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으로 경배하라
주일강단
이재훈 목사
“하나님만 경배하는 삶이 진정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는 삶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저지르는 모든 나쁜 짓의 원인은 우상숭배입니다. 십계명의 제1계명과 제2계명이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있습니다. 제1계명을 어기지 않는 사람이 나머지 계명을 어길 이유가 없습니다. 우상숭배는 모든 죄의 근원이며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본질 속에 숨어있는 무서운 악입니다. 종교개혁자 존 칼빈은 “인간의 마음은 우상을 만들어내는 공장”이라고 했습니다. 마틴 루터는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모시려하지 않는다면그는 분명히 하나님을 형상화한 우상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 있는 우상을 끊임없이 발견하고 제거해야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경배로나아가야 합니다.
신명기 말씀에서 계속 반복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마음과 힘과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만을 경배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안의 우상을 발견해야 합니다. 내안에 어떤 우상이 있는지를 발견하려면 어떤 몽상을 자주하는지를 살펴보면 됩니다. 특별한 일이 없을 때 자연스럽게자주 떠오르는 생각이 우상일 수 있습니다.
그것을 얻지 못하면 내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없다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 우상일 수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간절히 열망했는데 얻지못했을 때 절망하게 되고 낙심하게 되고 인생을 살만한 가치가 없다고 느낀다면 그것도 우상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우상들을제거하려고 해도 제거되지 않습니다. 자신의결심과 노력으로 우상을 뿌리 뽑았다고 생각하지만 또 다른 우상이 생겨나기도 합니다.더 교묘한 모습으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풍선의 한군데를 누르면 또 다른 곳이 부풀어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우상을 제거하는 가장정확하고 올바른 길은 단 한가지 뿐입니다.참되신 하나님 한 분을 경배하는 것입니다.우리가 마땅히 경배해야 할 하나님 한 분을경배할 때 우상이 사라집니다.
어떤 선교사님이 쓴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선교사님들이 아마존 강 유역을 지나면서연못을 지나가는데 거머리들이 온몸에 붙어떼려고 하니까 다른 선교사님이 거머리를 억지로 떼면 피부가 손상되고 감염이 되니까 그냥 가만히 두었다가 오일을 넣은 따뜻한 물에담그면 거머리들이 자연적으로 떨어져 나간다고 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여러분, 우리마음속의 우상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머리같이 붙어있는 우상들을 우리가 떼려고 해봐야또 다른 우상이 생기거나 심각한 상처를 입습니다. 대신 참되신 하나님을 경배하려고 집중하면 모든 우상의 거머리는 떨어져나갑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배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조각품 ‘ 피에타’ 를 망가뜨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예술가들이 손상된 작품을 복구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그 예술가들은 로마에 도착하자마자 작품을 복구하는 일에 착수하지 않았습니다. 수개월동안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미켈란젤로가 이 작품을 만들었을 때 어떤 마음과 안목을 가졌는지를 상상하며 그것을 느낄 수 있을 때까지기다렸습니다. 그 이후 작품을 복구하기 시작했고 미켈란젤로의 작품에 가깝게 복구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피에타상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소중한 걸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작품이 깨졌습니다. 하나님의형상이 깨졌습니다. 깨진 하나님의 형상 안에수많은 우상들이 자리 잡았습니다. 깨진 하나님의 형상을 복구하는데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계획, 마음, 안목을바라보고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그때 우리안에 회복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행동을 고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바라보고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경배입니다. 우리는그분을 위하여 만들어졌고, 그분을 경배하고그분께 예배드리는 존재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할 때 우리 안에 깨진 형상들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경배해야 하는지
오늘 본문 신명기 12장에서는 장차 들어갈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경배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경배할 때는그들처럼 그렇게 하지 말라. 오직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모든 지파들 가운데서 그분의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의 여러 지파 가운데 선택하실 곳, 곧 그분께서 계실 데를 너희가 찾아야 하며 그곳에 가야 한다”(4~5절).
가나안에 거하던 주민들은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높은 곳이나 숲이 우거지고, 나뭇가지가 울창한 큰 나무 밑이나 바위 밑에신당을 짓고 숭배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행동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을 어떤 마음과 형태로 경배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훈련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들이 우상숭배 하는 모습으로 경배할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내가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모여서 예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해 너희 마음에 내키는아무 곳에서나 너희 번제물을 드리는 일이 없도록 하라. 여호와께서 너희 지파들에게 선택해주신 한 곳에서만 드려야 할 것이다. 거기서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들을 지키도록하라”(13~14절).
