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 지붕 세 권사”
만나고 싶었습니다
둘도 없는 동역자 정선희, 서승옥, 최영기 권사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 아니다. 웃음꽃이 활짝 핀다. 지난 23일 아주 특별한 가족을 만났다. 이름 하여 ‘한 지붕 세 권사’다. 정선희 권사(양지 온누리교회), 서승옥 권사(성북공동체), 최영기 권사(부천 온누리교회)가 그 주인공이다. 그들은 시누와 올케, 동서지간이다. 제일 껄끄러울 수 있는 관계지만 셋이 만나기만 하면 이야기꽃이 활짝 핀다. 어찌나 즐겁고, 재미있는지 오랜만에 모인 동창들의 수다보다 흥겹다. 성씨도, 성향도, 사는 곳도, 소속 공동체도 다르지만 끈끈한 하나님의 정으로 묶인 한 가족이다. 서로를 위해 한없이 기도해주는 세상 둘도 없는 동역자들이다.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반가운 사람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다. 정선희, 서승옥, 최영기 권사다. 그들은 진짜 가족이다. 정선희 권사가 시누이고, 서승옥 권사와 최영기 권사가 올케다. 서 권사와 최 권사는 동서 지간이다.
정선희 권사는 5남매 중 막내다. 위로 오빠만 넷 있다. 큰오빠의 아내가 서승옥 권사이고, 넷째 오빠의 아내가 최영기 권사다. 정선희 권사는 남편 박대호 장로와 함께 안성농장에서 자연농법을 활용한 농사를 지으면서 선교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서승옥 권사는 서빙고 온누리교회 일대일사역팀에서 활발하게 사역하고 있다. 최영기 권사는 남편 정영규 장로와 함께 부천 온누리교회 가정사역을 섬기고 있다.
각자 사역이 바빠 한자리에 모이는 게 쉽지 않다. 이날 인터뷰도 어렵사리 성사됐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어색함이라곤 찾아 볼 수 없었다. 모이자마자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여념이 없었다.
정선희 권사는 5남매 중 막내다. 위로 오빠만 넷 있다. 큰오빠의 아내가 서승옥 권사이고, 넷째 오빠의 아내가 최영기 권사다. 정선희 권사는 남편 박대호 장로와 함께 안성농장에서 자연농법을 활용한 농사를 지으면서 선교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서승옥 권사는 서빙고 온누리교회 일대일사역팀에서 활발하게 사역하고 있다. 최영기 권사는 남편 정영규 장로와 함께 부천 온누리교회 가정사역을 섬기고 있다.
각자 사역이 바빠 한자리에 모이는 게 쉽지 않다. 이날 인터뷰도 어렵사리 성사됐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어색함이라곤 찾아 볼 수 없었다. 모이자마자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 가족들의 신앙과 간증
한 집안에 권사가 셋이나 되면 신앙이 얼마나 좋을까? 그 신앙 좋은 사람들이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할까?
서승옥 권사가 한 지붕 세 권사 가족들의 신앙 역사를 들려줬다.
“저는 지식만 있었지 지혜가 없던 사람이었어요. 지성적이고 분석적이었어요. 영성이 없었거든요. 시아버지께서 ‘우리 큰며느리가 교회 간 게 기적’이라고 하셨을 정도였어요.”
서승옥 권사는 시누이 정선희 권사의 전도로 신앙을 갖게 됐다. 정 권사가 서 권사에게 끊임없이 교회 가자고 권유했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기도도 정 권사가 인도했다.
“시누가 시부모님을 계속 전도했어요. 그 간곡한 권유가 먹혀서 시부모님께서 하나님을 믿게 됐어요. 그러고 나서 저한테도 교회 가자고 하더라고요.”
정 권사가 전도하던 당시를 떠올리며 간증했다.
“제가 언니한테 자꾸 교회 가자고 하니까 어느 날은 화를 내더라고요. ‘아가씨, 그런 얘기할 거면 집에 오지도 말아요!’라면서요. 우리 집인데 오지 말라고 하는 언니랑 대판 싸운 적도 있어요. 또 한 번은 언니가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지 않냐면서 그만하라고 소리도 치셨어요. 그때 ‘곧 큰언니가 하나님을 믿겠구나’라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최영기 권사도 당시를 떠올렸다. 당시 정씨 집안에 갓 시집온 최 권사는 너무 지적이고 분석적인 큰형님(서승옥 권사)이 너무 무서웠다.
“큰형님을 위해서 기도를 정말 많이 했어요. 큰형님네가 집안의 머리라고 생각했거든요. 아주버님과 큰형님이 신앙을 갖고 집안의 든든한 기둥이 되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시누랑 같이 큰형님네의 구원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어요.”
