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문화! 오직 하나님!
만나고 싶었습니다
강남 유일 소극장 ‘스페이스 바움’ 대표 김동언 장로
대한민국 유행과 패션, 문화의 중심지 강남. 대규모 오피스타운, 수많은 성형외과와 카페, 레스토랑 등이 즐비한 이곳에 이질적인 색깔의 장소가 있다. 바로 강남 유일의 소극장 ‘스페이스 바움’이다. 바움(Baum)은 독일어로 ‘나무’라는 뜻이다. 소극장 스페이스 바움은 ‘도심 속 음악의 숲’을 표방한다. 바쁘고 삭막한 강남 한복판에서 문화와 공연을 통해 나무와 숲이 주는 휴식과 여유를 즐기라는 의미다. 이 특별한 장소를 만든 주인공은 김동언 장로(강촌공동체)다. 그는 대한민국 대표 번화가이자 유흥가 강남에 크리스천 문화를 전파하겠다는 비전을 품고 지난 2013년 사비를 털어 소극장을 열었다.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신사역 3번 출구에서 도보로 1분 거리에 강남 유일의 소극장 ‘스페이스 바움’이 있다. 입구부터 뭔가 다르다. 소극장으로 향하는 계단부터 고급 노송이 주는 향긋함과 따뜻함이 가득했다. 잿빛 빌딩들과 확연히 구분됐다. 그것이 바로 소극장 스페이스 바움의 정체성을 말해주고 있었다.
소극장 스페이스 바움에서 만난 김동언 장로는 끊임없이 문화를 이야기했다. 음악, 미술, 아티스트, 소극장 문화, 교회 문화, 나아가 문화선교까지 거침없었다. 3시간이나 되는 인터뷰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갈 정도였다. 그가 문화를 얼마나 사랑하고, 문화선교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뜨겁고 강렬한지 단숨에 알 수 있었다.
소극장 스페이스 바움의 대표 김동언 장로의 직업은 인테리어 디자이너다. 그런 그가 사비를 털어 강남에 소극장을 만든 이유가 무엇일까? 아주 간단하다. 문화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제가 잘 하고(인테리어) 좋아하는 것(문화)을 하면서 하나님께 시간의 십일조를 드리고 싶었어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곳은 강남 한복판이다. 임대료에 시설비, 운영비까지 비용이 만만찮게 들 텐데…. 이윤이 있냐는 질문에 산뜻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윤을 생각했으면 여기다 차라리 식당을 차렸겠죠. 감사하게도 적자는 안 나고 있습니다(웃음).”
100석 규모의 소극장이지만 우습게보면 안 된다. 시설만큼은 단연 최고다. 무대와 벽, 음향시설 및 악기 등을 최고로 갖췄다. 수천 개의 못질 대신 전통방식을 고수했다.
“나무는 흡수와 반사를 같이 하는 재료에요. 공연장 재료로서는 최적이죠. 나무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최대한 살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못질을 전혀 하지 않고 전통방식인 짜 맞추기 방식으로 시공했습니다. 피아노와 스피커, 콘솔 믹서 등 음향시설과 악기도 최상의 사운드를 추구하기 위해서 최고의 것들로 구비했습니다.”
이곳에서 공연했던 아티스트들도 일류들이다. 이 시대 최고의 기타리스트라는 호칭을 갖고 있는 함춘호를 비롯해 CCM 아티스트 한웅재 목사, 나무엔, 유명 밴드 세션들이 스페이스 바움에서 공연했다. 스페이스 바움에서 막 오르는 공연 장르 또한 다양하다. 클래식, 재즈, CCM, 밴드 공연뿐만 아니라 북콘서트, 토크쇼 등 장르와 레퍼토리를 가리지 않는다.
근데 김 장로가 소극장을 만든 진짜 이유가 무엇일까?
“대중문화를 하는 좋은 공연자, 좋은 무대, 좋은 공연장은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교회 문화와 공연장은 어떻죠? 우리나라 찬양사역자들이 서는 무대가 매우 열악합니다. 그들이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좋은 공연장이 거의 없어요. 돈도 안 되고, 설 무대도 없으니 좋은 곡을 만들기가 어렵습니다. 좋은 아티스트가 생겨나기 어려운 구조인거죠. 저는 무대가 없어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크리스천 공연자들에게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었어요. 그들이 스페이스 바움에서 공연하고 조금이라도 수익을 얻었으면 하는 게 제 바람입니다.”
김 장로는 스페이스 바움에서 공연하는 아티스트들에게 반드시 유료공연을 할 것을 다짐받는다.
“저는 아티스트들에게 유료공연을 권합니다. 지인들에게만 티켓을 알음알음 파는 방식이 아니라 전문 업체를 통해 티켓을 팔도록 합니다. 그렇게 해야 그들이 최고의 연주와 공연을 하고 수입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의 공짜 공연에 익숙한 크리스천들이 과연 업체에 돈을 주고 티켓을 구입할까?
“몇 만원이나 하는 CCM 공연에 누가 올까 싶겠지만 좋은 연주자와 좋은 무대는 가격에 구애받지 않고 옵니다. 대부분 매진됩니다.”
