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주일강단

목숨을 건 결단

<2월 6일 주일 설교>

 

하나님께서 바벨론으로 끌려와 70년간 포로 생활을 한 유대 백성들에게 본토로 돌아갈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많은 유대인들은 귀환하지 않고 그대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때 유대 백성들에게 민족적인 대 위기가 들이닥칩니다. 에스더서에 따르면, 그 시점을 기준으로 11개월 후에 유대 민족은 모두 죽음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만이 유대인인 모르드개와 갈등하면서 유대 백성들을 향해 음모를 꾸미게 되는 배경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선 자기 백성들이 이국 땅에서 나그네처럼 살아가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만을 움직여 유대 백성들에게 위기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백성들을 위기에서 구원해 내시려고 모르드개와 에스더를 준비해 두신 것입니다.

 

모르드개의 절망과 에스더의 한계 

 

에스더서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인생의 모든 것들을 미리 아시고 섭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홀로 역사를 이뤄 가시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택하신 백성들과 함께 이뤄 가십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삶의 모든 과정과 환경에 대해 주어진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시도한 싸움이 민족적 역사적으로 적대 관계인 유대인들에게 행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엄밀히 말해 항상 유대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대적한 것이 됩니다. 먼저 1~3절 말씀입니다.“모르드개가 이 모든 일을 알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으며 재를 무릅쓰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 통곡하며 대궐 문 앞까지 이르렀으니 굵은 베를 입은 자는 대궐 문에 들어가지 못함이라 왕의 조명이 각 도에 이르매 유다인이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곡읍하며 부르짖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하더라.”하만이 모르드개와 대적하기 전까지 유대 백성들은 하나님을 찾거나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포로로 잡혀왔지만 세월이 흐르다 보니 그럭저럭 살만해지면서 하나님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 유대인들에게 죽음의 위협이 찾아들자, 그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합니다.여기서 우리가 얻게 되는 교훈은 삶에서 당하는 고통과 위기는 우리의 중심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라는 신호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스스로 어떤 존재인지 끝임 없이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2절 말씀에서, 온 유대인에 대한 살육 소식을 전해 들은 모르드개는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은 채 대성통곡하며 대궐 문 앞까지 왔지만,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대궐 밖에서 절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궐 안에서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에스더가 준비하고 대기하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모르드개의 한계 상황에서 에스더를 등장시키십니다. 사실 에스더는 처음부터 헌신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9~11절까지 말씀을 봅니다. “하닥이 돌아와 모르드개의 말을 에스더에게 고하매 에스더가 하닥에게 이르되 너는 모르드개에게 고하기를 왕의 신복과 왕의 각 도 백성이 다 알거니와 무론 남녀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아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홀을 내어 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아가지 못한 지가 이미 삼십 일이라 하라.”에스더가 바사 제국의 왕후가 되고 많은 날들이 흘렀습니다. 그녀는 왕궁에서의 삶에 나름대로 만족하며 지냈는지도 모릅니다. 에스더는 위기에 빠진 유대 민족을 위해 왕에게 나아가 간절히 구하라는 모르드개의 전갈을 받고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자기 민족의 위기보다 왕에게 선뜻 나아갈 수 없는 자신의 입장부터 고려합니다. 에스더는 왕의 부름을 받은 지 30일이 지났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왕의 허락 없이 왕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즉 왕을 해하려는 의도로 보고 암살자로 몰아 죽음을 맞게 합니다. 따라서 에스더의 입장에서 보면, 모르드개의 도전은 목숨을 건 도박입니다. 대제국의 왕후로서 인생의 절정에 있는 에스더에겐 아무런 이득이 없는 것입니다.

 

모든 위기에 공동체적으로 대처

 

모르드개는 불붙는 민족애와 신앙의 열정에도 불구하고 대궐 밖에서 절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대궐 안에서 자신의 입장을 앞세워 유대 민족의 위기 상황을 빗겨가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곧 하나님께서 모르드개의 절망을 위해 에스더를 준비시켜 두시고, 또 에스더의 한계를 아시고 모르드개를 준비시켜 두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멋진 조화인지요! 하나님께서 부족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서로 돕고 조화롭게 맞추라는 것입니다. 마치 모르드개와 에스더 처럼 말입니다. 에스더가 머뭇거리자 모르드개는 영적 지도력을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13절 말씀을 읽습니다.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우리가 어떤 자리, 어느 환경에 있든지 우리의 소명은 누군가를 위해 위로자로 산다는 것입니다. 에스더가 왕후의 자리에 있는 것은 당시 유대 백성들에게 민족적인 희망이고 큰 위로였을 것입니다. 비록 에스더가 자신의 출생 성분을 감추고 있지만, 그 땅에서 나그네로 살고 있던 유대 백성들에겐 이름 그대로 ‘별’이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했을 때 온 국민들에게 희망을 안겨준 것처럼 말입니다. 위로자가 된 에스더가 자신의 입장을 헤아려 유대 백성들을 외면한다면 자기 소명의 유기입니다.13절 하반부와 14절 말씀을 연결해서 보겠습니다.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이 말씀에서 세 가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첫째, 에스더에게 소명이 있어서 왕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둘째, 에스더가 민족의 위기를 외면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이든 누구를 통하든 유대 민족을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유대 민족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약속의 자녀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대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렇지 않으면 돌들을 통해 찬양하도록 하시겠다고 말씀하실 만큼 그들은 하나님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 민족입니다.셋째, 에스더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은 유대 민족을 위함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삶에서 누리는 특별한 은혜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아 자세히 모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삶의 축복을 구별하셔서 반드시 특별하게 사용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어느 한 모퉁이에서 아주 작은 일을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여기지 않으십니다. 그 일이 훌륭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선한 계획을 갖고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조건들은 주님께서 정확한 때에 멋지게 사용하실 것들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자신의 입장을 앞세우던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전갈을 받고 자신의 소명을 찾아가는 것으로 변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결단합니다. 곧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것입니다. 에스더는 왕에게 잘 보이려는 인간적인 노력들을 모두 포기하고, 오로지 금식을 선포하고 중보를 요청하며 철저히 하나님께 기도로 매달립니다. 인생이 살아나갈 수 있는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곧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되풀이 되는 고난과 굴곡의 삶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좌절과 아픔으로 다가온다면 인간적인 노력들을 포기하고, 오로지 하나님 앞에 모든 것들을 쏟아놓고 믿음의 결단을 내리십시오. 하나님께서 살려달라고 매달리는 우리를 결코 버리시지 않고 반드시 책임져 주십니다.  에스더는 우리에게 두 가지로 도전합니다. 하나는 우리가 목숨을 건 선택을 결심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우리가 목숨을 건 선택 앞에 모두 한 배에 탄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에스더는 목숨을 건 결단을 내리고 유대인들은 모두 금식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하는 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되심을 포기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려고 기꺼이 희생 제물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용기와 결단력으로 이 시대를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부흥은 자신을 위한 유익을 포기한 사람들을 통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만 바라 봐야 합니다. 위기 앞의 인간은 하나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에게 영적 부흥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