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가장 중요하고 영광스러운 ‘아버지의 자리’

전문가 기고
 
아버지가 살아야 가정이 살고, 나라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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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은 사람을 만드는 공장이다. 공장에서 좋은 제품을 많이 만들어서 시장에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시장경제가 살아나고, 국가 경제도 든든해진다. 대한민국이 작지만 강한 이유는 좋은 공장에서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시장에 내놓기 때문이다. 만일 공장에서 불량제품을 내놓는다면 시장경제가 무너지고, 국가 경제도 무너지게 된다. 마찬가지로 가정에서는 건강한 사고방식, 건전한 삶의 태도와 세계관을 가진 자녀들을 양육해서 사회에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건강해진다. 외국 속담에 “가정은 국가의 심장이다”라는 말이 있다. 심장이 건강해야 몸이 건강하듯 가정이 건강해야 나라가 건강해진다는 말이다. 
 
사회화 학습의 장(場) ‘가정’ 
 
우리 사회는 요즘 계속해서 강력사건을 경험하고 있다. 부모를 폭행하거나 살해하는 자녀, 자녀를 죽이는 부모, 자녀들에 대한 성폭력, 학교 폭력, 힘없는 부녀자를 무차별 폭행하고 살해하는 사건들이 급증하고 있다. 왜 이런 반인륜적인 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을까? 답은 하나다. 가정의 문제이다. 모든 사건의 배후에 무너진 가정, 역기능적 가정이 있다. 가정폭력이라는 역기능적인 환경에서 자라거나 학대당하거나 부모의 부재에서 자란 자녀, 무분별한 사랑 속에서 자란 자녀들은 어쩌면 이미 반사회적인 요소를 잉태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인생에는 많은 자극이 있고 우리는 그 자극에 반응한다. 그래서 자극과 그에 대한 반응을 삶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이 있고, 그 공간에 자유의지가 있다. 동물은 자극이 오면 본능적으로 반응하지만, 인간은 자유의지에 의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를 선택한다. 
문제는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을지라도 본인의 자유의지와 다르게 이미 각인이 되어 있는 대로, 학습한대로 자기도 모르게 행동할 수 있다. 자유의지와 상관없이 감정과 상황에 이끌려 엉뚱하게 반응하거나 과격하게 반응해서 관계가 깨지고, 삶이 무너질 수 있다. 무서운 것은 이 감정 반응의 패턴이 학습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들의 경우 아버지의 폭력적인 행동을 보면서 ‘나는 커서 절대로 폭력을 행사하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하지만, 막상 위기와 갈등의 순간에 처하면 학습된 대로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 대인관계에 대한 태도나 스타일, 감정 반응의 색깔 등은 가정에서 그 틀이 결정된다.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는 그의 책 <마인드세트>에서 “인간은 세팅 된 틀에 따라 사물이나 사건을 바라보고 해석하고 그 때문에 인생을 축내고 사는데, 그 틀은 상처나 과거의 부정적 경험에 의해 세팅되어진 것”이라고 했다.  
이 틀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사람은 가장 중요한 타인이라고 할 수 있는 부모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부모의 삶의 모습에서 경험되고 학습되며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은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최고로 강조한 말이기도 하다. 
인간은 개인으로 태어나지만, 절대로 개인으로 살 수 없는 존재이다.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인간이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건강한 사회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뛰어난 개인보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존재가 훌륭한 사회인이다. 개인으로 태어나 사회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사회화 과정’이라고 부른다. 가정은 사회화 과정을 경험시키고 가르치는 첫 번째 교실이자 가장 중요한 공간이다. 
사회화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고 적합하며 오랜 세월을 거쳐 가장 인간적인 것으로 증명된 언어, 행위, 태도, 가치 등을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부모나 선생님 등 전통적으로 권위를 가진 사람들을 존중하고, 그들의 가르침을 배우는 것,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고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는 것, 진정한 자유란 질서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욕망을 절제할 수 있어야 하고, 충동을 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우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건강한 사회는 서로 사랑하고, 존중해주며, 배려할 줄 알고, 서로의 권위를 인정해주는 사회이다. 
 
