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들리는 예술산책
권사칼럼
/최정주 권사 (이수공동체)
영혼의 작가로 알려진 켄 가이어(KenGire)는 그의 글에서 “음악은 때로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의 순간에 평안을 주고,상상할 수 없는 아픔의 순간에 위로를 주기도 한다”고 했다.
음악뿐 아니라 많은 예술 작품들이 우리에게 주는 정서적 효과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평안과 위로는 주님을 대할 때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예술작품 속에서 찾아볼 때 더 큰 감흥이 일어나는 경험을 할 때가 많다.
피아노를 전공한 나는 학생들에게 피아노 교수법에 대한 강의를 오랫동안 해왔다. 가르치는 일은 많은 보람이 있지만 피곤하고 힘들 때도 많았다. 6년 전 새로운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접하게 되면서 많은 미술작품들을 감상하게 되었다. 미술작품 중에서 특히 성화들은 마치 내가 말씀을 읽는 것 같은 큰 감동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깊은 묵상의 글로 유명한 헨리 나우웬(HenriNouwen)도 <탕자의 귀향>이라는 책을 쓰며 렘브란트의 그림에서 받은 감동을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달해주고 있다.
평생을 음악과 함께 하던 내 삶에 찾아온 그림들은 꼭 예수님이 내 영혼을 흔드시는 것 같은 감동을 주었다. 그래서 요즈음의 나는 주님이 주시는 말씀이 음악과 미술을 통해서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으로 쉽게 전달 될 수 있는지를 연구하고 강의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성도들이 아니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경우가 더 많은데, 비록 성화가 아니더라도 그 속에서 예술을 통한 분명한 치유의 과정을 느낀다. 주님이 내게 주시는 사명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내게 맞는 은사를 발견하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렘브란트의 ‘ 탕자의 귀향’ (1669)을 감상하며 엘가의 ‘ 사랑의 인사’ 를 들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렘브란트가 죽던 해에 그린 이 그림은 세상의 향락을 쫓다가 모든 것을 잃고 비참한 모습으로 돌아온 아들을 사랑으로 안아주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어쩌면 인생을 회개하고 주님 앞에 머리 숙여 통곡하는 렘브란트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이 그림을 대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아버지를 만난 아들의 통곡의 장에 참여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얼마나 사랑하시는가?이 얼마나 편하고 아늑한 품인가? 그림 속 탕자처럼 나는 힘없이 기대어서 주님의 한량없는 사랑을 느꼈다. 무릎 꿇은 아들의 해진 옷과 더러운 발바닥은 그의 고된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준
다.
그것은 바로 나의 모습이었다. 때로는 눈앞의 욕심으로, 때로는 삶의 연속되는 긴장 때문에 아버지께 똑바로 나가지 못했다. 그래서 외면하고 눌려있던 남루한 내 영혼의 모습이었다. 나아갈 수도, 주저앉을 수도 없는, 언제나 갈등하고 용기 없는 나의 상태였다. 그런 나 같은 죄인을 아버지는 기다리고 또 기다리신 것이다. 엘가의 소품 ‘사랑의 인사’ 는 사랑하는 자신의 부인에게 헌정한 곡이다. 따뜻한 사랑이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따뜻한 아버지의 품속에 기대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시간이다.
앞으로 나는 계속 음악과 미술작품을 대하며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들을 것이다. 하루하루가 예술로 하는 큐티가 될 것이다. 늘 감동이 가득한 시간들이 내 삶에 채워질 것을 생각하면서 주님이 내게 속삭이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나는 오늘도 행복한 예술산책을 나간다.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