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세계관으로 살아가기] 완전한 회복은 오직 그리스도로부터
기독교 세계관으로 살아가기-회복
완전한 회복은 오직 그리스도로부터
세계관 회복이 가장 근원적인 회복이다. 한 사람이 헌신하는 믿음의 틀(framework)과 삶에 대한 관점(viewpoint)의 회복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성경적 관점으로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기독교 세계관은 성경적 세계관일 수밖에 없다. 성경 전체를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것(딤후 3:16)과 믿음의 창시자(author)요, 완성자(finisher)이신 예수 그리스도(히 12:2)가 신앙과 삶의 근본 토대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해체주의와 상대주의로 대표되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살고 있다. 깨어 기도하며 분별하지 않으면 이 시대적 사조의 나쁜 영향을 받게 된다.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1960년 ‘작가의 죽음(The death of the author)’을 선언하였다. 그는 작가가 의미의 근원이며, 해석을 위한 유일한 권위를 가진다는 전통적 견해를 거부했다. 독자들이 저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자신들의 의미를 창출한다고 생각했고, 모든 텍스트는 의심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21세기 문학과 문화의 모든 영역이 이러한 틀과 관점이기에 우리 신앙의 관점, 성경 말씀을 대하는 관점도 이 영향력 아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성경 말씀을 대할 때 나의 관점이 아닌 저자이신 하나님의 관점으로 말씀을 깨달을 수 있도록 겸손하게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상대주의는 절대적 진리나 가치, 기준이 없다고 주장한다. 왕이 없어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삿 21:25) 자기중심적 죄성을 극대화하고 부추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가 왕으로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가 가지신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관점, 성경에 대한 관점, 죄와 사탄에 대한 관점을 정신적, 도덕적으로 따르기로 작정하는 것이다.
시력이 좋지 않은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안경을 찾아 끼는 것이다. 2011년 <충돌하는 세계관>을 통해 기독교 세계관을 접하게 된 이후 아침마다 안경을 끼듯 예수 그리스도의 관점을 장착하고 하루를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하고 소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의 신앙과 삶이 뿌리부터 서서히 회복되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가장 큰 은혜는 성경에 대한 관점의 회복이다. 나는 모태신앙으로 평생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왔다. 어릴 때부터 성경 말씀을 암송하고 설교를 들었다. 하지만 내 소견에 좋은 대로 선택적으로 믿고 순종해 왔다는 것을 깨닫고 철저히 회개하였다. 이 땅의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으로 모든 말씀을 대하고 순종하기로 의지적으로 결단하고, 성령이 말씀을 꿀보다 달게 해주시기를 간구했다. 그동안 씨름했던 많은 문제의 실제적 회복도 경험하고 있다. 어느 날 하나님이 완전한 회복(Foll Recovery)의 약속을 주셨다. 나는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그 의미를 묻고 또 물었다.
“하나님! 문제 뒤에 또 다른 문제가 파도처럼 밀려오는 이 삶에서 과연 무엇이 완전한 회복입니까?”
그리고 문제에만 집중하던 나의 시선이 마치 “종들의 눈이 그 주인의 손을 바라보듯(시 123:2)”이라는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게 되었다. 그렇다. 완전한 회복은 이 땅에서의 문제 회복을 넘어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절대적 기준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가 왕으로 온전히 다스리시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를 주님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는 것(골 2:6), 더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시는 것(갈 2:20), 어두움이 조금도 없는 완전한 빛(요일 1:5), 그 완전한 회복을 맛보아 알게 될 때 우리는 진정 새 하늘 새 땅을 소망하며 기도하게 된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계 22:20~21).
/ 강애리 목사(온누리세계관학교, 바른교육진흥원)
세계관 회복이 가장 근원적인 회복이다. 한 사람이 헌신하는 믿음의 틀(framework)과 삶에 대한 관점(viewpoint)의 회복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성경적 관점으로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기독교 세계관은 성경적 세계관일 수밖에 없다. 성경 전체를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것(딤후 3:16)과 믿음의 창시자(author)요, 완성자(finisher)이신 예수 그리스도(히 12:2)가 신앙과 삶의 근본 토대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해체주의와 상대주의로 대표되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살고 있다. 깨어 기도하며 분별하지 않으면 이 시대적 사조의 나쁜 영향을 받게 된다.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1960년 ‘작가의 죽음(The death of the author)’을 선언하였다. 그는 작가가 의미의 근원이며, 해석을 위한 유일한 권위를 가진다는 전통적 견해를 거부했다. 독자들이 저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자신들의 의미를 창출한다고 생각했고, 모든 텍스트는 의심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21세기 문학과 문화의 모든 영역이 이러한 틀과 관점이기에 우리 신앙의 관점, 성경 말씀을 대하는 관점도 이 영향력 아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성경 말씀을 대할 때 나의 관점이 아닌 저자이신 하나님의 관점으로 말씀을 깨달을 수 있도록 겸손하게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상대주의는 절대적 진리나 가치, 기준이 없다고 주장한다. 왕이 없어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삿 21:25) 자기중심적 죄성을 극대화하고 부추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가 왕으로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가 가지신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관점, 성경에 대한 관점, 죄와 사탄에 대한 관점을 정신적, 도덕적으로 따르기로 작정하는 것이다.
시력이 좋지 않은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안경을 찾아 끼는 것이다. 2011년 <충돌하는 세계관>을 통해 기독교 세계관을 접하게 된 이후 아침마다 안경을 끼듯 예수 그리스도의 관점을 장착하고 하루를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하고 소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의 신앙과 삶이 뿌리부터 서서히 회복되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가장 큰 은혜는 성경에 대한 관점의 회복이다. 나는 모태신앙으로 평생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왔다. 어릴 때부터 성경 말씀을 암송하고 설교를 들었다. 하지만 내 소견에 좋은 대로 선택적으로 믿고 순종해 왔다는 것을 깨닫고 철저히 회개하였다. 이 땅의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으로 모든 말씀을 대하고 순종하기로 의지적으로 결단하고, 성령이 말씀을 꿀보다 달게 해주시기를 간구했다. 그동안 씨름했던 많은 문제의 실제적 회복도 경험하고 있다. 어느 날 하나님이 완전한 회복(Foll Recovery)의 약속을 주셨다. 나는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그 의미를 묻고 또 물었다.
“하나님! 문제 뒤에 또 다른 문제가 파도처럼 밀려오는 이 삶에서 과연 무엇이 완전한 회복입니까?”
그리고 문제에만 집중하던 나의 시선이 마치 “종들의 눈이 그 주인의 손을 바라보듯(시 123:2)”이라는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게 되었다. 그렇다. 완전한 회복은 이 땅에서의 문제 회복을 넘어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절대적 기준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가 왕으로 온전히 다스리시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를 주님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는 것(골 2:6), 더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시는 것(갈 2:20), 어두움이 조금도 없는 완전한 빛(요일 1:5), 그 완전한 회복을 맛보아 알게 될 때 우리는 진정 새 하늘 새 땅을 소망하며 기도하게 된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계 22:20~21).
/ 강애리 목사(온누리세계관학교, 바른교육진흥원)
작성자 홍하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