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축복
창 49:26
반태효 목사
하나님은 우리도 야곱처럼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세상의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붙잡으면 야곱처럼 축복의 사람이 됩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지만 하나님의 관심은 사람입니다. 야곱은 복에만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지만 하나님이 붙드셔서 축복의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되어 가는 과정은 그에게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목적이 복이라면 하나님의 목적은 사람들이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야곱이 이스라엘로 변화된 것은 평생 동안의 여정이었습니다.
창세기 32장에서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만을 붙잡고 나머지는 내려놓아야한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붙잡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 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이 진리를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고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했습니다.
여러분, 세상 것을 붙잡으면 늘 경쟁과 다툼을 하는 험악한 삶을 살았지만 하나님을 붙잡으면 인생의 승리자가 됩니다.
새사람과 옛사람이 공존 예수님을 믿지 않았으면 절대로 맺을 수 없는 열매들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 안에는 새사람과 옛사람이 있습니다. 분명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지만 우리 안에는 육신의 모습과 세상적인 모습이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로 변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변화되지 않은 야곱을 깨뜨리기 위해 그의 자녀들을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도구가 자녀일 때 가장 아픈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누구보다 사랑하는 자녀들에 의해서 자신의 모습이 변화되어야 할 때 가장 힘들고 아픕니다. 야곱은 얍복강에서 내려놓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한 가지 내려놓지 못한 것이 있었는데 바로 자녀들입니다. 사실 자녀들에 대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긴 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야곱은 자녀 중에서도 베냐민에 대한 사랑이 특별했습니다. 야곱의 사랑 라헬이 베냐민을 낳고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자녀들과의 갈등을 겪으면서 깨어짐의 시간을 보냅니다. 야곱이 완전히 깨어지는 계기가 창세기 43장 14절에 나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너희로 그 사람 앞에서 긍휼을 입게 하셔서 너희의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너희와 함께 돌아오게 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내가 내 자식들을 잃어야 된다면 잃을 수밖에 없다” (43:14). 야곱은 어떤 경우에도 놓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던 자녀들을 하나씩 놓게 됩니다. 집안의 장자로서 대를 이어나갈 것이라고 믿었던 요셉도 다른 형제들에 의해 애굽으로 팔려가게 됩니다.
축복의 사람으로
요셉의 꿈처럼 7년은 풍년, 7년은 흉년이 들었습니다. 야곱과 그의 가족들은 식량을 찾아 애굽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총리가 된 요셉은 형제들을 시험하기 위해 아버지와 동생을 데려 오라고 합니다. 형제들이 야곱을 설득하지만 야곱은 단호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말했습니다. ‘내 아들 베냐민은 너희와 함께 거기에 내려가지 못한다. 베냐민의 형 요셉이 죽었고 이제 베냐민밖에 남지 않았다. 혹시 너희가 데려가는 길에 베냐민이 해라도 입는다면 너희는 흰머리가 난 나를 슬픔 가운데 죽게 만들 것이다’”(42:38). 야곱이 결국 배냐민을 놓습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놓지 않으려던 베냐민을 놓는 순간 야곱의 일생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야곱은 베냐민을 잃은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얻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베냐민을 놓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하나님 앞에 온전히 내어 맡기자 하나님은 그가 잃은 모든 것을 회복시키셨습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야곱의 반응입니다.
“그들이 야곱에게 말했습니다. ;요셉이 아직 살아 있으며 온 이집트를 다스리고 있습니다.’ 야곱은 심장이 멈추는 듯했습니다. 그는 아들들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형들에게 했던 말들을 아들들에게 전해 듣고 요셉이 자기를 데려오라고 보낸 수레를 보고서야 그들의 아버지 야곱이 제정신이 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말했습니다. ‘이제 됐다. 내 아들 요셉이 아직 살아 있다니, 내가 가겠다. 그리고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겠다’” ( 45:26-28). 야곱은 이 사건을 통해서 다른 어떤 것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붙들게 됩니다.
더 이상 움켜쥐기 위해 경쟁하는 사람이 아니라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을 나눠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항상 경쟁해서 이겨야 만족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누구에게도 양보를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움켜쥐는 손을 내려놓고 축복의 손을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영적 분별력 회복한 ‘야곱’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데리고 들어와 바로 앞에 세웠습니다. 야곱이 바로를 축복했습니다. 바로가 야곱에게 물었습니다. ‘연세가 어떻게 되시오?’ 야곱이 바로에게 말했습니다. ‘제 나그네 인생이 130년이 됐습니다. 제 인생의 햇수가 짧지만 고달픈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제 조상들이 살아간 나그네 인생의 햇수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야곱이 바로를 축복하고 그 앞에서 물러났습니다” (47:7-10).
야곱이 바로를 만납니다. 야곱은 바로를 보자마자 축복을 해줬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늘 무엇인가 얻기를 원하던 사람이 축복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들어주겠다고 했지만 야곱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바로를 축복해 주었습니다.그런데 누가 바로를 축복할 수 있을까요. 당시 사람들은 바로의 축복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바로를 만나는 것 자체가 영광이었고 그를 만나면 무엇이든 얻어갔습니다.
바로는 자신을 축복하는 야곱이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았습니다. 그의 아들 요셉도 지혜로운 자였습니다. 바로가 보기에 야곱은 요셉이 결코 따라갈 수 없는 놀라운 영감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로가 야곱의 나이를 물은 것입니다. 야곱은 생애 마지막 17년 동안을 이집트에서 보냅니다. 그는 일평생 모은 재산을 내려놓았습니다. 약속의 땅에서도 떠났습니다. 눈은 어두웠고 몸은 병이 들었지만 요셉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야곱은 남은 생애를 바로나 자녀들의 재물에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기도에 의지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눈이 어두워지자 큰 아들 므낫세를 오른쪽에, 작은 아들 에브라임을 왼쪽에 두었습니다. 야곱은 손을 바꾸어 축복을 했습니다. 야곱의 눈은 멀었지만 그는 영적 분별력이 열려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따라 축복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축복을 줬습니다.
야곱과 그의 아버지 이삭을 비교해 보십시오. 이삭은 자신의 아들을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야곱을 축복하기를 원했지만 이삭은 에서를 축복하기를 원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변화
야곱의 일생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믿음의 사건이 무엇일까요.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 요셉의 아들들을 각각 축복했으며 자기 지팡이 머리에 몸을 기대며 하나님께 경배했습니다” (히 11:21).야곱은 죽기 전에 그의 자손들을 축복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생을 마무리했습니다. 아름답게 인생을 마무리한 그였지만 깨어지고 험악한 시간을 보냈었습니다. 야곱이 움켜쥐고 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만을 붙잡았을 때 그의 인생은 복되고, 축복의 사람으로 변화했습니다.
“네 아버지의 복은 영원한 산들의 복과 장구한 언덕들의 복을 넘어섰다. 이 복이 요셉의 머리, 곧 자기 형제들에서 뛰어난 사람의 이마에 있을 것이다”(49:26).야곱의 축복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얻기만을 원하는 사람을 베푸는 사람으로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은 우리도 야곱처럼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세상의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만을 온전히 붙잡으면 우리도 야곱처럼 축복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은 손에 붙들린 사람을 그냥 두지 않습니다. 반드시 변화시킵니다. 스스로 변화되지 않으면 우리를 깨뜨립니다. 그 도구가 여러분의 자녀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누구를 만나든지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부자입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면서 야곱이 이스라엘로 변화된 것처럼 우리도 축복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복의 근원이 되기를 바랍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