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
“이제 우리 집은 예수 믿는 집안입니다”
30년 만신(萬神)으로 살아온 어머니 회심 시킨 김기범 성도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이 있죠. 진작 잘할 걸…. 아쉬움이 남아요. 어머니가 무척 그립습니다.”
인천 온누리교회 김기범 성도가 가장 사랑한 어머니 장옥순 성도는 7월 23일 00시 26분 향년 78세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한글을 몰라 성경을 읽지는 못했지만 두 손 모아 아멘을 외치던 참 고운 분이셨다.
장옥순 성도는 30년간 만신(萬神)으로 살았다. 만신은 무녀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30년 넘게 무녀로 산 어머니가 아들 김기범 성도를 통해 회심했다. 기적적인 일이다.
김기범 성도는 2011년 11월 27일 어머니가 세례 받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도저히 잊을 수 없는 날이라고 했다. 지난 2일 인천 온누리교회 김기범 성도가 어머니와의 아름답고도 슬픈 이별이야기를 들려줬다.
/ 김미림 기자 mirim@onnuri.org
지난 2일 여기는 인천 온누리교회. 김기범 성도를 만났다. 선한 인상이 인상적이다. 그의 얼굴에는 하늘의 미소가 가득했다. 기자에게 작은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이며 어머니 故장옥순 성도와 함께 한 시간을 회고했다.
김기범 성도의 어머니 장옥순 성도는 18살에 시집을 왔다. 가난했던 시절 3남 3녀의 자녀를 두었다. 남편이 오랜 시간 지병을 앓고 있었는데 답답한 마음에 점을 보러 다녔다. 결국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자 장옥순 성도는 굿판에서 일을 하며 먹고 살다 신 내림까지 받았다. 그때부터 30년 동안 무속인으로 살았다.
김기범 성도 고등학교 시절. 만신(萬神)이 된 어머니가 보기 싫어 여자 친구를 따라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어머니께서 제가 교회 다니는 것을 아셨어요. 성경책을 장독대 밑에 숨겨 뒀는데 어머니께 걸려 야단을 맞았지요.”
이십대 초반 군에 입대한 김기범 성도는 말년에 동기의 권유로 다시 교회를 찾았다. 동기를 따라 기도원에 가서 울면서 기도했다.
“만신인 어머니가 법당을 모시고 사는 모습이 안쓰러웠어요. 어머니를 위해 찬양하고, 기도했어요.”
김기범 성도에게도 신앙의 위기가 찾아왔다. 집 근처 교회를 찾았는데 통일교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갔다 큰일 날 뻔 했다고 회상했다. 이후 두 번, 세 번 다른 교회를 찾아다녔다. 직장생활도 녹록치 않았다. 한마디로 광야였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마음고생을 얼마나 심하게 했던지 직장 동료가 교회 다닐 것을 권유했다. 김기범 성도를 향한 부르심이 먼저였던 것이다. 김기범 성도가 하나님을 만나자 이번에는 어머니 차례였다.
2개월 뒤 김기범 성도와 같은 교회를 다니던 한 성도가 심방을 하겠다며 찾아왔다. 그는 만신인 어머니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흔쾌히 복음을 받아들였다. 이게 웬일일까.
“어머니께서 아들을 위해 내가 뭘 못 하겠냐면서 복음을 받아 들이셨어요.”
어머니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나서 현실이 변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그 길로 만신의 길을 내려놓고 20년 동안 피던 담배도 끊었다.
모자(母子)가 함께 세례 받던 날
2010년 11월. 김기범 성도는 하용조 목사의 비전에 감동해 인천 온누리교회에 왔다. 온누리교회에 와서 그의 삶이 변화되었다.
대부분 새신자들이 새가족 등록 과정을 마치면 세례교육을 받는데 김기범 성도에게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1년 동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어머니와 함께 세례를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함께 세례를 받자는 아들의 제안에 어머니 장옥순 성도가 흔쾌히 승낙했다. 그렇게 2011년 11월 27일 모자(母子)가 함께 세례를 받았다.
