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기획 4. 스승
참 스승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
학생과 인격적 만남 없고, 함께 보내는 시간 적은 것이 가장 큰 문제
예수님의 제자교육 방법과 원리 … 함께, 이론과 실습, 경건 훈련
지난 4월, 대구의 한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학부모가 담임교사 머리채를 붙잡고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 학부모는 “담임교사가 아들의 머리를 쥐어박고 제대로 사과하지 않아서 폭행했다”고 진술했다. 2012년 11월에는 초등학생과 교사가 서로 폭행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교사의 권위가 실추되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 사례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2009년 1,570건이던 교권침해사례가 2012년에는 7,971건으로 늘었다. 3년 새 무려 5배나 급증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학생인권조례에서는 학교에서의 체벌을 전면금지했다. 체벌금지시행 이후 교사들은 학생 생활지도를 하는데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좋은교사운동이 전국 초중고 교사 620명을 대상으로 교직스트레스에 대한 설문을 실시했는데 교사 26%가 학생 생활지도가 가장 어렵다고 답했다. 수업 스트레스는 10%에 불과했다. 물론 체벌이 효과적인 학생 생활지도방법은 아니다. 그렇다고 최소한의 교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교사와 학생 간, 혹은 부모와 스승간의 다툼(?)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교회학교 교사도 위기에 직면해있다. 교회학교 수가 줄고, 교사와 학생이 생명력 있는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어떻게 하면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이 다시 실현 될 수 있는지를 참 스승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생각해봤다.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시대를 막론하고 좋은 선생이 있었다. 널리 알려진 헬렌 켈러는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장애인이었다. 그런 그녀 곁에서 48년 동안 눈과 귀가 되어 되어 준 스승이 있다. 앤 설리번이 그 주인공이다. 그녀는 7세가 될 때까지 제멋대로 행동하던 헬렌 켈러를 사랑과 인내로 보듬고, 가르쳤다. 헬렌 켈러가 대학에 다닐 때에는 모든 수업을 함께 들으면서 강의내용을 적어줬다.
“항상 사랑과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준 앤 설리번 선생님이 없었다면 저도 없었을 것입니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헬렌 켈러를 전 세계인들이 존경하는 인물로 만든 장본인은 바로 스승인 설리번이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좋은 스승이 있다.
지난해 4월 온 국민을 슬픔에 빠뜨린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펴보지도 못하고 져버린 어린 학생들의 죽음에 온 국민이 가슴을 쳤다.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들 중에는 학생들을 구하다 참변을 당한 교사들도 있다. 전수영 교사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25살이던 전 교사는 참사 당시 탈출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다시 배 안으로 들어갔다 결국 나오지 못하고 한 달 만에 주검으로 발견됐다. 살신성인(殺身成仁) 그 자체를 보여줬다.
2011년 방송된 tvN ‘코리아갓탤런트’에 출연해 준우승을 차지한 최성봉 씨가 주목받았다. 한국의 폴포츠라는 찬사를 받으며 전 세계를 감동시킨 팝페라 가수로 우뚝 섰기 때문이다. 오늘의 최성봉이 있기까지 뒤에서 물심양면 헌신한 스승 박정소가 있다.
그는 껌팔이 소년이었던 최성봉을 사랑으로 안아주고, 가르쳤다. 최성봉이 껌팔이에서 한국의 폴포츠로 거듭나도록 도와줬다. 최성봉은 3살 때 누군가에 의해 고아원에 맡겨졌다, 고아원에서 온갖 학대를 당하다 5살에 도망쳐 거리로 나왔다. 그때부터 껌을 팔고, 건물 계단이나 화장실, 컨테이너 박스에서 잠을 자면서 비참한 생활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야간업소에서 껌을 팔다 성악가가 부르는 성악에 매료된 최성봉은 성악을 배우고 싶어 무작정 박정소를 찾아갔다. 당시 박정소도 레슨으로 근근이 먹고 사는 가난한 음악대학 청년이었다. 그런데도 박정소는 아무 대가 없이 최성봉을 제자로 받아들였다. 예술고등학교 진학을 돕기도 했다. 음악을 넘어 우정과 사랑으로 최성봉을 키웠다. 박정소는 최성봉과의 만남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했다.
