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주일강단

다시 벧엘의 하나님께로

창 35:1-7

이재훈 목사

 

하나님과의 약속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 안에 있는 우상을 날마다 제거하면서 벧엘의 하나님께 올라갈 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절망은 사라지고 희망이 다가 올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서 있고, 어디서 살고 있느냐가 영적상태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단순히 지리적인 지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상태를 보여주는 장소가 있다는 것입니다. 마땅히 서있어야 할 곳에 없고, 있어서는 안 되는 곳에 있다면 하나님과 관계에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지난 한 주 동안 있었던 장소를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그곳이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이었습니까. 우리가 있었던 곳이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는 곳이었는지 아니면 불신앙과 불순종의 장소였는지를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적상태 보여주는 장소

 

성경에는 영적상태를 보여주는 장소가 네 군데 나옵니다. 첫 번째 장소는 애굽입니다. 애굽은 우상숭배를 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우상을 섬기던 장소입니다.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애굽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우상을 섬기고 있다면 아직 애굽에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장소는 광야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순종 했을 때 그들은 광야에서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광야는 방황의 땅이요, 불신앙의 땅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면 광야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 장소는 가나안입니다. 가나안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의 땅입니다.   네 번째 장소는 바벨론입니다. 바벨론은 백성들이 불순종하고 타락해서 벌을 받는 징벌의 땅입니다. 야곱의 이야기에서도 영적상태를 보여주는 장소가 매우 중요합니다.

야곱은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도망갔을 때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이 사건으로 야곱은 영적출애굽을 경험했습니다. 그는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야곱에게 벧엘은 가나안과 같은 곳입니다. 야곱이 에서를 피해 하란으로 도망갔을 때에 하란은 바벨론이었습니다.

 

엄청난 위기에 빠진 야곱

 

야곱이 경험한 광야는 세겜이라는 곳입니다. 야곱은 에서와 화해한 이후에 세겜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10년 정도를 세겜에서 살았습니다. 야곱은 10여 년 동안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살았습니다. 모든 것이 잘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야곱의 가정에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 성의 추장에게 강간을 당한 것입니다.

 

야곱은 복수를 하기 위해 살인을 계획합니다. 세겜은 디나를 강간하긴 했지만 그녀를 사랑했고 결혼하고 싶어 했습니다. 이때 야곱의 아들들이 꾀를 냅니다. 그것은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성의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부족사회에서나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 성의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았습니다. 남자들이 할례를 받고 힘을 쓰지 못할 때 야곱과 그의 아들들은 성의 모든 남자들을 죽였습니다. 엄청난 대 학살이 벌어진 것입니다.

 

야곱이 세겜의 남자들을 다 죽이니 주변 성읍 사람들이 그를 가만히 놔둘 리가 없었습니다. 야곱은 에서의 위협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엄청난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엄청난 위기를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이때 야곱의 영적상태를 볼 수 있습니다. 세겜에서 머물고 있었던 야곱의 영적상태를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직 자기 자신에 대한 염려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나를 곤란하게 만들었구나. 이 땅에 사는 사람들,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들이 나를 사귈 수 없는 추한 사람이라고 여길 것이다. 나는 수도 얼마 되지 않는데 만약 그들이 뭉쳐서 나를 공격하면 나와 내 집이 망하게 될 것이다’”(창 34:30).

이 말씀에서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나’입니다. 지금 야곱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자신입니다. 그는 자신에 대한 관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학살당한 세겜 사람들에 대한 슬픔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딸에 대한 안타까움도 없습니다. 오직 자기 자신에 대한 염려만 가득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딸이 강간을 당했다는 말을 들은 후의 반응도 이상했습니다. 

“야곱은 세겜이 자기 딸 디나를 더럽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아들들이 가축들과 함께 들에 나가 있었으므로 아들들이 돌아올 때까지 그는 잠잠히 있었습니다” (창 34:5). 야곱은 자신의 딸이 강간을 당했는데도 잠잠했습니다. 절제하고 침착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무관심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돌아왔을 때에는 어땠을까요. 흥분하고 분노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여전히 잠잠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분노하고 흥분했지만 야곱은 무관심했습니다. 두려움 때문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야곱의 영적 상태였습니다.