세례 받던 날. 김기범 성도가 대표로 세례 간증을 읽는데 어머니 장옥순 성도가 큰 소리로 울음을 터트리며 “주여~!”라고 외쳤다. 이 날 세례식은 눈물바다가 됐다.
어머니 장옥순 성도의 삶도 완전히 달라졌다. 한글을 읽지 못해 성경을 읽지는 못했지만 큐티를 하고, 순모임에도 꾸준히 참석했다. 만나는 동네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자랑했다. 예수 믿고 천국가라고 권면했다.
>> 김기범 성도와 순식구들.
당시 장옥순 성도의 큰 아들이 사업 때문에 형편이 어려웠다. 큰 아들과 사이가 좋지 않아 등을 돌렸었지만 그녀가 예수를 믿고 나서 그 미움이 사라졌다. 한 지붕 아래서 살게 될 정도로 관계가 회복됐다.
어머니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들도 예수님을 만났다. 김기범 성도를 통해 어머니가 회심했고, 이어 큰 형과 큰 누나도 복음을 받아들였다. 그 원동력은 인천 온누리교회 성도들의 중보기도였다. 김기범 성도는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인천 온누리교회 성도들에게 중보기도를 요청했다. 성도들의 중보기도가 김기범 성도에게 가장 큰 힘이 되었다. 한 마음 한 뜻으로 한 기도가 한 가족이 회심하는 놀라운 일을 가능하게 했다.
“어머니께서 교회 가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몰라요. 11시30분 예배를 드렸는데 9시부터 꽃단장을 하셨어요. 단장을 하면서 소녀처럼 좋아하셨어요.”
“그 기도가 응답됐어요”
2년 전부터 김기범 성도가 어머니 손을 붙잡고 함께 교회에 나오던 모습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장옥순 성도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지난달 6일 병원에 갔다. 검사결과가 좋지 않아 하루 뒤 큰 병원으로 옮겨졌다. 각종 정밀검사가 진행됐다. 검사 결과는 믿을 수 없었다. 말기암이었다. 이미 암 세포가 퍼질 대로 퍼진 상태였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김기범 성도는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병간호를 도맡았다.
어머니는 진통제를 투여 받으며 고통 속에 있었다. 잠을 자지 못하고, 답답하다는 증세를 호소하기를 반복했다.
김기범 성도는 어머니 곁에서 기도했다.
“예수님은 어머니를 사랑하세요. 꼭 천국가실 거에요.”
어머니는 무의식중에서도 “아멘! 아멘”을 외쳤다.
그러다 또 일이 벌어졌다. 환각 상태로 선망 증세를 보이던 장옥순 성도가 화장실을 가던 중 갑자기 쓰러졌다. 가족들 모두 있던 자리에서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다리가 부러져 수술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수술 동의서를 작성하는데 ‘환자의 악화된 병세로 깨어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불길했다.
수술을 마치고 장옥순 성도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김기범 성도는 다니고 있던 직장의 신우회와 인천 온누리교회에 다급히 중보기도를 요청했다. 그러나 병원 측에서는 이미 회복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한 것 같았다.
김기범 성도는 중환자실에서 장옥순 성도의 임종예배를 드렸다. 그는 끝까지 어머니 곁을 지켰다.
“언젠가 어머니의 장례식은 기독교식으로 치르고 싶다고 기도했는데 그 기도가 응답됐어요.”
김기범 성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머니 장옥순 성도는 7월 23일 세상을 떠났다. 인천 온누리교회는 김기범 성도 어머니의 장례를 성심성의껏 도왔다.
천국에 대한 소망과 확신이 김기범 성도를 담대하게 만든 모양이다. 그는 모든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우리 집은 예수 믿는 집안입니다”라고 선포했다. 김기범 성도의 큰 형도 찬송을 흥얼거렸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어머니의 회심, 큰 형의 변화, 큰 조카, 큰 누나와 딸도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김기범 성도가 어머니의 사진을 어루만지며 고백했다.
“어머니의 빈자리가 복음의 메시지로 채우겠습니다. 하나님 일 열심히 하며 살겠습니다.”
작성자 김미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