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주일강단

다시 선택하시는 하나님

슥 1:7-17

이재훈 목사

 

하나님의 환상과 꿈을 믿음으로 붙잡으십시오. 여러분의 눈에 하다스의 나무가 보이기를 바랍니다. 온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말들이 보이기를 바랍니다. ‘다시’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것입니다.

 

고속도로에서 출구를 잘못 나왔는데 그곳이 차를 되돌릴 수 있도록 설계된 도로라면 기분이 무척 좋습니다. 도시 계획이 잘 된 국가에서는 길을 잘못 들면 언제든지 다시 차를 돌일 수 있도록 설계가 되어있습니다. 여러분, 길을 잘 못 들었다가 되돌아올 때면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더불어 실패와 절망에서 되도록 빨리 나올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우선순위가 바뀐 백성들

 

여러분, 회개가 필요합니다. 회개는 돌아오는 것입니다. 삶을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복되기를 원하시면서 그들에게 회개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내게로 돌아오라”제1차 포로귀환으로 돌아온 백성들에게는 회개가 필요했습니다. 그들은 돌아오자마자 성전을 재건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성전재건을 방해하는 외부의 세력에 의해 공사는 중단 되었고, 성전 재건은 16년 동안이나 방치되었습니다. 방치된 성전은 그들의 신앙을 웅변해줬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중심의 삶이 아니라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성전 재건이 중단된 표면적인 이유는 외부의 방해였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이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선순위가 바뀐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아직 여호와의 집을 지을 때가 아니라는 핑계를 대면서 하나님에 대한 관심을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으로 바꿔놓았습니다. 그들의 몸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지만 마음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스가랴를 통해 그들에게 돌아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꿈과 환상 학개서는 책망과 지적을 중심으로 회개를 촉구했고, 스가랴서는 위로와 격려, 소망을 통해  회개하도록 인도했습니다. 학개서를 통해서는 성전을 재건하라는 명령을 주셨지만 스가랴서를 통해서는 성전이 재건될 것이라는 소망과 희망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학개는 눈에 보이는 성전 재건을 중심으로 말씀을 전했지만, 스가랴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는 일에 더 집중하며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스가랴는 여덟 개의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로하고 격려했습니다.  “다리오가 왕이 돼 다스린 지 2년 열한째 달, 곧 스밧 월 24일에 잇도의 손자며 베레갸의 아들인 스가랴 예언자에게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7절).하나님은 스가랴에서 여덟 개의 환상을 하룻밤에 연이어 보여주면서 낙심한 백성들을 위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환상을 통해 말씀하셨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실의 경험만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판단이 어렵다고 생각되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현실과 다른 차원의 세계에 있는 환상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예언과 꿈, 환상 등 초자연적인 방법을 통해 말씀하셨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람들의 의식이 하나님의 뜻을 막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경험이 하나님의 신비로운 세계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이 판단할 수 없는, 인간이 계획할 수 없는, 인간의 경험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운 계획을 말씀하실 때에 사람들의 꿈을 통해 보여주십니다. 그 꿈의 내용은 사람의 눈으로, 세상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신비한 현상이요, 환상입니다.

 

복음 전하는데 헌신한 사람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환상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요엘서를 보면 하나님의 영이 모든 사람에게 부어지고, 자녀들은 예언을 하고, 노인들을 꿈을 꾸며, 청년들은 환상을 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이루어진 예언이 사도행전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나에게는 하나님의 꿈과 환상이 보이지 않을까요.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삶을 얼마나 헌신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신약 시대에 꿈과 환상은 누구에게 나타났습니까. 베드로가 바구니 환상을 본 이후에 율법의 틀을 깨고 복음의 본질을 깨닫도록 하셨고, 소아시아에서 열심히 전도하는 바울에게 마게도니아 사람이  환상으로 나타나면서 유럽 전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지난번에 제가 방문한 세네갈의 라크로즈 마을은 미신과 무당, 이슬람으로 가득한 마을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브라질 선교사가 열심히 사역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그 마을의 종교지도자의 꿈에 키가 큰 사람 한명과 키가 작은 사람 한명이 나타났는데 그 꿈을 꾼 이후에 실제로 키가 큰 브라질 선교사 한 명과 키가 작은 한국인 선교사가 그곳을 찾아 간 것입니다. 꿈속에서 본 사람이 실제로 나타나자 종교지도자는 그들을 신비로운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선교사들은 그 마을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모슬렘 종교지도자가 선교사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인간적인 생각으로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그곳에서 사역을 시작한 선교사를 통해 복음이 전해지게 되었고 올 여름 온누리교회 아웃리치팀이 그곳에서 사역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자신의 삶을 복음을 전하는데 헌신한 사람들에게 환상과 꿈을 보여주십니다.