좋은 무대, 좋은 연주자, 좋은 음악(레퍼토리)만 있다면 유료공연도 성공할 수 있다는 그의 확신이 적중했다. 대부분 매진이었다. 뿐만 아니라 높은 문턱 때문에 교회를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문화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유동인구가 많고, 접근성이 좋은 강남 한복판에 소극장을 만들었다.
소극장 스페이스 바움에서 만난 김동언 장로는 끊임없이 문화를 이야기했다. 음악, 미술, 아티스트, 소극장 문화, 교회 문화, 나아가 문화선교까지 거침없었다. 3시간이나 되는 인터뷰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갈 정도였다. 그가 문화를 얼마나 사랑하고, 문화선교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뜨겁고 강렬한지 단숨에 알 수 있었다.
소극장 스페이스 바움의 대표 김동언 장로의 직업은 인테리어 디자이너다. 그런 그가 사비를 털어 강남에 소극장을 만든 이유가 무엇일까? 아주 간단하다. 문화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제가 잘 하고(인테리어) 좋아하는 것(문화)을 하면서 하나님께 시간의 십일조를 드리고 싶었어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곳은 강남 한복판이다. 임대료에 시설비, 운영비까지 비용이 만만찮게 들 텐데…. 이윤이 있냐는 질문에 산뜻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윤을 생각했으면 여기다 차라리 식당을 차렸겠죠. 감사하게도 적자는 안 나고 있습니다(웃음).”
100석 규모의 소극장이지만 우습게보면 안 된다. 시설만큼은 단연 최고다. 무대와 벽, 음향시설 및 악기 등을 최고로 갖췄다. 수천 개의 못질 대신 전통방식을 고수했다.
“나무는 흡수와 반사를 같이 하는 재료에요. 공연장 재료로서는 최적이죠. 나무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최대한 살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못질을 전혀 하지 않고 전통방식인 짜 맞추기 방식으로 시공했습니다. 피아노와 스피커, 콘솔 믹서 등 음향시설과 악기도 최상의 사운드를 추구하기 위해서 최고의 것들로 구비했습니다.”
이곳에서 공연했던 아티스트들도 일류들이다. 이 시대 최고의 기타리스트라는 호칭을 갖고 있는 함춘호를 비롯해 CCM 아티스트 한웅재 목사, 나무엔, 유명 밴드 세션들이 스페이스 바움에서 공연했다. 스페이스 바움에서 막 오르는 공연 장르 또한 다양하다. 클래식, 재즈, CCM, 밴드 공연뿐만 아니라 북콘서트, 토크쇼 등 장르와 레퍼토리를 가리지 않는다.
근데 김 장로가 소극장을 만든 진짜 이유가 무엇일까?
“대중문화를 하는 좋은 공연자, 좋은 무대, 좋은 공연장은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교회 문화와 공연장은 어떻죠? 우리나라 찬양사역자들이 서는 무대가 매우 열악합니다. 그들이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좋은 공연장이 거의 없어요. 돈도 안 되고, 설 무대도 없으니 좋은 곡을 만들기가 어렵습니다. 좋은 아티스트가 생겨나기 어려운 구조인거죠. 저는 무대가 없어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크리스천 공연자들에게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었어요. 그들이 스페이스 바움에서 공연하고 조금이라도 수익을 얻었으면 하는 게 제 바람입니다.”
김 장로는 스페이스 바움에서 공연하는 아티스트들에게 반드시 유료공연을 할 것을 다짐받는다.
“저는 아티스트들에게 유료공연을 권합니다. 지인들에게만 티켓을 알음알음 파는 방식이 아니라 전문 업체를 통해 티켓을 팔도록 합니다. 그렇게 해야 그들이 최고의 연주와 공연을 하고 수입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의 공짜 공연에 익숙한 크리스천들이 과연 업체에 돈을 주고 티켓을 구입할까?
“몇 만원이나 하는 CCM 공연에 누가 올까 싶겠지만 좋은 연주자와 좋은 무대는 가격에 구애받지 않고 옵니다. 대부분 매진됩니다.”
좋은 무대, 좋은 연주자, 좋은 음악(레퍼토리)만 있다면 유료공연도 성공할 수 있다는 그의 확신이 적중했다. 대부분 매진이었다. 뿐만 아니라 높은 문턱 때문에 교회를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문화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유동인구가 많고, 접근성이 좋은 강남 한복판에 소극장을 만들었다.
6대째 신앙인의 꿈…
문화사랑 가득한 김 장로는 신앙 또한 아름답다.
“제 아들까지 6代째 신앙입니다. 대대로 장로 집안이고요. 고조부, 증조부, 아버지, 제가 장로이고, 할아버지는 목사셨어요.”
그의 증조부 김응록 장로는 ‘105인 사건’에 가담한 독립운동가이기도 하다. 정말 대단한 신앙내력을 가진 가문이다. 김 장로의 신앙이 굳건한 이유 또한 집안내력 때문이겠거니 짐작했는데 의외의 대답을 들었다.
“제가 모태신앙이고 아버지가 장로이니까 저 또한 대단한 신앙을 가졌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저는 깊은 신앙의 소유자가 아니었어요.”
