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전문가 기고]‘이슈’에서 ‘대상’으로!

전문가 기고

비대면이든 대면이든 실재감 높이는 방법
 
코로나19가 일상을 바꾼 지 2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얼마 전 정부가 ‘위드 코로나’ 정책을 발표했다. 위드 코로나는 비대면 시대에 적응하며 기존의 일상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이다. 위드 코로나의 미리 보기를 학교와 일터에서 조금씩 경험하고 있다. 이른 아침 마스크를 쓴 채 학교가는 학생들과 재택근무에서 다시금 회사로 출근하는 직장인들의 모습이 하나의 예(例)일 것이다. 
필자가 진행하는 교육도 10개 중에서 여덟은 온라인(Zoom)을 통한 비대면 교육이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는 대면 교육이 하나둘씩 늘어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아마도 함께 만나 소통하고 싶은 ‘실재감’에 대한 욕구가 일상의 행복과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실재감’의 사전적 의미는 ‘그려진 물건이 실물인 듯한 느낌’이다. 실재감은 보이는 사물뿐만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쉽게 경험될 수 있다. 심리적으로 어느 정도 거리에 있느냐에 따라서 같은 물리적 공간에 있어도 상대방을 느끼는 실재감이 너무나도 다르긴 하지만, 비대면보다는 직접 만났을 때(대면) 생생한 소통을 경험한다는 것은 누구나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가끔씩 스마트폰 앱에서 코로나19 발발 이전 사진을 본다. 그럴 때면 바삐 가던 길을 멈춘 사람의 발걸음처럼 서 있는 현재의 위치가 어디인지 새삼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나의 스마트폰에 있는 2년 전 오늘의 사진은 서로를 바라보며 즐겁게 대화하는 교육 현장이다. 그 사진을 보고만 있어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따뜻함이 느껴진다. 
지금의 교육 현장은 어떨까? 때때로 비대면 카메라에 비친 모습에서는 따뜻함과 사뭇 다른 무표정한 느낌을 받기도 하고, 카메라를 끈 상태에서는 과거의 생생했던 실재감을 찾아보기 어렵다. 비대면 일상이 마냥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상황과 시대의 변화에 맞게 우리도 변화하고 적응해야 한다. 비대면 일상에 적응하면서도 위드 코로나를 준비하는 우리의 초점은 어디를 향해야 할까?
 
소통 그리고 공감
 
실재감을 느끼는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소통과 공감’이다. 오프라인(대면)에서의 만남이 자연스럽게 소통과 공감으로 이어지는 이유는 상대방을 그대로 보면서 대화의 내용 외에 표정이나 제스처 같은 비언어적인 정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이다. 
UCLA 교수였던 앨버트 메라비언(Albert Mehrabian)은 우리가 상대방과 대화를 통해 받아들이는 정보 중에서 언어적 요소인 말의 내용이 7%이고, 나머지 93%는 표정, 목소리, 보디랭귀지 같은 비언어적인 부분이라고 했는데 이를 ‘메라비언의 법칙’이라고 한다. 그만큼 언어적 요소와 비언어적 요소를 모두 파악할 때 상대방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질 수 있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온라인(비대면)에서는 어떨까? 온라인 소통에서는 오프라인과 다르게 상대방의 비언어적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에 제약이 따른다. 카메라의 각도, 거리, 해상도 등에 따라 비언어적 요소가 다르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카메라를 켤 때 가능하다. 만약 카메라를 끄는 경우에는 소통에 있어서 말의 내용(7%)과 청각적 요소인 발음, 억양, 톤만으로(38%) 상대를 이해해야 하고, 시각적 요소인 용모와 표정, 제스처에서 찾을 수 있는 55%를 놓치게 되는 안타까움을 경험하게 된다. 
한 기업에서 특강 요청을 받았다. 필자가 2시간 동안 특강을 진행하고, 참가자는 온라인에서 채팅을 통한 참여만 가능한 환경이었다. 나름대로 7~8차까지 특강을 열심히 진행했다. 그런데 특강을 진행하면 할수록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본질적 질문이 들었다. 평소 나의 강의에 대한 지론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 소통과 공감을 바탕으로 참가자와 함께하는 여행’이었는데, 그때의 강의는 텍스트(7%)만으로 참가자와 함께하고 있기에 실재감을 느끼기에 정말 어려운 시간이었다. 
종종 차세대 예배에서도 이러한 상황을 경험할 수 있다. 예배드리고 온라인(Zoom)으로 소그룹 모임을 해서 학생들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만약 학생들이 매주 카메라를 끈 상태로 소그룹 모임을 한다면 선생님은 어떤 느낌이 들까? 물론 참여해 주는 것에 감사를 느끼는 훌륭한 선생님도 계실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함께한다는 생각보다 혼자 벽을 보고 이야기한다는 생각에 무기력을 느낄 것이고, 이러한 경험이 지속할수록 온라인에서의 소통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강화하게 될 것이다. 
 
