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명화와 함께 읽는 성경-“천국열쇠를 네게 주리니 내 양을 먹이라”

전문가 기고
명화와 함께 읽는 성경
 
“천국열쇠를 네게 주리니 내 양을 먹이라”
라파엘로의 ‘베드로에게 천국열쇠를 주시는 그리스도’
 
<사진캡션>
라파엘로 산치오의 ‘베드로에게 천국열쇠를 주시는 그리스도’(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 소장)
 
내가 라파엘로 산치오(1483~1520년)가 그린 ‘베드로에게 천국열쇠를 주시는 그리스도’(1515~1516년)의 실물을 처음 본 건 런던올림픽이 열린 2012년 여름이었다. 당시 문체부장관실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올림픽 기간 중에 런던을 가게 되었다. 우리 부처 직원들은 한국 선수들을 지원하는 동시에 한국의 문화예술을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한 각종 행사를 총괄하고 있었다. 그 하나가 런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V&A)에서 열린 한국 의상과 음식을 소개하는 행사였다. 의상 발표는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이 맡았고, 한국 음식은 비비고(CJ제일제당)에서 해외에 첫 출시하는 비빔밥이 주 메뉴였다. 당시 올림픽 참관 차 온 외국인들과 런던 주재 각국 외교관들이 초청 받아 참석했다. 행사는 성황리에 끝났다. 당시 V&A 관장은 행사 전에 도슨트(박물관 안내자)를 자임하며 박물관에 전시된 주요 작품들을 자상하게 해설해 주기도 했다.
마침 박물관이 휴관일이라 넓은 박물관에 우리뿐이었다. 나는 장관을 수행하고 온 본분을 망각한 채 내부를 종횡무진 했다. 그러다 라파엘로관에서 큰 그림 두 점을 만나게 되었다. 하나는 라파엘로의 ‘고기잡이 기적’이었고, 또 다른 하나가 오늘 소개할 ‘베드로에게 천국열쇠를 주시는 그리스도’였다.
나란히 걸린 두 작품을 만나자마자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생각보다 큰 그림 사이즈도 놀라웠지만, 그림이 주는 엄청난 무게감에 완전히 압도되었다. 대체 얼마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을까? 시간도 멈추고, 몸도 굳었지만 내 가슴은 뛰었다. 오! 성령 하나님께서는 성화 앞에서 내적으로 전율하던 내게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려 했을까? 내가 단순한 취미생활을 넘어 심리학적 상징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성화를 탐구하고 글을 쓰고 강연을 시작한 것도 그날 이후였다.
 
드디어 베드로에게
천국열쇠를 하사하시다
 
오늘 라파엘로의 그림과 함께 묵상할 성경본문은 마태복음 16장 13~20절과 요한복음 21장15~17절이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천국열쇠를 맡기며 “내 양을 먹이라”고 당부하시는 내용이다.
이 그림은 당시 라파엘로의 스승인 페루지노가 그린 ‘천국열쇠를 받는 베드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는 페루지노의 수제자였다. 이 사제지간처럼 루벤스, 푸생, 귀도 레니 등 수많은 후배 화가들도 같은 소재로 작품을 남겼다.
라파엘로의 그림을 보자. 그림 왼쪽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서 계신다. 라파엘로는 예수님의 손과 발에 못 자국을 선명하게 그려 넣고, 제자들을 12명이 아닌 11명만 그려 넣어 지금 이 시간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라는 걸 분명히 하고 있다. 예수님의 하얀 옷 역시 부활 후임을 암시한다. 예수님이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 당신의 신성(神性)을 보여주셨던 ‘거룩한 변모’의 순간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막 9:3).
예수님의 부활 직후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온 마리아가 빈 무덤 안에 있는 두 천사를 만나는데,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마 28:3)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주검을 싼 깨끗한 세마포(마 27:59) 역시 흰색이었을 것이다. 흰색은 완전한 순결, 죽음의 어둠을 이긴 빛나는 승리를 상징한다. 라파엘로가 부활하신 예수님의 옷을 하얗게 묘사한 이유일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왼손은 베드로를, 오른손은 양떼를 가리킨다. 예수님 앞에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열쇠를 받아들고 있는 이가 베드로다. 예수님이 물으신다.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예. 주여! 제가 주를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십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동일한 질문을 세 번이나 거듭하시며(요 21:15~17) 그의 믿음을 세 차례나 거듭 확인하신 이후 마침내 그에게 양떼를 맡기신다.

