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능력과 축복(7) - 성령세례의 축복
복음의 능력과 축복 시리즈의 마지막으로 일곱 번째인 성령 세례의 축복입니다. 우선 사도행전 19장 1, 2절 말씀을 읽습니다.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 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사도 바울은 1, 2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안디옥으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한 뒤 3차 전도 여행을 떠납니다. 그때 갈라디아와 부르기아를 거쳐 에베소에 도착합니다. 에베소는 바울에게 많은 추억이 서린 곳입니다. 바울은 1년 6개월 동안 에베소에 머물면서 훌륭하게 목회를 하고, 에베소를 떠날 때 교회의 리더들과 부둣가에서 만나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며 헤어졌던 감동이 있는 지역입니다.
성령님에 대해 무지한 현상
이제 바울이 다시 에베소를 방문하게 됩니다. 바울이 없는 동안 아볼로와 그의 제자들이 에베소교회에서 가르쳤습니다. 바울이 3차 전도 여행으로 다시 에베소에 도착했을 때, 아볼로는 고린도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아볼로는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하며 복음을 잘 전했던 학자였습니다. 아볼로가 예수님에 대해 잘 가르침으로써 많은 제자들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아볼로는 다른 것들은 잘 가르쳤는데, 성령님에 대해서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사도행전 18장 24, 25절에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라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아볼로가 예수님께 관해 자세히 말하며 가르쳤다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전문 지식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요한의 세례에 대해서만 알 뿐, 성령 세례에 대해 몰라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누구에게서 배우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학문과 사상과 신앙을 결정짓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어느 교회에 다니느냐에 따라 신앙의 자세와 믿음의 성향이 달라집니다. 자유주의 신학을 공부한 사람은 자유주의 사상을 갖게 되고, 복음주의 신학을 공부한 사람은 복음주의 신앙을 갖게 됩니다.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에게서 배운 제자들은 학문도 있고 성경의 지식도 있으며 예수님에 관한 복음도 있었지만, 성령 세례에 대해서 전혀 몰랐습니다. 보수주의 한국 교회와 비슷한 상태인 것 같습니다. 성경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지만, 성령님에 관해선 외면하고 상대적으로 덜 강조하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령님을 믿고 있지만, 성령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령님의 역사에서 일부분만 믿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영적 빈곤 상태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회개를 위한 요한의 물세례
에베소에 도착한 사도 바울은 제자들의 영적 빈곤 상태를 직감합니다.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성령님에 대해 무지하고 체험이 없음을 알고 질문합니다. 3절 말씀을 봅니다.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2절 말씀에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성도들이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고 대답했습니다. 어떤 교회에선 1년 내내 성령님에 대해 설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성령님의 능력, 은사, 기적, 역사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에베소의 성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고 다시 묻고 있습니다. 그들은 ‘요한의 세례’라고 응답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사람들에게 그 증표로 물세례를 줍니다. 우리는 모두 물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물세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중요한 성령 세례도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요한이 물세례를 주었습니다. 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외쳤습니다. 그때 하나님을 사모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나아와 회개하고 물세례를 받았습니다. 요즘 교회에서 목회자들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물세례를 베풉니다.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죽어서 그분과 함께 부활하는 것을 의미하는 증표입니다. 물세례를 받고 나면 변화되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 영적 체험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영적 충만을 위한 성령 세례
성령 세례란 무엇일까요? 물세례는 사람이 주는 것이지만, 성령 세례는 예수님께서 직접 주시는 것입니다. 물세례는 물 속에 들어가거나 약식으로 물을 뿌려 대신하지만, 성령 세례는 성령님께서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불로 세례를 주시는 것입니다.다시 한번 2절 말씀으로 돌아가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 자체가 성령님의 역사인데, 에베소 성도들은 성령님께서 존재하신다는 말조차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성령님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의 뜻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의 역사는 우리의 이성이나 사고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역사에 의한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이 순간에 우리는 교회에 와서 설교 말씀을 들을 수 없는 것입니다. 주일에 골프 치러 가고 낚시터로 가며 등산을 가더라도, 교회에 오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주일 아침에 교회로 온 것은 개인의 의지나 습관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신 결과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일을 찾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곧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 것도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성령님께서 계시지 않으면, 우리는 예수님을 믿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그러나 에베소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어도 성령님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 이상할 정도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 말씀에 성령님과 예수님의 영접에 대한 관계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우리는 분명히 성령님으로 인해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영접한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계심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님에 대해 듣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더라도 그분께선 분명히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찬송을 부를 때 기분이 좋아지고, 기도할 때 능력을 얻으며,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꾸 주님의 은혜 안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에베소 성도들의 문제는 성령님에 대해 전혀 배우지 못한 것입니다. 가르치는 사람이 성령님에 대해 알지 못하고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침묵을 지킨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교회에서도 목사님이 성령님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 성도들은 성령님에 대해 달리 들을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10년 동안 교회에 다녔지만 방언, 치유, 성령의 능력이 뭔지 모른다’면서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지만, 그것에 대한 가르침이 없으니 성령님께서 활동하실 수 없는 겁니다. 따라서 우리의 신앙 생활은 답답한 것입니다. 믿었다가도 의심하게 되고, 은혜를 받았다가도 공허해지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심 사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는 길을 곧게 했던 세례 요한이 이미 모든 것들을 밝혔습니다. 사복음서를 통해 그에 대한 말씀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마 3:11) 요한이 준 물세례는 회개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해야 예수님을 믿을 수 있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회개 없는 구원은 없습니다. 교회에서 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기로 결정하면 문답을 한 후 세례를 주는 이유는 예수님을 믿기로 결정한 증표로 삼기 위함입니다.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지만 뒤에 오시는 주님께서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이미 선포한 것입니다. 따라서 물세례를 받으신 분들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불세례를 받아야 하는 숙제가 남아있는 겁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예수님을 믿어도 성령과 불로 세례를 경험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성령 세례를 주시기로 이미 결정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막 1:8).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눅 3:16).“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요 1:33).우리가 예수님을 믿기로 결정하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십니다. 이것을 잘 생각해 보면, ‘공수표’(空手票)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금식을 잘하는지, 봉사나 헌금을 잘하는지 확인하신 후에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이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령 세례는 예수님께서 믿은 사람들에게 직접 주시는 것입니다.