 

이 세상을 살피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환상은 호기심을 만족시켜주는 것이 아닙니다. 체험을 하고 싶다고 해서 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잘못된 호기심은 신비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환상을 보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복음이 전해지는 일에 헌신해 보십시오. 선교에 헌신하십시오. 여러분의 삶을 복음과 함께 고난 받는 일에 헌신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놀라운 삶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스가랴가 본 첫 번째 환상입니다. 이 환상을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세 장면으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장면은 붉은 말을 타고 은매화 나무 사이에 서 있는 사람을 본 것입니다. “내가 밤중에 환상을 보았다. 어떤 사람이 붉은 말을 타고서 골짜기에 있는 은매화나무들 사이에 서 있었다. 그의 뒤에는 붉은 말과 갈색 말과 흰 말들이 있었다. 내가 물었다. ‘내 주여, 이것이 무엇입니까?’ 내게 말하던 그 천사가 내게 말했다. ‘이것들이 무엇인지 내가 네게 보여 주겠다’”(8~10)절.   붉은 말을 타고 은매화나무 사이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천사입니다. 그 뒤에는 붉은 말과 갈색 말, 흰색 말들이 있었습니다. 그 광경을 본 스가랴가 ‘이것이 무엇이냐’고 질문했습니다. 이 환상은 현실과 환상이 서로 교통하고 있습니다. 스가랴의 질문에 천사는 ‘곳곳을 두루 돌아다니라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들이다’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말들이 환상에 나온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이 세상에 모든 상황을 두루 살피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감찰하고 계십니다.

 

새로운 시작과 새로운 생명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재건하려는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그때 백성들은 하나님은 이 상황을 알고 계시는지에 대해 궁금했을 것입니다. 방해하는 외부세력을 보고도 가만히 계시는 하나님이 원망스러웠을 것입니다. 이러한 의문과 불신앙이 그들에게 생겼을 것입니다. 믿음이 약해졌을 때 가장 먼저 찾아오는 증상이 의심입니다. 때때로 거짓이 승리하고 악이 지배하는 것 같은 세상을 보면서 과연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면 이러한 시험에 들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은 모든 상황을 알고 계시고, 보고 계십니다. 모든 상황이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로 돌아가는 것 같아도 그 모든 상황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믿어야합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유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서 모든 상황을 보고 받아서 아는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사들이 소식을 알려주지 않아도 모든 상황을 알고 계십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의 소식을 천사를 통해서 알게 된다면 전지전능하신 분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온 땅에 두루 다니라고 천사를 보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를 위한 환상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천사가 서있는 곳은 은매화나눔 사이입니다. 원어로 하다스라는 나무인데 이 나무가 유대인들의 꿈에 나오면 기분 좋은 것을 상징합니다. 우리 꿈에 돼지가 나오면 길몽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유대인들이 하다스나무를 좋아하는 이유는 생명력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이 나무는 가지가 꺾여도 며칠 동안 살아 있고, 죽은 것 같다가도 물만 주면 바로 살아납니다. 그래서 불멸, 영생, 회복, 새로운 시작을 의미합니다. 새로운 시작과 새로운 생명을 의미하는 나무가 환상 속에 나타났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았겠습니까.

 

악인들의 평안은 ‘안일함’ 두 번째 장면은 땅에 두루 두루 돌아다니는 말들이 천사에게 보고하는 장면입니다. “그것들이 은매화나무 사이에 서 있는 여호와의 천사에게 말했다. ‘우리가 땅에 돌아다녀 봤더니 온 땅이 조용하고 평안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의 천사가 대답해 말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서는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의 여러 성읍들에 자비를 베풀지 않으시렵니까? 주께서 이들을 노여워하신 지 벌써 70년입니다’”(11~12절).이 땅을 두루 다니 던 말들이 나무 사이에 있는 천사들에게 보고를 합니다. 말들에게 세상은 조용하고 평온하다는 보고를 들은 천사가 흥분해서 하나님께 탄원을 합니다. 온 땅이 조용하고 평안하다고 하는데 왜 천사는 흥분을 할까요. 천사가 분노하면서 하나님께 탄원한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요. 예루살렘이 황폐해 있고, 아직 성전이 재건되지 않아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의와 낙망에 빠져있는데, 예루살렘을 그렇게 만든 열국들이 조용하고 평안하다는 것을 참지 못한 것입니다.

말들이 말하는 조용하고 평안하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평안과 안식가운데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죄악가운데 있으면서 누리는 거짓된 평안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거짓되고 거만함 가운데 누리는 평안 때문에 천사가 화가 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정반대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한지 70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예루살렘은 황폐해있고 열국은 조용하고 평안한 것이 못마땅해서 하나님께 탄원을 한 것입니다.