최영기 권사는 제 발로 교회를 찾아갔다. 어린 시절 교회를 다닌 적도 있고, 결혼 전에 직장 다닐 때도 점심시간에 회사 근처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신앙은 있었지만 신앙생활을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결혼 후에 마음을 바꿨다. 자녀들을 믿음으로 키우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남편과 함께 스스로 교회에 갔다. 다행히 남편 정영규 장로는 시누이처럼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었다.
“저희 친정 부모님이 교회분란으로 실족하신 적이 있어요. 부모님을 다시 전도하는데 남편이 큰 역할을 했어요. 주일마다 친정에 내려와서 부모님과 함께 예배드리고, 기도하기를 반복했거든요.”
서로에 대한 첫인상, 시집왔을 때 느낀 점, 가족으로 묶이면서 겪은 에피소드, 그리고 하나님 만난 이야기까지 한 지붕 세 권사의 수다는 멈출 줄 몰랐다. 누구도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그땐 그랬지, 이땐 이랬지’하면서 추억을 회상하고, 서로에 대한 감사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끊임없이 간증했다. 그들의 삶 자체가 신앙이었다. 그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아름다운 노래 같은 간증이었다.
서승옥 권사가 한 지붕 세 권사 가족들의 신앙 역사를 들려줬다.
“저는 지식만 있었지 지혜가 없던 사람이었어요. 지성적이고 분석적이었어요. 영성이 없었거든요. 시아버지께서 ‘우리 큰며느리가 교회 간 게 기적’이라고 하셨을 정도였어요.”
서승옥 권사는 시누이 정선희 권사의 전도로 신앙을 갖게 됐다. 정 권사가 서 권사에게 끊임없이 교회 가자고 권유했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기도도 정 권사가 인도했다.
“시누가 시부모님을 계속 전도했어요. 그 간곡한 권유가 먹혀서 시부모님께서 하나님을 믿게 됐어요. 그러고 나서 저한테도 교회 가자고 하더라고요.”
정 권사가 전도하던 당시를 떠올리며 간증했다.
“제가 언니한테 자꾸 교회 가자고 하니까 어느 날은 화를 내더라고요. ‘아가씨, 그런 얘기할 거면 집에 오지도 말아요!’라면서요. 우리 집인데 오지 말라고 하는 언니랑 대판 싸운 적도 있어요. 또 한 번은 언니가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지 않냐면서 그만하라고 소리도 치셨어요. 그때 ‘곧 큰언니가 하나님을 믿겠구나’라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최영기 권사도 당시를 떠올렸다. 당시 정씨 집안에 갓 시집온 최 권사는 너무 지적이고 분석적인 큰형님(서승옥 권사)이 너무 무서웠다.
“큰형님을 위해서 기도를 정말 많이 했어요. 큰형님네가 집안의 머리라고 생각했거든요. 아주버님과 큰형님이 신앙을 갖고 집안의 든든한 기둥이 되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시누랑 같이 큰형님네의 구원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어요.”
최영기 권사는 제 발로 교회를 찾아갔다. 어린 시절 교회를 다닌 적도 있고, 결혼 전에 직장 다닐 때도 점심시간에 회사 근처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신앙은 있었지만 신앙생활을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결혼 후에 마음을 바꿨다. 자녀들을 믿음으로 키우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남편과 함께 스스로 교회에 갔다. 다행히 남편 정영규 장로는 시누이처럼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었다.
“저희 친정 부모님이 교회분란으로 실족하신 적이 있어요. 부모님을 다시 전도하는데 남편이 큰 역할을 했어요. 주일마다 친정에 내려와서 부모님과 함께 예배드리고, 기도하기를 반복했거든요.”
서로에 대한 첫인상, 시집왔을 때 느낀 점, 가족으로 묶이면서 겪은 에피소드, 그리고 하나님 만난 이야기까지 한 지붕 세 권사의 수다는 멈출 줄 몰랐다. 누구도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그땐 그랬지, 이땐 이랬지’하면서 추억을 회상하고, 서로에 대한 감사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끊임없이 간증했다. 그들의 삶 자체가 신앙이었다. 그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아름다운 노래 같은 간증이었다.
영원히 썩지 않는 동아줄
한 집안에 권사가 셋이나 있는데 장로도 둘이나 있다. 그야말로 믿음 좋은 집안이라 할 수 있지만 이들에게도 무거운 숙제가 있다. 바로 ‘가족의 구원’이다.
