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독자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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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 선교학교 수료 간증

 

이주민을 사랑하고 품는 마음

 

안산에는 다양한 민족들이 거주하고 있다. 안산은 반월공업단지와 함께 건설된 계획도시다. 1978년 인구 분산과 도시 환경 개선을 도모하기 위하여 안산신도시가 만들어졌다. 안산은 서울과 직선거리로 35킬로미터 떨어졌다. 1987년 이후 노동 집약 부문에서부터 노동자를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중소기업이 힘을 잃어 갔다. 1990년대 후반, 침체되고 있던 안산은 이주노동자들의 공단 유입과 더불어 순식간에 그들의 주거지로 각광받으며 침체기에서 벗어났다. 안산원곡동은 현재 외국인 주민 수가 내국인을 추월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주노동자들이 안산으로 모였기 때문이다.
이주민 선교학교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은 안산M센터 방문과 이주민 마을 체험이었다. 이주민들을 만나 삶을 배웠고, 그들의 문화를 알아갔다. 파키스탄 음식과 스리랑카 음식도 맛보았다. 우리가 만난 이주민들은 고된 일터에서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이주민들에게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방법이 무엇일지 생각해보았다. 마사지 서비스가 좋겠다고 생각했다.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일터로 나가고 있는 그들에게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에 들어온 모슬렘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효과적인 전도방법이라고 생각했다.
2009년 12월 기준으로 한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은 대략 117만여 명에 이른다. 이주자들의 규모가 점차 확대되면서 그들은 공장에 딸린 기숙사에 살거나 한국인들이 사는 동네에 섞여 살고 있다. 내가 사는 동네 이태원도 외국인을 자주 접할 수 있는 곳이다. 그들을 친절하게 대해야 기독교인으로서 모범적인 삶을 사는 거라는 생각을 했다.
어느 날 어머니의 직장 유치원에서 이라크 학부모들을 위한 상담교사를 뽑을 일이 있었다. 마침 동생의 빈자리를 내가 채울 기회가 되었다. 나는 이라크를 테러국이자 잔인한 나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만난 이라크 학부모들은 대부분 외교관 출신이며, 의사로 종사하던 분들이었다. 그들은 교양 있는 말과 총명한 지식으로 우리를 대했다. 그들은 자녀에게 “고기 안돼!”라는 한국말로 가르치고 있었다. 이라크 부모들은 유치원에서도 철저하게 무슬림 관습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라크인들은 가족 관계도 중요시했고, 먼 친척과의 결혼을 허용하기도 했다. 지난 주 이라크 학생의 한 어머니가 나를 점심식사에 초대했다. 그 어머니는 이라크에서 의사였고, 영어와 아랍어 등 다양한 언어를 구사했다. 내게 이라크 음식을 대접해주었다. 이라크의 문화, 가족 관계에 대해서도 설명해줬다. 이라크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던 나를 돌아보게 했다.
이주민 선교학교에 참가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그것은 한국에 들어온 이주민들을 사랑하고 기도로 품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훈련되고, 준비되어야 한다. 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고, 피아노나 바이올린 개인지도 봉사를 통해 관계의 문을 여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다. 그들에게 한국 문화를 전하며, 복음의 통로를 열어갈 것이다.

홍에스더

/ 홍에스더 자매

작성자  김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