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주일강단

권력자의 무서운 음모

에스더서는 유대 백성들이 포로로 붙잡혀 바벨론으로 끌려갔다가 스룹바벨의 인도 아래 1차 귀환이 있고 난 후에 씌어졌습니다. 1차 귀환과 2차 귀환 사이에 약 80년의 공백이 있고, 그 기간 중에 10년 동안 일어난 사건을 기록한 것이 에스더서입니다.1차 귀환 때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대 백성들은 5만 명 정도 됩니다. 그러나 많은 유대 백성들은 귀환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이국 땅에서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끼며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남아 있던 유대 백성들에게 에스더서를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주십니다.에스더서는 총 10장으로 구성돼 있고 전체 말씀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에스더서를 통해 하나님의 호흡을 느낄 수 있고 그분의 임재를 확인할 수 있으며, 곳곳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그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높은 지위에 오른 아각 사람 하만

 

우리는 에스더서를 통해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더라도 염려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드러나지 않더라도 우리의 가정, 사회, 민족을 향하신 그분의 눈길을 깊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숨결 속에 계시고 인생길에 계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먼저 1절 말씀입니다. “그 후에 아하수에로 왕이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의 지위를 높이 올려 모든 함께 있는 대신 위에 두니.”여기서 ‘그 후’라는 것은 2장 23절 말씀에 “사실하여 실정을 얻었으므로 두 사람을 나무에 달고 그 일을 왕의 앞에서 궁중 일기에 기록”한 후를 말합니다. 즉 대궐 문지기 모르드개가 왕에게 반역하려던 주변의 음모를 사전에 막았던 것을 궁중 일지에 기록한 후부터라는 것입니다. 2장 16절과 3장 7절의 말씀을 비교해 보면, 그 시점은 에스더가 왕후로 선발되고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신임을 얻은 지 5년 후입니다. 비록 1차 귀환 때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남은 유대 백성들이 나그네처럼 살고 있지만, 모든 일들은 순탄하게 풀려가고 앞으로도 별 걱정 없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은 좋은 시절입니다. 그때 아하수에로 왕이 하만을 들어 나라의 최고 지위에 임명합니다. 하만의 서열은 왕 다음이며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됩니다. 권력, 명예, 부 등을 한꺼번에 쥐게 된 것입니다.

 

하만에게 절하지 않는 모르드개

 

하만은 어느 날 갑자기 한꺼번에 모든 것들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아하수에로 왕은 신하들로 하여금 하만에게 꿇어 절하도록 명을 내립니다. 2절에서 6절까지 말씀을 봅니다. “대궐 문에 있는 왕의 모든 신복이 다 왕의 명대로 하만에게 꿇어 절하되 모르드개는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하니 대궐 문에 있는 왕의 신복이 모르드개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왕의 명령을 거역하느냐 하고 날마다 권하되 모르드개가 듣지 아니하고 자기는 유다인임을 고하였더니 저희가 모르드개의 일이 어찌 되나 보고자 하여 하만에게 고하였더라 하만이 모르드개가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함을 보고 심히 노하더니 저희가 모르드개의 민족을 하만에게 고한 고로 하만이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경하다 하고 아하수에로의 온 나라에 있는 유다인 곧 모르드개의 민족을 다 멸하고자 하더라.”아하수에로 왕이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하만에게 꿇어 절하도록 명을 내렸지만, 모르드개 한 사람만이 왕의 명에 따르지 않습니다. 그는 하만에게 꿇지도 않고 절하지도 않습니다. 그 사실을 왕의 신복이 하만에게 고하자, 그것을 빌미로 아각 사람 하만은 모르드개뿐 아니라 유대 민족 전체를 멸절시키려는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모든 것들이 평화롭게 진행돼 가던 에스더와 모르드개에게 전혀 예기치 못한 어려움이 닥치게 된 것입니다.4절 말씀에서 모르드개는 왕의 신복들이 하만에게 절하도록 권해도 듣지 아니하고 오히려 자신이 유대인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곧 모르드개와 하만의 싸움이 시작되는 것입니다.두 사람의 싸움의 시작은 하만이 높은 지위에 올랐기 때문도 아니고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 싸움은 모르드개가 자신을 유대인이라며 출신 성분을 밝혔기 때문에 시작되는 겁니다. 우리가 세상의 법칙, 가치관, 질서 속에 순응하고 산다면 아무 갈등이나 다툼을 겪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고 상황에 타협하면 갈등으로 인한 고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2장 10절에서 20절까지 말씀에서,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왕비가 되기 전까지 유대 민족임을 밝히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 말씀에서, 모르드개는 자신의 출신 성분에 대해 밝히고 있습니다.여기서 우리는 모르드개의 놀라운 영적 통찰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르드개는 어떤 결과를 염두에 두고 그 결과를 향해 계획을 하나씩 짜 맞추듯 지혜롭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감춰야 할 때는 철저히 감추고,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을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모르드개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알고 있습니다. 비굴하거나 시기하지 않으며 의협심 때문이 아니라 언제 결정하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잘 압니다.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만이 하나님의 역사를 이끌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불이익이 닥쳐와도 하나님과 세상 앞에서 자신을 당당하게 밝힐 수 있는 사람, 때를 기다리며 자신을 숨길 수 있는 사람이 하나님 구원의 역사를 완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세상의 논리와 판이하게 다르고, 세속적 가치와 안목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영적 비밀인 것입니다.