“하나님이 저를 통해 성봉이에게 음악을 가르치셨고, 성봉이를 통해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희망을 찾기 원하시는 것 같았어요. 제가 할 일은 성봉이가 좋은 음악인이 되도록 지켜봐주고 충고해주는 일이었어요.”
어떤 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공교육 교사의 위기는 교회학교 교사의 위기이기도 하다. 교회학교 학생 수가 격감하고 있다. 2014년 예장통합교단 총회에서 보고된 교세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그래프 참고). 2004년부터 2013년까지 10년간 교회학교 학생 수를 조사했는데 그 수가 심각하게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영아부는 2011년 기점으로, 유아는 2010년을 기점으로 감소 추세로 바뀌었다. 유치부는 10년 동안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유년부와 초등부의 경우 2006년과 2007년을 정점을 찍고 감소세로 돌아섰다. 중고등부는 2009년부터 급격한 감소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래프> 2004~2013년 예장통합 교회학교 학생수 추이
양적 위기뿐만 아니라 질적 위기도 있다. 장신대 박상진 교수(기독교교육학)가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가 질적 위기를 고스란히 나타내주고 있다. 교회교육 위기요인 1위는 학생들과 교사의 인격적인 만남이 없다. 2위는 학생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 3위는 성경을 가르치지 않는 것이 문제다. 4위는 교육 부서 간 연계성이 부족하다를 꼽았다. 교회학교는 시설이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교사가 핵심이다. 교사가 학생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가 교회교육을 결정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사 직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교회학교 교사는 학생과 생명적 관계를 맺고, 생명의 말씀으로 양육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도도, 과정도, 시설도 아니다. 바로 교사다. 학생들을 변화시키는 영향력은 교사가 가지고 있다. 그 어떤 건물도, 교과서도, 커리큘럼도 영향력을 행사하지 는 못한다. 학생이 어떤 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교회학교 교사의 역할은 공교육 교사보다 더 중요하다. 교회학교 교사의 인격적 태도와 가치관은 그 어떤 지식보다 학생의 신앙 성장에 영향을 준다.
요즘 같이 관계 단절, 소외 등의 문제가 심각한 시대에 자기 말에 귀 기울여주고, 지지해주는 교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기 때문이다. 교육 현장에서 교사가 삶으로 보여주는 믿음과 돌봄, 사려 깊음과 친절은 학생들에게 안정감을 줄 뿐만 아니라, 인격과 영적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결국 학생의 인생을 바꾼다.
예수님은 참 스승의 본을 보이셨다
예수님은 참된 스승의 본을 보이셨다. 예수님의 공생애 3년 동안의 사역을 정리하면 ‘가르침’(teaching)과 ‘복음전파’(preaching), ‘병 고침’(healing)이었다고 할 수 있다(마 4:23, 9:35). 예수님의 사역은 3년으로 끝났지만 그 영향력은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커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바로 제자들 때문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훈련시켰기에 가능했다.
예수님은 사역 초기부터 12제자를 따로 불러 교육하셨다(마 4:18~22, 10:1~4; 막 1:16~20, 3:13~19; 눅 6:12~16; 요 1:35~51). 특히 예수님이 그들을 택하여 사도로 세우실 때 ‘밤이 새도록’ 기도하셨다고 말하고 있다(눅 6:12). 12제자를 세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는지를 시사한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제자들을 어떻게 가르치셨을까? 예수님의 제자교육 원리나 방법을 알면 오늘날 직면한 교권추락, 교사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막 3:14~15)
예수님은 제자들을 자기와 함께 있게 하셨고, 보내서 전도하고, 귀신을 내쫓는 권세를 주셨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교육 원리다.
1.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심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 함께 있게 하셨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배우고, 전도하는 능력을 얻었다. 귀신 쫓는 능력도 받았다. 그만큼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이 중요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 교실에서만 가르치지 않으셨다. 늘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가르쳤다. 무리들에게 설교나 강론하면서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길을 가면서도 가르치셨고, 식사할 때도 가르치셨다. 일상적인 대화를 하면서도 가르치셨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가르쳤다.
형식에도 구애받지 않으셨다. “강의시간이니 지금부터 교육을 실시하겠다”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식사하면서, 대화하면서 진리를 가르치셨다. 제자들이 질문하면 자연스레 대답하시는 것이 곧 예수님의 가르침이었다. 예수님과 함께 보낸 모든 시간이 교육시간이었고, 모든 환경이 교육환경이었다. 강의실 교육이라는 제한적인 교육이 아니라 전방위 교육을 실행하신 것이다. 이는 가르치는 교육과 동시에 삶 속으로 지도하는 교육방식이었다. 삶을 함께 나누는 교육을 하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계셨다.
