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주일강단

복음의 능력과 축복 5 - 의롭다하심의 축복

우리는 복음의 능력과 축복에 관한 시리즈 설교를 듣고 있습니다. 오늘은 다섯 번째로 의롭다하심의 축복에 대해 알아보고 확신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복음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의 능력과 축복이 되십니다.첫째로 자녀됨의 축복입니다. 우리가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실은 엄청난 것을 말해 줍니다.둘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해 아담과 이브의 원죄는 물론이고 우리가 지은 죄악에 대해 모두 사함을 받은 축복입니다. 이미 우리는 죄의 문제에서 자유로운 존재입니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킨 축복입니다.넷째로 죄와 죽음뿐 아니라, 현실에서 가장 고통 받는 육신의 각종 질병으로부터 치유함을 받은 축복입니다. 사람이 육과 영과 혼으로 이뤄져 있지만, 세상을 살면서 현실적으로 절실하게 부딪히는 것은 육신의 문제입니다. 밥 한 끼를 굶어도, 하룻밤 잠을 못자도 고통을 느끼는 것이 인간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한계를 아시고 채찍에 맞으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나음을 입게 하신 것입니다. 즉 치유함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요즘 성도님들이 복음의 능력과 축복 시리즈 설교를 듣고, 저에게 믿음이 좋아졌다거나 거듭났다며 우스갯소리를 하십니다. 전화나 편지를 통해 해외에서도 그런 말들을 많이 하십니다.   그동안 저의 설교를 통해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역사가 지난 주에 연속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저도 자신에게 “정말, 암이 나았습니까? 모든 질병이 떠났습니까?”하고 자문해 보면 정말 그렇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증거나 의사의 확인은 없지만, 저의 얼굴이 너무 밝고 감사의 눈물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계속되는 복음의 능력과 축복에 관한 시리즈 설교를 통해 개인, 가정, 사회, 민족에 생명의 부활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들어가는 비결

 

이미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안에 어떻게 하면 들어갈 수 있을까요? 우리가 미래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미래의 은혜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은혜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 은혜를 바라보기만 했지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마치 배고픈 사람이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바라만 보고 먹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얼마나 답답한 일인지 모릅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갈급함과 같은 심정입니다. 오늘 설교 말씀을 통해 은혜 안으로 들어가는 접촉점을 찾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사막에서 흐르는 샘물을 마시는 것과 같은 은혜가 되기를 축원합니다.하나님의 은혜 안으로 들어가는 비결은 믿음입니다. 우리가 많은 말을 하고 많은 설교를 들으며 많은 훈련을 받지만 결론은 우리에게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몰라서 믿음이 없는 게 아닙니다. 수영을 배우는 사람이 준비 운동을 하고 물에 들어가려다가 ‘아니야, 아직 준비 운동이 부족해’하면서 또 준비 운동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믿음을 갖고 물 속으로 뛰어들어야 하는데도 말입니다. 은혜의 문 앞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은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현실 문제에 부딪혀 의심하고 두려워하면서 은혜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시고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도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다고 책망하셨습니다.  믿음은 개인의 신념, 비전, 확신, 지식, 이성, 체험 등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그런 것들이 믿음이라며 속아왔습니다. 심지어 ‘믿습니다, 선포합니다’라는 말을 입술로 내뱉는 것을 믿음으로 알고 지내왔습니다. 그런 것을 믿음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마음속에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은 도전이고 위기입니다. 우리는 위기의 순간을 견디지 못해 믿음을 갖지 못합니다. 우리가 믿음대로 행하면, 사람들에게 창피 당할 것 같고 손해 볼 것 같으며 굉장한 수모를 겪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감히 믿음에 도전하지 못하고 위기의 순간을 견디지 못하는 겁니다.

