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능력과 축복(4) - 치유됨의 축복
신약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치유에 대한 말씀들이 곳곳에서 많이 기록돼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2절에서 24절까지 말씀을 읽습니다.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써 우리의 죄를 친히 담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죄에 대해 죽고 의에 대해 살게 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로마 군병들의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당시 로마인들이 사용했던 채찍은 가죽으로 만든 길이 1m에서 1.5m정도로 그 끝에 쇠붙이가 달려있었습니다. 그 채찍으로 맞으면 사람의 살점이 찢겨져 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아 살점이 터져나갔을 때 우리의 모든 상처는 치유된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질고를 담당하신 예수님
마태복음 8장 16~17절에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메시아가 오셔서 인간의 모든 연약함과 질병을 친히 담당하셨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달리심을 가리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부족함과 연약함을 담당하시고 질병도 담당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영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살점을 뜯기시고 피를 흘리시며 죽어가는 모습도 보게 됩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와 사망이 죽어 있는 모습까지도 보게 됩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4복음서에 빨간색으로 표시된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을 뜻하는데, 그 말씀을 큰 소리로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한 번 읽어 보십시오. 그러면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곧 예수님께서 질병을 고치는 이야기가 의외로 많다는 사실입니다. 거기에 각색 질병들의 이름이 나옵니다.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쳐주시는 장면이 성경 전체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사람은 육신을 가진 존재이기에 각종 질병의 문제가 심각합니다. 질병에 너무 눌려 있고 병치료에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하며 너무 큰 경제적 부담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나 지금이나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암이나 식물 인간 상태로 장기간 병원에서 지내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교통 사고 등 각종 재난으로 신체 불구가 된 사람도 허다합니다. 자폐증, 정신분열증, 우울증 등으로 고생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면 환자 본인도 괴롭지만 주변의 사람들도 힘들고 하며 가족들은 모두 우울해집니다.여기서 우리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인간의 모든 질병들을 친히 감당하신 사실입니다. 야고보서 5장 14절에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마가복음 16장 17~18절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치유의 기적은 ‘현재 진행형’
사도행전을 보면, 예수님께서 얼마나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셨는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도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많은 병자들을 치유했습니다. 심지어 사도 바울은 손수건만으로도 귀신들을 쫓아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치유의 기적들은 예수님 당시에만 있었고 지금은 없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각종 질병들을 치유하셨는데, 우리는 못하는 것일까요? 대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예수님께서 질병을 치유하셨기에 우리도 지금 당연히 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변함이 없으시고 항상 동일하십니다. 그분의 말씀은 영원한 능력이십니다.문제는 예수님 당시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우리의 믿음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셨을 때, 그 사실을 믿지 못한 제자들이 태반이었습니다. 직접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져보기 전에 믿지 못하겠다는 도마도 있었고,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생활했지만 은 삼십에 팔아버린 가룟 유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지만 다섯 명의 제자들은 믿지 못하고 전직 어부로 돌아갔습니다. 똑같은 구원의 설교를 듣고도 어떤 사람은 믿고, 어떤 사람은 믿지 않습니다. 버트랜드 러셀(Bertrand Russell)이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아닌가」라는 책을 썼습니다. 러셀은 그 책에서 철학적이고 문화적인 요소들을 총동원해 많은 논리들을 갖다 붙여 형이상학적으로 말을 하고 있지만, 결론은 예수님을 믿지 않겠다는 것입니다.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는 예수님에 대해 많이 연구한 사람입니다. 