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복음통일을 꿈꿉니다!”-온누리교회 출신 1호 탈북민 목회자 ‘마요한 목사’
특집
온 누리에서 만난 온누리
“오직 복음통일을 꿈꿉니다!”
온누리교회 출신 1호 탈북민 목회자 ‘마요한 목사’
“7년 된 성도는 떠나라”는 말에 온누리교회를 떠난 성도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
까? 그들은 여전히 복음을 전하는데 여념이 없다. 온누리교회에서 배우고 경험한 노하우와 선교정신이 사역하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만한 자산이 없다며 온누리교회에 무척 고마워하고 있다. 본지에서는 온누리교회에서 배우고 익힌 노하우와 선교정신을 바탕으로 열방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고 있는 이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 열 번째 주인공은 온누리교회 출신 1호 탈북민 목회자 ‘마요한 목사’다.
/ 김영선 기자 k4458@onnuri.org
마요한 목사의 소망은 딱 한가지다. 복음통일이다. 복음통일을 꿈꾸는 그의 열정이 얼마나 뜨거운지 모른다. 마 목사는 인터뷰 하는 내내 한 번도 쉬지 않고 복음통일에 대한 소망을 노래했다.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다는 혹독한 탈북 과정과 한국 사회에 정착하고 적응하면서 겪었을 아픔도 느낄 새가 없었단다. 오로지 복음통일만 생각하고 준비했기 때문이다.
마 목사는 2002년 한국에 왔다. 복음통일을 이루기 위해 한국에 온 그는 벌써부터 작은 통일을 만들어가고 있다. 마 목사가 섬기고 있는 새희망나루교회는 통일 이후 한국 교회가 어디로 나아가야할지 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새희망나루교회에서는 탈북민, 남한 주민, 외국인들이 모두 한 가족처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어우러짐이 바로 마 목사가 꿈꾸는 복음통일이다.
두 번의 탈북과 사명
마요한 목사는 1998년 첫 번째 탈북을 했다. 북송될지 모른다는 극심한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며 살아야 했다. 당시 그는 중국에서 생활했는데 교회나 예수님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었고 알지도 못했다. 그저 살아남는 것이 꿈이자 소원이었다. 마 목사는 북한에서 중고등학교 역사 교사였다. 기업소 청년간부로 동원되어 장마당 조사를 나갔다가 북한 주민들의 물건을 빼앗는 당국자들의 모습을 보고 북한 사회에 회의감을 느끼고 탈북을 결심했다.
“북한에 살 때는 종교는 무조건 안 좋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탈북한 이후에는 불확실한 신분과 언제 북송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종교나 신앙생활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고요.”
예수의 ‘예’자도 들어본 적 없던 그가 정말 우연한 기회에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성경통독에 가게 됐다. 그곳에서 성경책을 난생 처음 읽었다. 일 년 동안 성경만 읽고 또 읽었다. 처음 성경을 읽고 너무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계속 읽다보니까 그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믿어지기 시작했다. 아주 조금씩 말씀을 사모하게 됐다. 1년 동안 성경을 읽은 마요한 목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딴 사람이 돼 있었다. 생존이 삶의 유일한 목표였던 그가 북한에서 고통 받고 있는 동포들에게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첫 번째 사명이 생겼다. 그때부터 마 목사는 탈북자들에게 성경을 가르쳤다. 그즈음 선교사들과 동역한 것이 마요한 목사와 온누리교회의 첫 번째 인연이었다.
“원래는 북한과 중국 국경에서 거리가 많이 떨어진 곳에서 사역하고 있었는데 북한 정권이 금방 무너질 것 같아서 연변으로 사역지를 옮겼어요. 그런데 그만 북한 보위부에 발각되어서 북송당하고 말았어요. 동포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죽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큰일났다 싶어라고요.”
북한 보위부에서는 마요한 목사를 주목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북한 정권에서 예수를 전하고 다니는 마요한 목사가 곱게 보일 리 없었기 때문이다. 마 목사를 악질 중에 악질 탈북자로 분류하고 있었다.
