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전문가 기고] 침묵의 나선을 깨고, 가정을 다시 세웁시다!

전문가 기고
 
오늘 우리는 한편으로는 배려와 존중을 강조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점점 더 자유롭게 말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많은 사람이 어떤 주제에 대해 자기 생각을 드러내는 순간 비난받거나 고립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낀다. 그 결과, 마음속에는 분명한 생각이 있어도 입을 닫게 되고, 결국 소수의견은 점점 더 숨어 버리며, 다수의견만 더욱 강하게 보이게 된다. 이것이 사회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침묵의 나선’ 이다.
문제는 이 침묵의 나선이 더는 언론이나 정치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제는 가정의 식탁, 부부의 대화,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 속으로 깊이 들어왔다. 예전에는 가족은 생각이 달라도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공동체였다. 의견이 다를 수 있고, 세대 차이가 있을 수 있고, 때로는 깊은 갈등이 생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사람은 용서와 인내, 화해와 책임을 배웠다. 그런데 오늘 날은 달라졌다. 중요한 주제일수록 조심하게 되고, 민감한 문제일수록 아예 입을 다물게 된다. 부모는 자녀에게 상처를 줄까 두려워서 말하지 못하고, 자녀는 부모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단정한 채 마음을 닫아 버린다. 그 결과 한집에 살면서도 서로의 진짜 생각을 모른
채 지나가는 일이 너무 많아졌다. 
본래 정치적 올바름, 곧 PC(Political Correctness) 자체가 처음부터 모두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타인을 불필요하게 모욕하지 않으려는 배려, 사회적 약자를 함부로 조롱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분명 필요한 면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점점 더 강한 이념, 즉 ‘ PC주의’ 가 되면서 어떤 표현과 관점만이 도덕적으로 옳은 말로 인정되고, 그에 어긋나는 목소리는 반박의 대상이 아니라 침묵시켜야 할 대상으로 취급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문제가 생긴다. 배려는 더 이상 배려가 아니라 통제가 되고, 대화는 점검과 검열로 바뀌기 때문이다. 가정도 그 영향을 피할 수 없다.
 
흔들리는 가정의 대화 구조
 
이 시대에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은 ‘ 가정의 대화 구조’ 다. 예를 들어 자녀가 학교나 미디어에서 성, 젠더, 인간 정체성에 관한 새로운 개념을 접했다고 해보자. 부모가 그 문제를 차분히 설명하고 함께 토론하기보다 아예 말을 피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부모는 “괜히 잘못 말했다가 차별적인 사람으로 보일까” 두렵고, 자녀는 “부모는 구시대적이고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쉽게 판단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집 안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가 가장 위험한 주제가 된다. 결국, 가정은 진실을 나누는 자리가 아니라 갈등을 피하고자 조용히 지나가는 자리로 바뀌어 버린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엡 4:15)고 했다. 진리를 포기한 평화는 오래가지 못한다. 사랑 없는 진리도 사람을 살리지 못하지만, 진리 없는 사랑은 결국 방향을 잃게 된다. 믿음의 가정은 바로 이 둘을 함께 붙드는 자리여야 한다.
또 한 가지 심각한 문제는 오늘날 문화가 인간에 대한 이해 자체를 흔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는 가장 기본적인 질서조차 더는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감정과 자기 인식이 생물학적 현실보다 우선하는 것처럼 말하는 젠더 이데올로기 흐름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그렇게 되면 부모와 자녀는 같은 집에서 살면서도 전혀 다른 인간관을 갖게 된다. 부모는 창조 질서 안에서 인간을 이해하는데, 자녀는 학교와 미디어가 전달하는 유동적 성정체성의 언어 속에서 인간을 이해하게 된다. 이 차이는 단순한 의견 차이를 넘어 가족 내부에 깊은 인식의 단절을 가져온다. 부모는 자녀에게 무지하고 억압적인 사람처럼 보일 수 있고, 자녀는 부모에게 혼란과 불안 속에서 방황하는 존재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시대 부모는 단순히 “안 된다”라고 말하는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왜 하나님이 인간을
그렇게 지으셨는지, 왜 몸은 단지 껍데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지, 왜 창조 질서는 억압이 아니라 보호인지 차분히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차단의 기술이 아니라 회복의 기술!
 
