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인본주의 우상에 대한 고찰 4

 
크리스천이 지지해야 할 이념
 
우리는 하나님을 모르는 정치가들이 사회주의 이념을 가지고 국민들을 선동할 때 매우 신중하게 분별해야 한다. 그들이 정말 국민을 위하고 가난한 자들을 위하고자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기들의 신념에 스스로 속아 넘어가서 자신들의 어린 아이 같은 꿈을 실현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자기들의 뜻대로 국민들을 만들어가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이를 위해서 권력을 잡는 것만이 실제 목표가 아닌지, 권력을 잡기 위해 어떻게든 국민들을 분노하게 하고 선동해서라도 선거에서 이기려고만 하는 것은 아닌지 정말 잘 분별할 수 있는 눈을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인본주의적 공산주의가 극단으로 치달으면 너무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만큼 지극히 위험한 이념인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극좌의 대척점에 있는 극우적 성향도 거의 동일하게 위험하다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일본의 극우적인 전쟁광들이 언제나 국제사회를 불안하게 하는 성인아이들이라면, 공산주의의 서진(西進)을 염려하고 이를 미끼로 국민들을 지나친 반동으로 선동했던 독일의 나치 역사도 기억해야 한다. 
21세기 한국을 살아가는 크리스천은 어떤 이념을 지지해야 할까? 그 답은 오직 하나이다. 삼위일체 하나님만이 유일한 심판자이며 그분의 말씀만이 유일한 기준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붙잡는 것이다. 성경의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본주의적 주장들은 모두 오류이며 그 결과들은 참혹할 뿐이다. 이것은 극좌나 극우나 마찬가지이다. 인간 교만의 소리가 커지면 항상 불행을 향해 치닫는다. 세상의 이념에 본능적으로 따르기 전에 그들의 주장이 과연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지, 인간을 향한 진정한 사랑이 있는지를 잘 분별해야 한다. 말씀을 통해 인간의 죄성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인간의 죄성으로 인해 이 땅에 넘치는 악은 인간의 자기중심적 해법으로는 결코 궁극적인 해결을 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때만 진정한 해답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내는 숫자가 늘어난다면 사회적인 성숙이 일어나게 된다. 성숙한 국민과 성숙한 정치가로 구성된 사회라면 사회주의적 주장이나 자본주의적 주장에 모두 하나님의 마음이 일부 담겨있음을 알게 된다. 동시에 어느 한쪽도 완전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의 때가 이를 때까지는 이 땅에는 아직 천국이 임할 수가 없다. 따라서 이 땅에서의 국민된 책임은 선거 때 선택을 최대한 지혜롭게 하는 것이다. 어느 정치가도 우리에게 낙원을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고 사회주의적 정당과 자본주의적 정당이 서로 경합하게 하여 때에 따라 적절하게 국민의 선택을 받게끔 해야 한다. 장기 집권은 어느 집단이건 타락하게끔 되어있다. 누군가가 말했듯 “권력은 타락하기 쉽고 절대권력은 절대 타락한다.”
상대방의 잘못만 지적하는 정치가들은 권력에만 관심이 있는 자들이다. 완전하지는 못하더라도 중요한 가치들을 제시하는 자들을 눈여겨보자. 그리고 그들의 말에 진심이 담겨있는지 잘 분별하자. 만약 인본주의적 사회주의나 자본주의가 모두 오류인 것을 알면서도 허황된 공약을 내세우며 국민들을 선동하는 자들이라면 실제적으로는 권력만을 추구하는 악한 정치가임을 깨닫자. 반면 스스로 이러한 것들을 모르고 이념이 유토피아로 인도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면 순진하고 어리석은 어린아이 같은 정치가들이다. 하나님은 세상이 악할 때 수시로 작은 심판을 행하시는데 그때의 모습을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가 또 소년들을 그들의 고관으로 삼으시며 아이들이 그들을 다스리게 하시리니 백성이 서로 학대하며 각기 이웃을 잔해하며 아이가 노인에게, 비천한 자가 존귀한 자에게 교만할 것이며”(사 3:4~5). 
우리는 온전히 회개하고 영적인 눈을 바로 떠서 이 땅에 이런 사회가 다시는 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가 먼저 영적인 성인 아이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엡 4:14).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 13:11). 
/ 정대서 장로(푸른누리공동체) 


 

 

작성자  정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