가이사랴 빌립보 어느 강변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물으신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한다. “주는 그리스도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베드로야, 네가 복이 있다. 이를 네게 계시하신 분은 사람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이시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반석이란 이름을 가진 베드로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인즉, 저승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마 16:15~18).
그러니까 라파엘로의 이 그림은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에 실린 두 내용을 하나의 그림 속에 뭉뚱그려 표현한 것이다.

원래 ‘양(羊)’은 복합적인 상징을 갖는다. 하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 받은 백성을 뜻한다. 양들은 그들을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는 선한 목자를 전적으로 믿고 따른다. 또 하나는 양이 아닌 선한 목자를 상징하는 역설적인 경우이다. 선한 목자이신 그리스도는 인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죽은 희생양이기도 하셨기 때문이다.
‘바위(반석)’ 역시 이중적인 상징을 갖는다. 앞서 말한 반석이 베드로의 이름과 같은 뜻임에 근거하여 베드로의 믿음을 상징한다. 또한 바위는 그리스도를 상징하기도 한다. 모세가 시내산을 지날 때 호렙 바위를 치자 생수가 샘솟았다(출 17:6). 여기서 바위는 목마른 양떼들에게 생명수 같은 존재인 그리스도를 상징하게 되었다.

주님이 그리스도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고백한 베드로의 믿음을 확인하신 예수님이 드디어 천국열쇠를 하사하신다. 여기서 열쇠는 영적인 부요(富饒)함을 상징하는 동시에 천국으로 향하는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영적인 권위를 상징한다. 천국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권위는 그리스도의 권위인데, 그것을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위임하신 것이다. 이후 도상학(圖像學)에서 열쇠는 베드로를 상징하는 지물(attribute, 속성)이 된다.
“나는 또 네게 천국열쇠를 줄 것이다. 무엇이든 네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 16:19).
안셀름 그륀에 의하면 여기서 ‘매이고 풀리다’는 말은 예수님과의 연결을 상징한다.
“그리스도와 매이는(연결되는) 것은 나를 부자유의 사슬과 두려움에서 풀어주고, 마침내 나를 내 아집(ego)의 함정에서 풀어준다.”
 
그리하면 너에게 천국열쇠를 주겠노라!
 
그렇다. 사실 베드로는 우리 자신을 뜻한다. 베드로는 연약한 우리의 모습 그대로다. 그는 믿음과 의심, 순종과 불순종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제자라고 큰소리치다 하룻밤 새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다. 그의 모습이 바로 우리 모습이 아니라고 누가 감히 장담할 수 있는가.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다. 안셀름 그륀은 말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베드로가)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제자가 베드로처럼 항상 그리스도께 돌아가고,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고백하면 그는 예수와 마태복음이 말하는 진정한 제자다.”
마침내 그리스도와 매인(연결된) 베드로는 진정한 제자로서 사역하다가 순교하고, 그의 무덤 위에 성당이 세워지기까지 한다. 라파엘로가 멀리 원경(遠景)에 그려 넣은 성당이 바로 성베드로 성당이다. 주님은 라파엘로의 그림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너는 나에게 매일 것이냐? 너는 나를 메시아로 고백하고 항상 내게로 돌아오겠느냐? 그리하면 내가 너에게 천국열쇠를 주겠노라!”
/ 김진국 집사(한강공동체, 융합심리학연구소장)
 
 

작성자  김영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