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선배를 만나다
“조선에서 죽기까지 일하다 조선 땅에 묻히겠다”
윌리엄 베어드 선교사 부부 영남지역 개척선교
숭실대학 설립 등 교육 사업에 앞장
베어드 선교사를 빼고는 영남 지역 개척선교 역사를 논할 수 없다. 평양에 마펫, 서울에 언더우드가 있었다면 영남에는 베어드가 있었다.
윌리엄 베어드(한국명 배위량裵偉良)는 초창기 한국교회에 헌신한 선교사들 중에 최고의 지성을 자랑하는 선교사다.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한국에서 선교한 공로를 인정받아 후에 모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것에 반해, 베어드 박사는 한국에서 선교하다 미국으로 건너가 1903년 하노버대학에서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당시로는 극히 드문 학위였다. 그는 그 어떤 선교사보다 공부를 많이 했다. 지적인 면에서 괄목한 만한 공헌을 했다. 그는 숭실대학을 세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조선은 선교지이자 영원한 안식처
베어드 선교사는 1862년 6월 16일 미국 인디애나주의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출생했다. 1885년 하노버대학을 졸업하고, 1888년에 맥코믹신학교를 졸업했다. 1890년 베어드가 한국선교사로 공식승인을 받고, 그해 12월18일 결혼식을 한 바로 그날 조선으로 출발했다. 미국을 떠난 지 두 달여 만인 1891년 1월 29일 부산항에 첫 발을 내딛었다. 신혼여행을 조선으로 향하는 거칠고 생경한 여정으로 대신했다.
그는 부산에서 초량교회를 세우고 선교사업을 시작했다. 1895년 사역지를 대구로 옮겨 제일교회와 계성학당(게명대)을 설립했다. 1896년에는 사역지를 서울로 옮겨 경신학당에서 교육사업을 담당했다. 그리고 1897년 10월 10일 평양에 숭실학당을 창설하고 교장으로 취임했다. 1906년 9월에는 감리교와 연합해 숭실대학으로 발전시켰다. 1916년 숭실대 학장을 사임한 뒤에는 교재발간 등 문서선교에 치중했다. 40여 년을 선교사와 교육자로 헌신하다 1931년 11월 28일 69세의 나이로 소천했다. 평양 숭실학교 구내에 안장되었다. 그의 가족들은 양화진 제2묘역에 기념비를 건립했다. 그의 장례식에는 무려 3천명의 조문객이 운집했다고 한다.
“나는 조선에서 죽기까지 일하다가 조선 땅에 묻히겠다.”
베어드 선교사에게 조선은 소중한 선교지일뿐만 아니라, 그의 뼈를 묻는 영원한 안식처가 되었다.
찬송가 ‘멀리, 저 멀리’에 얽힌 사연
베어드 선교사가 그토록 헌신적으로 사역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부인인 애니 베어드(한국명 안애리, 배위량 부인)의 헌신이다.
배위량 부인은 남편의 전도사업과 교육 사업을 도왔다. 교과서 번역사업에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여성교육과 문서선교에도 헌신했다. 음악적 재능도 있어 한국교회 초기 찬양집인 <찬셩시>, <찬숑가> 등을 편찬했다. 한국어 교습서를 만들어 한국어를 배우는 선교사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했다. 1897년에는 <한국어를 배우는 데 있어서 50가지 도움>이란 책을 출간했는데, 이 책은 2차 세계대전까지 표준 교과서였다고 한다. 문학적 조예도 깊어 여러 찬송가를 번역하기도 했다. 그 중 ‘멀리 멀리 갔더니’(387장), ‘나는 갈 길 모르니’(375장)가 유명하다. ‘멀리 멀리 갔더니’ 찬양에 얽힌 사연이 있다. 부산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한 배위량 부부는 1892년 7월 5일 첫딸 낸시 로즈를 낳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뇌척수막염으로 1894년 5월 13일 죽고 만다. 그들의 딸 낸시는 부산 복병산에 안장되었다. 복음 선포를 위해 태평양을 건너 ‘멀리 멀리’ 조선으로 왔고, 임신 7개월에 남편을 경상도 순회전도를 위해 ‘멀리 멀리’ 보내야만 했다. 그리고 사랑하는 첫딸 낸시마저 하나님 곁으로 ‘멀리 멀리’ 보내야 했던 배위량 부인의 아픔이 고스란히 찬송가사에 녹아 있다.
배위량 부인은 암 치료를 위해 1914년 미국으로 돌아갔으나, 남편이 있는 한국에서 영면하기를 소망해 다시 한국으로 왔다. 1916년 6월 9일 향년 52세를 일기로 평양에서 소천 했다. 그녀의 묘비가 남편 배위량의 이름과 함께 양화진 외국인 묘역에 세워져 있다.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베어드 선교사 부부를 만나다>
베어드 선교사의 한국선교 활동과 가족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에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독자들에게 책 <배위량 박사의 한국선교>와 찬송 ‘멀리 멀리 갔더니’를 권한다. 베어드 선교사 부부와 함께 사역했던 당대 선교사들의 면면과 당시 조선의 상황도 더불어 알 수 있다.
미국에서 일본을 거쳐 부산, 대구, 서울, 평양, 마지막으로 하나님 품에 안기는 그 여정을 따라가 볼 수 있다.
조선에 도착하자마자 얼마 안 돼 낳은 첫딸을 잃은 베어드 선교사 부부의 고통과 신앙고백이 녹아있는 찬송가도 읊조려보자.
<배위량 박사의 한국선교>
리처드 베어드 지음/김인수 옮김/쿰란출판사/10,000원
이 책은 베어드 선교사의 한국에서의 선교사역을 기록했다. 베어드 선교사의 아들 리처드 베어드가 부친의 한국 선교활동을 적어 책으로 엮었다. 원제는 <William M. Baird of Korea : A Profile by Richard H. Baird>다. 총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선교사로서 베어드 박사가 한국에 오게 된 배경을 포함, 부산, 대구, 평양 생활과 교육사업(숭실대학 창립) 등에 대해 자세히 적혀 있다.
“그늘진 곳에서부터 나온 아버지는 적어도 참되고 위대한 점들을 가지게 되셨다. 그런 분이 바로 나의 아버지인 것이 자랑스럽다. 다른 무엇보다도 아버지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찬송가 387장(통440)
“멀리 멀리 갔더니”(피셔 작곡, 배위량 부인 작사)
멀리 멀리 갔더니 처량하고 곤하며
슬프고도 외로워 정처없이 다니니
예수 예수 내 주여 지금 내게 오셔서
떠나가지 마시고 길이 함께 하소서
예수 예수 내 주여 마음 아파 울 때에
눈물 씻어 주시고 나를 위로하소서
다니다가 쉴 때에 쓸쓸한 곳 만나도
홀로 있게 마시고 주여 보호하소서
작성자 김남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