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주일강단

순종의 복

 

 

 

 

이재훈 목사

 

신명기 28:1~10

 

“세상은 그리스도 안에서 순종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높이시고, 그들을 대적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는 주시기에 인색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해하는 이유는 구약에 나오는 율법의 많은 내용들이 까다로운 조건들을 내거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하나님이 “나에게 한번 잘 보여 봐. 이 조건들을 너희가 통과하면 내가 복을 줄게”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법과 규칙들을 까다롭게 제시하고 그것을 통과한 우수한 사람들에게만 복을 주시는 분이라고 오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넘치도록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원하실 뿐만 아니라 열망하십니다.그것을 믿지 못하는 것은 우리에게 죄가 있다는 것이고, 불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불순종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태초 이래로 우리를 축복해 오셨습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복을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의 공식을 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때로 우리가 원하지 않는 일이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고통스러움은 하나님의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라는 것입니다.하나님은 아이가 없어서 고통스러워하던 한나를 통해 역사의 새벽을 깨우는 사무엘을 출생하게 하셨습니다. 남편과 두 아들의 죽음으로 고통스러워하던 나오미와 룻에게 다윗의 조상이 되는 복을 허락하셨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연속되던 요셉을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할 도구로 사용하셨고, 예수님의 아름다운 성품을 보여주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이해하기 힘든 일들을 통해서도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결론은 복입니다. 그것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이미 복을 주셨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얻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얻어야만 하는 민족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을 택하실 때 주셨던 약속 자체에 복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복을 얻어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미 수많은 신령한 복들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을 주신 분이십니다(엡 1:3).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을 주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복을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 안에 주어진 복을 확인하고, 체험하고, 누리는 것입니다. 이 복의 주도권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그 복을 어떻게 누리느냐는 우리에게 주도권이 있습니다. 소위 ‘ 번영신학’ 또는 ‘ 번영신앙’ 은 우리가 버튼만 누르면 하늘에서 복이 쏟아지는 것처럼 해석하지만 오늘 신명기 말씀은 그런 맥락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허락되고 약속된 복이 얼마나 부요하고, 놀랍고, 충만한 것인가를 깨닫게 해 줍니다.

 

순종 그 자체가 하나님의 복

 

여러분, 순종은 하나님의 복을 얻어내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순종하는 것 자체가 복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상태가 바로 하나님의 복입니다. 그밖에 주어지는 것들은 모두 선물입니다. 부수적인 것들입니다. 선물 자체가 복된 것이 아닌 이유는 복된 선물로 인해서 저주의 인생을 사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1992년 미국의 유명한 요트 항해사 마이크플랜트가 미국에서 프랑스까지 북대서양 횡단에 나섰습니다. 그가 탄 요트는 당시 최첨단 장비를 탑재해서 파도를 견딜 수 있었습니다. 아주 견고하고 잘 준비된 요트였습니다.그런데 11일 만에 요트가 실종됐습니다. 대대적인 수색작전 끝에 포르투갈 앞 바다에서 요트를 발견했습니다. 항해사는 실종되었고, 그 배는 완전히 전복된 상태였습니다. 웬만한 태풍도 견딜 수 있는 요트가 큰 태풍도 없었는데 왜 전복되었을까요. 배의 균형을 잡아주고 지탱해주는 부분이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떨어져 나갔기 때문입니다. 수면 아래에 있는 평형을 잡아주는 부분은 반드시 필요합니다.큰 배가 평형수를 넣는 이유와 같습니다. 배가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수면 아래의 무게가 수면 위의 무게보다 무거워야 합니다. 수면 위에 있는 것을 아무리 멋지고 최첨단 장비로 준비했다 하더라도 수면 아래에 있어야 할 것이 떨어져 나가면 전복되는 것입니다.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영혼의 무게가 상실되면 삶 속에서 아무리 많은 선물이 쏟아져도 전복되는 인생밖에 되지 않습니다.어쩌면 더 많은 것이 쏟아질수록 더 쉽게 전복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순종이 무엇입니까. 저는 우리 인생의 평형수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영혼이 결코 넘어지지 않도록 무게를 잡아주고,지탱해 주고,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선물들을 누릴 수 있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 바로 순종입니다. 우리가 순종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수많은 복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을 받아 누릴 수 있는 영혼의 준비가 바로 순종입니다.

 

환경이 아니라 순종에 좌우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복을 받는 사람들의 모습이 오늘 본문에서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복은 환경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환경이 아니라 순종에 좌우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만약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너와 함께하고 너를 찾아올 것이다. 너는 성안에서 복을 받고 들판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다”(2~3절).

성 안에 있어도 복된 삶이고, 들에 있어도 복된 삶입니다. 성읍이냐 들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도시냐 농촌이냐, 국내냐 해외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어디에 사느냐, 어떤 환경이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고생각합니다. 그러나 장소나 상황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느냐 입니다. 그것이 복된 삶의 중요한 원리입니다. 순종하는 삶은 상황에 끌리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이끌어 가는 삶입니다.

 

두 종류의 삶이 있습니다. 하나는 온도계 같은 삶입니다. 현재 온도가 몇 도라는 것을 수치로 보여주는 삶입니다. 반면 온도조절기와 같은 삶이 있습니다. 온도조절기는 온도를 바꿀 수 있습니다.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삶입니다. 하용조 목사님의 <광야의 삶은 축복이다>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광야는 축복입니다. 광야는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요, 버려진 땅이지만 광야는 축복의 땅입니다. 광야에서 발견할 수 있는 축복이란 무엇을 많이 가졌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있느냐는 것입니다.”하나님과 함께 하는 순종의 삶이라면 광야는 축복입니다. 더 큰 기적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 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판에서도 복을 받습니다. 환경이 변수가 아니라 순종이 변수입니다.

