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주일강단

겸손한 지혜 대 교만한 미련

<2월 13일 주일 설교>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죽음 앞에서 당황하고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죽음 후에 주님 앞에 설 것을 믿는 사람들은 죽음이 어려운 문제가 아닙니다.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고 고백했습니다. 1절 말씀입니다.“제 삼일에 에스더가 왕후의 예복을 입고 왕궁 안뜰 곧 어전 맞은 편에 서니 왕이 어전에서 전 문을 대하여 보좌에 앉았다가.”에스더는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결단을 내리고 왕 앞으로 나아가기까지 사흘이 걸립니다. 그는 사흘 동안 금식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구했습니다. 왕후가 결단을 하고 사흘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초췌한 모습으로 왕 앞에 나아갔을 때, 과연 왕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생각만 해도 긴장되는 순간입니다. 그 결단의 시간, 결단의 자리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십니다. 2, 3절 말씀을 봅니다. “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즉 심히 사랑스러우므로 손에 잡았던 금홀을 그에게 내어 미니 에스더가 가까이 가서 금홀 끝을 만진지라 왕이 이르되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요구가 무엇이뇨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

 

사람의 마음을 주장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생각과 달리, 왕후 에스더가 앞에 선 것을 본 왕은 너무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워 순간 금홀을 내밉니다. 그리고 감동한 나머지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사흘을 금식하는 동안 에스더를 둘러싸고 있던 주변의 상황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에스더가 믿음으로 왕 앞에 나아갔을 때, 하나님께서 도우심의 문을 열어 주십니다. 곧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을 움직여 주신 것입니다. 잠언 21장 1절에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주장하십니다. 비록 에스더는 왕에겐 용납되었지만, 상황이 종료된 것은 아닙니다. 그는 하만의 계획을 무너뜨리고 유대 백성들을 죽음에서 구해내야 하는 임무를 남겨 두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두고 해결을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기도의 응답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이 인내입니다. 6절 말씀에서 왕은 거듭해 에스더에게 소원을 모두 들어주겠다고 말합니다. 왕은 에스더에게 빠져 있고, 에스더도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난 것처럼 보입니다. 7, 8절 말씀입니다. “에스더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소청, 나의 요구가 이러하니이다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고 왕이 내 소청을 허락하시며 내 요구를 시행하시기를 선히 여기시거든 내가 왕과 하만을 위하여 베푸는 잔치에 또 나아오소서 내일은 왕의 말씀대로 하리이다.”

 

인내하며 때 기다리는 에스더의 지혜

 

에스더는 어렵게 잡은 기회에서 소원을 말하기를 미룹니다. 자신이 베푸는 잔치에 왕과 하만을 또 초대한다는 것입니다. 에스더는 결코 서두르지 않습니다. 에스더가 싸울 사람은 바사 제국의 최고 권력자에 해당하는 하만입니다. 그는 매우 교활한 사람이기에 섣불리 건드렸다가 오히려 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더에게 완벽한 기회를 만들어 가도록 역사하십니다.하나님께서 때를 기다리게 하시고 성숙한 분위기를 기다리게 하십니다. 에스더는 그 방법을 잘 이용하고 있습니다. 왕과 왕후가 배석하는 잔치에 다른 사람이 초대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대단한 영광입니다. 왕과 하만이 동석한다는 것은 두 사람을 같은 위치에 놓는다는 뜻이 됩니다. 왕의 입장에서 볼 때, 왕후가 하만을 계속 잔치에 초대한다는 것은 그를 그만큼 의식하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에스더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정지(整地) 작업입니다. 언 땅에 삽을 갖다 대면 삽이 부러지기 때문에 사전에 땅을 녹여야 합니다.출애굽기 14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 밤을 틈타 애굽을 탈출해 홍해 앞에 이릅니다. 양 옆은 산들로 막혀 있고 중앙은 협곡과 같은 곳입니다. 바로가 군대를 이끌고 뒤쫓아 옵니다. 그들에게 남은 일은 죽음밖에 없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그들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안전하게 건너게 하십니다. 이런 일은 오직 하나님만 하실 수 있습니다. 인간이 보기에 무모하기 짝이 없고 비정상적인 것 같지만, 하나님의 방법은 언제나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십니다.우리 인생의 문제 해결 방법은 하나님만이 알고 계십니다. 그것은 기상천외한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인내하며 기다리는 그 때가 바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시간이 됩니다. 인내는 곧 자신이 감춰지는 겸손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고 믿음으로 인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우리는 겸손히 자리를 내어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믿는 사람의 영적 태도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21장 19절에서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4절에서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풍성한 지혜는 누군가의 영혼을 구원합니다. 9절 말씀을 봅니다. “이 날에 하만이 마음이 기뻐 즐거이 나오더니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있어 일어나지도 아니하고 몸을 움직이지도 아니하는 것을 보고 심히 노하나.”

