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
“집사님은 저희의 아버지입니다!”
탈북 청소년을 친자식처럼 돌보는 ‘민경일 집사’
자유를 찾아, 꿈을 찾아, 희망을 찾아 한국에 온 탈북민이 약 2만 8천명이다. 그들은 마중물이다. 북한 선교의 첫 관문이기 때문이다. 온누리교회는 탈북민들에게 집중하고 있다. 탈북민과 북한선교를 위한 예배, 목회적 돌봄, 양육을 담당하고 있다. 그 선봉에 ‘하나공동체’가 있다. 하나공동체는 한국 사람들과 탈북민들이 하나 된 신앙공동체다. 단순히 예배만 드리는 공동체가 아니다. 탈북민들의 한국사회 정착을 돕고 그들의 신앙이 자라도록 섬기고 있다. 탈북민들이 가진 복합적인 문제를 아우르고 있다. 장차 실현될 통일 한국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탈북민들을 섬기는데 헌신한 이가 있다. 그 주인공은 하나공동체 민경일 집사다. 그는 탈북민을 섬기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북한선교의 시작은 탈북민 사역”이라고 단언하는 그를 만났다.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민경일 집사의 주일은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다. 양재 온누리교회 2부 성가대 연습이 7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성가대 연습이 끝나면 2부 예배를 섬긴다. 그리고 11시 30분까지 또 성가대 연습을 한다.
그 시각, 하나공동체 소속 탈북 청소년들이 교회에 도착한다. 민 집사는 그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한다. 친아버지처럼 먹이고, 대화를 나눈다. 하나공동체 예배를 드리고 나면 오후 4시다. 이어지는 순 모임, 뒷정리까지 마치면 저녁 6시다. 이른 아침부터 이어진 사역에 피곤할 법도 한데 민 집사는 쉬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탈북민 청소년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한다. 혹시 그들이 배를 곯는 것은 아닌지, 균형 잡힌 식사를 하는지 궁금해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빨라야 9시다.
주중에는 더 바쁘다. 일 하는 틈틈이 휴대폰에 저장된 수많은 탈북 청소년들에게 전화와 문자로 대화를 하고 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퇴근한 뒤에도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않는다. 탈북 청소년들의 SNS를 보면서 근황을 살펴야 마음이 놓이기 때문이다. 민 집사의 이런 일과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아내가 걱정을 많이 하기는 해도 그녀만큼 최고의 후원자도 없다. 가끔 퇴근길에 탈북 청소년들에게 간식을 사다주기도 한다. 그는 탈북 청소년들의 아빠다.
“아빠들이 자녀에게 전화해서 뭐 사다줄까라고 묻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에요. 저에게 탈북 청소년들은 친딸이고, 친아들이거든요.”
가끔은 경찰서 출입도 한다. 문제를 일으킨 탈북 청소년들 때문이다. 합의도 하고, 변호사를 만나기도 한다.
토요일에는 하나공동체에서 운영하고 있는 탈북청소년 대안학교 기숙사 지원사역을 한다.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는 탈북 청소년들에게 밑반찬을 만들어주는 사역이다. 또 정기적으로 하나원(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사무소)을 방문해 예배를 섬기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하나원 ‘나들이사역’도 시작했다. 하나원을 수료하고 한국사회로 나온 탈북 청소년들에게 멘토가 되어 주는 사역이다. 한국사회가 낯설고, 적응하는데 힘이 들 수밖에 없는 탈북민들에게 돕는 손길이 되어 주려고 시작했다. 민 집사의 매일은 탈북 청소년을 섬기는 것으로 시작해 탈북 청소년을 섬기는 것으로 끝나고 있다.
그 꼬마(?)와 만남 이후…
왜 이렇게 헌신적으로 섬기게 된 것일까. 민 집사가 북한선교를 마음에 품은 것은 2000년부터다. 괜찮은 사업이 있다고 해서 중국 연길에 방문한 적이 있다. 막상 가보니 들은 정보와 많이 달랐다. 속은 것이었다. 속상했지만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관광이나 하자고 마음먹었다. 저녁식사를 하러 호텔을 나왔는데 탈북 꼬마가 그에게 다가왔다.
“남조선 사람 아닙니까? 남조선 사람은 돈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도와주세요.”
