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주일강단

순종이 사는 길입니다

 

 

이재훈 목사

 

신명기 30:11~20

 

말씀을 택하는 것이 생명을 택하는 것이고, 순종하며 사는 길이고 복되게 사는 길입니다.

 

 

 

신명기 30장은 예언적인 말씀입니다. 예언의 내용은 복음입니다. 은혜의 복음, 구원의 복음이 예언되어 있습니다.“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사로잡힘에서 회복시키시고 너희를 긍휼히 여기셔서 그분이 너희를 쫓아내신 모든 민족들로부터 너희를 다시 모으실 것이다. 너희가 하늘 아래 가장 먼 땅으로 쫓겨 갔다 해도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희를 모아 돌아오도록 하실 것이다”(3~4절).

 

 

이 말씀에서 반복되는 단어가 ‘ 쫓겨난다,사로잡힐 것이다’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실제로 쫓겨나고 사로잡히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신명기 28장에서 하나님의 언약에 불순종했을 때 어떤 저주가 임하는지를 말씀하셨는데 그 저주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하나님의 경고에 귀 기울이지 않고, 기억하지 않고,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대로 사로잡히고 쫓겨 가고 멸망당하는 실패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단어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 다시 돌아올 것이다. 돌아오게 할 것이다’ 입니다. 쫓겨 간 곳이 어디라고 할지라도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불순종으로 인한 저주와 심판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회복시키고 돌아오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은혜와 구원의 복음입니다.

 

 

은혜의 복음, 구원의 복음

 

 

은혜의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실패와 절망과 죄로부터 건져내서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언약이 이루어질 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언약 앞에 신실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마음과 너희 자손들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시고 너희가 그 분을 너희 온 마음과 온 영혼으로 사랑하게 하셔서 너희를 살게 하실 것이다”(6절).

이 말씀이 바로 신명기에 나타난 새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순종만 요구하시는 율법적인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순종할 수 있는 마음과 능력을 주시는 분입니다. 회개할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 회개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고, 하나님을 떠난 이들이 다시 돌아오도록 이끌어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찾아오실 뿐만 아니라 추적하 시는 분입니다. 시편 23편 6절에서 다윗이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라고 고백했는데 여기서 ‘ 따른다’ 는 표현은 ‘ 추적하신다’ , ‘ 쫓아오신다’ 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추적하십니다. 프란시스 톰슨은 하나님을 ‘ 천국의 사냥개’ 라고 비유했습니다. 사냥개가 목표물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추적하듯이 하나님이 우리를 추적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돌아오기만을 막연히 기다리시지 않고 찾을 때까지 찾으십니다. 추적하시는 하나님이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이 땅에 내려오신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할례를 베풀어주시고, 굳은 마음을 제거해주시고, 하나님을 떠난 마음을 돌이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마음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셔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의 복음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 같지만 아닙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마음의 할례가 임해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고 변화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은혜의 복음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 구약은 율법, 신약은 복음’ 이라고 하는데 이 등식은 틀렸습니다. ‘ 구약도 복음이요 신약도 복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율법만이 아니라 은총으로 대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회복되려면 우리 편에서 회개가 일어나야 하는데 문제는 우리는 회개할 마음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회개할 능력 또한 없습니다. 인간 스스로의 깨달음으로 회개가 이루어진다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아닙니다. 우리의 능력으로 구원을 이룬 것이 됩니다. 우리에게 일어난 회개조차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마음속에 임해야 회개할 수 있습니다. 회개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순종을 회피하거나 변명할 수 없는 이유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너희에게 지나치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너희가 다다를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하늘 위에 있지 않으니 너희는 ‘ 누가 하늘로 올라가 그것을 잡겠으며 우리에게 선포했다고 해서 우리가 순종하게 하겠는가?’ 하고 물을 필요가 없다. 그것은 바다 밑에 있는 것도 아니니 너희는 ‘ 누가 바다를 건너가 그것을 잡겠으며 우리에게 선포했다고 해서 우리가 순종하게 하겠는가?’ 하고 물을 필요도 없다. 오히려 그 말씀은 네게 아주 가까워 너희 입에 있고 너희 마음에 있어 너희가 순종할 수 있다”(11~14절).