 

유대인과 아각인의 역사적 관계

 

모르드개는 하나님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상황 판단을 하며 모든 것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그는 한 나라의 중요한 직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모르드개가 왕의 신복에게 ‘나는 유대인이다’라고 밝히는 것은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는 존재임을 공포하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만이 자신과 유대 민족의 유일한 소망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 후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지 뻔히 알면서도 밝히는 것입니다.모르드개는 대궐 문을 지키는 문지기 신분이지만, 하만은 나라의 최고 권력자입니다. 세상에 모든 지위는 권력이 있는 쪽으로 쏠리게 돼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명분과 합리적인 이유를 갖고 있다고 해도 지위가 권력 쪽으로 몰리게 되면 그 권력은 정의로 탈바꿈하게 되는 겁니다. 하만은 항명 사건을 계기로 출신 성분이 다른 모르드개는 물론이고 역사적으로 적대감을 갖고 있는 유대 민족을 전부 멸절시키려 합니다. 앞서 1절 말씀에서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각 사람이란 아말렉 족속을 가리킵니다. 아말렉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 생활을 통해 고난을 겪고 있을 때 몰래 쳐들어와 힘없고 가여운 어린 아이와 여인들을 겁탈하고 죽였던 비열한 족속입니다. 출애굽기 17장 말씀에 보면, ‘여호와 닛시’의 하나님께서 아말렉 족속을 향해 대대로 그들과 맞서 싸우리라고 선포하시고 있습니다. 그 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에게 아말렉 족속을 완전히 진멸시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과 아말렉 족속은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말렉 족속은 에서의 후손들로서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고 하나님 없이 살며 눈앞의 이익만 좇는 마치 동물과 같은 존재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연약하고 실수가 많아도 그들의 삶과 신앙에서 하나님을 중심으로 두고 있었기 때문에 두 족속은 서로 섞여 살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지 않고 살려 두면서 하나님께 불순종했습니다. 화를 자초한 것입니다. 그 아말렉 족속의 후손이 바로 하만입니다.하만은 높은 지위와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되었지만, 모르드개는 그에게 존경을 표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민족적 자존심과 신앙적 절개 때문입니다.

 

유대 민족을 말살하려는 하만의 음모

 

그렇다고 위기가 비켜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해 정월에 모르드개를 포한한 유대 민족을 전멸시키려는 하만의 음모가 시작된 것입니다. 7, 8절 말씀을 읽습니다.“아하수에로 왕 십이년 정월 곧 니산월에 무리가 하만 앞에서 날과 달에 대하여 부르 곧 제비를 뽑아 십이월 곧 아달월을 얻은지라 하만이 아하수에로 왕에게 아뢰되 한 민족이 왕의 나라 각 도 백성 중에 흩어져 거하는데 그 법률이 만민보다 달라서 왕의 법률을 지키지 아니하오니 용납하는 것이 왕에게 무익하니이다.”그 당시 종교적 규례에 따라 해마다 연초에 제비를 뽑아 국가의 대사를 결정하던 전통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유대 민족을 언제 멸절시킬 것인가에 대해 제비뽑기를 했는데, 아달월(그레고리력으로 12월)로 최종 확정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만은 왕을 찾아가 거짓 증언을 합니다. 하만의 음모는 계획대로 차근차근 준비돼 가는 중입니다.그러나 하만의 모든 음모들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것입니다. 잠언 16장 33절에서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상황에 알맞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표현으로 성경 곳곳에 기록돼 있습니다. 우리가 문제를 갖게 되었을 때 근심하지 말고 성령의 감동에 따라 성경 말씀을 찾아 묵상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평안과 문제 해결의 방안을 얻게 됩니다. 9절에서 15절까지 말씀입니다.    “왕이 옳게 여기시거든 조서를 내려 저희를 진멸하소서 내가 은 일만 달란트를 왕의 일을 맡은 자의 손에 부쳐 왕의 부고에 드리리이다 왕이 반지를 손에서 빼어 유다인의 대적 곧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에게 주며 이르되 그 은을 네게 주고 그 백성도 그리하노니 너는 소견에 좋을 대로 행하라 하더라 정월 십삼일에 왕의 서기관이 소집되어 하만의 명을 따라 왕의 대신과 각 도 방백과 각 민족의 관원에게 아하수에로 왕의 이름으로 조서를 쓰되 곧 각 도의 문자와 각 민족의 방언대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치니라 이에 그 조서를 역졸에게 부쳐 왕의 각 도에 보내니 십이월 곧 아달월 십삼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인을 노소나 어린 아이나 부녀를 무론하고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또 그 재산을 탈취하라 하였고 이 명령을 각 도에 전하기 위하여 조서의 초본을 모든 민족에게 선포하여 그 날을 위하여 준비하게 하라 하였더라 역졸이 왕의 명을 받들어 급히 나가매 그 조서가 도성 수산에도 반포되니 왕은 하만과 함께 앉아 마시되 수산성은 어지럽더라.”아하수에로 왕과 하만은 일들이 순조롭게 잘 진행 되는 것에 대해 자축연을 벌이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2절에서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의 욕망을 술로 잠재우고 원하는 것을 이뤘다며 즐기고 있을 때, 세상은 무질서해지고 죽음과 같은 공포감이 다가옵니다.

