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주일강단

복음의 능력과 축복(3) 해방됨의 축복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모든 자들에게 복음의 능력과 복을 부어주셨습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하면서도 복음의 권세와 축복을 누리지 못한 채 영적 빈곤 상태에서 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복음의 능력과 축복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자녀 됨의 축복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녀 됨과 죄 사함의 축복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로 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부자(父子) 관계로 바뀌었다는 것은 큰 복이자 특권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곧 상속 관계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기업을 받을 수 있는 특권을 갖게 된 것입니다.그뿐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보호와 양육을 받고 공급과 인도를 받으며 책임과 권세도 공유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웃에 있는 사람들과 전혀 다른 존재가 된 것입니다. 우리의 잘잘못과 상관없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만으로도 하늘나라의 모든 기업을 상속 받게 된 것입니다.복음의 능력과 축복의 두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7절 말씀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우리가 죄 사함을 받은 데는 두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잘하고 못하는 것은 다음 문제이고 처음부터 우리를 축복하시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 사함을 받은 결정적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보배로운 피를 흘리심으로써 우리의 죄는 모두 사함을 받은 것입니다.죄 사함이란 일반적인 죄가 사라진 게 아니라 인류의 원죄가 뿌리째 뽑힌 것을 말합니다. 아담과 이브의 원죄가 DNA처럼 우리에게 유전돼 왔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심으로써 우리 안에 있던 원죄가 송두리째 사라진 것입니다.우리가 짓는 죄는 곧 마귀가 주는 속임수의 결과입니다. 마귀가 거짓으로 헷갈리게 만들어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듭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로 인해 이미 죄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죄로 인한 어둠, 절망, 저주, 죽음에서 이미 떠난 것입니다. 우리의 주변에서 마귀의 권세도 이미 사라졌음을 뜻합니다.

 

죄와 사망에서 해방됨의 축복

 

복음의 능력과 축복에서 세 번째로 오는 것이 해방됨의 축복, 자유함의 축복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 로마서 8장 1, 2절 말씀을 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이 말씀의 특징은 한마디로 과거형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축복들은 이미 과거에 이뤄진 것입니다. 우리는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이미 저주는 물러갔고 모든 질병은 치유되었습니다.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런 사실에 대해 믿음이 잘 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자신의 이성이나 경험에 의해 지배 받아 반복해 죄를 지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죄 사함을 받았고 저주는 떠나갔으며 질병은 치유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그런 것들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요즘 저는 사는 게 너무 재미있습니다. 지금도 약을 먹고 있지만 옛날과 달라진 게 있다면, 약을 먹기 전에 이미 질병이 치유되었다고 선언한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아픈 증상이 남아 있고 몸 상태가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마음으론 이미 치유된 것입니다. 따라서 기쁨이 절로 솟아납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니 걷는 것도 일하는 것도 모든 것들도 긍정적으로 사고되고 자신감이 생기며 도전이 생깁니다.가장 놀라운 것은 우리는 죄와 죽음의 권세에서 해방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예수님의 보혈로 구속(救贖) 곧 죄 사함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죄와 저주와 절망과 죽음의 법 아래 있지 않고, 마귀의 속임수에 넘어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거짓말을 속삭여 우리로 하여금 파멸에 이르도록 합니다. 지난 2,000년 동안 마귀가 세계를 지배했기 때문에 세상은 마귀가 주도하는 문화적 현상으로 점철돼 있습니다. 따라서 죄와 더불어 오랫동안 마귀의 종노릇을 한 우리는 마귀로부터 해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잘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습관적으로 죄를 짓는 것을 막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우리의 주인인 양 계속해 우리 안에 부정적인 생각을 주고 악한 마음을 주며 나쁜 습관을 유지하도록 만듭니다. 마치 마약, 알코올, 약물에 중독 된 사람이 습관적으로 먹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얼마든지 끊을 수 있는데도 끊지 못하고 마냥 따라합니다. 중독 상태에 있기 때문에 끊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입만 열면 과장하고 거짓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욕을 잘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왜 욕을 하느냐고 물으니, 욕을 하지 않으면 입이 근질근질하고 욕을 해야 말한 느낌이 든다고 했습니다. 그런 사람은 느낌으로 살고 감정으로 살며 중독 현상으로 사는 것입니다.우리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걱정과 슬픔이 떠나게 되고 저주도 떠나게 되며, 죽음의 그림자마저 떠나게 됩니다. 오랫동안 병상에 있던 사람도 더 이상 아프지 않게 됩니다. 마귀의 모든 권세가 이미 사라졌기 때문입니다.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우리는 긍정적인 사고 건강한 생활 그리고 믿음의 문화를 이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부정적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항상 상대방을 긁어야 합니다. 말을 해도 상대방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합니다. 너무 오랫동안 마귀로부터 잘못된 문화를 답습해 왔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정죄함은 없다 

