉하게 젖어져서 쟁기질을 해주고, 씨앗들을 파종해서 새싹이 날 수 있는 그러한 축복이죠.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사모하고, 어렵고 힘든 사정과 형편 가운데 목마른 영혼에게 많은 샘을 주실 뿐 아니라, 딱딱하게 굳어진 내 사정과 형편과 상함과 인생 가운데 이른 비를 내려주셔서 촉촉이 젖어주시는 그런 축복이다. 요엘 선지자가 이야기 했다. “요엘 2:23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하나님께 나가는 자들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하게 내려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주의 전을 즐거워하고, 사모하는 자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 하나님의 도움과 긍휼을 의지하는 자들, 하나님을 믿고 눈물 골짜기를 통과하면서도 하나님으로 힘을 얻고, 용기를 얻게 되는, 하나님에게 은혜를 입기 원하는 구하는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하나님이 이른 비를 내려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신다.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 이른 비가 내리기를 축원한다. 목마른 우리 인생에 타는 고통의 시간 가운데서 눈물 골짜기와 같은 곳에서 끝에서 힘들어하고 좌절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우리의 인생의 삶 속에서 지치고 목마르고, 고통의 골짜기를 통과해야만 하는 그런 사정 가운데 어디에도 희망의 끈을 잡지 않은 어둠 가운데 있을 때에 우리의 목마름을 해갈해주시는, 채워주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샘물을 발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한다.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들려주신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요한복음 7:37~38)”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말씀하신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축복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와 여러분을 초청하고 계신다. ‘너희 가운데 목마른 자들이 있느냐, 다 내게로 와라. 너희들 가운데 지친 자들이 있느냐, 너희들 가운데 두려워하는 자들이 있느냐, 염려하는 자들이 있느냐, 쉬는 가운데 눈물 골짜기 가운데 낙심하는 자들이 있느냐 다 내게로 오라. 내게로 오는 자들, 나를 믿는 자들, 내게 구하는 자들,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넘쳐흐르리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예수께 나아가는 우리의 시간을 통해서, 새벽을 통해서, 인생의 삶 속에서 생수의 강이 넘쳐흐르는 축복이 임하길 축복한다. 우리의 힘으로 되어 지지 않은 많은 일, 마치 절벽, 막다른 골목, 사방이 막혀 있는 가운데, 내 경험으로 내 생각으로 내가 쌓아온 것으로 할 수 없는 좌절된 한계, 상황 속에서 누구든 내게 와서 마시라는 말씀 앞에 나아가서 주님이 주시는 생수의 강으로 흘러넘치기를 축원한다. 시인이 하나님의 전에 나가여 사모하는 그 순례자들이 죽음의 골짜기, 눈물 골짜기, 바카의 골짜기 같은 곳에서 힘들어할 때 주님이 예비해주신 많은 샘을 만나는 것처럼, 이른 비가 내리는 것 같은 축복을 내려주는 것처럼 우리가 언젠가 하나님 앞에 나가는 그 때까지 우리의 믿음의 그 길을 갈 때 낙심되고, 지치고 쓰러질 때 우리에게 이른 비를 내려주시는 많은 샘을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만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3. 주의 전을 사모하는 자의 소망
주의 전을 사모하는 자의 소망을 그의 믿음의 고백으로 하고 있다.
8.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 (셀라)
9.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께서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 보옵소서
10.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11.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12.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시인은 “하나님 내 기도를 들어주소서. 야곱의 하나님 귀를 기울이소서. 내 마음을 알아주시는 하나님” 즉, 시인은 하나님을 방패로 묘사한다. 방패이신 하나님으로 표현하고 있다. 방패라는 것은 전쟁 시 적으로부터 우리 몸을 방어하는 도구다. 시인은 그렇게 고백한다. 하나님 내 인생에 방패가 되어 주시옵소서. 보호자가 되어 주시옵소서. 내 인생에 은혜를 내려주시옵소서. 내 공격하는 원수들의 칼날과 화살로부터 철통같이 나를 지켜주시옵소서. 라고 고백한다. 방패이신 하나님, 적과 원수의 공격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두려움과 염려와 근심에서 우리를 지켜주시옵소서. 그렇게 그는 그의 소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기도할 때 시인의 고백처럼 원수의 화살 앞에 칼날, 창 앞에 놓여 있고 무수히 많은 화살들이 날아오는 것 같고, 깊은 함정, 수렁에 빠져서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계십니까? 시인의 고백처럼 나의 방패가 되어 주셔서 적들의 공격으로부터 지켜주시옵소서. 하나님, 이 깊은 늪에서 저를 건져주시옵소서. 그러면서 시인은 고백한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궁정에서 한 날보다 낫습니다. 악인의 장막에 거하는 것 보다 악인의 궁궐에 거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성전에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습니다. 대조되는 부분이다. 