 

유대인 말살 계획의 반포 

 

인간의 거짓된 음모가 세상을 어지럽게 만듭니다. 위장된 욕망이 성행하고 반목하며 서로 분노하고 배신합니다. 우리는 남을 탓하지 말고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 사회, 민족의 문제를 하나씩 되짚어 봐야 합니다. 과연 우리 안에 하만은 없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이 나라에 하만이란 존재는 어떤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는지에 대해 영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가져야 합니다.만약 우리 안에 하만이 있다면, 무엇으로 그 하만의 세력을 몰아 낼 수 있을까요? 본문 말씀에서 인간의 음모를 분쇄시킬 수 있는 놀라운 축복의 언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나는 유대인이다’라는 것입니다. 곧 그 고백은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라는 뜻이 됩니다. 요셉, 다니엘, 사도 바울 등 믿음의 사람들이 힘써 싸워 지켜온 것들이 지금 우리에게 희망의 소리로 들립니다.‘나는 유대인이다’라는 고백 안에 담겨 있는 것은 삶의 중심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우리도 그런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우리의 못난 자존심, 욕심, 욕망 때문에 위기를 경험하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모르드개처럼, 하나님께 향한 신앙으로 인해 겪어야 하는 위기 앞에서 굳건한 믿음으로 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록 어두운 세력들의 음모 때문에 많은 고난을 당하고 있다고 해도 이미 하나님께서 기가 막히게 좋은 결론을 갖고 계십니다. 악의 세력들이 음모를 실행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한 구원을 완전히 세팅해 놓으신 것입니다.가룟 유다, 바리새인들, 제사장들이 한 데 엉켜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몰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들의 음모는 잘못된 욕심, 기득권 유지, 부에 대한 욕망 등이 뒤섞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일단 그들의 음모가 성공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눈엣가시 같은 예수를 제거했기 때문입니다.하지만 그 순간에 우리는 어떤 기적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잘못된 욕망과 욕심 그리고 심성들이 엉켜 있는 그 자리에서 모든 것들을 상쇄하시고 승리하신 그리스도 예수의 구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멋지고 극적인 역전 드라마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결과에 대해 미리 알고 계셨습니다. 가룟 유다의 삶은 그것으로 끝났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우리 모두의 구원을 이루신 것입니다. 

 

‘나는 유대인이다’라는 고백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한 결론들을 이미 알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는 주어진 위기에서, 누군가의 해코지에서, 억울함에 의한 분노에서 자유로워야 합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해하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악을 선으로 바꿔 주십니다.각 개인의 삶에 쏟아지는 위기, 분노, 죽음과 같은 환경에서 우리는 무엇으로 이겨낼 수 있을까요? 우리는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결과를 이미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주어진 힘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이 타인보다 나은 어떤 것을 가졌다고 그것으로 상대방의 인격을 파괴하는 일을 해선 안 됩니다.하나님께서 타인보다 나은 어떤 것을 주신 것은 바로 타인을 섬기라는 뜻입니다. ‘더 가진 것’은 겸손할 수 있는 기회이고, ‘좀 모자란 것’은 하나님께 의지해 그분을 체험할 수 있는 놀라운 복이 됩니다. 현재 위기와 모멸감으로 인해 견딜 수 없는 큰 고통을 당한다고 했을 때, 그것도 결국 우리의 구원과 어느 누군가의 구원을 이룰 수 있는 통로가 됩니다.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들을 도로 내어드리면서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는 유대인입니다. 하나님만을 섬기겠습니다.’ 그래서 이 나라와 민족에게 드리워진 먹구름들을 뚫고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고백만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게 합니다. 이런 고백만이 인간의 음모를 봉쇄하고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한 주일 동안 성도님들 개개인의 삶에 ‘하나님만을 섬깁니다’라는 고백을 통해 주어진 환경으로 인해 당하는 위기들을 능히 극복해 내는 복이 임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사랑하는 성도님들의 삶에믿음의 고백과 결단들로 차고 넘치게 하사,이 시대의 세상과 사람을 원망하기 전에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 꿇는하나님의 사람들로 세워 주옵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