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주일강단

은혜

주일강단

박종길 목사

 

사무엘하 9:1~10

“은혜는 일방적이지만 거저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십자가로 주어진 그 은혜가 삶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사무엘하 9장은 은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보통 왕조가 바뀌게 되면 옛 왕조의 후손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다윗은 사울에 이어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모든 것을 얻었고 모든 것이 평안해졌습니다. 이 시기에 다윗이 사울의 후손을 찾는 내용이 사무엘하 9장입니다. 다윗은 요나단의 자녀를 찾았습니다. 신하들은 다윗이 권력을 잡은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왕위를 지키기 위해서 반역의 씨가 될 수 있는 사울의 후손을 찾는다고 생각하고 불안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의 후손을 죽이기 위해서 찾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은혜를 나누고 베풀기 위해서 사울의 후손들을 찾았습니다.

 

 

일방적인 은혜

 

 

여러분, 은혜는 일방적입니다.“하루는 다윗이 물었습니다. ‘ 사울의 집안에 아직 살아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을 생각해 그에게 은총을 베풀고 싶구나.’ 마침 사울 집안에서 일하던 시바라는 종이 있어서 그를 불러 다윗 앞에 서게 했습니다. 왕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 네가 시바냐?’ 그가 대답했습니다. ‘ 예, 왕의 종입니다.’ 왕이 다시 물었습니다. ‘ 사울의 집안에 살아남은 사람이 없느냐? 내가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려

고 한다.’ 그러자 시바가 왕께 대답했습니다.‘ 요나단의 아들이 아직 살아 있기는 한데 다리를 절뚝입니다.’ 왕이 물었습니다. ‘ 그가 어디 있느냐?’ 시바가 대답했습니다. ‘ 지금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있습니다’ ”(1~4절).

 

 

다윗은 은혜를 베풀기 위해서 사울의 후손을 찾았습니다. 그러자 사울의 집안에서 일했던 시바라는 종이 “요나단의 아들이 살아있기는 한데 다리를 절뚝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사울의 후손이 신체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는힘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별볼일 없는 존재이기에 왕과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라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그가 얼마나 심한 불구인지, 그가 왜 그렇게 됐는지 묻지 않고 단지 그가 어디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종은 사울의 후손이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로드발이라는 말은 ‘ 로’ 는 ‘ 아니라’ 는 뜻이고 ‘ 드발’ 은 ‘ 목초지’ 라는 뜻입니다. 사울의 후손이 별 볼일없는 인물일 뿐만 아니라 황무지 같은 버려진땅에 투신해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울의 후손의 이름이 므비보셋입니다. 므비보셋은 ‘ 지독한 치욕’ , ‘ 부끄러움을 뿌렸다’ , ‘부끄러운 존재’ 라는 뜻입니다. 그가 다섯 살때 사울 왕과 요나단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죽었습니다. 사울 왕과 요나단이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유모가 므비보셋을 피신시키다가 떨어뜨려서 발목이 부러졌습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에게는 절름발이 아들이 하나 있는데 그의 이름은 므비보셋입니다. 사울과 요나단의 사망 소식이 이스라엘로부터 전해진 것은 므비보셋이 다섯 살 때였는데그때 유모가 그를 안고 너무 급하게 서두르는

바람에 그 아이를 떨어뜨려 그 아이가 절게됐습니다.”(삼하 4:4).

 

 

 

므비보셋은 이름처럼 불행한 삶을 스스로 감당해야 됐습니다. 므비보셋이 장애를 입은것도, 아버지 요나단과 할아버지 사울 왕이전쟁 중에 죽게 된 것도, 다윗에게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위협 앞에 놓인 것도 그의 책임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 따른 고통과 치욕, 불행과 두려움은 오로지 므비보셋의 몫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은혜는 일방적입니다. 까다롭지 않습니다. 은혜를 받을 자격이없고, 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았으며 받을 만한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얻는 것이 사랑입니다. 되갚을 것을 기대하지 않고 베푸는 사랑

이 은혜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행위, 조건, 자격 때문에 사랑을 베푸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그 이유만으로 은혜를 주십니다. 조건적인 은혜가 아니라일방적인 은혜입니다.

 

 

은혜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은혜가 거저 주어지지는 않습니다.“그리하여 다윗 왕은 사람을 보내 로드발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서 그를 데려오게 했습니다. 사울의 손자이며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와서 엎드려 절했습니

다. 다윗이 말했습니다. ‘ 므비보셋아.’ 그가대답했습니다. ‘ 왕의 종입니다.’ 다윗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네 아버지 요나단을 생각해 네게 은총을 베풀고 네 할아버지 사울에게 속했던 모든 땅을 네게 돌려줄 것이다. 그리고 너는 항상 내 식탁에서먹게 될 것이다’ ”(5~7절).