하나님이 선택하신 곳에서만 예배드리라는것입니다. 아무 곳에서나 하나님을 경배하지말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 말씀은 오랜 논란이 되었던 말씀입니다. 왜 한곳을 지정해서하나님을 경배하도록 하였는지를 두고 수많은 논쟁들이 있었습니다. 후대사람들이 예루살렘을 성시화하고 합리화하기 위해서 이런말씀을 만든 것이라는 시각이 대부분입니다.
이러한 시각들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그시대 사람들을 한곳에 모이도록 하신 그 시대의 의미가 있고, 오늘 이 시대의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느 곳에나 계시지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느 곳에나계십니다. 무소부재하십니다. 어느 곳에서나하나님은 경배받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상숭배에 빠질 위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 내키는 대로 어느 곳에서나 예배하라고 한다면 우상숭배의 형태가 되어 버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훈련되지 않았을 때는형식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레위기에 많은 율법을 주셨습니다. 이것도 훈련입니다. 하나님을 마음과 영으로 예배하지만 형식이 담겨있지 않은 마음은 때로 무서운 우상이 하나님을 대체하게 만들 위험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율법이라는 제사제도와 장소를 정해주심으로써 마음 내키는 대로 자기중심적인 예배를 드리지 않도록규정해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신약시대에 와서 성경과 진리 안에서 예배드리지만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고 해서 마음 내키는 대로 아무렇게나 예배드린다면 진정한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고 또 다른 우상숭배가 될 위험성이있습니다. 그래서 전통과 형식이 필요합니다.
이 말씀을 이 시대에 적용하면 무교회주의가위험하다고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어디 곳에나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집에서 예배드려도 된다는 생각이 과연 옳은생각일까. 우리의 마음이 정말 그렇게 거룩할까요. 새벽기도도 그렇습니다. 새벽기도도 집에서 혼자하면 됩니다. 마음 내키는 대로 한다면 몸이 편안해집니다. 일부러 교회 와서졸기도 힘들고 피곤할 수 있지만 마음 내키는대로 하지 않음으로 하나님을 올바로 경배할수 있는 신앙의 훈련이 됩니다. 마음 내키는대로 아무 곳에나 신당을 지으면 각자 자기집으로 흩어져서 예배드리면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받으시는 경배는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드려야 하는데 자기 자신의 마음을과신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교만해질 경우에 무교회주의의에 빠지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어느 곳에나 계시지만 교회에 나가지 않는 것은 굉장히 위험합니다.자기 마음이 기준입니다. 내 마음에 하나님이계시는데 꼭 일주일에 한 번 교회 가야하냐면서 예배에 참석하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산으로 들로 않고 돌아다닙니다. 하나님이 마음에 있다고 말은 하지만 그 마음이 하나님을경외하겠습니까. 성도들이 교회에 나와 시간을 구별해서 자기 마음을 복종시키는 것과 마음 내키는 대로 자기를 복종시키지 않는 것중에서 누가 예배를 드리는 것일까요. 함께모여서 경배하라는 것은 그 장소에만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상숭배 위험에서 거룩하게 훈련되고 구별될 필요가 있다는것입니다. 이것을 이 시대에 적용하면 우리마음대로 예배에 모이는 것을 무시하고 자기본의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기쁨의 경배
신명기 12장에서 ‘ 보다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되 기쁨으로 경배하라’ 고 명령합다. 기쁨의 경배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십계명의 제1계명을 지킬 때 의무감이 아니라하나님을 기뻐하는 기쁨의 경배를 드리게 됩니다. 신명기 12장부터 26장을 보면 하나님앞에서 기뻐하라는 말씀이 후렴구처럼 반복됩니다. 여러분, 진정한 경배가 무엇입니까.우리가 드리는 경배는 하나님이 예배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라고 높여드리는것입니다. 바로 이 경배가 기쁨이 되어야지억지로 드리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경배를 얻어내시는 분이 아닙니다. 마땅히 받으셔야 하는 분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본질이자 존재 목적이기에 하나님을 경배할 때 기쁨으로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끊임없이 회개해야 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두려워서 하는 회개만 있다면 죄의 매혹적인 유혹에 끊임없이 시달릴 것입니다. 회개와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는 경배가 있어야 합니다. 기쁨과 회개는 항상 같이 있어야 합니다. 기쁨이 없는 회개는 절망을 낳습니다. 그러나 회개 없는 기쁨은 진정한 변화가 아니라 일시적인 감정에 불과합니다.팀 켈러 목사님은 이 문제를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두려워서 회개하면 우리 자신을 미워하게 된다. 반면 기쁨에 젖어 회개하면 죄를 미워하게 된다.”두려워하는 회개만 있으면 우리 자신을 미워하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쁨의 경배를 통해서 회개하면 죄를미워하고 우리가 승리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우상을 아무리 제거하려고 해도 하나님에 대한 기쁨의 경배가 없으면 그 우상은 다시 자라나게 됩니다. 교묘하게 또 다른 우상으로 자라납니다. 우상을 내쫓는 최고의 방법은 하나님을 기뻐하는 경배입니다.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기쁨으로 경배할 때 우상이 떠나가고 우리의 삶속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기뻐하며 경배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주신 복으로