딱한 마음에 그 아이를 식당에 데려갔다. 그 조그만 아이가 불고기 백반을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세 그릇이나 먹었다. 혹시 탈이 날까봐 그만 먹으라고 말려야 할 정도였다. 그러자 그 아이가 말했다.
“또 언제 먹을지 모르는데 먹을 수 있을 때 먹어야 해요”
식사를 하는 그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던 민 집사가 아연실색했다. 나이가 많아 봐야 초등학생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던 그 아이가 20대 중반 청년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 꼬마(?)와의 만남을 통해 탈북민 사역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날 이후 민 집사는 탈북민들을 섬기기 위해 기회만 되면 중국(북한 접경 지역)을 왔다 갔다 했다. 30~40차례나 다녔다.
“탈북민 사역을 시작할 즈음에 하나님께 돈을 많이 벌면 이 사역을 하겠다고 기도했어요. 그렇게 기도하면 하나님이 돈을 많이 주실 줄 알았거든요.”
잘못된 기도와 생각으로 위기가 닥쳤다. 사역에 대한 마음도, 사업도 바닥을 쳤다. 자신의 욕심과 헛된 마음을 깨달은 민 집사는 2009년 JDS(예수제자학교)과정을 이수하면서 이렇게 고백했다.
“하나님, 사업 망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만약 제가 돈을 많이 벌었다면 탈북민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끝까지 몰랐을겁니다.”
이렇게 마음먹은 이후부터 상황이 나아졌다. 민 집사는 본격적으로 탈북 청소년들을 섬기기 위해 하나공동체 문을 두드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당시 많은 탈북 청소년들이 “저 아저씨, 한 달 안에 그만둘거야”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탈북 청소년들의 아빠가 됐다. 그들을 위해서라면 발 벗고 나서는 사람이 됐다.
“탈북 청소년은 함께 섬겨야합니다”
탈북 청소년 한 사람이 한국 사회와 교회에 정착하기까지는 민 집사 혼자만의 노력이 아니다. 올해 서울 소재 대학교 국어교육과에 입학한 A자매는 어릴 때 엄마와 함께 중국으로 탈북했다. 한족 문화에 동화되어 자랐다. 한글을 완전히 잊었다. 그녀가 뿌리를 찾아 한국에 왔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그녀를 민 집사가 도왔다. 여러 봉사자들을 연결시켜줬다. 한글을 깨우치기 위해 서강대 어학당 선생님, 영어를 가르쳐 줄 J4U 청년, 수학을 가르친 성가대 집사님 등 10명 가까운 봉사자들이 그녀 곁에 있었다. 그 자매는 3년 만에 검정고시를 마치고 국어교육과에 입학했다. 그 자매의 꿈은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돕는 것이라고 한다. 민 집사를 포함한 여러 봉사자들의 기도와 헌신적인 돌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민 집사는 인터뷰 요청을 수차례 거절했다. 자기 자랑으로 비춰지는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어렵게 인터뷰에 응한 이유는 동역자를 찾기 위해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다려주고 지켜봐 주신 것처럼, 우리도 탈북민을 지켜주고 기다려야 합니다. 한국교회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냐고 묻는 상처받은 탈북 청소년들을 기다려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탈북 청소년 사역에 헌신했으면 좋겠습니다.”
한결같은 그의 모습에 탈북 청소년들이 마음을 열었다. 그들이 민 집사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집사님은 저희의 아버지입니다!”
<탈북 청소년 사역 안내?
양재 하나공동체
탈북민과 북한선교에 뜻이 있는 지체들이 모인 예배 공동체.
주일 오후 2시 양재 JDS홀
탈북청소년 대안학교 기숙사 사역
기숙사 반찬 지원 및 주중 지원 사역
여자기숙사(양재동 11명) : 하나공동체(첫째주), 강남C공동체 온유다락방(둘째주), 주의빛찬양팀 엘토파트(셋째주), 분당B공동체 여성다락방(넷째주), 안산산본공동체 서요셉순장순(다섯째주)
남자기숙사(대림동 6명) : 과천의왕공동체
하나원 방문사역 및 나들이사역
방문사역 : 하나원을 방문해 예배를 돕고, 순모임 인도
매월 셋째 주일(안성), 다섯째 주일(화천)
나들이사역 : 하나원 수료한 탈북민들의 한국 정착을 돕고 친구 되기
수료일로부터 15일 이내 매월 토요일, 양재
문의 : 민경일 집사 010-5476-1406
작성자 김남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