 

로마서 8장 1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자꾸 죄를 지적해 줍니다. 우리를 조롱하고 참소하며 정죄합니다. 마귀가 증거를 갖고 참소하면 우리는 꼼짝 못하게 돼 있습니다. 곧 우리는 죄 지은 사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 짓은 사실을 자꾸 상기시켜 기를 죽입니다. 이것이 정죄 받는 일입니다.마귀에게 정죄 받는 사람은 눈치를 보게 됩니다. 혹시 자신이 지은 죄를 누군가에게 들킬지 않을까 전전긍긍합니다. 자신의 비밀이 탄로 나지 않을까 지레 겁을 냅니다.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겐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만 들어도 안심되고 평안을 누립니다. 우리의 죄가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눈같이 깨끗이 하시고 더 이상 정죄함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정죄하시지 않는데 누가 감히 우리를 정죄할 수 있겠습니까?따라서 우리는 그 사실을 담대히 선포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해방됨과 자유함이 있습니다. 우리의 원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분의 보혈로 뿌리째 뽑혀 나갔습니다.하지만 죄의 현상들에 계속 머물러 온 우리는 그런 사실을 잘 믿지 못합니다. 이미 모든 질병을 치유한 복음의 선포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믿지 못합니다. 암이 계속 재발했기 때문에 또 재발하면 어떡하느냐며 두려움을 갖고 잘 믿지 못합니다. 따라서 복음의 능력과 축복을 선포하는 일에 주저하게 됩니다.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사실을 자주 선포해야 합니다. 스스로 믿음을 가질 때까지 수시로 자주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런 사실에 대해 믿음이 가지 않는 것은 우리의 이성이나 삶의 경험이 동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어떤 사람은 담배를 500번을 끊었다고 하면서 다시 피우게 됩니다. 그것은 그 사람에게 경험된 상처가 내재돼 있기 때문에 끊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바로 불신앙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장애를 뚫고 담대히 선포하면 승리를 거둘 수 있습니다. 

 

말씀과 믿음이 화합해야 능력이 있다

 

히브리서 4장 2절에 재미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우리가 들은 말씀에 능력이 없는 까닭은 말씀을 들은 자의 믿음과 화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능력인데, 믿음과 화합하지 않으면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어떻게 우리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셨는지 살펴보겠습니다. 8장 2절 말씀을 읽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예수 그리스도 안에 생명의 성령의 법이 있고 죄인에게 죄와 사망의 법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은 죄와 사망의 법에 매여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죄 사함의 축복이 먼저인 것입니다. 원죄가 뿌리째 뽑히면 진정한 해방의 축복이 오는 것입니다.인간의 원죄 속에 죄와 사망의 법칙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부터 해방해야 합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생명의 성령의 법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생명의 성령의 법이 적용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믿고 마음껏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따라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을 몰아내고 이미 해방된 사실을 우리는 믿고 선포해야 합니다. 가장 좋은 선포 방법은 옆 사람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생명의 성령의 법이 나를 지배한다’라고 선포해 보십시오. 그러나 우리는 막상 선포하려면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나에게 죄가 있는데 생명의 성령의 법이 과연 나를 지배할까?’라며 의심을 품게 됩니다. 그래서 복음의 능력과 축복을 선포하는 것이 불편해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꾸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죄를 이길 능력이 있습니다. 약을 먹으면서도 치유를 선포하면 병이 사라지게 됩니다.비록 죄를 짓지만 죄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고 선포한다면, 순식간에 죄의 능력이 사라지게 됩니다. 화가 날 때도 화를 내지 않는다고 선포한다면, 화의 권세가 사라지고 맙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생명의 성령의 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법의 지배를 받으면 우리를 속이고 괴롭히는 죄와 사망의 법이 안개처럼 사라지게 됩니다. 복음이란 능력과 축복이 이미 이뤄진 상태를 말합니다.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셨을 때, 이미 우리의 죄는 사함을 받고 모든 저주는 사라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아 상처가 생겼을 때, 우리의 상처는 이미 치유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믿고 과감하게 선언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의 믿음이 화합해야 한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모든 죄와 사망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해방됨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믿음으로 축복을 선포하라