 

믿음의 3가지 충족 조건

 

믿음은 세 가지 측면에서 충족돼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서 오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믿음은 개인의 생각이나 판단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취사선택(取捨選擇)해 선별적으로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매우 위험한 일로 있을 수도 없고 있어도 안 됩니다. ‘내가 50년 동안 아파서 여러 번 수술까지 받았고 지금도 약을 먹고 있는 중인데, 어떻게 그 한마디를 믿고 치유 받을 수 있겠느냐’며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정황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선별적으로 믿는 게 아니라 전체를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서 오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각자 자신의 안으로 들여오는 것입니다.셋째,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이 있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순간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주 생각나게 합니다. 성령님의 충만하신 은혜가 임하실 때, 우리는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게 되고 모든 염려와 불안을 떨쳐버리게 됩니다.  우리가 갖는 걱정과 근심, 염려와 불안은 점진적으로 사라질 수도 있고 순간적으로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복음을 믿는 순간 모든 것들은 사라지고 단번에 구원을 받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성숙한 사람으로 되는 것은 평생에 걸쳐 점진적으로 이뤄집니다. 우리는 두 가지를 잘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라고 선언하는 순간에 모든 불안, 걱정, 고독, 고아 의식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자녀된 의식으로 충만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낄 때마다 인간적인 행동을 취하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뢰합니다.이번에 많은 성도님들이 설교를 듣던 중에 개인적으로 기도 응답을 받은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 분들의 간증을 가만히 들어보니, 설교를 듣던 도중에 속으로 ‘나의 손에 있는 습진이 나을지어다’라고 선포하니 정말 나았다고 했습니다. 아토피 피부병을 앓고 있다가 설교를 듣던 도중에 선포를 하니 순식간에 없어졌다고 했습니다. 그 분들은 이미 주어진 복음의 능력과 축복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미 주어진 복음의 능력과 축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믿음이 열쇠가 됩니다. 다섯 번째로 의롭다하심의 축복에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이 임하시길 축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서 버티고 살 수 있는 것은 강력한 생명력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연 치유력을 갖고 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낫게 되는 것이 자연 치유력입니다. 햇빛만 받아도, 바닷가에 있어도, 맑은 공기만 마셔도 자연 치유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임하시면 영적 치유가 일어납니다. 성도님들에게 자연 치유와 더불어 영적 치유도 함께 일어나길 축원합니다.

 

영을 의롭게 변화시키는 능력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영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곧 우리의 영을 의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서 30절 말씀을 크게 읽어 보겠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이제 저는 모든 사람들을 잠시 법정(法庭, a court)으로 초대합니다. 이유는 ‘의롭다하심’이라는 단어가 법정 용어로서 재판 과정을 통해 그 뜻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법정에 가면 한 사건을 두고 피고인이 있고 피고인을 기소한 검사가 있으며, 또 피고인을 변호하는 변호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재판장이 자리를 함께 합니다. 이것이 보통 법정에 대한 그림입니다. 우리는 그 법정에 피고인으로서 부름을 받았습니다. 즉 죄를 지어 사형 받아 마땅한 존재로 서게 된 것입니다. 율법이 검사가 되어 우리를 사형에 해당한다고 주장합니다. 사면초가에 빠진 우리를 위해 변호해 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검사의 논고와 변호사의 변론을 충분히 들으신 후 가장 지혜롭게 판결을 내려 최후로 선고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법정에서 결론은 무죄냐 유죄냐 둘 중에 하나이며 중간 형태는 없습니다. 최고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변론을 들으시고 우리에게 무죄를 선고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해 ‘의롭다하심’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의롭다고 여기시고 낙인을 찍어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과 축복에서 다섯 번째로 ‘의롭다하심’의 축복입니다.최근에 우리는 헌법재판소에서 내린 재미있는 두 가지 판결을 경험했습니다. 우리 생애에 두 번 다시 있을 수 없는 독특한 경험이었습니다. 첫째는 현직 대통령의 탄핵 사건입니다. 설왕설래가 난무했지만, 헌법재판소에서 국회의원들에 의한 대통령 탄핵 소추에 대해 기각을 결정했습니다. 좋든 싫든 우리는 그 결정에 따라야 했고, 이에 따라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장의 주문 선고 시점부터 권한 행사 정지 상태에서 벗어나 대통령 직무에 복귀했습니다. 또 하나는 행정 수도 이전 문제였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을 결정했습니다.

