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가 멘티에게] 선교를 준비하는 세 가지 방법
멘토가 멘티에게
선교를 준비하는 세 가지 방법
“선교갈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가야 할까요? 선교지에 가기 전에 부담되고, 걱정되는 마음이 잘못된 것일까요?”
선교란 무엇일까? 평신도가 생각하는 선교의 정의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긴 시간 비행을 마다하지 않고 만나러 가는 것이다. 그러다 그들이 있는 곳으로 거주지를 옮기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건 기쁘지만 휴가를 내야 하고, 항공료도 준비해야 한다. 요즘같이 전염병과 전쟁 등 불확실성이 큰 시기에는 더욱 부담을 느낄 수 있다. 어쩌면 당연한 마음이다. 그래서 더욱 귀하다. 부담을 느끼는데도 사랑하는 그들을 만나러 가는 모습을 하나님이 귀하게 보실 것이기 때문이다. 단기 선교를 떠나려는 청년들에게 세 가지를 권면하고 싶다.
첫째, ‘프론티어’를 사모하라. 프론티어란 최전방을 의미한다. 핍박이 있는 곳, 거리가 멀고 문화적 장벽이 크고, 선교사들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곳이다. 찾는 이가 적은 그곳을 사모하고, 도전하기를 바란다. 내가 병원을 개원하기 전에 1년 정도 섬기고자 선교지를 추천받았다. 한 곳은 우즈베키스탄의 치과병원이었고, 다른 한 곳은 시베리아 사하공화국이었다. 우즈베키스탄은 당시 어느 정도 선교사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시베리아 사하공화국의 야쿠츠크는 목사님 한 가정 외에 공식적으로 한국인 선교사가 없던 지역이었다. 더 개척 지역이라 생각된 시베리아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7개월 동안 학원을 다니며 러시아어를 공부했다. 2000년 1월, 현지 상인과 함께 그 땅을 밟았다. 현지 사정으로 1년 머무는 것이 미뤄졌지만, 그 이후 헌신자들과 팀을 이뤄 4년 동안 매년 방문했다. 팀원 중 한 부부가 선교사로 현지에 안착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시베리아 혹한의 겨울밤 길을 잃었던 일, 정부 관계자들을 설득하던 긴장된 순간들, 아쉬웠던 시행착오들, 모기떼와의 전쟁이었던 여름 사역, 현지인들이 좋아하는 망아지 생고기를 함께 먹으며 서툰 러시아어로 담소를 나눴던 시간이 내게 감사한 선교적 자산으로 남아있다.
둘째, 선교지 언어를 공부하라. 예를 들어 베트남으로 아웃리치를 간다면, 3~4개월 전쯤 기초문법 인터넷 강의를 듣는 것이다. 어학 플랫폼에서 베트남 선생님과 영상으로 공부한다면 현지의 정확한 발음으로 배울 수 있다. 베트남어 예배팀의 도움을 받아서 전도지의 발음을 녹음해 오는 것도 방법이다. 물론 아웃리치 기도모임과 공연 준비 등 바쁜 일정이 있어서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도전해야 한다. 그들의 언어로 이야기할 때 흔들리는 눈동자를 느껴보기를 바란다. 궁극적 선교는 그들의 언어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셋째, 이제는 행동해야 한다. 한 선교사님께 안부전화를 드렸는데 “생각만 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올해는 선교지에 꼭 방문하라”는 단호한 권면이 나의 가슴에 깊이 새겨졌다. 당시 현지에서는 코로나19에 감염되면 귀국이 불허되던 시기였다. 어려운 상황에 잠시 망설였지만, 레바논의 시리아 난민촌을 방문지역으로 정하고 의약품을 들고 가서 사역했다. 머뭇거리지 않고, 행동했을 뿐인데 하나님이 내 인생 마지막 프론티어가 시리아 난민과 레반트 지역을 섬기는 일임을 깨닫게 하셨다. 올해 레바논에 다시 방문했을 때 그 부르심을 확인시켜 주셨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프론티어를 사모하고, 선교지 언어를 공부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제는 행동하라. 하나님을 사랑해서 자신의 인생을 드리기로 헌신하는 청년들을 축복한다.
/ 양윤석 멘토(허브대학부)
첫째, ‘프론티어’를 사모하라. 프론티어란 최전방을 의미한다. 핍박이 있는 곳, 거리가 멀고 문화적 장벽이 크고, 선교사들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곳이다. 찾는 이가 적은 그곳을 사모하고, 도전하기를 바란다. 내가 병원을 개원하기 전에 1년 정도 섬기고자 선교지를 추천받았다. 한 곳은 우즈베키스탄의 치과병원이었고, 다른 한 곳은 시베리아 사하공화국이었다. 우즈베키스탄은 당시 어느 정도 선교사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시베리아 사하공화국의 야쿠츠크는 목사님 한 가정 외에 공식적으로 한국인 선교사가 없던 지역이었다. 더 개척 지역이라 생각된 시베리아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7개월 동안 학원을 다니며 러시아어를 공부했다. 2000년 1월, 현지 상인과 함께 그 땅을 밟았다. 현지 사정으로 1년 머무는 것이 미뤄졌지만, 그 이후 헌신자들과 팀을 이뤄 4년 동안 매년 방문했다. 팀원 중 한 부부가 선교사로 현지에 안착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시베리아 혹한의 겨울밤 길을 잃었던 일, 정부 관계자들을 설득하던 긴장된 순간들, 아쉬웠던 시행착오들, 모기떼와의 전쟁이었던 여름 사역, 현지인들이 좋아하는 망아지 생고기를 함께 먹으며 서툰 러시아어로 담소를 나눴던 시간이 내게 감사한 선교적 자산으로 남아있다.
둘째, 선교지 언어를 공부하라. 예를 들어 베트남으로 아웃리치를 간다면, 3~4개월 전쯤 기초문법 인터넷 강의를 듣는 것이다. 어학 플랫폼에서 베트남 선생님과 영상으로 공부한다면 현지의 정확한 발음으로 배울 수 있다. 베트남어 예배팀의 도움을 받아서 전도지의 발음을 녹음해 오는 것도 방법이다. 물론 아웃리치 기도모임과 공연 준비 등 바쁜 일정이 있어서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도전해야 한다. 그들의 언어로 이야기할 때 흔들리는 눈동자를 느껴보기를 바란다. 궁극적 선교는 그들의 언어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셋째, 이제는 행동해야 한다. 한 선교사님께 안부전화를 드렸는데 “생각만 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올해는 선교지에 꼭 방문하라”는 단호한 권면이 나의 가슴에 깊이 새겨졌다. 당시 현지에서는 코로나19에 감염되면 귀국이 불허되던 시기였다. 어려운 상황에 잠시 망설였지만, 레바논의 시리아 난민촌을 방문지역으로 정하고 의약품을 들고 가서 사역했다. 머뭇거리지 않고, 행동했을 뿐인데 하나님이 내 인생 마지막 프론티어가 시리아 난민과 레반트 지역을 섬기는 일임을 깨닫게 하셨다. 올해 레바논에 다시 방문했을 때 그 부르심을 확인시켜 주셨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프론티어를 사모하고, 선교지 언어를 공부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제는 행동하라. 하나님을 사랑해서 자신의 인생을 드리기로 헌신하는 청년들을 축복한다.
/ 양윤석 멘토(허브대학부)
작성자 김다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