나아가 우리는 정치적 올바름의 문화가 결혼과 부모의 역할 자체를 약화시키고 있다는 사실도 직시해야 한다. 한때 가정은 헌신과 책임, 인내와 돌봄을 배우는 자리였다. 결혼은 기분이 좋을 때만 유지하는 계약이 아니라 어려움 속에서도 함께 지켜 가야 할 언약으로 이해됐었다. 그러나 요즘 시대는 관계를 점점 더 ‘ 나에게 도움이 되는가?’ 라는 기준으로 판단하게 만든다. 부부도 서로를 언약의 동반자라기보다 감정적 만족을 위한 파트너처럼 여기기 쉽다. 부모 역할도 책임과 훈련보다 자녀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는 기술로 축소되기 쉽다. 하지만 하나님은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 것”(창 2:24)이라고 하셨고, “아비들에게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고 명하셨다. 하나님은 결혼과 부모 됨을 선택적 프로젝트가 아니라 그분 앞에서 감당해야 할 거룩한 책임으로 가르치셨다.
오늘날 가정이 겪는 또 다른 위기는 갈등을 해결하는 능력의 상실이다. 전에는 갈등이 생겨도 붙들고 대화하고, 때로는 눈물로 화해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만 불편해도 관계를 끊는 쪽이 더 자연스러운 선택처럼 여겨진다. 사회에서 누군가를 ‘ 캔슬(Cancel)’ 하듯, 가정에서도 대화보다 차단이 먼저 나오고, 설득보다 거리 두기가 먼저 나온다. 가족 단체채팅방을 나가고, 아예 연락을 줄이고, 마음속으로는 이미 상대를 ‘ 해로운 사람’ 으로 분류해 버리는 일이 낯설지 않게 되었다. 부적절한 말을 한 사람을 사회적으로 완전히 소외시켜 버리는 PC주의의 캔슬 문화(Cancel Culture)가 가정까지 침투한 것이다.
그러나 가정은 세상처럼 사람을 취소하는 곳이 아니다. 가정은 실수해도 돌아올 수 있는 곳이어야 하고, 잘못이 있어도 회개와 용서의 문이 열려 있는 곳이어야 한다. 하나님이 가정에 주신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벧전 4:8). 물론 죄를 죄가 아닌 것으로 만들라는 뜻이 아니다. 그러나 잘못을 이유로 곧바로 관계를 끊는 것은 복음의 길이 될 수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배워야 할 것은 차단의 기술이 아니라 회복의 기술이다.
 
‘식탁의 대화’회복,
부부가 먼저 한 방향으로
 
그렇다면 이 시대를 사는 성도들은 어떻게 가정을 세워야 할까? 무엇보다 먼저 식탁의 대화를 회복해야 한다. 바쁜 일상에서도 가족이 함께 앉아 서로의 생각을 묻고 듣는 시간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자녀가 학교에서 배운 것을 말할 때, 부모가 먼저 귀를 열어야 한다. 즉시 분노하거나 조롱하지 말고, 끝까지 듣고, 질문하고, 성경의 빛 아래에서 함께 생각해 봐야 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니?”, “그 생각은 어디서 왔니?”, “하나님의 말씀은 이 문제를 어떻게 비추고 있을까?”
이런 질문이 쌓일 때 자녀는 세상의 주장만 듣는 게 아니라, 부모의 지혜와 믿음을 함께 배우게 된다. 하나님은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라”(신 6:6~7)고 명하셨다. 말씀을 통한 가정교육은 특별한 날에만 하는 행사가 아니다. 일상의 반복 속에서 이루어지는 거룩한 사명이다.
또한 부부가 먼저 한 방향으로 서야 한다. 자녀는 부모가 무엇을 말하는지를 듣기 전에, 부모가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먼저 본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를 존중하는지, 의견이 다를 때 어떻게 말하는지, 갈등이 생겼을 때 책임 있게 해결하는지를 보면서 관계의 문법을 배운다. 그러므로 부부가 각자의 감정과 피로속에 흩어지지 말고, 말씀과 기도 안에서 다시 손을 맞잡아야 한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시 127:1).
가정을 지키는 힘은 인간의 지혜나 감정 조절 능력만으로 생기지 않는다. 하나님이 집을 붙들어 주실 때 비로소 흔들리는 시대 속에서도 집이 무너지지 않는다.
부모는 두려워하지 말고 양육의 책임을 다시 붙들어야 한다. 세상이 부모를 낡은 존재처럼 말할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부모를 자녀 양육의 첫 번째 책임자로 부르신다. 사랑은 방임이 아니다. 존중은 무관심이 아니다. 자녀를 사랑한다면, 부모는 자녀가 배우는 내용과 접하는 문화, 형성되는 세계관을 책임 있게 관심 가져야 한다. 학교와 미디어가 전하는 모든 메시지를 비판 없이 받아들이게 두지 말고, 자녀가 분별하도록 도와야 한다. 하나님은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않을 것”(잠 22:6)이라고 약속하셨다. 오늘 심는 말 한마디, 오늘 드리는 기도 한 번, 오늘 보여 주는 부모의 태도 하나가 먼 훗날 자녀의 삶을 붙드는 뿌리가 된다. 혼란의 때 성도
들은 낙심할 시간이 없다. 가정이 흔들리는 시대일수록 더욱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여전히 가정을 통해, 가정을 위해 일하신다. 세상이 교회를 조롱하고, 학교가 혼란을 가르치고, 세속 문화가 질서를 무너뜨리려 해도, 하나님은 여전히 믿음의 가정을 통해 다음세대를 일으키신다. 우리는 세상의 소음에 압도당할 필요가 없다. 우리의 소명은 세상의 모든 논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맡겨진 가정을 말씀 위에 바로 세우는 것이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는 여호수아의 고백은 한 시대의 종교적 표어가 아니다. 우리 가정이 다시 붙들어야 할 믿음의 선언이다. “우리 집이 세상의 유행을 따라 흔들리는 집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 위에 서는 집이 되게 하소서”,“우리 가정의 식탁이 침묵의 자리가 아니라 진실과 사랑의 대화가 오가는 자리가 되게 하소서”, “우리 부부가 서로를 향한 언약의 신실함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우리 자녀가 세상의 혼란 속에서도 바른 질서와 따뜻한 사랑을 함께 배우게 하소서”라고 선포하자. 가정은 무너지는 시대의 마지막 보루가 아니다. 하나님이 다시 회복을 시작하시는 첫 자리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분노가 아니라 분별이며, 침묵이 아니라 믿음의 용기다.
/ 문지호 집사(한강공동체, 성산생명 윤리연구소 부소장)

작성자  남현영 기자 hyun0@onnu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