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세이] 앉아서 외친 복음이 나를
신앙에세이
앉아서 외친 복음이 나를
나는 일반대학을 졸업하고, 신학대학원 합격과 동시에 한 교회에서 교육전도사 사역을 시작했다. 성도에서 전도사가 되어 유치부 사역을 맡으면서 어려운 점이 많았다. 원래 예민한 성격에 약한 편두통이 있던 나는 첫 사역지에서 겪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스트레스로 인해 편두통이 만성으로 악화했고, 급성 위경련도 자주 겪었다.
그 시절 가장 큰 고민은 ‘내가 이 길을 계속 갈 수 있을까?’였다. 만성 두통이나 급성 위경련이 주일에 찾아오면 교회를 어떻게 섬기고 설교는 감당할 수 있을지 막막했다. 앞으로 평생 목회를 하겠다고 다짐했는데, 벌써 속병으로 인해 몸에 변화가 생기자 언젠가 담임 목회를 감당해야 할 때 과연 이 건강 상태로 이 길을 걸어갈 수 있을지 두려움이 밀려왔다. 부르심을 받았다고 해서 모두가 목사가 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깊이 고민한 끝에 집사든, 장로든, 간사든 어느 직분이든 주의 종으로 최선을 다해 하나님과 몸 된 교회를 섬기면 되지 않을까 하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던 중 나를 키워주시고 양육해 주신 할머니가 소천하셨다. 부모님 이상으로 가까운 존재였던 할머니의 장례는 나의 모든 삶을 멈추게 했다. 장례를 마치고 깊은 슬픔에 잠겨 신학대학원을 휴학하고 사역하던 첫 부임지도 6개월 만에 사임했다. 그렇게 나는 신학대학원 인근 자취방에서 암막 커튼을 치고 모든 불을 끈 채 칩거 생활을 시작했다.
짧은 사역 기간이었지만 망가진 몸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고, 만성 편두통과 위경련은 나를 더욱 괴롭혔다. 그러던 어느 날, 어두운 방 안에서 우연히 CGN 채널에서 하용조 목사님의 설교를 보게 되었다. 나는 부산 출신이었고, 서울에 있는 교회는 잘 알지 못했기에 온누리교회 이름만 들어봤을 뿐 하용조 목사님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당시 나는 기독교 채널을 보면 곧바로 돌려버릴 정도로 마음이 많이 닫혀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그 채널에서 멈추게 된 이유는 하용조 목사님이 의자에 앉아 설교하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누가 봐도 아파 보이는 육체의 연약함이 그 짧은 순간에도 느껴졌고, ‘저 목사님은 누구길래 저렇게 앉아서 설교하실까?’ 궁금증이 생겼다. 설교를 듣는 동안 병에 대한 언급은 없었지만, 몸이 몹시 아프신 게 느껴졌다. 그런데도 떨리는 목소리로 담대하고 분명하게, 힘 있게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시는 모습을 보고는 어두운 방에서 홀로 고통 속에 있던 내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마치 처음 하나님을 만났을 때, 부르심을 받았을 때처럼 가슴 속에 불이 타오르는 듯한 성령의 임재를 경험했다.
그날 이후 나는 인터넷과 여러 방송에서 하용조 목사님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목사님이 어떤 지병을 앓고 계셨는지, 사도 바울처럼 육신의 연약함 가운데서도 어떻게 하나님의 사명을 붙들고 살아가셨는지를 알게 되었다. 목사님의 삶과 사역을 보면서 그에 비해 너무 작은 육신의 연약함으로 목회의 길을 포기하려 했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 또한 건강의 문제를 하나님께 맡겨드리고, 목회의 길을 다시 걸어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용조 목사님이 이 땅에 계시지 않지만, 그분이 삶을 다해 세우신 온누리교회에서 사역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 이후 온누리교회 파트교역자로 섬기게 되었다. 신학대학원에 복학해서 과정을 마쳤고, 지금은 하나님이 하용조 목사님과 온누리교회에 주신 Acts29 비전이 나의 비전임을 확신하며 사역하고 있다. 다행히 건강은 염려했던 것처럼 더 악화하지 않았고, 잘 관리하며 사역하면 전혀 지장이 없는 수준으로 회복했다.
그 짧은 순간 보게 된 앉아서 복음을 외치시던 하용조 목사님의 모습이 실패와 낙심 가운데 있던 내가 소망을 발견하게 했고, 나를 비전의 사람으로 변화시켰다. 하용조 목사님을 알게 된 것과 온누리교회 공동체 일원으로 사역하게 된 것은 내 삶의 큰 감사제목이다. 먼 훗날 하용조 목사님을 뵙게 된다면 꼭 전하고 싶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많이 보고 싶었습니다. 사랑합니다.”
/ 성은일 목사(춘천새순교회)
작성자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