2. 보내사 전도하게 하심
가르치기만 하고 끝난 것이 아니다. 제자들이 직접 전도하도록 하셨다. 이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실습이 뒤따랐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여러 모양으로 가르치신 후에 그들을 직접 현장으로 내보내 전도하게 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이 돌아왔을 때는 경과 및 결과 보고를 받았다(눅 9:10, 10:17). 잘한 것은 칭찬하시고, 미흡하거나 잘못된 부분은 책망하거나 권면하셨다(눅 10:18~20). 예수님의 실습 교육은 단순히 연습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살아있는 영혼들을 상대로 실제로 전도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제자들을 복음의 일꾼으로, 예수님의 동역자로 세우신 것이다. 제자들은 실습을 통해 예수님 말씀의 진실성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살아있는 능력을 깊이 체험했다. 제자들은 3년 동안의 효과적인 훈련을 통해 초대 교회에서 귀중하게 쓰임 받는 복음의 일꾼이 되었다.
3. 귀신을 내쫓는 권세가 있게 하심 ; 경건훈련
예수님의 교육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전혀 달랐다(마 7:29). 말만 있는 교육이 아니었다. 율법을 해석하고, 어느 것이 옳고 그른 것을 논하는 것으로 끝나는 교육이 아니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힘이 있고, 권세가 있었으며 청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심으로써 자신이 사탄의 권세를 제압하신 분임을 분명히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하나님의 복음을 위탁받은 사도들로 세우기 위해 그들에게 일정한 권세를 부여하셨다(눅 9:1~2). 이 권세는 제자들의 권세가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께 기도할 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권세였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교육에 있어서 경건 훈련이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있기 때문이다(고전 4:20). 기도 생활과 경건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님께서는 새벽 일찍 일어나셔서 기도하셨고(막 1:35), 제자들에게 기도 부족을 책망하셨으며(막 9:29), 깨어 기도하라고 명령하셨다(마 26:41). 이런 교육을 받은 제자들은 예수님 승천 후 예루살렘의 한 다락방에 모여 합심하여 기도했고(행 1:12~14), 오순절 성령강림 후에도 규칙적으로(행 3:1, 10:9) 혹은 특별한 때(행 4:23~31) 기도에 힘썼다.
예수님의 제자교육은 오늘날의 기계적이고 비인격적인 세상 교육과 전혀 다르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지내며 삶을 나누는 교육을 하셨다. 시간이나 장소, 환경에 구애받지 않는 전방위 교육이었다. 이론만이 아니라 실제가 함께 있는 산교육이었다. 말 뿐인 지식교육이 아니라 전파되는 복음에 자신의 권세를 주시는 능력교육이었다. 무엇보다 제자들을 하나님을 경외하고, 기도에 힘쓰는 사람들로 훈련시키셨다. 모든 교육의 바탕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었다. 교육의 목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삶 전체가 하나님 앞에서 변화되어 새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이었다(엡 4:22~24).
참 교육의 밑바탕 ‘인격적 관계’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막 6:34)
‘불쌍히 여기사’에 쓰인 헬라어는 ‘스플랑크니조마이’다. 이는 창자가 찢어지는, 뒤틀리는 것 같은 슬픔을 말한다. 예수님이 방황하는 자들을 보시고,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오른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바로 긍휼이다. 바로 이 마음을 가져야 한다.
헬렌 켈러의 스승인 설리번 선생이나, 껌팔이 소년 최성봉을 가르친 박정소 선생의 사랑은 화려하지 않았다. 그들은 군림하지 않았다. 지식만 전수한 것이 아니었다. 제자의 마음을 어루만져 가슴 뭉클한 기적의 주인공으로 거듭나게 만들었다. 이 놀라운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인격적인 관계가 먼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릭 워렌 목사는 “고기 잡는 베드로를 섬김으로 이끈 예수는 2천년 후에도 21억 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참된 스승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킨다. 교사의 사명감 부족이나 성경을 가르치지 않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학생들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없고, 학생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설문결과를 이 세상 모든 교사들이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작성자 김남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