 

우리가 순종의 명령을 회피하거나 변명할 수 없는 이유는 지나치게 어려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많이 배워야 순종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의 조상들은 이 시대 사람들보다 많이 배우지 않았습니다. 성경공부가 많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순종을 잘했습니다. 지나치게 어렵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사회적 위치나 큰 재물이 요구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늘에 올라가서 잡아야 되는 것도 아니고, 바다 밑까지 내려가야 되는 것도 아닙니다. 신비적 체험이 요구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비현실적이고 불합리한 순종을 요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이미 우리가 순종할 수 있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순종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더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인 상태입니다.

 

신명기 30장 11절에서 14절에 대한 매튜 헨리 목사님의 해석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복음 아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믿는 하나님의 명령인 것이다(요일 3:23). 우리가 마치 눈 먼 사람처럼 ‘ 주여 누구시오니이까? 어디 계시나이까?우리가 그를 믿고자 하나이다’ 라고 묻는다면(요 9:36) 이 성경이 해답을 준다. 하늘로 올라가서 거기서 그를 붙들 필요가 없다. 그가 성육신하셔서 이 땅에 내려오셨기 때문이다. 또한 깊은 곳으로 내려가 거기서 그를 붙들 필요도 없다. 그가 부활하셔서 거기서부터 올라오셨기 때문이다. 그 말씀은 우리와 매우 가까이 있고, 그리스도께서 그 말씀 속에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메시아의 성육신과 부활의 약속들이 우리 주 예수님에게서 성취되었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고 그를 받아들이고 우리의 입으로 그를 고백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이요, 우리가 구원을 받을 것이다.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그분은 가까이계시다. 매우 가까이 계신 것이다. 율법은 분명하고 쉬웠다. 그러나 복음은 더욱 더 그러한 것이다.”

 

 

입술로 고백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사도 바울은 신명기 말씀을 인용해서 로마서를 기록했습니다.“그러면 그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 말씀이 네 가까이 있으니 네 입 속에 있고 네 마음속에 있다’ 라고 했으니 이것은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만일 당신의 입으로 예수를 주라고 고백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롬 10:8~9).신명기 30장에서 요구하는 순종이 무엇입니까. 규칙을 지키는 차원의 순종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마음으로 주님의 부활을 받아들이는 믿음의 순종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베푸신 놀라운 은혜의 선물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순종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순종은 우리에게서 무엇인가를 얻어내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베푸신 구원을 받아들이는 것이 순종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최고의 순종은 하나님이 베푸신 놀라운 구원과 역사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주님이십니다. 나의 구세주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하나님이 베풀어주신 놀라운 구원의 능력이 우리 입 가까이 있고, 그 말씀이 우리 마음 가까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마음의 문을 열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고백하고, 받아들이고, 구원의 길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순종은 어떤 율법적인 행위로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이루신 구원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없다는 것이 이미 증명되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누군가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마음의 할례를 베풀어주셔야만 사람이 변합니다. 하나님이 구원을 베풀어주시고 우리는 입으로 고백만 하면 됩니다. 우리의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마치 우리 입술에 달려 있는 것처럼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하나님이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주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조차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만큼 악합니다. 사람들은 은혜로 주어진 것들을 감사로 받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은혜로 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자신이 무엇인가를 성취한 것은 믿고 의지하는데 하나님이 은혜로 구원하시고, 죄로부터 건져주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시고, 죽음을 넘어선 생명이 아무 조건 없이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어졌다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교만 때문입니다. 값없이 순수하게 베풀어주면 받아들일 것 같지만 아닙니다. 의심하고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때로는 자존심 상해합니다. 마음속에 교만과 악이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고백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순종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순종의 삶을 살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선택과 상관이 없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행하신 모든 일들을 이루어놓으시고 우리가 입술로 고백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도록 하십니다. 음식을 먹고 물을 마시는 것처럼 너무나 쉽고 가벼운 짐입니다. 구원은 물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다 죽어가는 생명에게도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신명기 말씀이 율법적인 조항을 제안하고 우리를 피곤하게 하는 것 같지만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의 할례를 베풀어 주셔서 구원의 선물을 주시니 믿고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순종은 믿음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 능력을 회복시켜주신 사건이 바로 예수님 십자가의 부활입니다. 성령의 임재하심입니다. 순종은 우리 스스로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마음의 할례를 베풀어주시니 이제 순종해야 합니다.