 

쉽게 사라지지 않는 죄성 야곱은 에서와 화해한 이후에 영적 긴장감을 잃어버렸습니다. 야곱은 어떻게 딸이 강간을 당했는데도 잠잠했을까요. 그의 중심은 항상 자기 자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은 라헬과 요셉이었습니다. 아마도 딸 디나는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 중에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 야곱은 분명 브니엘에서 하나님과 대면하는 영적 체험을 했는데 왜 이런 모습을 보일까요. 그것은 극적인 영적 체험 한 번으로는 죄성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그렇게 연약한 존재입니다.

성경에는 야곱이라는 이름이 계속 등장합니다. 창세기 35장에서는 하나님이 야곱이 우상을 제거하고 정결케 된 이후에 야곱을 찾아오셔서 “네 이름을 야곱이라 하지 않고 이스라엘이라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야곱이 지난 10여 년 동안 세겜에서 살면서 보여 준 모습은 이스라엘의 모습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베드로를 “베드로야”라고 하지 않고 “요한의 아들 시몬아”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은 왜 베드로의 옛 이름을 부르셨을까요. 예수님이 잡히신 후에 베드로의 모습은 베드로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잡히셨을 때 그의 모습은  변화되지 않은 시몬의 모습이었습니다.

야곱이 세겜에서 보낸 10년은 인간의 욕망과 안일을 따라 살아왔던 시간입니다. 새 사람이 아니라 옛 사람으로 살았던 기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곱이 에서를 피해 도망갔을 때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 서원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십일조를 드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에서와 화해한 이후에 그의 영적 긴장감이 풀어지면서 하나님 앞에 서원한 내용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야곱은 자신의 딸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의 영적상태를 살펴야만 했습니다. 잠잠히 있을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안위만을 염려했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의 육체는 가나안으로 돌아왔지만 영적으로는 광야와 바벨론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영적상태를 나타내는 땅이 어디인지를 분별하며 살아야합니다. 야곱은 진정한 가나안에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영적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여전히 방황하고 있었고, 도망자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세겜의 풍요로운 환경 때문에 영적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때 그 자리로 돌아가라

 

하나님은 하나님과 맺은 서약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서약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서약은 잘 지킬 수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약속을 지키지 않는 연약한 사람들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서약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서약이 사람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서약의 중요성을 강조하십니다.

“만약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 약속한 것이 있으면 갚기를 더디게 하지 마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네게 그것을 반드시 요구하실 것이니 그러면 네가 죄지은 것이 될 것이다” (신 23:21). “네가 하나님께 서원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지키는 데 미적거리지 마라. 그분은 어리석은 사람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네가 서원한 것을 갚아라” (전 5:4).

하나님과의 서약을 소홀히 하고 세겜에 머물던 야곱에게 위기가 찾아오자 하나님은 야곱을 다시 찾아오십니다. 얍복 나루터에서 위기에 처한 야곱에게 싸우는 자로 찾아오셨던 하나님이 세겜에서 위기에 빠져있는 야곱에게 다시 찾아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에 머물러라. 그리고 거기에서 네가 네 형 에서로부터 도망칠 때 네게 나타나셨던 하나님께 제단을 쌓아라’” (1절). 위기에 빠진 야곱에게 하나님이 해결책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약속은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그때를 기억하고 그 자리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영적상태가 올바르지 않으니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영적 출애굽을 경험한 그곳으로 돌아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라는 명령입니다.

여러분, 결혼한 지 오래되어서 순수했던 사랑의 마음을 잊어버린 채 살아가는 분이 있다면 프러포즈를 했던 곳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 장소에 가면 당시 상황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명령하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러포즈하고 서원했던 그 사랑과 믿음을 회복하기 위해 그곳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예배자로서의 삶 되찾은 야곱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야곱의 영혼이 떨렸을 것입니다. 야곱은 즉시 순종했습니다.  “야곱이 자기 집 사람들과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지니고 있는 이방 신상들을 없애 버리라. 너희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옷을 갈아입으라. 일어나서 벧엘로 올라가자. 내가 그곳에서 내 고난의 날에 내게 응답하시고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하셨던 하나님께 제단을 쌓을 것이다’”(2-3절).