눈을 마주 보고, 고개는 끄덕이고
 
그렇다면 본질적으로 소통과 공감을 통해 실재감을 느낀다는 것이 무엇일까? 필자는 코치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을 할 때 공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구체적 행동을 연습시킨다. 
첫째, 처음부터 끝까지 몽땅 암기하기, 둘째, 눈을 마주 보고 고개는 끄덕이기, 셋째, 암기한 것을 요약해서 말해주기다.  
이번 글에서 필자가 강조하고 말하고 싶은 부분은 2번 ‘눈을 마주 보고 고개는 끄덕이기’이다. 상대방의 눈을 마주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상대가 말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상대방의 눈을 마주 보고 자연스럽게 그의 말에 귀 기울이면 어떤 느낌이 들까? 
필자가 어느 비대면 교육에서 어떤 여성이 카메라를 3분 동안 조용한 음악과 함께 쳐다보는 영상을 보여주면서 참가자들에게 영상 속 여성의 눈을 마주 보라고 요청했다. 영상 속 여성의 눈을 바라본 참가자들은 다음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여성의 표정을 따라 하게 된다”, “여성의 아름다움을 더 많이 느꼈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여성이 사랑스러워 보인다”, “여성의 눈에 슬픔이 느껴진다” 
처음에는 상대방을 쳐다보는 것이 어색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참가자의 마음을 느끼게 되고, 더 나아가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의 표정을 따라 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눈을 바라본다는 것은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보듯이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자각의 기회를 상대방에게 제공해준다. 이것이 비록 비대면일지라도 함께함을 느낄 수 있고, 실재감을 느끼는 기회가 된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의 저자 스캇 펙 박사는 소통과 공감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잘 듣는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내가 무엇을 바라는가, 내가 놓인 사회적 처지가 어떠한가, 내가 상대방이나 혹은 상대가 말하는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들로부터 떨어져 나와 일시적으로 그것을 포기하거나 젖혀놓는 훈련이다… 참으로 잘 들어주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은 사랑의 표현이다.”
내가 상대방에게 바라는 것,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내가 상대방이 말하는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상대방만이 대상이 되어 그의 모든 언어적, 비언어적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소통과 공감의 행위이다. 이는 에너지가 필요하고, 이러한 에너지는 상대방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다. 
사람들을 피해 정오 무렵에 우물가에 온 여인을 찾아가신 예수님은 그녀를 바라보시며 “마실 물을 달라”고 말씀하셨다. 여인은 물을 바라보았지만, 예수님은 그 여인의 영혼을 바라보셨다. 
예수님을 향해 큰소리로 외치는 눈먼 바디매오를 향해 많은 사람이 “조용히 하라”고 꾸짖었지만, 예수님은 “내가 네게 무엇을 해기를 원하느냐?”고 질문하셨다. 사람들은 소경의 외침을 바라보았지만, 예수님은 소경 바디매오의 영혼을 바라보았다. 무리 가운데 끼어 들어와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던 여인에게 예수님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라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병 고침의 행위를 바라보았지만, 예수님은 혈루병 걸린 여인의 영혼을 바라보셨다. 예수님은 무수히 많은 인파 속에서도 한 영혼을 바라보시며 그 영혼을 향해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시선은 늘 한 영혼을 향해 있었음을 우리는 말씀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우리의 시선은 어떠한가? 대상이 아닌 이슈와 그에 대한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실재감은 온라인(비대면)이든 오프라인(대면)이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의 말을 끝까지 들으며, 상대방을 온전히 이해하려는 사랑의 마음으로부터 나온다. 이 본질을 잊게 되는 순간 우리는 상대방이 아니라 이슈와 문제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대상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통해 영혼의 진정한 필요를 채울 수 있는 과정을 경험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 한건수 교수(수원 온누리교회, 국민대 겸임교수) 
 
<발문>
실재감은 온라인(비대면)이든 오프라인(대면)이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의 말을 끝까지 들으며, 
상대방을 온전히 이해하려는 사랑의 마음으로부터 나온다.

작성자  정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