가정의 수준이 국가의 수준이고,
아버지의 수준이 가정의 수준이다
 
가정에는 세 가지 체계가 있다. 부모, 부부, 자녀이다. 이 세 가지 체계 중에서 가장 중요한 체계가 ‘부부’이다.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이 있다. 부부가 하나 되어 부모를 공경하고, 부부가 하나 되어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시스템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 가정의 경우, 남자들은 부모에게 우선순위를 두고, 여자들의 경우는 자녀들에게 우선순위를 둠으로써 부부 일심동체가 되지 않고 있다. “부모형제는 수족과 같아 잘라버릴 수 없지만, 여자는 의복과 같아 바꿔입을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아내의 분노와 한(恨)이 자녀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된다. 올바른 자녀 양육도 이뤄지지 않는다. 훌륭한 사회인이 나오기가 매우 힘든 시스템이 되는 것이다. 
아버지로서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은 자녀의 어머니인 아내를 사랑하고,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다. 어머니로서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은 자녀의 아버지인 남편의 권위를 긍정적으로 자녀들에게 경험시키는 것이다. 
자녀들은 부모의 삶에서 사랑과 존중, 배려와 권위라는 아름다운 가치를 경험하며 자라야 한다. 부모가 하나 되어 기쁨으로 올려드리는 부모공경의 모습(효)을 보면서 자녀들은 어른 공경이라는 자연스러운 삶의 태도를 습득해간다. 이 과정에서 자녀들은 건전한 도덕성, 성정체성을 지닌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하고 성숙해간다. 사랑과 존중, 배려와 권위는 인성, 사회성, 영성의 뿌리이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가정에서 아버지의 존재가 사라져갔다. 아버지는 돈 벌러 공장으로 갔고, 어머니들은 가정에서 자녀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경제가 발달하고 고도의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 아버지들은 아예 가정 경영에 참여할 시간조차 없어졌고, 돈만 벌어다 주면 되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가정 경제는 아버지, 가정 경영은 어머니’라는 공식이 성립되었다. 그러나 가정에는 분명히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두 기둥이 있어야 한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양육방식이 다르다. 어머니가 개인적인 안전과 주의 깊은 행동을 강조한다면, 아버지는 성취와 독립,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하도록 격려한다. 어머니가 감싸주고 위로하는 경향이 있다면, 아버지는 행동의 규범을 정하고 지키도록 독려하는 존재이다. 어머니가 암탉이 알을 품고 있는 모습이라면, 아버지는 새끼를 밖으로 내모는 모습이다. 
오늘날 가정의 문제는 아버지의 부재로 비롯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아버지들이 가정으로 돌아가야 한다. 가정 경영의 최고 책임자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리, 어느 누가 대신해서도 안 되는 자리가 바로 아버지의 자리이다. 사표를 낼 수도 없고, 사표를 받아주지도 않는 자리, 나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영광스러운 자리가 아버지의 자리이다. 남자로 태어나 최고의 영광스러운 자리는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자녀들을 나의 자랑거리로 만들 생각하지 말고, 자녀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아버지는 가정의 운전자이다. 아버지가 운전하던 대로 아들도 운전하기 쉽다. 아버지가 난폭운전을 한다면 아들도 난폭운전을 하게 될 것이다. 아버지가 과속운전을 한다면 아들도 과속운전을 할 것이다. 아버지가 음주운전을 한다면 아들도 음주운전을 할지도 모른다. 어깨너머로 운전을 배우는 일이 위험하다. 잘 배워야 한다. 진짜 사나이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결혼이 무엇인지, 남편의 역할이 무엇인지, 아버지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배워야 한다. 우리 부모가 어떤 삶을 살았건 우리는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야 한다. 행복한 가정을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한다. 그것이 나라를 사랑하는 길이다.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였던 바바라 부시 여사는 대학 졸업식 석상에서 이런 말을 했다. 
“여러분, 미국의 장래가 백악관에 달려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미국의 장래는 백악관이 아니라 여러분의 가정에 달려 있습니다.”
가정의 수준이 국가의 수준을 결정한다. 아버지의 수준이 가정의 수준을 결정한다. 아버지가 살아야 가정이 살고, 나라가 산다.  
/ 김성묵 장로(두란노아버지학교운동본부 이사장)
 
<발문>
가정의 수준이 국가의 수준을 결정한다. 
아버지의 수준이 가정의 수준을 결정한다. 
아버지가 살아야 가정이 살고, 나라가 산다.  

작성자  정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