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신앙에세이] 십자가 묵상

[신앙에세이]
 
십자가 묵상
 
모든 제자가 두려움으로 떠나고 난폭한 군병들과 예수님을 비난하던 자들만 남아 있던 십자가 아래, 그 마지막을 지켜 준 특별한 두 사람이 있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다. 그들은 유대 산헤드린 공회의 지도자였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존귀한 공회원이자 부자였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유대인들이 두려워 숨어 있었고(요 19:38),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던 사람이었다(막 15:43, 눅 23:51). 산헤드린 공회가 열려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기고 사형 판결을 받게 할 때에도 요셉은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않았다(눅 23:50~51).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지켜본 후 빌라도에게 가서 시체를 달라고 요청한다. 이후 세마포로 싸서 자기 소유의 돌로 판 새 무덤에 예수님을 안치하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을 막았다. <이사야>의 예언대로 예수님은 부자의 묘실에 장사 되셨다(사 53:9). 
니고데모 역시 산헤드린 공회원이자 선생으로,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 하나님 나라에 대해 물었던 인물이며 그 역시 부유한 사람이었다. 니고데모에 대해 기록한 사람은 요한 뿐인데, 그것도 세 차례에 걸쳐 언급한다.
첫째,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장면(요 3:1-21)이며, 둘째,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비난하고 잡으려 할 때 반대를 무릅쓰고 예수님을 변호한 장면이다(요 7:50-51). 셋째로 그는 몰약과 침향을 섞은 향품을 백 근쯤 가져와, 가장 귀하고 값비싼 것으로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했다.
두 사람은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가까이 따르지는 못했지만, 십자가 이후 정성껏 장사를 치렀다. 여기에 십자가의 비밀이 있다.
세상의 부와 명예, 종교와 사회, 정치 모든 면에서 존경받던 이들조차 죽음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장사를 지내는 것뿐이다. 세상의 끝은 죽음이다. 십자가는 세상의 끝이 바로 그곳이라 선포한다. 세상의 모든 부와 명예, 권력과 역사도 십자가에서 끝난다. 세상을 십자가로 끝내시려는 하나님의 뜻이다. 세상의 끝은 십자가다. 그러나 니고데모가 알고자 했던 하나님 나라는 바로 그 십자가로부터 시작된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요 3:14).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높이 들려질 때, 하나님의 나라는 물과 성령으로 시작된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세상은 십자가에서 죽고, 하나님 나라는 십자가에서 시작된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자만이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 거듭남은 죽음에서 시작된다.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 지난 2천 년 동안 찢어진 휘장 사이로 들어온 사람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로 하나님 나라가 채워져 왔다. 그래서 지난 2천 년은 세상을 위한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한 시간이었다. 이미 십자가에서 죽은 세상은 마지막 심판을 남겨두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나라는 충만한 수가 채워질 때까지 누룩처럼 부풀어 갈 것이다.
지금 세상을 닮은 사람들은 십자가에서 끝을 맺게 되지만, 예수를 닮은 사람들은 십자가에서 시작해서 영생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십자가의 비밀이다. 
십자가에는 또 다른 비밀이 있다. 십자가는 모든 것이 벗겨지는 자리다. 가족, 학벌, 동료, 쌓아 온 부와 명예, 심지어 마지막 존엄이라 여겼던 자존심까지 모두 벗겨진다. 그 모든 것이 결국 한 조각 천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된다. 감추고 싶었던 수치가 드러나고, 죽어야만 끝나는 자리. 나의 십자가란 그런 자리다.
예수님이 “나의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신다. 그 말씀 앞에서 두려움으로 통곡한다. 그러나 결국 수치를 가릴 수 없는 그 자리에 선다. 아니 그곳에 오른다.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앞에 고개를 떨군다. 살을 뚫고 들어오는 창끝의 고통보다, 절망으로 타는 영혼의 목마름보다, 남겨진 사랑하는 이들을 향한 눈물의 고통과 심장의 통곡을 듣게 된다. 죽음을 넘는 사랑 앞에, 그 십자가 앞에 엎드린다. 그리고 고백한다.
“나의 십자가를 지겠습니다.”
/ 신원석 목사(NGO 더멋진세상)
 

작성자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