하나님을 떠나 어떤 부귀나, 권력, 명예, 장수를 누리는 것 보다 비록 미천하고 부족하고 힘들고 어렵더라도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문지기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그의 소망을 고백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이런 고백이 있는지요?” 내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세상에서 누리는 그 어떤 즐거움보다 좋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은혜가 내가 이 세상에서 누리는 것보다 더 좋습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이 맥주를 좋아하셨다. 한 번은 저에게 진지하게 “저에게는 여름이 시험입니다. 여름이 고통입니다.” 왜요? 라고 물었더니 광고만 봐도 몸이 떨리신다고 한다. 맥주의 거품을 보면, 제가 그 때 “하나님을 섬기는데 그런 뜨거움이 있으세요?”라고 대답했었다. 안 그렇다고 했다. 회개하시라고 했었다. 하나님, 성경책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제가 아는 어떤 분은 부모님이 반대하셔서 학생 때 이야기인데 성경책을 집에 두지 못하고 부모님이 성경책을 찢으셨다. 성경을 멀리 두어도 찾아서 성경을 찾아 찢으셨다. 그래서 그 성경책을 길가에 어느 지점에 숨겨두고 꺼내서 교회를 가고, 그 지점에서 깨내어 집에 가고 했던 친구가 있었다. 성경책, 우리는 너무나 많아서 그냥 지나치지만 이 성경이 없는 부족도 있고, 민족도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없을 때 시인의 고백,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주의 첫 날보다 낫습니다.” 하루와 천 날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 내가 첫 날을 사는 것보다 하나님과 하루를 보내는 것이 너무 좋다. 편하고, 좋고, 궁궐 같은 곳이 좋겠지만 그렇게 안 되어도 문지기가 되어도 하나님의 전에 문지기가 있는 것이 좋다고 고백하고 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열망이 있나? 사랑이 있는가? 히브리 기자는 말하고 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 11:24~26)” 모세는 애굽의 바로의 공주란 권력보다도 고통받는 자기의 민족과 함께 있기 원하고,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도 고통 받는 자기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받기를 더 좋아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시인에게 그런 마음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 사랑하고, 하나님에게 있기 원한다. 세상에 많은 즐거움보다, 세상의 즐거움에 목말라 더 가고 싶은 것보다도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 드리는 시간이 더 좋고, 찬양하는 시간이 더 좋고, 기도하는 시간이 더 좋고,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 함께 나누는 그 시간이 더 행복하다는 소망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 “저도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저는 이 시간 여러분에게 도전하고 싶다. 이 시간 여러분 마음에 울리고 싶다. 한 번 우리가 생각해보면 좋겠다. 내 마음에 시인의 마음이 있는가? 내가 그만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가? 열망이 있는가? 내가 세상 것과 바꾸지 않는 신앙이 있는가? 어쩌면 우리들에게 그런 시간들이 있다. 첫사랑이라고 표현할 수 도 있다. 영접했을 때 십자가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달았을 때 내가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들, 우리는 너무 익숙하고 부유해서 너무 당연하기 때문에 함께 예배드리고, 함께 찬송하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내가 주의 전에 나와서 함께 예배드리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내가 찬송하면서 눈물을 흘렸던 적은 언제였나? 내가 기도하면서 시간 가는줄 모르고 기도했던 때가 언젠가? 내 마음에 말씀들이 꿀송이처럼 달아서 쑥쑥 들어와서 이 말씀을 떼기가 싫은 그런 적은 언제였는지 한 번 이 시인의 고백을 통해 돌아봤으면 좋겠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데 더 뜨겁게 믿어야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서 마지막 시인은 이야기한다. 주께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이 시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길 축원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장 큰 대상이시며 힘의 원천이시며 그 분은 전적으로 그를 의지하는 자에게 축복을 주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주님 앞에 가는 이 순례의 길 아니겠습니까? 천성을 향해 가는 순례의 길 가운데 눈물 골짜기를 통과해야 될 때, 많은 샘으로 인도하시고 이른 비를 때에 따라 내려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소유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잠자고 있는 신앙을 다시 한 번 깨어서 하나님 앞에 떨림으로 나갔던 열망함으로 나갔던, 사모함으로 나갔던 그 순수한 우리 신앙을 다시 한 번 일깨워서 세상의 전날보다 하루를 내가 더 사모하고, 세상의 영광보다 하나님의 문지기로 인해 더 기뻐하면 세상이 주는 그 쾌락과 죄악보다 하나님 함께 함으로 십자가 앞에 나감으로 은혜 앞으로 나가는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은혜 속에 거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원한다.
작성자 김남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