“저를 당장 죽일 줄 알았는데 이상할 정도로 안 죽이더라고요. 옥살이를 했어요. 나중에 알았는데 그때 온누리교회 성도님들이 저를 위해 기도를 정말 많이 해주셨다고 들었어요. 그 덕분에 살았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1년 반 정도 옥살이를 했다. 후유증이 엄청났다. 몸을 가눌 수 없었다. 마 목사를 풀어주면서 ‘집에 가서 죽던지 회복해서 다시 옥에 오라’고 할 정도였다. 가족들 등에 업혀 감옥을 나오면서 하나님께서 살려주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북한 당국에서는 마요한 목사가 반년 정도는 요양해야 될 거라고 예상했는데 한 달 만에 회복했다. 몸을 가눌 수 있게 되자 마 목사는 또 다시 탈북했다. 이번에도 연변 근처에서 탈북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려 했는데 선교사들이 만류했다. 한 번 더 북송되면 다음을 기약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한국행을 택했다. 그렇게 남한에서 복음통일을 준비해야겠다는 두 번째 사명이 생겼다. 그때부터 복음통일이 그의 마음속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복음 말고는 온전한 통일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온 누리와 함께
2002년 가을 한국에 왔다. 처음 찾은 교회가 바로 온누리교회였다. 당시 양재 온누리교회에 출석하면서 한국 성도들과 탈북민들을 만나고 교제했다. 그때만 해도 양재 온누리교회에 탈북민을 위한 예배공동체가 없었다. 그래서 카페나 숙소동 근처에 기도모임을 열고 근황을 나눴다. 나름 잘 지내고 있었는데 방황이 찾아왔다.
“제가 하나님의 사명을 잃고 잠깐 방황한 적이 있었어요. 신학교에 입학할 시기가 안 맞아서 여유가 생겼어요. 남한에서는 뭘 해도 잘할 수 있겠다는 마음도 들고, 목회자 되지 않아도 복음통일에 일조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잠깐 다른 생각을 하다가 예수제자훈련을 받았으면서 정신을 차렸어요.”
2004년 총신대학교에 편입해서 신학을 공부했다. 온누리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도 했다. 탈북민들만 모이던 모임에 북한에 관심 있는 성도들과 여호수아공동체 북한사역팀 청년들이 합세했다. 그렇게 어엿한 예배공동체가 만들어졌다. 복음통일을 위한 걸음마를 시작했다.
마요한 목사는 온누리교회에서 8년 동안 사역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러는 사이 마 목사의 역량도 성장했다. 탈북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남한 성도들에게 복음통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세 번째 사명이 생겼다. 탈북민과 남한 성도들을 구분하지 않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그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통일 이후 한국 교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아마 인종과 지역을 따지지 않는 초대교회 같은 공동체일 거예요. 그런데 대부분의 교회들이 탈북민과 남한 성도들의 역할을 구분하고 있어요. 저는 하나 되는 공동체를 꿈꾸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공동체는 하나 되는 공동체이니까요.”
마 목사는 2011년 새희망나루교회를 개척했다. 아주 작게 시작했는데 지금은 성도 50여 명과 함께 예배드리고 있다. 복음통일을 표방하는 새희망나루교회는 인종과 출신 국가를 따지지 않는다. 중국인, 탈북민, 영국인, 독일인, 한국인 등 다양한 민족이 모두 하나 되어 서로를 돕고 섬기고 있다. 새희망나루교회는 청년들을 훈련시키는 일에도 집중하고 있다. 청년 신앙그룹홈인 ‘희망홈’을 운영하고 있다
“통일 된 한반도를 살아갈 주인공은 다음세대입니다. 청년들을 훈련시키고 섬기는 것은 모종을 심는 것과 같습니다. 남북한 청년들이 함께 통일을 이뤄가는 그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요한 목사가 온누리교회 성도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늘 북한과 통일을 위해 기도해주시고 섬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최근 남북관계에 화색이 돌고 있습니다. 이럴 때 일수록 기도가 중요합니다. 오직 기도와 복음만이 통일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새희망나루교회 청년 멘토 및 봉사자 모집
문의: 02-6406-0342
작성자 김영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