그의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마태복음 5장의 팔복 말씀과 똑같은 필체로 쓰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많이 생각하고 교회에도 다녔으며 예수님을 믿었지만, 결국 ‘신은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지식이 많고 적음에 따라 하나님을 믿고 못 믿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의 유무에 상관없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은 구별됩니다.하나님께서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치유의 복을 내려 주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신 복음의 능력과 복을 받습니다. 믿음이란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말씀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면 어떤 형태의 질병에서도 능히 해방될 수 있습니다.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실패도 하고 실직도 하며, 이혼도 하고 질병도 앓으며 많은 상처를 받게 됩니다. 그러면서 기적적으로 변화의 삶도 살게 됩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축복된 삶을 살 수 있음을 확인하고 그것을 알기 쉽도록 정리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부자(父子) 관계 정립
첫째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확실히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불확실하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됩니다. 온누리교회가 생기기 전에 김기순 박사님이 미국에서 공부하시고 한국 정부의 초청으로 귀국해 KIST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국내 생활 중 간암에 걸렸습니다. 연구 활동도 중단한 채 얼마 남지 않은 목숨을 병상에서 부지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부인과 친구들이 저를 찾아와 그를 위해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서울대병원으로 찾아갔습니다. 그의 얼굴은 새까맣고 황달기가 농후해 마치 죽은 사람과 같았습니다. 그는 원래 불교 신자여서, 저는 어디서부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그때 저는 전도사였기 때문에 “김 박사님, 저는 전도사인데 기도하러 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김 박사님은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에, 제가 기도하기 전에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예수님을 믿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아무 말이 없더니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서울대와 MIT대와 하버드대의 화려한 경력과 박사 학위는 김 박사님을 구원해 주지 못하고, 다만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실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때서야 그는 예수님을 믿겠다고 말했습니다.저는 서울대병원 후문을 나와 성균관대까지 걸으면서 하나님께 김 박사님을 살려달라고 울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는 한 달 정도 치료받고 퇴원해 복직했습니다. 그 후 그가 교회에 나왔는데, 예수님을 믿어서 온 게 아니라 젊은 전도사가 병실을 찾아와 기도해 줘서 병이 나았다며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서 교회에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온누리교회의 시작입니다. 그 후 그는 신실하게 예수님을 믿었고 KIST에 다니는 동안 정말 전도를 많이 했습니다. 1년 뒤에 그에게서 귀신이 나가는 역사가 있었고 3년을 더 살았습니다. 그는 나머지를 사는 동안 죽음에서 살아난 나사로처럼 무섭게 전도했습니다. 나사로 때문에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이 많았더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우리가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경험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 된 관계 설정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도와주시고 지켜주시며 보호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딸이기 때문입니다.
치유의 시작은 예수님께 향한 믿음
둘째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상속 받는 영적 권리가 주어진 사실을 믿는다면, 여기서 각종 질병을 치유하는 기적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지만 그 죽음의 단계를 넘어선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죽지만 영은 죽지 않습니다. 우리는 거듭나 부활해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무거운 죄의 짐은 떠났고 사망의 권세는 사라졌습니다. 로마서 5장 17절에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해 사망이 왕 노릇했습니다. 사망이 우리의 주인이었고 우리는 사망의 노예였습니다. 죽음의 그림자들이 우리를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언제 어디서나 항상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았고 더 이상 죄를 정하는 일은 없어졌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켰기 때문입니다.아담의 원죄와 우리가 지은 죄악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써 뿌리째 뽑혀 무효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모든 죄악의 결과인 저주, 패배, 절망감, 정신 질환, 육체적 질병, 죽음마저도 사라져 버렸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죽어도 살겠다’는 말이 이런 것입니다.