 

하나님의 복은 모든 면에서 확장

 

둘째, 하나님의 복은 어느 한 면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확장되어 나타납니다.

“네 몸에서 나는 것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땅에서 나는 것과 네 가축의 새끼, 곧 소들의 새끼인 송아지들과 양들의 새끼인 어린양들이 복을 받을 것이다. 네 바구니와 네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다.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다”(4~6절).안에서 복된 삶이 밖에서도 복된 삶으로 나타납니다. 진정한 복은 어느 한 면에서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자신만이 아니라 자녀에게도, 사람만이 아니라 소유된 동물에게도, 광주리만이 아니라 떡 반죽 그릇에도, 안에서만이 아니라 밖에서도 복을 받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활동 전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삶이 안에 있든 밖에 있든 하나님의 복은 어느 한 면에만 국한되는 것이아니라 점점 확장되어 갑니다. 나에게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코 하나님의 복은 머무르지 않습니다. “네 바구니와 네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다”는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나에게 있는 바구니와 반죽그릇이 차고 넘치는 것을 상상하십니까. 복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내 반죽그릇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용된다는 뜻 아닐까요. 내 반죽 그릇이 날마다 차고 넘쳐서 풍족한데도 차고 넘치는 것을 복되다고 할까요.여기서 복되다는 것은 내 바구니가 많은 사람에게 쓰임 받는 것입니다.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복은 절대로 한 곳에 머무르는 법이 없습니다.

 

정체되는 법이 없습니다.

 

세상에 복된 영향력을 미치게 한다

 

셋째, 이 복이 어떻게 나아가는지를 설명해줍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이유는 순종의

백성이 되어 세상에 복된 영향력을 미치게 하려는 것입니다.“만약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 온전히 순종하고 삼가 내가 오늘 네게 주는 그분의 모든 명령들을 따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상의 모든 민족들보다 높이 세우실 것이다”(1절).“여호와께서 네게 대항해 들고 일어나는 원수들이 네 앞에서 얻어맞게 하실 것이다. 그들이 한 길로 왔다가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할 것이다.

 

여호와께서 네 창고와 네 손이 닿는 모든 것에 복을 보내실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그 땅에서 네게 복 주실 것이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들을 지키고 그분의 길로 걸으면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그분의 거룩한 백성으로 세우실 것이다. 그러면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네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보고 너를 두려워할 것이다(7~10절). 이 구절에서 반복되는 말씀은 ‘ 모든 민족보다 너를 높이 세울 것이다’ 입니다. 13절에는 “여호와께서 너를 머리가 되게 하시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실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백성들을 높이십니다. 순종하는 백성들을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셔서 그들을 세상의 머리로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머리가 무엇입니까. 권력이 아니라 영향력입니다.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사람은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백성들을 높이 들어 세우시고, 그들의 원수를 하나님의 원수가 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그들이 도망가게 하십니다. 순종하는 사람들을 결코 꼬리가 아니라 머리가 되게 하십니다. 그들을 왜 머리가 되게 하십니까. 왜 높이 세우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복은 결코 한 사람에게 머무르지 않고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나만의 복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쓰임 받는 복이기 때문입니다. 나만의 번영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살리는 번영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뇌가 어떤 기능을 합니까. 몸 어딘가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곳을 보충하라고 신호를 보냅니다. 상처가 나면 우리가 고통을 느끼는 것도 뇌가 온 몸에 신호를 전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뇌가 우리 몸의 균형을 맞춰 주는 것입니다. 평안할 때까지 뇌는 계속해서 우리 몸을 깨웁니다. 이와 같이 머리는 항상 전체를 생각합니다. 균형을 생각합니다. 나눔을 생각합니다. 머리는 지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온 몸의 상처 하나까지도 회복될 때까지 절대로 쉴수 없습니다. 머리는 항상 전체를 생각합니다. 신체의 한 부분이 자기만 생각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뇌의 역할입니다. 하나님이 순종하는 백성들을 머리가 되게 하신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복이 순종하는 백성들을 통해 흘러가게 하려는 것입니다.

 

순종,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생명의 선물

 

죄는 불순종을 통해 들어왔고, 복은 순종을 통해 흘러옵니다. 아담의 불순종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아담에게 요구하신 것은 순종이었습니다. 그 순종을 통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모든 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의 불순종으로 그것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불순종의 DNA를 타고 태어났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 이루셔야만 했던 것은 바로 이 불순종을 제거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구원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불순종을 그리스도의 십자가 능력으로 제거하셨기 때문입니다. 첫째 아담이 범한 불순종을 둘째 아담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순종함으로 제거하셨습니다.

 

앤드류 머레이가 쓴 <순종>이라는 책에서 예수님의 순종에는 세 가지 목표가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 모범입니다. 우리에게 참된 순종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둘째, 보증입니다. 그분의 순종으로 우리 모두의 의를 이루셨습니다. 셋째, 우리의 머리입니다. 우리에게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머리가 되신 것은 우리 스스로 이룰 수 없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급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세상의 머리로 세우신다는 것은 복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순종하는 백성이 되도록 변화시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순종은 우리 스스로 이룰 수 없습니다. 순종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순종은 우리의 성취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새로운 생명을 얻은 자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배워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생명의 선물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을 때 우리의 불순종이 함께 죽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새 생명 가운데 우리에게 순종의 능력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할 수 없는 순종이 우리의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그리스도 안에서 순종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높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대적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우리가 순종할 때 하나님의 복을 세상에 흘려보내는 영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순종의 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시켜 주심을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신령한 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순종의 백성, 거룩한 백성 되어 세상에 영향력 미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