야곱은 벧엘로 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제대로 이해했고 적용했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신 것은 단순히 이사를 가라는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의 의미를 정확하게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우상을 제거하고 정결케 된 이후에 벧엘로 올라가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지만 야곱은 그렇게 했습니다. 야곱의 영성이 살아난 것입니다. 야곱의 영혼이 다시 깨어났습니다. 드디어 야곱이 다시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예배자로서의 삶을 회복했습니다. 

광야나 바벨론에 머물고 있다면 야곱처럼 다시 하나님 앞에 서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단순히 벧엘로 가는 것이 아니라 야곱처럼 적용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벧엘로 가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우리의 영혼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집에 쌓아 둔 우상을 제거

 

야곱이 자신의 영적상태를 돌이켜보니 우상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야곱의 가정은 라헬과 결혼하면서부터 우상을 섬겼습니다. 라헬은 아버지의 집에 있던 드라빔이라는 수호신과 작은 신상을 늘 품에 지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버리라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믿음이 그렇게 강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라헬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애곱은 라헬을 사랑해서 우상을 버리지 말라고 했지만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은 우상을 버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한 번도 우상을 제거하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신을 인도하신 것을 체험하는 순간에는 우상을 버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세겜에서 사는 10년 동안 야곱의  집에는 우상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지니고 있던 모든 이방 신상들과 귀에 걸고 있던 귀걸이를 야곱에게 주었습니다.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 묻었습니다” (4절).

그것들은 이방 신상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집안에 우상을 쌓아두면 반드시 위기가 옵니다. 그것이 어떤 우상이든지 말입니다. 가정에 우상을 쌓기 시작하면 언젠가는 하나님이 위기를 제거합니다. 우상을 제거해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가운데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귀걸이를 야곱에게 주었다’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 귀걸이는 귀에 거는 귀걸이가 아닙니다. 우상화된 귀걸이입니다. 여러분, 우상이 무엇입니까. 우상은 단순히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우상에게 절대적인 관심을 갖게 해서 우상이 하나님 보다 높은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어 사람들을 만족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상의 의미를 찾게 하고, 우상이 목적이 되고, 우상을 위해서 살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다른 우상을 예배할 때 우리는 우상을 닮아갑니다.

“우상을 만드는 사람들은 우상처럼 될 것이요 우상을 의지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시 115:8).  사람은 자신이 섬기는 신을 닮아갑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면 하나님을 닮아가지만  우상을 섬기면 우상을 닮아갑니다. 우리가 우상을 섬기면 능력도 없고 어리석은 우상처럼  변해갑니다. 야곱의 가정에 라헬의 드라빔부터 시작해서 그의 가족들이 하나 둘씩 갖고 들여온 이방신상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그의 가정은 영적으로 무기력한 가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히 야곱과 그의 가족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했습니다. 우상을 제거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의 회복

 

“그들은 길을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변 성읍 사람들에게 두려운 마음을 주셔서 아무도 그들을 쫓아오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5절). 하나님은 엄청난 위기에 빠진 야곱과 그의 가족들을 보호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되풀이해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너는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라. 한 민족과 여러 민족들이 네게서 나올 것이며 왕들이 네 몸에서 나올 것이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또한 네 자손에게 이 땅을 주겠다’” (11~12절).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셨던 약속을 야곱에게 반복해서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관계의 회복입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약속의 자녀 야곱이 세겜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버린 채로 광야에서 방황하며 살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위기를 통해서 그에게 찾아오셔서 서 우상을 제거하게 하시고 다시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야곱에게 위기가 생겼을 때 어쩌면 그는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지 않았다고 원망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난 이후 야곱은 깨달았을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보호영역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여러분, 말씀과 기도, 예배를 통해 우리가 있어야할 곳이 어디인지를 분별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보호영역에서 이탈하면 위기가 생깁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보호영역에서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인 방법으로 아무리 안전하게 살려고 해도 하나님의 임재에서 벗어나면 위험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벧엘로 올라가 우상을 제거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고 축복의 땅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잊지 않고 하나님과의 서원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 안에 있는 우상을 날마다 제거하면서 벧엘의 하나님께 올라갈 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상과 함께하는 미래는 축복이 보장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상은 우리에게 미래를 가져다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과 함께 미래를 향해 나아가면 새로운 미래가 될 것입니다. 절망은 사라지고 희망이 다가 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약속이 우리의 삶을 인도할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영적 순례자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온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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