 

요즘 세상에 복음을 말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따라서 교회에서도 복음 설교보다 윤리 설교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윤리 설교는 아무리 많이 해도 아무런 변화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죄를 지으면 안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설교는 복음 선포라야 합니다. 그런데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마치 열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기분이 드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에게 기도의 능력이 있고, 기적을 일으키는 힘이 있으며, 죄를 이기는 능력이 있습니다.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미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시고 우리에게 복음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갖고 기도하면 2,000년 전에 주어진 축복들을 얼마든지 누릴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그 능력들을 선포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우리는 선포하는 일에 익숙지 않아 막상 선포하려면 어색합니다. 선포를 하더라도 한두 번하고 그만 두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매일 믿음으로 선포하면 복음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우리는 현실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전개되더라도 믿음을 갖고 복음의 능력을 선포해야 합니다. 자녀가 제 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보게 되면, 그 자녀의 뒤에서 축복을 선언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 자녀가 회개하고 돌아오면서 가정에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의 선포를 이뤄나가면 복음의 축복들은 계속 일어날 것입니다. 온누리교회의 모든 성도님들은 매일매일 복음의 능력과 축복들을 선포하시길 축원합니다.8장 2절 말씀에서 ‘너’라는 단어 대신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서 읽어보십시오. 자신의 이름이 귀에 똑똑히 들리도록 크게 읽어보십시오. 인간의 이성, 상식, 경험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지지 말고 믿음으로 능력의 말씀을 선포해 보십시오. 곧 복이 되어 돌아올 것입니다. 마귀가 주는 부정적이고 우울한 생각에서 나와 자유함을 누리십시오. 사람이 우울증에 빠지면 앞뒤도 돌아보지 않고 죽음을 택하게 됩니다. 마귀는 믿는 자들에게도 부정적이고 비관적이며 소비적인 생각들을 끊임없이 넣어 줍니다. 그러면 환경적 요인에 의해 그런 생각들은 설득력을 얻게 됩니다. 곧 죽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럴 때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나는 죄 사함을 받았다!’라고 크게 선언해야 합니다. 사형수라도 죄 사함을 받았다고 선포하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지금 우리는 모두 함께 선언하며 기도해 봅시다.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풍성한 은혜를 따라 예수님의 보혈과 생명의 성령의 법에 의지해 나아갑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믿고 나아갑니다.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복음의 능력과 복들이 오늘 우리에게 있게 하옵소서. 마귀의 거짓과 잘못된 환상과 습관화된 문화 현상에서 벗어나 생명의 성령님의 임재와 인도를 받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자유함을 선언하라

 

우리의 사고, 행동, 생활, 문화에서 의심하고 부정하며 근심하는 것들을 밖으로 몰아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생명의 성령의 법과 해방됨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찬송과 기쁨과 감사가 흘러넘쳐야 합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이미 해방시켰습니다.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고아처럼 살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고아처럼 아무 보호도 받지 못한 채 혼자 모든 것들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아직도 자신의 성 안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보호와 능력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제 우리에게 원죄마저 사라져 버렸습니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과제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익숙해진 문화 현상에서 벗어나는 일입니다. 그것에 대해 예수님의 이름으로 과감하게 거절한다고 선포하십시오. 예수님의 능력에 의지해 익숙했던 문화 현상에서 멀리 떠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새로운 생명의 문화를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주변을 생명, 성령, 축복, 예수님의 문화로 바꿔야 합니다.예수님을 믿는 것은 관념 작용이 아니라 실제 상황입니다. 이제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켰습니다. 온누리교회 성도님들에게 복음의 능력과 해방됨의 축복이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주님!오늘 우리로 하여금 설교를 듣고억압에서 자유함을 얻게 하시고어둠의 그늘에 있던 자들이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돼 빛을 보게 하시며질병이 치유되게 하옵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