다윗 왕의 부름을 받은 므비보셋은 굉장히두렵고 무서웠을 것입니다. 그런 므비보셋에게 다윗이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의 아버지 요나단을 생각해 너에게 은총을 베풀고네 할아버지 사울에게 속한 모든 땅을 네게

돌려줄 것이다. 그리고 너는 항상 내 식탁에서 먹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이 땅의 삶을 마감하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될 때도 우리도 므비보셋과 같을 것입니다.만감이 교차하면서 거룩한 하나님 앞에 두려움과 떨림으로 서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

나님의 심판 앞에 서있는 모습처럼 므비보셋이 다윗 왕 앞에 엎드려 있습니다. 두려워 떨고 있는 므비보셋에게 다윗 왕의 “두려워하지 말아라”는 음성은 구원의 음성이었습니다. 죽음의 공포, 두려움의 공포에서 구원을

주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음성이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도 우리를 그렇게 부르십니다.예수님이 물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다가갔을 때 그들이 두려워하자 “두려워하지 말라. 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던 혈루병 걸린 여인이 있었습니다.

 

 

12년 동안 병으로 고생했던 그 여인은 수치스런 병 때문에 감히 예수님 앞에 나서서 병을 고쳐달라고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몰래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그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순간 병이 나은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돌아보며 “누가 내 옷을 만졌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때 그 여인이두려워했습니다. 몰래 옷자락 만진 것을 예수님이 알았기 때문에 두려웠습니다. 무서워 떨며 예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때 예수님이“딸아 안심하라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므비보셋과 다윗도 같은 상황입니다. 다윗이 므비보셋의 아버지 요나단과 맺었던 약속대로 그를 구원하고 은혜를 베풀어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자네는 내가 사는 동안 여호와와같이 내게 끊임없는 긍휼을 베풀어 주고 내가죽임을 당치 않게 하고 여호와께서 이 땅 위에서 자네 다윗의 원수들을 모조리 끊어 버리시는 날에도 내 집안과의 의리를 끊지 말고

지켜 주게”(삼상 20:14~15).

 

 

여러분, 은혜는 일방적으로 주어지지만 거저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윗이 요나단을 사랑하는 순전한 사랑 때문에 므비보셋에게 은혜를 베풉니다. 하나님도 그의 독생자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예수님이 십자가에 지불한대가 때문에 저와 여러분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므비보셋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은혜를 받을만한 자격이 없었고 되갚을 능력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그는 왕을피해서 도망했던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 우리를 사랑해주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 때문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그 은혜는 일방적입니다. 어떤 자격이나 조건 때문에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일방적인은혜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의 피를 통해서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삶을 변화시키는 은혜

 

은혜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므비보셋은 절을 하며 말했습니다. ‘ 이 종이 무엇이라고 죽은 개나 다름없는 저를 그렇게 생각해 주십니까?’ 그러자 왕이 사울의 종시바를 불러 말했습니다. ‘ 내가 네 주인의 손자에게 사울과 그 집에 속했던 모든 것을 주었다. 그러니 너와 네 아들들과 종들은 므비보셋을 위해 땅을 경작하고 곡식을 거두어 네주인의 손자에게 양식을 대도록 하여라. 네주인의 손자 므비보셋은 항상 내 식탁에서 먹게 될 것이다.’ 그때 시바는 15명의 아들과 20명의 종들이 있었습니다”(8~10절).

 

 

 

므비보셋은 황무지와 같은 곳에서 죽은 개와 다름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 므비보셋이 다윗의 식탁에서 함께 먹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므비보셋과 같습니다. 참으로 냄새나고 수치스럽고 부끄럽고 인간답게 살지 못하

는 우리를 위해서 고귀하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셔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채찍에 맞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먼저 손을 내민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먼저 손을 내미시고 찾아오셔서 불러주시고, 만나주시고,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어둠에서 빛으로, 가난에서 부요함으로, 상처와 아픔을 치유와 회복과 은혜의 자리로 변화시켜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자녀삼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을 영접한 사람들,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될 권세를 주셨습니다”(요 1:12). 여러분, 우리에게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은혜가 삶을 바꿔놓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베푼 것보다 더 큰 사랑과 은혜가 여기 있습니다. 이 은혜는 십자가를 통해서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은혜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예수님의십자가로 인해서 너무 멋있는 작품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에게새로운 신분과 인생을 주기 때문입니다.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