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세이] 세상을 바라보는 ‘제3의 눈
신앙에세이
세상을 바라보는 ‘제3의 눈’
우리에게는 세상을 보는 세 가지 눈이 있다고 생각한다. 제1의 눈은 자연적인 눈이다. 웅대한 자연을 감상하거나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 참으로 황홀하다고 느끼는 눈이다. 이 눈을 가진 사람은 시인이 되거나 예술가가 되어 자신의 감수성을 더욱 발전시킨다.
제2의 눈은 지성적인 눈이다. 웅대한 자연을 보고 이치를 깨닫기 위해 노력하고, 그 원리를 파악해서 학문적으로 발전시키는 시각이다. 이들은 떼 지어 날아가는 철새를 보고 이동 경로를 연구하며 조류학을 발전시키고, 아름다운 꽃을 보며 식물학을 정립한다.
마지막으로 제3의 눈이다. 이것은 자연적이고 지성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영적인 시각이다. 예수님이 이 눈을 가지셨는데, 우리 주변의 사물을 보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마6:26, 28).
예수님의 시각은 하나님의 시각이라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과 연결해서 바라보는 사고방식이다. 우리는 이것을 ‘자연 묵상’이라고 부를 수 있다. 즉, 사물을 보고 하나님과 연관시켜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삶의 태도이다. 이 관점을 갖게 되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발견하고, 기도하며, 그분의 뜻을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위대한 성인들은 모두 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만물 가운데 내재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보았다.
우리가 이 관점을 회복한다면 자연 만물을 결코 무생물이나 소비재로 보지 않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거룩한 존재로 보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나무가 그냥 나무가 아니고, 돌이 그냥 돌이 아니게 된다. 그것들은 나의 친구이자 동반자가 되며, 하나님을 떠올리게 하는 거룩한 존재가 된다. 그래서 성 프란치스코가 새들과 대화하고 설교했다는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예전에 신학교 시절, 교수님이 들려주신 간증이 떠오른다. 캐나다 유학 시절, 황혼의 아름다움을 배경으로 V자 형태로 떼 지어 날아가는 기러기들을 보고는 너무 아름답고 황홀해서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외치셨다고 한다.
“너희도 나와 같은 창조물이지?”
그러자 기러기들이 갑자기 방향을 선회해서 교수님을 향해 날아와 머리 위를 한 바퀴 돌고 다시 날아갔다고 한다. 그때의 놀라움과 감격, 희열을 잊을 수 없다고 하셨다. 새들도 교수님의 감탄을 알아듣고 공감을 표시한 것이다.
우리가 제3의 눈을 회복해서 사물 안에 내재해 계신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성경 말씀을 실천할 수 있게 된다. 기도가 나의 호흡이 되고,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생각과 점점 일치하게 된다. 사물은 더이상 나와 상관없는 타자가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 연결되는 영혼의 친구들이 되는 것이다. 바로 이 시각을 회복하는 것이 오늘날 신음하고 있는 지구 생태계에 대한 유일한 해답이 될 것이다.
/ 허원희 목사(과천의왕공동체)
제2의 눈은 지성적인 눈이다. 웅대한 자연을 보고 이치를 깨닫기 위해 노력하고, 그 원리를 파악해서 학문적으로 발전시키는 시각이다. 이들은 떼 지어 날아가는 철새를 보고 이동 경로를 연구하며 조류학을 발전시키고, 아름다운 꽃을 보며 식물학을 정립한다.
마지막으로 제3의 눈이다. 이것은 자연적이고 지성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영적인 시각이다. 예수님이 이 눈을 가지셨는데, 우리 주변의 사물을 보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마6:26, 28).
예수님의 시각은 하나님의 시각이라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과 연결해서 바라보는 사고방식이다. 우리는 이것을 ‘자연 묵상’이라고 부를 수 있다. 즉, 사물을 보고 하나님과 연관시켜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삶의 태도이다. 이 관점을 갖게 되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발견하고, 기도하며, 그분의 뜻을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위대한 성인들은 모두 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만물 가운데 내재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보았다.
우리가 이 관점을 회복한다면 자연 만물을 결코 무생물이나 소비재로 보지 않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거룩한 존재로 보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나무가 그냥 나무가 아니고, 돌이 그냥 돌이 아니게 된다. 그것들은 나의 친구이자 동반자가 되며, 하나님을 떠올리게 하는 거룩한 존재가 된다. 그래서 성 프란치스코가 새들과 대화하고 설교했다는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예전에 신학교 시절, 교수님이 들려주신 간증이 떠오른다. 캐나다 유학 시절, 황혼의 아름다움을 배경으로 V자 형태로 떼 지어 날아가는 기러기들을 보고는 너무 아름답고 황홀해서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외치셨다고 한다.
“너희도 나와 같은 창조물이지?”
그러자 기러기들이 갑자기 방향을 선회해서 교수님을 향해 날아와 머리 위를 한 바퀴 돌고 다시 날아갔다고 한다. 그때의 놀라움과 감격, 희열을 잊을 수 없다고 하셨다. 새들도 교수님의 감탄을 알아듣고 공감을 표시한 것이다.
우리가 제3의 눈을 회복해서 사물 안에 내재해 계신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성경 말씀을 실천할 수 있게 된다. 기도가 나의 호흡이 되고,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생각과 점점 일치하게 된다. 사물은 더이상 나와 상관없는 타자가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 연결되는 영혼의 친구들이 되는 것이다. 바로 이 시각을 회복하는 것이 오늘날 신음하고 있는 지구 생태계에 대한 유일한 해답이 될 것이다.
/ 허원희 목사(과천의왕공동체)
작성자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