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의 정신건강] “괜찮아, 넌 잘하고 있어”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
A 권사님은 믿음의 가정을 이루고 잘살고 있지만, 오래전 만난 남자친구와의 일이 아직도 마음에 응어리로 남아있다. 죄의식에 시달리고, 남편과 자녀들에게도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B 장로님은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학대받고 자랐다. 날마다 폭언과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지옥 같은 집을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었고, 가장 합법적으로 탈출하는 방법은 좋은 대학에 가는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죽을 각오로 공부해서 명문대에 진학하고, 좋은 직장, 좋은 집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의 상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지는 않았다.
C 형제에게는 아버지를 향한 적개심이 있었다.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엄마를 때리고 살림을 부쉈다. 어머니는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온몸으로 아버지의 주먹질과 발길질을 막아냈다. C 형제는 어머니의 그런 모습이 너무 싫었다. 무능력한 어머니가 폭력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아서 아버지의 문제행동이 더욱 심해졌다고 생각했다. C 형제는 이를 갈았다. ‘실력을 기르자, 아버지에게 당한 빚을 갚아주자’는 원망이 오기로 바뀌어서 매사에 최고가 아니면 안 되었다. 바라던 언론사에 입사했다. 그런데 그다음부터가 문제였다. C 형제의 태도가 돌변했다. 아버지에게는 공격적인 아들이, 어머니에게는 불평만 하는 아들이 되어버렸다.
B 장로님은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학대받고 자랐다. 날마다 폭언과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지옥 같은 집을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었고, 가장 합법적으로 탈출하는 방법은 좋은 대학에 가는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죽을 각오로 공부해서 명문대에 진학하고, 좋은 직장, 좋은 집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의 상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지는 않았다.
C 형제에게는 아버지를 향한 적개심이 있었다.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엄마를 때리고 살림을 부쉈다. 어머니는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온몸으로 아버지의 주먹질과 발길질을 막아냈다. C 형제는 어머니의 그런 모습이 너무 싫었다. 무능력한 어머니가 폭력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아서 아버지의 문제행동이 더욱 심해졌다고 생각했다. C 형제는 이를 갈았다. ‘실력을 기르자, 아버지에게 당한 빚을 갚아주자’는 원망이 오기로 바뀌어서 매사에 최고가 아니면 안 되었다. 바라던 언론사에 입사했다. 그런데 그다음부터가 문제였다. C 형제의 태도가 돌변했다. 아버지에게는 공격적인 아들이, 어머니에게는 불평만 하는 아들이 되어버렸다.
지긋지긋한 과거의 상처
이렇게 하면 벗을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벗을 수 있다!
따지고 보면 ‘과거’라는 것은 그리 대단하지는 않다. 이 순간도 1초만 지나면 과거가 된다. 상처를 받았든 영광을 누렸든 다 지나간 일이다. 순간이 쌓여 과거가 되고, 과거가 쌓여 오늘의 내가 된다. 그런데 과거를 지나간 일로 넘기지 않고 계속 안고 있으면 문제가 생긴다. 오랫동안 그것이 인생의 걸림돌로 남아 시시때때로 우리를 괴롭힌다. ‘나는 안 돼, 이제 다 끝이야’ 부정적인 생각에 휩싸여서 쉽게 무기력해진다. 자존감만 낮아진 채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사람들은 ‘과거쯤이야 그냥 묻고 살자’고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충분히 벗어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음 과정을 통해서 지긋지긋한 과거를 극복했으면 좋겠다.
첫째, 충분히 슬퍼하라. 한 번 받은 상처는 시간이 흐른다고 자연스럽게 치유되지 않는다. 묻으려 하면 할수록 더욱 또렷해진다. 물에 흠뻑 젖은 수건을 빨리 말리려면 물기를 충분히 짜줘야 한다. 마찬가지로 상처에서 정말 회복되고 싶다면 충분히 슬퍼하고, 아파해야 한다.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둘째, 상처준 사람 용서하라. 과거가 아픈 이유는 현상보다 관계에 있다. 내게 상처를 준 사람과의 불편한 관계를 풀지 않으면 과거의 상처는 해결되지 않는다. 대상이 부모님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다. 조용히 앉아 지난 시간을 돌아보자. 그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떠올리며 한 사람, 한 사람 용서하는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도저히 혼자만의 시간에서 용서가 안 된다면 상대방을 찾아가 화해를 청하자. 그래야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다.