 

교만하고 자랑하는 하만의 미련

 

하만의 인생은 오로지 자신에게만 집중돼 있습니다. 한때 에스더도 그러 했지만 영혼을 깨우는 음성을 듣고 변했습니다. 그러나 하만은 영혼을 깨우는 음성 따위에 관심조차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마음에 상처를 잘 받습니다. 마음의 상처를 ‘수신자 부담’이라고 말합니다. 주는 사람은 없는데 받는 사람만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다면 우리에게 상처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10, 11절 말씀을 읽습니다. “참고 집에 돌아와서 사람을 보내어 그 친구들과 그 아내 세레스를 청하여 자기의 부성한 영광과 자녀가 많은 것과 왕이 자기를 들어 왕의 모든 방백이나 신복들보다 높인 것을 다 말하고.”하만은 자신을 자랑합니다. 겸손은 자랑하지 않지만 교만은 드러내 놓고 자랑합니다. 하만은 모든 것이 기쁘고 즐겁기만 합니다. 그런데 걸림돌이 하나 있으니 바로 모르드개입니다. 천하가 하만에게 굴복하는데 모르드개만은 예외입니다. 더구나 그는 자기와 여러모로 대적 관계에 있는 유대인입니다. 하만은 모르드개를 보는 순간 분노를 일으킬 게 아니라, 그를 통해 자신도 똑같은 인간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만에게 모르드개를 붙이신 것은 하만에게도 기회를 주신다는 뜻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밤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가룟 유다의 발목도 잡으셨습니다. 그것은 아직도 가룟 유다에게 기회가 있다는 뜻이 됩니다. 우리가 가장 싫어하고 애써 피하고 싶은 것이 구원 받을 수 있는 조건으로 될 수도 있습니다.하만은 교만하고 자신밖에 모르는 심령을 가진 사람입니다. 교만은 자신의 본질을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하만의 교만은 자신의 많은 소유와 높은 지위가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데서 시작됩니다. 곧 영적 무지는 인간을 교만하게 만듭니다. 14절 말씀입니다. “그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가 이르되 오십 규빗이나 높은 나무를 세우고 내일 왕에게 모르드개를 그 나무에 달기를 구하고 왕과 함께 즐거이 잔치에 나아가소서 하만이 그 말을 선히 여기고 명하여 나무를 세우니라.”하만은 자신이 갖고 있는 권력과 지혜로 모르드개를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음모를 꾸밉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가진 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하면 안 되는 일을 했다면, 그 일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그 사람에게 있습니다. 하만은 모르드개를 제거해 자신을 위해 마지막 만족을 채우려 합니다. 그것은 매우 어리석고 미련한 선택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겸손을 통해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빌립보서 2장 5절에서 8절 말씀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신앙의 덕목은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추는 겸손입니다.우리는 에스더를 통해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겸손을 배우고, 하만을 통해 자신을 자랑하는 교만한 미련을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