이미 임하신 성령 세례에 대한 믿음
따라서 성령님께서 임하셨느냐 임하시지 않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성령 세례가 임하신 것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문제입니다. 성령 세례가 장차 오실 것이 아니라, 이미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두 하락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이미 성령 세례가 임하셨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사실을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성령님에 대해 관심이 없고 그냥 내버려 두고 있습니다. 신앙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지만 무용지물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영접했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고아처럼 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성령님 없이 고아처럼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보호와 양육과 축복을 받으며 당당하게 살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의 죄는 이미 용서받았습니다. 더 이상 마귀에게 농락당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있던 모든 저주는 떠났습니다. 더 이상 마귀의 계략에 까불림 당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만약 ‘우리의 기도는 전부 응답되었겠지요’라고 묻는다면 ‘예, 모두 응답받았습니다’라고 대답을 못합니다. 미래에 있을 일을 현재로 끌어올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미래는 믿음을 가진 우리가 주인공입니다. 미래를 믿음의 힘으로 취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미래에 기도가 응답될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하나님께서 우리의 자녀, 가정, 건강에 관한 기도를 이미 응답해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미래가 보여야 하고 미래가 들려 와야 합니다. 그리고 미래를 향해 믿음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집에 들어갔을 때,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계시니까 집 안의 주인공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집에 들어갈 때마다 ‘하나님께서 들어가신다’라면서 떳떳하고 당당해야 합니다. 모든 은혜는 믿음으로 자신의 것이 됩니다. 성령 세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순절에 첫 성령 강림 사건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 120명이 모여 10일 동안 전심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성령이란 것을 체험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성령님에 대해 알고 있지만, 당시 사람들은 전혀 알 길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다리라고 말씀하는데 무엇을 기다려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오직 믿음으로 기다렸습니다. 그들 120명이 모두 믿음이 좋았을까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보이시고 일시에 500여 형제들에게도 보이셨지만, 모두 떠나고 120명만 남았습니다. 걔 중에도 확실히 믿지 못하고 온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옆 사람의 성화에 못 이겨 따라 온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오순절에 홀연히 급하고 강한 바람이 와서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모습을 보이며 다락방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영적으로 충만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성령 세례의 첫 경험입니다. 120명이 앉아 기도하던 다락방에 성령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이상한 분위기를 느끼고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머리 위에 불이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성령님의 임재가 시작된 것입니다.봄이 오면 봄바람이 불고 산천에 꽃이 피며 초목에 새싹이 돋는 기운이 일듯이, 성령님의 기운이 돌기 시작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충만해지고 얼어붙었던 가슴이 뜨거워지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영적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말을 하면 갑자기 방언이 터졌습니다. 이것이 오순절에 있었던 성령 강림 사건의 대략적인 스케치입니다. 4, 5절 말씀을 읽습니다.“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여기서 성령 세례를 받는 방법이 나옵니다. 그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사람들이 성령 세례가 있다는 말을 듣고 먼저 예수님의 이름으로 물세례를 받습니다. 그리고 성령 세례를 받겠다고 기도하면 됩니다. 6, 7절 말씀입니다.“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 두 사람쯤 되니라.”에베소 성도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자, 성령님의 활동이 시작된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물세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임하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임하시자,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자신도 모르게 방언하고 예언하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
성령 세례는 이미 우리에게 임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 제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령 충만이 있기를 원합니다. 성령님을 사모합니다.” 우리가 계속 기도하면, 바울의 안수로 인해 방언이 터지고 예언하게 된 것 같이 됩니다. 꼭 방언과 예언이 아닐지라도 우리 안에 기쁨이 찾아옵니다. 언행과 생각이 변하고 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합니다. 저는 바울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안수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령 세례에 대해 약속하신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믿는 자들에게 성령 세례를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들어오기 시작할 것입니다.이것이 성령 세례의 능력과 축복입니다. 성령 세례를 받은 후에 지혜가 생길 것입니다. 영적 분별력이 생기고 삶의 태도와 사고 방식이 변할 것입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질 것입니다. 최악이 최선으로 바뀔 것입니다. 성령 세례는 이미 우리에게 온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믿음으로 뚜껑을 열어야 합니다. 그러면 기도가 나오고, 전도하기 시작하며, 즐거운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니까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복된 일들이 성도님들의 가정에서, 직장에서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주여!이 짧은 시간에 하나님의 성령께서강렬히 역사하신 줄 믿습니다.어둠의 영, 죽음의 영은 떠날지어다.저주의 영, 결박의 영은 떠날지어다.우리를 부정적으로 만들고 파괴하며음침하게 만드는 모든 결박이 풀어지고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불로 역사하셔서우리의 언행, 생각, 태도가 달라지게 하옵소서.주님을 찬양합니다. 영광을 받아주옵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