 

믿는 자에게 ‘의롭다’고 선언하신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께 죄를 범해 사형을 선고 받아 죽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3절 말씀에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아담과 이브 이후 그 자손들은 모두 사형을 선고 받아 죽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심으로써 그들을 살리시고 영원하신 대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의롭다고 선고하신 것입니다. 사람은 의롭지 못하지만 예수님의 대속으로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하심으로써 의롭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너무 기쁜 나머지 눈물을 흘리며 춤을 추게 됩니다.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죄를 선고하신 순간에 우리의 모든 상처는 치유 되고 회복된 것입니다. 우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사 1:18)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영광스럽게 바꿔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의롭다고 선언하신 후에 모든 것들이 달라졌습니다. 누가 우리에 대해 정죄할 수도, 억압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일제 시대 때 해방이 되었는데도 그 소식을 모르고 있던 일본 순사들은 의기양양했고, 한국인들은 꼼짝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해방 소식을 듣게 된 순간, 입장은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습니다.그와 같이 우리는 죄인에서 의인으로, 저주에서 축복으로, 병자에서 건강한 사람으로 변화가 이뤄졌습니다. 우리가 ‘인생이 바뀌었다’라는 말만 해도, 귀신은 무서워하면서 떠나갑니다. 우리가 복음의 소식을 모르면 마귀의 밥이 돼 저주, 어둠 속에 갇혀 살게 됩니다. 28절 말씀을 다시 읽습니다.“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의로움’을 인정받은 근거

 

우리가 의롭다하심을 인정받은 근거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과 은혜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의롭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이에 대해 로마서 3장 23~24절 말씀은 좀더 깊고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의롭다하심’과 ‘구속’은 같은 용어입니다. 의롭다하심은 법적 용어이지만, 구속은 상업적 용어로 곧 사고파는 관계를 말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노예 제도가 있었습니다. 돈을 주고 노예를 사면, 노예는 주인의 소유물이 됩니다. 주인은 소유물인 노예를 자신의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권리를 갖습니다. 그러나 좋은 주인은 노예를 풀어 자유를 줍니다. 그것을 구속이라고 합니다.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죄의 노예에서 구속을 받았습니다. 달리 말해,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하심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이미 법적 근거로 의롭게 되었고, 상업적 근거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 값을 대신 지불해 주셔서 우리는 자유케 되었습니다. 우리는 피고 생활을 너무 오래한 탓으로 피고 의식이 강합니다. 그것은 잘못된 문화입니다. 우리가 죄인인 것은 과거의 일입니다. 지금 우리는 의인으로서 특히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태초에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입니다. 이렇듯 신비스럽고 귀한 존재가 자살을 시도할 수 있을까요, 신경질을 낼 수 있을까요, 말을 함부로 할 수 있을까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사람이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은 자포자기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자신을 스스로 천박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훌륭한 인격과 품위를 갖고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29절 말씀을 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하신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본 받게 하기 위함이고, 다른 하나는 맏아들의 복을 주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볼 때마다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들이 모두 예수님의 형상을 닮은 맏아들이기 때문입니다. 30절 말씀입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의로움을 얻는 4가지 단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하심에 네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 단계는 미리 아시고 우리를 정하신 것입니다. 곧 예정(豫定)입니다. 선택의 가장 큰 비밀은 그리스도 안에 감춰진 예정입니다. 삼위일체를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없듯이, 예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신비스러운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리 아시고 택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에 수많은 남녀들 중에 하필이면 아빠 엄마가 만나 나를 낳았을까, 과거나 미래도 아닌 현재에 태어나게 했을까 하는 신비함은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생명의 신비함은 그대로 받아들여야지 분석한다고 나서면 미궁에 빠지게 될 뿐입니다. 둘째 단계는 예정하신 자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선택이 없으면 부르심도 없습니다. 부지 간에 부르신 것이 아니라 엄밀히 선택하셔서 부르셨습니다. 셋째 단계는 부르신 자들을 의롭다고 하신 것입니다. 넷째 단계는 의롭다고 하신 자들을 영화롭게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정하셔서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며 영화롭게 하신 우리는 현실의 틀 속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있는 모든 문제들을 하나님 앞에 해결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저는 인간에게 있는 죄의 습관이 모두 떠나가기를 원합니다. 죄에서 해방된 복된 소식을 듣고 마귀에게 끌려가던 삶에 마침표를 찍기를 원합니다. 걱정과 근심, 불안과 고아 의식이 사라지길 원합니다. 아울러 모든 질병이 치유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과 축복에서 의롭다하심의 축복입니다.

 

기도합시다

주님!이 시간에 자녀들이 하나님께서 선언하신‘의롭다하심’의 우렁찬 소리를 듣고세상에 나가 자유하며 살게 하옵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