서승옥 권사의 남편은 젊을 때는 교회를 다녔지만 지금은 다니지 않는다. 둘째 시동생과 셋째 시동생네는 불교신자들이다. 그래도 세 권사는 낙담하지 않는다. 그들의 구원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그라지지 않는 희망을 가진 사람들은 역시 무엇인가 달랐다.
“제 남편은 교회에 가지 않으면서 제가 교회 활동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아요. 저를 따끔하게 가르칠 때도 있어요. 몸이 안 좋아서 집에서 CGNTV로 예배드리려고 하면 ‘교회가서 예배 드려야지’라고 말하기도 하고, 시부모님 추도예배를 드리면서 찬송을 한 곡만 부르면 ‘찬송을 하나만 부르면 어떡하냐 더 불러야지’라고 해요. 시누이가 교회 잘 다니고 있는지 출석체크도 한다니까요.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언젠간 마음의 벽이 허물어 질 때가 올 거라고 믿고 있어요.”
정선희 권사도 의연하고 확고하게 고백했다.
“어릴 적에 큰오빠가 저에게 성경책과 구두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적 있어요. 당시에는 성경책이 흔하지 않을 때라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비록 지금은 큰오빠가 교회에 나오지 않지만 저는 큰오빠한테 믿음이 있다는 것을 알아요. 그래서 걱정이 안 돼요.”
혹자는 세 권사와 두 장로가 있는데 아직도 전도가 안 된 가족이 있나고 의아해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 권사, 두 장로가 있기에 전도 안 된 가족이 있어도 걱정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가장 든든한 동역자들이기 때문이다.
“온누리교회라는 좋은 교회에서 가족이 함께 신앙생활을 할 수 있고, 또 성숙하게 믿음을 지킬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에요. 앞으로도 좋은 동역자로서 함께 기도하고, 같은 길을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이 참 든든해요.”
세 권사의 기도의 삼겹줄은 영원히 썩지 않는 동아줄이다. 그것만 있으면 가족 구원이라는 거대한 숙제도 수월하게 마칠 수 있을 것이다.
이날 세 권사의 수다는 밤이 늦도록 이어졌다. 각자를 향한 사랑과 기도제목을 쏟아냈다. 아무리 사역이 바빠도,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기도와 정으로 묶인 끈끈한 유대는 그 누구도 끊을 수 없다. 하나님이 맺어준 인연이기 때문이다.
서승옥 권사의 남편은 젊을 때는 교회를 다녔지만 지금은 다니지 않는다. 둘째 시동생과 셋째 시동생네는 불교신자들이다. 그래도 세 권사는 낙담하지 않는다. 그들의 구원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그라지지 않는 희망을 가진 사람들은 역시 무엇인가 달랐다.
“제 남편은 교회에 가지 않으면서 제가 교회 활동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아요. 저를 따끔하게 가르칠 때도 있어요. 몸이 안 좋아서 집에서 CGNTV로 예배드리려고 하면 ‘교회가서 예배 드려야지’라고 말하기도 하고, 시부모님 추도예배를 드리면서 찬송을 한 곡만 부르면 ‘찬송을 하나만 부르면 어떡하냐 더 불러야지’라고 해요. 시누이가 교회 잘 다니고 있는지 출석체크도 한다니까요.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언젠간 마음의 벽이 허물어 질 때가 올 거라고 믿고 있어요.”
정선희 권사도 의연하고 확고하게 고백했다.
“어릴 적에 큰오빠가 저에게 성경책과 구두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적 있어요. 당시에는 성경책이 흔하지 않을 때라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비록 지금은 큰오빠가 교회에 나오지 않지만 저는 큰오빠한테 믿음이 있다는 것을 알아요. 그래서 걱정이 안 돼요.”
혹자는 세 권사와 두 장로가 있는데 아직도 전도가 안 된 가족이 있나고 의아해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 권사, 두 장로가 있기에 전도 안 된 가족이 있어도 걱정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가장 든든한 동역자들이기 때문이다.
“온누리교회라는 좋은 교회에서 가족이 함께 신앙생활을 할 수 있고, 또 성숙하게 믿음을 지킬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에요. 앞으로도 좋은 동역자로서 함께 기도하고, 같은 길을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이 참 든든해요.”
세 권사의 기도의 삼겹줄은 영원히 썩지 않는 동아줄이다. 그것만 있으면 가족 구원이라는 거대한 숙제도 수월하게 마칠 수 있을 것이다.
이날 세 권사의 수다는 밤이 늦도록 이어졌다. 각자를 향한 사랑과 기도제목을 쏟아냈다. 아무리 사역이 바빠도,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기도와 정으로 묶인 끈끈한 유대는 그 누구도 끊을 수 없다. 하나님이 맺어준 인연이기 때문이다.
작성자 정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