셋째, 과거를 재해석하라. 애굽에서 가나안까지의 거리는 대략 640km다. 자동차로 8시간, 도보로 길면 3개월 정도 걸린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그 짧은 거리를 가는데 무려 40년이 걸렸다. 고통과 아픔이었지만 돌아보니 은혜의 시간이었다. 하나님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그들을 먹이셨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나만 피해를 보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내가 수혜자였음을 알게 될 때가 있다. 모든 과거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배어있다. 그러므로 믿음의 눈으로 나의 과거를 돌아보면 된다.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재해석할 수는 있다. 그러면 끔찍했던 시간도 이해되고 치유가 될 것이다.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다. 형들이 어린 요셉을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아버렸다. 요셉이 여러 역경을 겪으면서 마침내 애굽 최고의 권력자가 되었다. 요셉이 형들을 만났을 때 자신들의 죄로 두려움에 떠는 형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 50:20).
믿음으로 과거를 보고, 상처 준 사람들을 용서함으로써 요셉은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넷째, 과거가 아닌 하나님께 집착하라. 과거에 집착하면 상처만 남지만, 하나님께 집착하면 즐거움이 온다. 성도님들 중에는 감당하기 힘든 과거를 간직한 사람들이 많다. 평생 남편에게 맞고 산 사람, 정신건강에 어려움이 있는 자녀를 둔 사람, 자식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사람, 이혼의 아픔을 겪은 사람, 과거에 깊게 베인 사람들이 응급실 찾는 심정으로 예배에 찾아온다. 그들이 하나님과 만남을 통해 안정을 찾아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확신했다. 우리는 과거가 아니라 하나님을 묵상할 때 과거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하나님을 묵상하면 내가 겪은 과거보다 하나님이 훨씬 크게 보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과거 때문에 아파하지 말자.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다시 오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사람들은 ‘과거쯤이야 그냥 묻고 살자’고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충분히 벗어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음 과정을 통해서 지긋지긋한 과거를 극복했으면 좋겠다.
첫째, 충분히 슬퍼하라. 한 번 받은 상처는 시간이 흐른다고 자연스럽게 치유되지 않는다. 묻으려 하면 할수록 더욱 또렷해진다. 물에 흠뻑 젖은 수건을 빨리 말리려면 물기를 충분히 짜줘야 한다. 마찬가지로 상처에서 정말 회복되고 싶다면 충분히 슬퍼하고, 아파해야 한다.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둘째, 상처준 사람 용서하라. 과거가 아픈 이유는 현상보다 관계에 있다. 내게 상처를 준 사람과의 불편한 관계를 풀지 않으면 과거의 상처는 해결되지 않는다. 대상이 부모님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다. 조용히 앉아 지난 시간을 돌아보자. 그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떠올리며 한 사람, 한 사람 용서하는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도저히 혼자만의 시간에서 용서가 안 된다면 상대방을 찾아가 화해를 청하자. 그래야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다.
셋째, 과거를 재해석하라. 애굽에서 가나안까지의 거리는 대략 640km다. 자동차로 8시간, 도보로 길면 3개월 정도 걸린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그 짧은 거리를 가는데 무려 40년이 걸렸다. 고통과 아픔이었지만 돌아보니 은혜의 시간이었다. 하나님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그들을 먹이셨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나만 피해를 보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내가 수혜자였음을 알게 될 때가 있다. 모든 과거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배어있다. 그러므로 믿음의 눈으로 나의 과거를 돌아보면 된다.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재해석할 수는 있다. 그러면 끔찍했던 시간도 이해되고 치유가 될 것이다.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다. 형들이 어린 요셉을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아버렸다. 요셉이 여러 역경을 겪으면서 마침내 애굽 최고의 권력자가 되었다. 요셉이 형들을 만났을 때 자신들의 죄로 두려움에 떠는 형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 50:20).
믿음으로 과거를 보고, 상처 준 사람들을 용서함으로써 요셉은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넷째, 과거가 아닌 하나님께 집착하라. 과거에 집착하면 상처만 남지만, 하나님께 집착하면 즐거움이 온다. 성도님들 중에는 감당하기 힘든 과거를 간직한 사람들이 많다. 평생 남편에게 맞고 산 사람, 정신건강에 어려움이 있는 자녀를 둔 사람, 자식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사람, 이혼의 아픔을 겪은 사람, 과거에 깊게 베인 사람들이 응급실 찾는 심정으로 예배에 찾아온다. 그들이 하나님과 만남을 통해 안정을 찾아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확신했다. 우리는 과거가 아니라 하나님을 묵상할 때 과거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하나님을 묵상하면 내가 겪은 과거보다 하나님이 훨씬 크게 보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과거 때문에 아파하지 말자.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다시 오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상처는 아프지만
분명 극복해야 할 대상
분명 극복해야 할 대상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불완전한 세상에서 쉽게 넘어지고 상처받는다. 특히 가정에서 받은 상처는 평생 간다. 똑같은 수모를 당해도 가해자가 가족이면 그 충격이 훨씬 크다. 그 부작용으로 어려서 싫어했던 부모의 모습을 닮기도 한다.
