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이슈(Issue) 바로보기!] 사람의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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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냄새
 
나는 직업상 많은 사람을 만난다. 사람마다 독특한 냄새가 있다. 존재에 배인 체취처럼, 꽤 다양하다. 사람의 냄새는 가까이 갈수록 진하기 마련이다. 때론 역겨운 냄새도 피할 수 없다. 섣불리 다가가기 두려운 이유다. 특히 법정에서 풍기는 냄새는 강렬하고 교묘하다.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욕망 때문이다. 변호사들조차 예의 따윈 안중에 없는 듯 악취를 내뿜기도 한다. 막장 드라마 같은 사건이라도 진행할라치면 인간 본성에 대한 회의감마저 든다. 그래도 가끔은 승패를 뛰어넘는 담백한 냄새, 억울한 상황마저 개의치 않는 잔잔한 향기가 풍긴다. 다만, 이런 냄새를 찾기가 점점 힘들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요즘 교회에 대한 세간의 시선엔 독한 날이 서 있다. 불신의 늪에 빠진 기독교는 갖은 수모를 당하고 있다. 기독교인이 환영받지 못하는 건 냄새 때문일지 모른다. 말과 행동의 불일치는 ‘위선의 냄새’를 풍긴다. ‘구리다’는 유행어처럼 말이다. 겉과 속이 판이한 신앙은 누가 봐도 역겹다. 겉만 번지르르할 뿐, 안은 탐욕과 방탕이 가득 찬 무덤 냄새 말이다. 그렇다. 사람은 마음에 쌓인 것이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선을 쌓은 사람에겐 선이, 악을 쌓은 사람에겐 악이 풍겨 나온다. 아무리 덧칠하고 분장해도 냄새를 오래 숨길 순 없다. 과연 나의 냄새는 어떨지 두렵고 떨리지 않을 수 없다. 문득 하용조 목사님이 ‘성격 고치라’는 설교를 자주 하셨던 게 생각난다. 기독교인은 무엇보다 흠모할 만한 인격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말이다.
유감스럽게도 세상엔 온갖 썩은 냄새들이 진동하고 있다. 난잡하고 모욕적인 언어들이 난무하고, 일상적인 예의조차 찾기 어렵다. 지도자들은 대중의 신뢰를 잃었고, 사회는 점점 무질서로 덮여간다. 기독교인은 어떻게 대응하는 게 맞나. 모든 걸 참고, 믿고, 바라고, 견디는 방법은 무언가. 세상을 바꿀 힘은 어디서 나오나. 거칠고 난폭한 세상일수록 진짜 무례하지 않은 기독교인, 더 온유하고, 더 친절한 기독교인이 필요할지 모른다. 다만, 진리에 대한 확신이 담긴 친절이라야 한다. 종종 예의 바른 사람은 강한 신념이 없고,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은 예의가 없다는 게 문제 아닌가. 기독교인은 ‘정열적인 신념’과 ‘기품 있는 태도’가 결합한 삶을 추구해야 한다. 친절하고 온유한 동시에 용감하고 강인해야 한다. 그러나 사납고 전투적인 세상에서 ‘신념을 수반한 예의’를 견지하는 건 너무 어렵다. 순교까지 각오해야 할지 모른다. 강렬한 신념을 열정적으로 토로했던 스데반이 군중의 돌에 맞으면서도 얼굴은 천사처럼 빛났던 장면이 떠오른다.
돌아보니 나도 인간적인 냄새를 물씬 풍기고 다녔던 것 같다. 신념을 거칠게 강요하기도 했고, 슬그머니 타협하기도 했다. 슬픔과 분노, 상처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삶의 고통이 목에 차오를 무렵, 불쑥 고난이 감사로 바뀌는 궁극적 행복이 찾아왔다. 그리고 갑자기 깨달았다. 가장 큰 행복은 가장 큰 거룩 속에 있다는 걸 말이다. 신념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용감한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문득 한가지 소원이 올라왔다. 신의 형상에 근접한 날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열망 말이다. 가장 거룩하고 가장 행복한 순간 주님 품에 안기는 걸 날마다 꿈꾼다. 옥합을 깨뜨린 여인처럼 가장 향기로운 냄새를 뿜어낼 때 말이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극심한 가치의 전쟁 중이다. 낙태, 안락사, 동성애 등 복잡하고 논쟁적인 이슈들이 법제화를 앞두고 있고, 검찰과 사법의 근간이 바뀌고 있다.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도 강한 규제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 교회마다 성경의 기준을 붙들고, 흥기발광(興起發光)을 준비할 시점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나, 기독교인이 공적인 의를 성취하려는 노력은 세심하고 신중해야 한다. 두 가지를 짚고 싶다. ‘진리를 삶으로 보여주려는 자세 없이 세상의 신뢰를 얻을 순 없다’는 게 하나고, ‘아무리 명분이 중요해도 증오에 편승하는 건 곤란하다’는 게 다른 하나다. 무례한 흑백논리로 심판대에 앉을 게 아니라, 진실하고 공손하게 타자의 경험으로 들어가야 한다. ‘상처를 주는 칼날’ 대신 ‘생명을 살리는 온기’가 필요하다. 그렇다. 하나님도 인간에게 선을 강요하진 않으셨다. 인간의 악을 십자가로 견디시고, 긍휼과 자비로 기다리셨다.
세상이 칠흑같이 어둡고 비바람도 몰아친다. 희미한 등불마저 꺼질 지경이다. 오늘보다 내일 한 걸음 더, 내일보다 모레 한 걸음 더 그리스도에게 다가가자! 그분의 향기에 흠뻑 젖어보자! 그리고 우리 모두 진리의 횃불을 높이 들자!
/ 이은경 변호사(OCC공동체. 법무법인 산지 대표변호사, 사단법인 크레도 대표이사)
 

작성자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