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기독교 역사 - 중앙아시아 동방기독교의 1+1 전략
동방기독교 역사
중앙아시아 동방기독교의 1+1 전략
동방기독교는 중앙아시아에서 1,500년 이상 소수자였다. 그래서 중앙아시아 동방기독교는 늘 진취적이었다. 그들은 두 가지 특별한 전략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복음을 전했다. 나는 그들의 전략을 ‘1+1 전략’이라고 부르고 싶다. 하나는 ‘학교+수도원’ 전략이다. 중앙아시아 동방기독교는 학교와 수도원을 결합해서 삶과 신앙을 동시에 가르치고 배웠다. 또 다른 하나는 ‘다민족+다언어’ 전략이다. 중앙아시아는 민족도 언어도 다양하다. 중앙아시아 동방기독교는 복음의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민족도 따지지 않았고, 다양한 언어를 동시에 사용했다.
동방기독교의 전파에는 발달한 학교제도가 뒷바탕이었다. 동방기독교인들은 학교를 통해서 종교적 지식을 전수 및 전파할 수 있었다. 동방기독교의 학교제도는 이미 메소포타미아나 페르시아 지방에서 상당히 정비되어 있었다. 학교는 수도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는데 교사들의 대부분이 수도원에 소속된 사제들이었다. 학생들은 5~6명이 한 방에 기숙하며 공부하기도 했다. 동방기독교의 교회는 학교이자 수도원이었던 셈이다.
9세기경 쓰인 <수도원의 역사>라는 글에서 당시 수도원 생활에 대해 보여준다. 이라크 모술 동쪽의 베트 아베 수도원은 교회와 그 부속된 부엌, 사무실, 회의실, 도서실, 객사 같은 시설로 이루어졌다. 운영자금은 부유한 성도의 기부로 충당했다. 두 부류 수도사가 있는데 외딴곳에 떨어져 수행하는 은둔자와 수도원에 마련된 독방이나 기숙사에 사는 수사들로 구분됐다고 한다.
동방기독교의 수도원은 10세기 사마르칸트 부근 우르구트에서 이슬람 역사가 이븐 하우칼에 의해 목격되기도 했다. 사마르칸트 인근에서는 동방기독교와 수도원이 번성했던 사실을 뒷받침하는 고고학 출토물이 발견되었다. 동방기독교의 십자가와 신약의 몇 장면이 새겨진 시리아제 청동향로가 발견되기도 했다. 또 그 부근에서 시리아어로 쓰인 암각도 발견되었다. 이러한 수도원 형태의 교회는 사제와 같은 사역자를 철저하게 훈련하기에 충분한 환경이었을 것이다.
학교와 수도원이 결합 된 동방기독교의 교회는 중앙아시아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던 동방기독교 성도들에게 어려운 환경에서 생존할 수 있는 지식과 신앙심을 부여해 주었다. 또한 동방기독교인들이 강한 공동체적 연대의식을 갖게 했을 것이다. 오늘날 선교전략에서도 이러한 형태의 공동체가 많이 이용되고 있다.
중앙아시아에서 발견되는 동방기독교의 흔적에는 시리아어(중동계), 투르크어(시베리아계), 소그드어(이란계)가 혼합된 경우가 많다. 한 비문에 시리아어와 투르크어를 동시에 사용하기도 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용되는 언어가 다르기도 하다. 당시 지역 동방기독교인들이 복잡하고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었음과 주요 구성원들을 보여주는 흔적들이다.
원래 동방기독교에서는 시리아어가 예배와 독경에 사용되는 언어였다. 따라서 초기에는 시리아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동방기독교가 중앙아시아로 전파되며 실크로드를 오가던 소그드인(국제상인)들이 개종하였고, 그들의 영향력이 점차 확대됐다. 소그드인들은 상인이자 선교사로 적극적인 활동을 하면서 자신들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했다. 9세기 이후로는 북방계 유목민인 투루크인들이 중앙아시아로 대거 이주했다. 소그드인들은 투르크인들의 민족과 문화에 흡수되었다.
/최명현 선교사(화성M센터)
동방기독교의 전파에는 발달한 학교제도가 뒷바탕이었다. 동방기독교인들은 학교를 통해서 종교적 지식을 전수 및 전파할 수 있었다. 동방기독교의 학교제도는 이미 메소포타미아나 페르시아 지방에서 상당히 정비되어 있었다. 학교는 수도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는데 교사들의 대부분이 수도원에 소속된 사제들이었다. 학생들은 5~6명이 한 방에 기숙하며 공부하기도 했다. 동방기독교의 교회는 학교이자 수도원이었던 셈이다.
9세기경 쓰인 <수도원의 역사>라는 글에서 당시 수도원 생활에 대해 보여준다. 이라크 모술 동쪽의 베트 아베 수도원은 교회와 그 부속된 부엌, 사무실, 회의실, 도서실, 객사 같은 시설로 이루어졌다. 운영자금은 부유한 성도의 기부로 충당했다. 두 부류 수도사가 있는데 외딴곳에 떨어져 수행하는 은둔자와 수도원에 마련된 독방이나 기숙사에 사는 수사들로 구분됐다고 한다.
동방기독교의 수도원은 10세기 사마르칸트 부근 우르구트에서 이슬람 역사가 이븐 하우칼에 의해 목격되기도 했다. 사마르칸트 인근에서는 동방기독교와 수도원이 번성했던 사실을 뒷받침하는 고고학 출토물이 발견되었다. 동방기독교의 십자가와 신약의 몇 장면이 새겨진 시리아제 청동향로가 발견되기도 했다. 또 그 부근에서 시리아어로 쓰인 암각도 발견되었다. 이러한 수도원 형태의 교회는 사제와 같은 사역자를 철저하게 훈련하기에 충분한 환경이었을 것이다.
학교와 수도원이 결합 된 동방기독교의 교회는 중앙아시아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던 동방기독교 성도들에게 어려운 환경에서 생존할 수 있는 지식과 신앙심을 부여해 주었다. 또한 동방기독교인들이 강한 공동체적 연대의식을 갖게 했을 것이다. 오늘날 선교전략에서도 이러한 형태의 공동체가 많이 이용되고 있다.
중앙아시아에서 발견되는 동방기독교의 흔적에는 시리아어(중동계), 투르크어(시베리아계), 소그드어(이란계)가 혼합된 경우가 많다. 한 비문에 시리아어와 투르크어를 동시에 사용하기도 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용되는 언어가 다르기도 하다. 당시 지역 동방기독교인들이 복잡하고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었음과 주요 구성원들을 보여주는 흔적들이다.
원래 동방기독교에서는 시리아어가 예배와 독경에 사용되는 언어였다. 따라서 초기에는 시리아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동방기독교가 중앙아시아로 전파되며 실크로드를 오가던 소그드인(국제상인)들이 개종하였고, 그들의 영향력이 점차 확대됐다. 소그드인들은 상인이자 선교사로 적극적인 활동을 하면서 자신들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했다. 9세기 이후로는 북방계 유목민인 투루크인들이 중앙아시아로 대거 이주했다. 소그드인들은 투르크인들의 민족과 문화에 흡수되었다.
/최명현 선교사(화성M센터)
작성자 김영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