상처는 아프지만 분명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사무엘상에는 상처받은 한나가 하나님을 향한 기도를 통해서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이 나온다. 한나는 사무엘을 낳기 전까지 남편 엘가나의 사랑을 받았지만, 둘째 부인 브닌나에게 극심한 괴롭힘을 당했다. 아이가 안 생기는 것도 원통한데 둘째 부인까지 자신을 업신여기니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을까? 수모도 그런 수모가 없었다. 한나는 이 상처를 기도로 극복했다. 무엇이 문제인지, 왜 괴로운지를 하나님께 자세히 고했다. 여호와를 높여드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수치스럽고 답답한 상황에서도 오직 하나님만 신뢰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한나가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내가 당한 아픔은 하나님께서 다 갚아주시리라는 것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한나처럼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고통이 심하면 보이던 하나님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처럼 대처할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
“하나님, 내가 당한 상처보다 하나님의 능력이 크신 줄 믿습니다. 저는 걱정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겠습니다. 아무리 큰 아픔이라도 단번에 치유하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나를 회복하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직접 복수의 칼을 갈지 말고 먼저 하나님과 대화하자. 나를 소진시키는 복수의 마음은 전부 하나님께 맡기자. 하나님 앞에 자기 상처를 모두 내어놓기를 바란다. 하나님께 상처를 들고 나가면 상처가 축복으로 바뀔 것이다. 가장 연약한 순간이 하나님을 만날 절호의 찬스이기 때문이다. 또한 기도를 통해서도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다음과 같이 기도했으면 좋겠다.
“나의 상처와 아픔과 슬픔을 전부 하나님께 올려드리길 원합니다. 상처 때문에 괴로워하는 나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내게 상처준 사람, 나와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을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너무 미워 저주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주세요. 그 사람과 화해하고 싶습니다.”, “더이상 상처에 얽매이고 싶지 않습니다. 회복시켜 주세요. 자유함을 맛보게 해주세요.”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를 보듬어주실 수 있는 분이다. 조금만 더 귀 기울이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린다. “괜찮아, 넌 잘 하고 있어.”
/ 이정환 목사(도곡공동체, <내 마음이 아픕니다>, <연약함이 건네는 위로> 저자)
상처는 아프지만 분명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사무엘상에는 상처받은 한나가 하나님을 향한 기도를 통해서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이 나온다. 한나는 사무엘을 낳기 전까지 남편 엘가나의 사랑을 받았지만, 둘째 부인 브닌나에게 극심한 괴롭힘을 당했다. 아이가 안 생기는 것도 원통한데 둘째 부인까지 자신을 업신여기니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을까? 수모도 그런 수모가 없었다. 한나는 이 상처를 기도로 극복했다. 무엇이 문제인지, 왜 괴로운지를 하나님께 자세히 고했다. 여호와를 높여드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수치스럽고 답답한 상황에서도 오직 하나님만 신뢰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한나가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내가 당한 아픔은 하나님께서 다 갚아주시리라는 것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한나처럼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고통이 심하면 보이던 하나님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처럼 대처할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
“하나님, 내가 당한 상처보다 하나님의 능력이 크신 줄 믿습니다. 저는 걱정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겠습니다. 아무리 큰 아픔이라도 단번에 치유하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나를 회복하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직접 복수의 칼을 갈지 말고 먼저 하나님과 대화하자. 나를 소진시키는 복수의 마음은 전부 하나님께 맡기자. 하나님 앞에 자기 상처를 모두 내어놓기를 바란다. 하나님께 상처를 들고 나가면 상처가 축복으로 바뀔 것이다. 가장 연약한 순간이 하나님을 만날 절호의 찬스이기 때문이다. 또한 기도를 통해서도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다음과 같이 기도했으면 좋겠다.
“나의 상처와 아픔과 슬픔을 전부 하나님께 올려드리길 원합니다. 상처 때문에 괴로워하는 나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내게 상처준 사람, 나와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을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너무 미워 저주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주세요. 그 사람과 화해하고 싶습니다.”, “더이상 상처에 얽매이고 싶지 않습니다. 회복시켜 주세요. 자유함을 맛보게 해주세요.”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를 보듬어주실 수 있는 분이다. 조금만 더 귀 기울이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린다. “괜찮아, 넌 잘 하고 있어.”
/ 이정환 목사(도곡공동체, <내 마음이 아픕니다>, <연약함이 건네는 위로> 저자)
충분히 슬퍼하고, 상처준 사람 용서하고,
과거를 재해석하고, 하나님께 집착하라!
과거를 재해석하고, 하나님께 집착하라!
작성자 정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