그의 신앙생활은 굉장히 보수적이고 딱딱했다. ‘누구 장로 아들’이라는 타이틀이 그를 옭아맸다. 집안의 신앙 이력은 길지 몰라도 그것이 그의 신앙은 아니었다. 그런 그의 신앙이 바뀐 것은 부모님의 끊임없는 기도와 아내 황유선 권사의 도움 덕분이었다. 황 권사는 온누리교회 청년부 출신이다. 황 권사는 성령의 감동 없이 형식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던 남편에게 온누리교회로 옮길 것을 권했다.
“아내가 ‘당신의 신앙을 위해서 온누리교회로 옮기는 게 좋을 것 같아요’라며 제 생일선물로 ‘아버지학교’ 티켓을 줬어요.”
그런데 교회를 옮기려 하자 김 장로의 아버지가 반대했다. 아들과 함께 교회를 다니고 싶고, 섬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교회에서 봉사도 많이 하고 사역도 많이 해서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장로 직분을 받을텐데 왜 다른 교회로 가느냐며 반대하셨어요. 대형교회에 가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물론 모교회에 계속 있었으면 더 빨리 장로가 되었겠지만, 김 장로는 ‘속도보다 방향’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장로 직분을 받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어떤 장로가 되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장로가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그 또한 힘든 여정을 가는 주님의 길이니까요.”
김 장로는 자녀교육 방법도 남달랐다. 공부하라는 잔소리보다 문화를 심어주려고 노력했다.
“문화는 자녀가 어릴 때부터 부모가 심어줘야 합니다. 저는 아이들을 데리고 공연이나 문화 관람을 많이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공부는 학교에서 하니까 집에서까지 잔소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누구와 비교하는 대신 요셉의 꿈을 이야기해줬고요.”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들이 알아줬다.
“어느 날 아들이 그러더라고요. ‘아버지 같은 아버지가 없어. 아버지 같은 아버지들이 많았으면 좋겠어’라고요.”
김 장로는 입만 열면 문화와 문화선교 이야기뿐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문화로 다가가 소통하려는 그가 참으로 귀해보였다. 김동언 장로를 생각하면 할수록 백범 김구 선생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백범 김구 <나의 소원> 중)
“제 아들까지 6代째 신앙입니다. 대대로 장로 집안이고요. 고조부, 증조부, 아버지, 제가 장로이고, 할아버지는 목사셨어요.”
그의 증조부 김응록 장로는 ‘105인 사건’에 가담한 독립운동가이기도 하다. 정말 대단한 신앙내력을 가진 가문이다. 김 장로의 신앙이 굳건한 이유 또한 집안내력 때문이겠거니 짐작했는데 의외의 대답을 들었다.
“제가 모태신앙이고 아버지가 장로이니까 저 또한 대단한 신앙을 가졌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저는 깊은 신앙의 소유자가 아니었어요.”
그의 신앙생활은 굉장히 보수적이고 딱딱했다. ‘누구 장로 아들’이라는 타이틀이 그를 옭아맸다. 집안의 신앙 이력은 길지 몰라도 그것이 그의 신앙은 아니었다. 그런 그의 신앙이 바뀐 것은 부모님의 끊임없는 기도와 아내 황유선 권사의 도움 덕분이었다. 황 권사는 온누리교회 청년부 출신이다. 황 권사는 성령의 감동 없이 형식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던 남편에게 온누리교회로 옮길 것을 권했다.
“아내가 ‘당신의 신앙을 위해서 온누리교회로 옮기는 게 좋을 것 같아요’라며 제 생일선물로 ‘아버지학교’ 티켓을 줬어요.”
그런데 교회를 옮기려 하자 김 장로의 아버지가 반대했다. 아들과 함께 교회를 다니고 싶고, 섬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교회에서 봉사도 많이 하고 사역도 많이 해서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장로 직분을 받을텐데 왜 다른 교회로 가느냐며 반대하셨어요. 대형교회에 가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물론 모교회에 계속 있었으면 더 빨리 장로가 되었겠지만, 김 장로는 ‘속도보다 방향’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장로 직분을 받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어떤 장로가 되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장로가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그 또한 힘든 여정을 가는 주님의 길이니까요.”
김 장로는 자녀교육 방법도 남달랐다. 공부하라는 잔소리보다 문화를 심어주려고 노력했다.
“문화는 자녀가 어릴 때부터 부모가 심어줘야 합니다. 저는 아이들을 데리고 공연이나 문화 관람을 많이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공부는 학교에서 하니까 집에서까지 잔소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누구와 비교하는 대신 요셉의 꿈을 이야기해줬고요.”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들이 알아줬다.
“어느 날 아들이 그러더라고요. ‘아버지 같은 아버지가 없어. 아버지 같은 아버지들이 많았으면 좋겠어’라고요.”
김 장로는 입만 열면 문화와 문화선교 이야기뿐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문화로 다가가 소통하려는 그가 참으로 귀해보였다. 김동언 장로를 생각하면 할수록 백범 김구 선생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백범 김구 <나의 소원> 중)
작성자 정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