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대청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유명해지고 싶고, 성공하고 싶은데 이런 마음이 욕심일까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공이 무엇인가요?”
 
참 하나님이시자, 참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은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하셨다. 인간적 욕망에 대한 처절한 거절로 십자가가 준비되었고, 공생애가 시작됐다. 탐욕의 뿌리를 뽑아내는 금욕의 40일 동안 사탄이 예수님을 찾아왔다. 그리고 세 가지를 시험했다. “돌을 빵으로 만들어라” 예수님의 식욕을 자극했다. “내게 경배하면 세상을 주겠다” 예수님의 물욕을 자극했다.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도 넌 말씀대로 안전하겠구나” 예수님의 명예를 자극했다.
인간은 배불러지고 싶고, 부를 소유하고 싶고, 명예를 얻고 싶어 한다. 누구도 굶주림을 즐거워하지 않고, 가난과 고통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무시당하는 것을 기꺼이 여기는 사람도 없다. 바벨탑을 쌓아 성취하고 싶고, 고지의 시원한 공기를 누리고 싶어 한다. 사탄은 우리의 본능을 명확히 알고 있다. 그래서 본능의 향긋한 냄새로 우리의 정욕을 자극하면서 유혹한다. 순간의 향기를 쫓아 바벨탑을 쌓으면 그 길에는 입을 벌리고 기다리는 사탄이 있다.
<베드로전서> 2장 11절에서는 “사랑하는 사람들이여, 나는 외국 사람과 나그네 같은 여러분에게 영혼을 대적해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멀리할 것을 권면합니다”라고 말씀한다. 예수님은 육체의 필요가 절실한 극한의 상황에서 사탄의 시험을 물리치셨다. 말씀으로 승리하셨다. 그 승리가 바로 우리가 추구하고, 소망해야 할 성공이다.
성공의 사전적 의미는 ‘목적하는 바를 이룸’이다. 목적에 따라 성공이 결정된다. 우리의 정욕은 깨진 항아리와 같다. 따라서 목적을 정욕의 성취로 두면 성공은 채울 수 없는 공허가 된다. 잠깐의 성공을 이루는 것처럼 보여도 늘 부족하고, 괴로운 상태에 머물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생의 목적을 알려주셨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구하는 목적, 그 한 가지 유일한 목표를 바라보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더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요셉은 이 언약의 성취를 증거하는 증인의 삶을 살았다. 요셉은 형제들의 손에 이끌려 노예로 팔려 갔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과 함께함으로 형통했다. 그가 하는 일마다 잘 됐고, 그를 통해 주인의 삶에도 축복이 임했다. 주인은 그에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맡겼다. 이 형통함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누명을 썼다. 항소할 수 없는 노예의 신분으로 결국 감옥에 갇혔다. 그러나 감옥에서도 요셉은 형통했다. 간수가 요셉에게 모든 일을 맡길 정도로 그를 신뢰했다.
성경은 요셉의 형통함에 대해 단 한 가지 근거만을 말한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므로 형통했다”고 말씀한다. 세상에서 보면 노예가 되고, 감옥에 갇히는 사건은 성공이 아니다. 오히려 실패한 삶이다. 그러나 요셉은 땅의 성공, 눈앞의 성취를 삶의 기준으로 두지 않았다. 하나님과의 동행만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공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동행을 최우선시하는 것이다. 정욕을 멀리하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 오직 십자가로 향하셨던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삶, 그래서 그리스도의 담대한 증인이 되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그 삶을 목적으로 두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공을 누리기를 소망한다. 
/ 최종현 목사(하늘대학부)
 

작성자  김다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