 

악인들의 안일함 깨뜨리는 하나님

 

“그들은 내 백성의 상처를 피상적으로 고쳐 주었다. ‘평안하다, 평안하다’라고 말하나 평안이 없다”(렘 8:11).예례미야서 곳곳에 똑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평안하다. 평안하다. 아무 일이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그들에게는 평안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멸망 직전의 상태였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평안은 거짓된 평안입니다. 온 땅이 조용한고 평안하다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에서 누리는 평안이 아니라 거짓과, 왜곡 교만함 가운데 누리는 안일함이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이스라엘보다 훨씬 악한 민족들이 평안함 가운데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낙심과 절망, 황폐함 가운데 있다면 누구나 화가 나야합니다. 악인들은 평안하고 아무 일 없이 잘 지내는 것 같고, 그보다 훨씬 더 나은 사람은 하나님께 징계를 받고 황폐함 가운데 있다면, 분노가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악인들이 평안함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들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들의  안일함에 대해, 거짓된 평안에 대해 진노하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안일을 즐기는 다른 여러 나라들로 인해 나는 몹시 화가 난다. 나는 내 백성에게 화를 조금 냈는데 다른 여러 나라들은 내 백성에게 내가 벌주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을 주었다” (15절).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려고 벌을 주셨는데 열국들은 자신들의 교만과 악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더 잔인하고 더 혹독하게 징벌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안일함 가운데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상황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일함과 거짓된 평안을 깨드릴 것이라고 하신 말씀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을까요. 하나님은 거짓된 악인들이 이 세상가운데 평안함을  누리도록   그냥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절대로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악인의 평안함을 보고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좌절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모든 상황을 알고 계십니다. 그들의 평안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악인들의 평안함을 깨뜨릴 것입니다. 

 

죄에서 벗어나는 죽음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말하던 천사에게 은혜로운 위로의 말씀으로 대답하셨다. 그 천사가 내게 말했다. 너는 외쳐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예루살렘과 시온을 너무너무 사랑한다’” (13~14절).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셔서 그들의 죄를 심판하셨습니다. 환자를 사랑하는 사람은 병든 상태로 환자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고통스럽지만 살을 찢는 수술을 하도록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죄를 심판하고 그들을 고치기 위해서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게 했습니다. 바벨론 포로기간은 영적 수술의 회복 기간이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때론 우리를 징계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가 미워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하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서에는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하는 말씀이 곳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여호와의 말이다. ‘그러나 내가 너를 회복시켜 건강하게 하고 네 상처들을 치료해 줄 것이다. 이는 그들이 너를 추방당한 사람, 아무도 돌보지 않는 시온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렘 30:17).“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에 건강과 치유를 가져올 것이다. 내가 그들을 치료해 그들에게 풍성한 번영과 안정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고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다. 그들이 내게 저지른 모든 죄악을 내가 그들에게서 씻어 내고 그들이 내게 저지른 모든 죄악과 나에 대한 반역을 내가 용서할 것이다” (렘 33:6-8).여러분 죄로 인해 하나님께 징계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치료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믿으십시오. 많은 죄를 짓고도 아무런 징계가 없다는 것을 불안해해야합니다. 버림받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를 새로운 시작의 기회로 삼으시는 분입니다. 심지어 죽음조차도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은 심판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죽음은 분명히 하나님의 심판이지만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어떻게 죽음을 선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죽음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이렇게 생각해보십시오. 만약 인간에게 죽음이 없었다면 우리는 죄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렸을 것입니다. 영원히 죄에 빠진 상태의 육신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았지만 여전히 죄가 우리를 괴롭힙니다. 어떻게 하면 죄의 육신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죽음으로써 죄에 빠진 육신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죽지 않고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죽지 않고는 육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자비한 마음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겠다. 그곳에 내 성전이 세워질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다. ‘예루살렘에 집을 짓기 위해 측량줄을 칠 것이다.’ 또 외쳐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다시 내 성읍들이 넘치도록 잘 살게 되고 다시 여호와께서 시온을 위로하고 다시 예루살렘을 선택할 것이다’” (16~17절).반복되는 단어를 주목하십시오. 첫 번째 반복되는 단어는 ‘만군의 여호와’입니다. 두 번째 반복되는 단어는 ‘나’라는 단어입니다. 세번째로 반복되는 단어는 ‘다시’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처한 현실의 어려움이 너무 커서 현실적인 판단과 개선으로는 회복될 수 없다고 해도 하나님의 환상을 믿음으로 붙잡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기도와 꿈과 환상에 하다스의 나무가 보이기를 바랍니다. 온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말들이 여러분의 눈에 보이기를 바랍니다. ‘다시’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여러분의 귀에 들리기를 바랍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일러스트 박정일 meteojip@nate.com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