 

 

어거스틴은 인간의 네 가지 상이 있다고 했습니다.첫째, 타락 이전 인간은 죄가 없지만 죄를 지을 수 있는 상태입니다. 그 상태에서 아담과 하와가 타락했습니다. 둘째, 인간이 범죄 한 이후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기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상태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죄 가운데 있습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과 부활의 능력과 성령의 임재하심을 경험하게 되면 십자가와 성령 안에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상태로 변합니다.넷째, 죄를 지을 수 없는 상태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육신을 가지고 있는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기 이전까지가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단계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인간은 죄가 없었지만 죄를 지을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 상태에서 죄를 지었습니다. 우리는 그 상태에서 세 번째 단계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죄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하면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상태가 됩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을 따라 순종하면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상태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생명을 선택하라”

 

“보라.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생명과 번성, 죽음과 멸망을 두어 내가 오늘 너희에게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분의 길로 걸으며 그분의 명령과 규례와 율법을 지키라고 명령하고 있다. 그러면 너희가 살고 너희의 수가 많아질 것이며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들어가 차지할 그 땅에서 너희에게 복 주실 것이다. 그러나 만약 마음을 돌려 너희가 순종하지 않고 만약 너희가 멀리 나가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경배한다면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한다. 너희는 반드시 멸망할 것이며 요단 강을 건너 들어가 차지할 그 땅에서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오늘 내가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삼아 너희 앞에 생명과 죽음, 복과 저주를 두니 생명을 선택해 너희와 너희 자손들이 살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분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그분을 단단히 붙들라. 여호와는 너희 생명이시다. 그분께서 너희 조상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주시겠다고 맹세하신 그 땅에서 너희가 살 것이다”(15~20절).

 

 

하나님의 언행에 순종하는 것은 액세서리가 아닙니다.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 죽음의 문제입니다.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입니다. 이 땅에서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과 죽음의 문제입니다.영원한 생명과 죽음의 문제이기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가 담당해야할 언약의 저주를 담당하셨습니다.

 

 

우리가 담당해야 될 저주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담당하시고, 모든 저주를 처리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승리를 약속하셨습니다. 이 새 언약의 축복을 우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생명을 선택하라”고 요구하십니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늘에 올라가야 되는 것도 아니고, 바다에 내려가야 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입과 마음 가까이 있습니다. 입술로 고백하고,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며 살아갈 때 생명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어느 여자 분이 자살로 생명을 마감하려는 시점에 이를 정도로 큰 고통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생애 마지막 시도로 성경을 아무데나 펴서 짚었습니다. 신명기 30장 19절 말씀이 그녀의 손가락에 짚혀 있었습니다.“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으니 너는 네 자손이 살기 위해서 생명을 택하라.”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물론 우리가 성경을 짚어서 읽으면 안 되지만 하나님이 극한 상황에서 말씀을 통해 역사하실 수도 있습니다. 극한 상황에서는 우리 마음에 있고 머리에 떠오르는 말씀을 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를 이끌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말씀을 택해보십시오. 그것이 생명을 택하는 것입니다. 순종하며 사는 길입니다. 복되게 사는 길입니다. 생명의 삶을 사는 길입니다.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생명의 삶을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