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주일강단

아버지의 명령

누가복음 15장 25절~32절

 

이동원 목사

 

전도와 이웃사랑은 포기할 수 없는 명령입니다.이 명령을 끌어안고 다시 서기로 결단한다면기적은 계속되고, 위대한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위대한 명령에 순종하기를 바랍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세 가지 비유가 나옵니다. 첫 번째 비유는 어떤 목자가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놔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는 이야기, 두 번째 비유는 어떤 여인이 소중하게 여기던 하나의 드라크마 은전을 찾는 이야기, 세 번째 비유는 아버지가 집나간 아들을 애타게 기다리는 이야기입니다. 아버지는 집을 나갔던 둘째 아들이 돌아오자 너무 기뻐서 잔치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잔치를 기뻐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 “큰아들은 화가 나서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아버지가 나와 그를 달랬다. 그러자 큰아들이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위해 종 노릇 하고 무슨 말씀이든 어긴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게는 친구들과 함께 즐기라며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주시지 않았습니다’”(28~29절). 큰아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보십시오. 그는 정말 아버지의 명령을 어기지 않았을까요. 맏아들에게는 마땅히 지켜야만 하는 두 가지 명령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 명령이 기독교가 존재하는 이유이고, 온누리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하용조 목사님이 평생을 걸고 헌신했던 이유도 바로 이것입니다. 

둘째 아들의 행방을 몰랐던 상황으로 되돌아가 봅시다. 그때 아버지가 큰아들에게 명령을 한다면 어떤 명령을 할까요. 바로 동생을 찾아오라는 명령입니다. 우리는 이 명령을 ‘지상명령(Great Commission)’이라고 합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세 가지 비유의 공통점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찾는다’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는 목자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잃어버린 은전을 찾고 있는 여인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잃어버린 아들을 애타게 찾는 아버지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기뻐하지 않는 맏아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1절).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 사람들은 당시 주류가 아니라 세리들, 창녀들,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은 구원의 말씀이었습니다. 소망의 말씀이었습니다. 2절을 보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당시에 대표적인 종교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무신론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율법과 토라를 지키고 가르치던 사람들이었습니다.“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2~3절).

예수님은 죄인들이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것을 함께 기뻐하고, 함께 흥분하고, 함께 감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잃어버린 양을 찾는 이야기, 드라크마를 찾고 있는 여인의 이야기, 집 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잃어버린 아들이 돌아왔지만 그의 형은 동생이 돌아 온 것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네 번째 비유가 나옵니다. 이것이 누가복음 15장의 결론이요, 기독교의 결론입니다.

예수님이 동생이 돌아 온 것을 기뻐하지 않는 맏아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누구를 생각하셨을까요. 바리새인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바리새인들이 무엇 때문에 기쁨을 함께 나누지 못하게 되었을까요. 바리새인들의 의식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 누가복음을 좀 더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잃어버린 영혼 찾기

 

“자기가 의롭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은 업신여기는 몇몇 사람들에게 예수께서 이런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새파 사람이었고 또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바리새파 사람은 서서 자신에 대해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저는 다른 사람들, 곧 남의 것을 빼앗는 사람이나 불의한 사람이나 간음하는 사람과 같지 않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않음을 감사합니다. 저는 1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얻은 모든 것의 십일조를 냅니다’”(눅 18:9~12절).  바리새인들이 금식한 것이 잘못일까요. 아닙니다. 십일조 드린 것 잘못입니까. 아닙니다. 잘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요. 문제는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전도를 얼마나 하십니까. 우리가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지 않는다면 어쩌면 우리는 바리새인인지도 모릅니다.하용조 목사님 소천 1주기를 추모하면서 이형기 사모님이 <쿠사츠의 봄>이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그 책에 보면 하용조 목사님의 초미의 관심은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본향을 찾아주는 것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의 복음에 관한 확신은 천당과 지옥을 여러 차례 여행하고 온 사람처럼 확고했기 때문에 선교에 목숨을 걸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 목사님과 동일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까. 동일한 부담을 느끼십니까. 동일한 명령 앞에 순종하기를 원하십니까.

 

전도하고 사랑하라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먼저는 유대 사람에게요, 다음으로는 그리스 사람에게입니다”(롬 1:16절). 바울처럼 하용조 목사님이 그랬습니다. 그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복음을 전하는 일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율법학자가 대답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해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고, 또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눅 2-:27) 두 번째 명령은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율법사가 자기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 반문하자 예수님께서 또 하나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입니다. 레위 제사장들이 강도 만나 피 흘리고 신음하고 있는 사람을 보고도 지나치고 있는데 당시 사람들에게 편견과 차별대우를 받았던 사마리아인은 발걸음을 멈추고 그 사람을 도왔습니다.

여러분, 곁에 있는 사람만 이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을 이웃으로 바라볼 줄 아는 눈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이웃사랑입니다. “그런데 창녀와 함께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한 아들이 집에 돌아오니까 아버지는 그를 위해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30절). 맏아들이 동생을 부르는 호칭을 주목해 보십시오. 동생이라는 말을 하지 않고 당신의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32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그를 잃었다가 찾았으니 우리가 잔치를 벌이며 기뻐하는 것이 당연하다”(32절).  아버지는 네 동생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소외된 이웃들을 내 동생으로, 내 형제로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전도의 명령과 함께 또 하나 주신 명령은 이웃사랑입니다. 이것은 포기할 수 없는 명령입니다. 이 두 가지 명령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분리될 수 없습니다. 사랑 없이는 전도나 선교가 불가능합니다. 사랑 없는 전도나 선교는 위선입니다.

선교의 명령과 이웃사랑의 명령을 끌어안고 다시 서기로 결단한다면 하나님은 하 목사님이  계시던 그 시대 이상으로 여러분을 쓰실 것입니다. 기적은 계속 될 것입니다. 놀라운 영향력은 계속될 것입니다. 위대한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이 찬양을 받으실 것입니다. 위대한 명령, 위대한 계명에 순종하는 온누리교회기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 아버지의 명령을 기억합니다. 하 목사님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들려주셨던 아버지의 명령, 다시금 마음에 새기며 나아갑니다. 동생을 찾으라, 동생을 사랑하라는 아버지의 명령을 다시금 기억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온누리교회가 더욱  쓰임 받는 사도행전적 교회로 변화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