첫째, 하나님이 주신 복으로 인해서 기뻐하며 경배하는 것입니다.“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것들을 먹고, 너희 하나님여호와께서 너희 손이 닿는 모든 것에 복 주심으로 인해 너희와 너희 가족들은 기뻐하라”(7절).복을 간구하며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주신 복으로 인하여경배하는 것입니다. 경배 없는 간구는 자기중심적이 되기쉽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경배가 최우선입니다. 그다음에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간구는 그 다음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경배도 없고, 회개도 없고, 간구만 있는 기도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기도입니다. 우리의 간구가 응답되지 못하고 왜 능력이 없습니까. 경배를 잃어버린 기도, 회개가 없는 간구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간구도 내려놓고 하나님이 주신 복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기뻐하며 경배하는 자세로 나아가야 합니다. 나는 받은 복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금식하며 기도해보십시오. 간구를 내려놓고 하나님만을경배해보십시오. 수많은 복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숨 쉬고 걷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송명희 자매님이 지은 ‘ 나’ 라는 시가 있습니다. 찬양으로 불려 집니다.
“나가진 재물 없으나. 나가진 지식 없으나…”이 찬양을 눈물 흘리면서 부르는 성도들을 보면 해당이안 되는 분들입니다. 우리는 이 찬양을 부르기에 이미 다 가진 사람들입니다. 지식도, 재물도, 건강도 있습니다. 그런데왜 눈물을 흘릴까요. 비교적 적게 가졌다고 생각해서 억울해서 우는 것 같습니다. 이미 받은 복에 대해서 감사하고 감동을 받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보다 더 갖지 못해서 우는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 찬양 가사는 우리가 감히 부를 수없는 시가 아닌가 싶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복으로인하여 기뻐하며 경배하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사람들과 함께
둘째, 하나님이 주신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며 경배하는 것입니다.“대신에 너희는 너희 아들딸들과 너희 남종들과 여종들과너희 성안에 있는 레위 사람들과 함께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선택하신 곳으로 가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그것을 먹고 너희 손에 있는 모든 것을 두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기뻐해야 한다”(18절).
아들 딸 뿐만 아니라 남종과 여종, 성안에 있는 레위사람들과 함께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것입니다. 제사 가운데 화목제는 ‘ 교제의 제사’ 라고 합니다. 함께 먹는 제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나 홀로 기뻐하며 경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있는 이웃들과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 속에 남종과 여종들이 함께하라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노예제도의 보편적인 상식으로보면 주인이 하나님께 경배하러 가면 종은 바깥에서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함께하라고 했습니다. 그 시대 윤리를 뛰어넘는 하나님 나라의 윤리를 설명해 주신 것입니다. 모두함께입니다. 나 홀로 하나님을 기뻐하며 경배하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나의 기쁨이 내 주변을 둘러쌉니다.
가족뿐만 아니라 이웃들과 함께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인 동시에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함께 기뻐하며 경배하는 공동체입니다. 이 경배공동체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평등하고 동등한 자로서 모두 함께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예배를 받으십니다.
선하고 옳은 일을 행하며 기뻐하기
셋째, 하나님이 주신 율례들을 따라 선하고 옳은 일을 행하며 기뻐하는 것입니다.“삼가 내가 너희에게 주는 이 모든 율례들을 지키라.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눈앞에 선하고 옳은 일을 하면 너희와 너희 후손들이 항상 잘될 것이다”(28절).
하나님이 주신 율례에 따라 선과 의를 행하는 것은 삶속에서의 경배입니다. 흩어진 삶속에서 하나님을 기뻐하며 경배하는 것이 바로 선과 의를 행하는 것입니다.“그리고 선행과 나눔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런 제사를 기뻐하십니다”(히 13:16).
선행과 나눔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속에서의 경배입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 드리는 경배가 있고 흩어져 드리는경배가 있습니다. 삶속에서 흩어져 하나님을 기뻐하는 경배는 선과 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며 경배하는 것이 우상숭배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제1계명을 지키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의무감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기를 원하십니다.또 삶속에서 하나님께 최고의 경배를 올려드리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며 함께 모여 드리는 경배든 흩어져삶속에서 드리는 경배든 하나님만을 경배하는 삶이 진정한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는 삶이 될 것입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