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세이] 권사님들과 함께 양화진 순례
[신앙에세이]
권사님들과 함께 양화진 순례
봄기운이 완연했던 5월의 어느 화창한 날, 강서공동체 권사님들과 함께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을 찾았다. 모임 장소와 가까운 절두산 순교기념관에 조금 일찍 도착해 홀로 둘러보았다.
절두산 순교지는 양화진과 가까운 곳에 있지만, 가톨릭 성지라는 막연한 거리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막상 그곳에 들어서자 생각보다 훨씬 고요하고 깊은 울림이 있는 공간이었다. 병인박해 때 수많은 성도가 순교했던 현장이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평화로운 자리에 남아 있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서 있으니 믿음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았던 이들의 시간이 마음 깊이 스며들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오래도록 묵상하고 싶은 여운을 남기는 장소였다.
권사님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양화진으로 이동했다. 양화진은 189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조선 땅에서 복음을 전하다 생을 마감한 선교사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대학생 시절 처음 해외 아웃리치를 갔을 때 선교사님에게 이곳의 존재를 듣고 여러 번 방문했는데, 이번 방문은 10여 년 만이었다.
무엇보다 이번에는 도슨트의 안내 덕분에 양화진을 새롭게 경험할 수 있었다. 선교사들의 삶과 한국 기독교 역사를 소개하는 영상을 보는데 이미 여러 번 들었던 이야기인데도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복음과 교육, 의료선교를 위해 낯선 조선 땅에 왔던 그들의 헌신 앞에서 어느새 눈물이 흘렀다. 영상 속 선교사들은 먼 시대의 인물이 아니었다. 이름도, 언어도 낯설었던 이 땅을 사랑하며 살아낸 믿음의 사람들이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익숙한 삶을 내려놓았던 그들의 선택이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믿음을 돌아보게 했다.
자연스럽게 나의 지난 시간도 떠올랐다. 선교적 사명과 목회자의 소명 사이에서 고민하며 걸어왔던 시간들. 예전에는 단지 ‘헌신한 선교사들’로만 보였던 분들이 이제는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익숙한 삶을 내려놓고,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도 순종하며 걸어갔던 선교사님들의 그 믿음의 발걸음이 내 마음을 깊이 울렸다.
묘원투어 하던 그날은 유난히 햇볕이 따뜻했다. 눈부신 햇살 때문에 쓴 선글라스는 어느 순간 흐르는 눈물을 가리는 도구가 되었다. 특히 한쪽에 자리한 작은 묘비들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태어난 해와 마지막 해가 같거나 한두 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어린아이들의 묘였다. 몇 대에 걸쳐 이 땅에 복음을 심고자 했던 선교사 가족들의 희생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 묘비 앞에 잠시 서 있는 동안 복음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전해지는 것임을 다시금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나 역시 대학생 때 선교사의 꿈을 품고 중국 우루무치에서 자비량 선교사로 1년 반을 보낸 적이 있었다. 그때 품었던 선교적 부르심은 지금까지도 내 삶의 중요한 소명으로 남아 있다. 이제는 내가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면서 사역자의 자녀로 살아가야 할 삶과 부담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동시에 다시 도전받는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신의 삶을 드렸던 믿음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어떤 순종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스스로 묻게 된다.
양화진에서의 하루는 내 마음을 다시 새롭게 했다. 사역의 열매보다 중심을 돌아보게 하셨고, 일이 아닌 사명으로, 의무가 아닌 사랑으로 목회를 감당해야 함을 다시 깨닫게 하셨다. 조선이라는 낯선 땅을 품고 순종했던 선교사들의 발걸음을 기억하며, 나 역시 하나님이 맡기신 자리에서 끝까지 충성되게 걸어가기를 소망한다. 함께했던 강서공동체 권사님들과 이 은혜를 나눌 수 있어서 더욱 감사한 하루였다.
/ 하성희 목사(강서공동체)
절두산 순교지는 양화진과 가까운 곳에 있지만, 가톨릭 성지라는 막연한 거리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막상 그곳에 들어서자 생각보다 훨씬 고요하고 깊은 울림이 있는 공간이었다. 병인박해 때 수많은 성도가 순교했던 현장이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평화로운 자리에 남아 있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서 있으니 믿음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았던 이들의 시간이 마음 깊이 스며들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오래도록 묵상하고 싶은 여운을 남기는 장소였다.
권사님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양화진으로 이동했다. 양화진은 189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조선 땅에서 복음을 전하다 생을 마감한 선교사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대학생 시절 처음 해외 아웃리치를 갔을 때 선교사님에게 이곳의 존재를 듣고 여러 번 방문했는데, 이번 방문은 10여 년 만이었다.
무엇보다 이번에는 도슨트의 안내 덕분에 양화진을 새롭게 경험할 수 있었다. 선교사들의 삶과 한국 기독교 역사를 소개하는 영상을 보는데 이미 여러 번 들었던 이야기인데도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복음과 교육, 의료선교를 위해 낯선 조선 땅에 왔던 그들의 헌신 앞에서 어느새 눈물이 흘렀다. 영상 속 선교사들은 먼 시대의 인물이 아니었다. 이름도, 언어도 낯설었던 이 땅을 사랑하며 살아낸 믿음의 사람들이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익숙한 삶을 내려놓았던 그들의 선택이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믿음을 돌아보게 했다.
자연스럽게 나의 지난 시간도 떠올랐다. 선교적 사명과 목회자의 소명 사이에서 고민하며 걸어왔던 시간들. 예전에는 단지 ‘헌신한 선교사들’로만 보였던 분들이 이제는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익숙한 삶을 내려놓고,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도 순종하며 걸어갔던 선교사님들의 그 믿음의 발걸음이 내 마음을 깊이 울렸다.
묘원투어 하던 그날은 유난히 햇볕이 따뜻했다. 눈부신 햇살 때문에 쓴 선글라스는 어느 순간 흐르는 눈물을 가리는 도구가 되었다. 특히 한쪽에 자리한 작은 묘비들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태어난 해와 마지막 해가 같거나 한두 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어린아이들의 묘였다. 몇 대에 걸쳐 이 땅에 복음을 심고자 했던 선교사 가족들의 희생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 묘비 앞에 잠시 서 있는 동안 복음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전해지는 것임을 다시금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나 역시 대학생 때 선교사의 꿈을 품고 중국 우루무치에서 자비량 선교사로 1년 반을 보낸 적이 있었다. 그때 품었던 선교적 부르심은 지금까지도 내 삶의 중요한 소명으로 남아 있다. 이제는 내가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면서 사역자의 자녀로 살아가야 할 삶과 부담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동시에 다시 도전받는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신의 삶을 드렸던 믿음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어떤 순종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스스로 묻게 된다.
양화진에서의 하루는 내 마음을 다시 새롭게 했다. 사역의 열매보다 중심을 돌아보게 하셨고, 일이 아닌 사명으로, 의무가 아닌 사랑으로 목회를 감당해야 함을 다시 깨닫게 하셨다. 조선이라는 낯선 땅을 품고 순종했던 선교사들의 발걸음을 기억하며, 나 역시 하나님이 맡기신 자리에서 끝까지 충성되게 걸어가기를 소망한다. 함께했던 강서공동체 권사님들과 이 은혜를 나눌 수 있어서 더욱 감사한 하루였다.
/ 하성희 목사(강서공동체)
작성자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