치유는 믿음의 문제
셋째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예수님의 십자가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사실을 믿고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수많은 병자들을 거절하시지 않고 모두 치유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병자들을 고쳐 주실 때마다 ‘너의 믿음대로 되리라,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믿고 입으로 고백하고 선포하는 순간에 모든 질병을 치유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은 여인이 예수님 뒤로 다가와 겉옷 자락을 잡았습니다. 그 여인의 마음에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이켜 그 여인을 보시며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시자, 그 즉시 여인은 혈루증을 치유 받았습니다. 그 여인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예수님께 다가가 자신의 믿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갔던 것은 예수님으로 인해 혈루증을 낫겠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 네의 믿음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문제는 병을 낫고자 하는 간절함이 믿음이냐는 것입니다. 기대는 믿음과 다른 것입니다. 기대하고 소원하는 것은 인간적인 욕심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진급하게 해 달라, 사업이 잘 되게 해 달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기대일까요? 그것을 깊이 파고 들어가 보면 인간적인 욕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간절한 기대는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에서 예수님께서 정말 병을 고쳐 주신다고 확증하는 것이 곧 믿음입니다. 자식이 물불을 가리지 않고 그 속으로 뛰어들고 이리저리 넘어지며 고생한다면, 부모는 그 자식의 병 낫기를 위해 얼마나 기도하겠습니까? 그러나 그 기도와 믿음은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자식을 치유하신다는 것을 마음에 확증하는 일이 믿음입니다.그러나 예수님께서 항상 ‘네가 믿느냐’고 질문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에게도 ‘어찌하여 의심하느냐, 믿음이 없는 자들아’라고 꾸짖으셨습니다. 또 백부장의 믿음을 보고 그 만한 믿음을 본 적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헬라인이고 수보로니게 족속인 한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와 자기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주실 것을 요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관심이 없다며 자기 자녀들부터 먼저 배불리 먹게 하지, 자기 자녀들이 먹어야 할 떡으로 개(犬, 이방인)에게 주는 것은 마땅치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여인은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는다면서 자신을 개로 비유하며 절대적으로 예수님께 의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의 믿음을 크게 칭찬하시고 그녀의 딸을 치유해 주셨습니다.예수님의 치유 사역에서 모든 것은 항상 믿음의 문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가 병들어 아파하며 형편이 어려운 것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항상 엉뚱하게도 믿음을 확인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가지면 영광을 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의심·공포·마귀를 이기고 믿음으로
넷째는 우리가 의심과 두려움과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려 하면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듭니다. 우리가 쉽게 믿을 수 있다면 예수님께서 믿음에 대해 강조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어쩌면 우리가 믿는다고 고백하는 모든 믿음들이 전면 부인될 수 있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모두 가짜일 수 있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마음속으로 들어가 보면 개인적인 욕심이고 더욱 들어가 보면 인간적인 욕망입니다. 생명이 있는 약속의 말씀에 대해 인간적인 지식, 이성, 경험 등으로 동의한 것일 뿐이지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만약 그것이 믿음이라면 기적은 반드시 일어나게 됩니다. 또 우리가 믿음을 가지려 하면 두려운 마음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기적을 만들고 그 기적 앞에서 정적과 같은 것이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믿음을 갖지 못하게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절망적으로 느껴지는 주위 환경입니다. 인간은 절망적으로 느껴지는 상황에서 아무 것도 잡을 수 없게 됩니다. 모든 것이 무모하게 보일 뿐이고, 그것이 곧 믿음을 갖는 데 장애물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음을 갖지 못하게 결정적인 이유는 마귀의 속임수 때문입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거짓 환상을 심어 줍니다. 우리의 죄가 이미 없어졌는데도 여전히 죄가 있다고 거짓으로 속삭입니다. 우리의 과거 습관이었는데도 마치 현실인 것처럼 인식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뚫고 나아가 하나님을 믿는 경지에 이르러야 합니다. 제가 새롭게 발견한 것은 성령님의 역사는 우리로 하여금 계속 생각나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마귀의 역사는 죄를 계속 생각나게 하는 것이지만, 성령님의 역사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관련된 모든 사실을 계속 생각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려면 계속 성령님을 생각하고 그분과 지속적인 교제를 나눠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 부자(父子) 관계를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 저주, 절망, 질병, 슬픔, 고통, 죽음 등이 모두 떠났다고 선언해 보십시오. 그리고 가슴에 손을 얹고 저를 따라 기도해 보십시오.“하나님, 예수님께서 저의 병을 짊어지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써 저의 모든 질병들이 치유되었음을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저의 죄가 모두 사라졌음을 믿습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저를 해방시켰음을 믿습니다. 질병, 죽음, 마귀의 권세가 이미 모두 떠나간 사실을 감사드립니다.예수님께서 이 사건을 통해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을 허락해 주시고 불의 역사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영광과 존귀를 받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