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기독교 역사 -복음의 본질과 비본질
동방기독교 역사
복음의 본질과 비본질
나는 우즈베키스탄 국립대학에서 우즈베키스탄의 역사를 우즈벡어로 공부했다. 학교에서 역사를 공부하던 중에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우즈베키스탄의 국사책 130페이지에 중앙아시아 땅에 기독교인들이 살았었다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오래전부터 이슬람 땅이었던 중앙아시아에 기독교인들이 살았다는 기록이 나의 관심을 자극했다. 또한 사도행전 2장을 읽다가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체험을 했던 바대, 베대, 엘림 등이 중앙아시아와 관련 있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체험을 했던 이들이 중앙아시아의 기독교인들과 연결점이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몇 년 뒤 서울대학교 김호동 교수님을 알게 되었다. 김동호 교수님의 저서 <동방교회와 동서문명>이라는 책을 읽고 무릎을 쳤다. 중앙아시아 기독교 역사가 오래되었고, 초대교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시 나는 도마가 인도에서 최초의 아시아교회를 시작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서 도마에 대해 배우거나 그와 관련된 설교를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에서 도마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그래서 도마에 대해 잘 모르니까 아시아교회를 모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역사 속에서 누군가에 의해 ‘의심 많은 도마’라는 프레임이 씌워져서 이단으로 몰렸던 것은 아니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영지주의 문서로 취급되어 금서가 되었던 <도마행전>에 대한 연구를 한 일레인 페이절스(프린스턴대학 종교학)교수는 자신의 연구에서 “도마는 예수님을 신과 인간으로 인정하고 고백했던 제자였다”고 말했다. 비록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했었지만 이내 예수님을 신과 인간으로 인정하고 고백했던 도마야말로 진정한 제자요 진정한 사도가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안디옥 학파(동방기독교)와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예수님의 한 면(신성, 인성)만 강조해서 소모전을 벌였다. 두 학파는 왜 이 문제를 직면하고 큰 문제가 생기기 전에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지 못했을까? 왜 복음이라는 본질을 가지고 협력하지 못하고 본질이 아닌 문제로 교회끼리 목숨 걸고 싸웠을까?
오늘 한국 교회와 성도들에게 안디옥 학파와 알렉산드리아의 학파의 모습이 없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의 사회는 내가 보고 들은 것만 옳다고 생각하는 세상이다. 약한 사람의 의견과 생각은 무시된다. 한국 교회와 선교지에서도 내가 살기 위해, 내가 인정받기 위해 약한 사람을 이겨야만 하는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다. 교회 속에서도 이와 같은 모습이 보이는데 세상에서 보여지는 우리의 모습이 어떨까?
지금은 한국 교회가 세상 앞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할지를 고민하면서 성도들이 말씀에 머리를 숙여야 할 때인 것 같다. 세상에 사랑을 실천할 때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 자신도 사랑을 실천하기보다는 종교생활을 하는 것 같아 고민이다.
존경하는 중앙아시아의 선교사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한다.
“아시아 선교전략은 아시아 교회사를 보고 배워야지 왜 유럽 교회사를 보고 따라하는가?”
우리는 복음의 본질을 실천하고 있을까? 아니면 비본질을 쫓고 있을까?
/ 최명현 선교사(화성M센터)
몇 년 뒤 서울대학교 김호동 교수님을 알게 되었다. 김동호 교수님의 저서 <동방교회와 동서문명>이라는 책을 읽고 무릎을 쳤다. 중앙아시아 기독교 역사가 오래되었고, 초대교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시 나는 도마가 인도에서 최초의 아시아교회를 시작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서 도마에 대해 배우거나 그와 관련된 설교를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에서 도마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그래서 도마에 대해 잘 모르니까 아시아교회를 모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역사 속에서 누군가에 의해 ‘의심 많은 도마’라는 프레임이 씌워져서 이단으로 몰렸던 것은 아니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영지주의 문서로 취급되어 금서가 되었던 <도마행전>에 대한 연구를 한 일레인 페이절스(프린스턴대학 종교학)교수는 자신의 연구에서 “도마는 예수님을 신과 인간으로 인정하고 고백했던 제자였다”고 말했다. 비록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했었지만 이내 예수님을 신과 인간으로 인정하고 고백했던 도마야말로 진정한 제자요 진정한 사도가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안디옥 학파(동방기독교)와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예수님의 한 면(신성, 인성)만 강조해서 소모전을 벌였다. 두 학파는 왜 이 문제를 직면하고 큰 문제가 생기기 전에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지 못했을까? 왜 복음이라는 본질을 가지고 협력하지 못하고 본질이 아닌 문제로 교회끼리 목숨 걸고 싸웠을까?
오늘 한국 교회와 성도들에게 안디옥 학파와 알렉산드리아의 학파의 모습이 없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의 사회는 내가 보고 들은 것만 옳다고 생각하는 세상이다. 약한 사람의 의견과 생각은 무시된다. 한국 교회와 선교지에서도 내가 살기 위해, 내가 인정받기 위해 약한 사람을 이겨야만 하는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다. 교회 속에서도 이와 같은 모습이 보이는데 세상에서 보여지는 우리의 모습이 어떨까?
지금은 한국 교회가 세상 앞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할지를 고민하면서 성도들이 말씀에 머리를 숙여야 할 때인 것 같다. 세상에 사랑을 실천할 때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 자신도 사랑을 실천하기보다는 종교생활을 하는 것 같아 고민이다.
존경하는 중앙아시아의 선교사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한다.
“아시아 선교전략은 아시아 교회사를 보고 배워야지 왜 유럽 교회사를 보고 따라하는가?”
우리는 복음의 본질을 실천하고 있을까? 아니면 비본질을 쫓고 있을까?
/ 최명현 선교사(화성M센터)
작성자 김영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