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이재훈 목사
신명기 29:1~15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십시오.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십시오. 언약의 축복을 누리십시오.”
우리는 약속이 너무 쉽게 깨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맹세와 서약이라는 제도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고대 근동의 문화에서는 맹세나 서약보다 강화된 약속 형태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언약입니다. 언약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생명을 담보로 상호간에 헌신하는 약속의 형태입니다. 히브리어 ‘ 베리트’ 는 영어로 커버넌트(covenant), 우리말로 ‘ 약속’ , ‘ 언약’ , ‘계약’ 으로 번역합니다. 언약은 당시 문화를 사용해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설명해 주는 아주 중요한 주제입니다. 고대 근동 사람들은 신실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생명을 담보로 내걸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언약의 증거
가 되는 동물을 둘로 쪼개고, 피가 흐르는 동물을 좌우로 나누고, 계약 당사자가 동물 사이로 지나감으로써 약속을 어길 경우에는 쪼개진 동물처럼 죽임을 당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의식을 체결했습니다.
“아브람이 이 모든 것을 여호와께 가져왔고 중간을 쪼개어 그 쪼갠 것을 서로 마주 보게 놓았습니다. 그러나 새는 쪼개지 않았습니다”(창 15:10).
“해가 지고 어둠이 덮이자 연기 나는 화로와 불붙은 횃불이 그 쪼갠 고기들 사이로 지나갔습니다”(창 15:17).
이 말씀은 하나님이 당시 사람들 사이에 있었던 언약체결 의식을 아브라함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설명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상징인 화로와 횃불이 쪼개진 동물 사이로 지나갔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생명을 걸고 이 언약을 지키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어 ‘ 베리트’ 를 헬라어로 번역할 때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헬라에는 이런 문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개념과 의식이 헬라 문화의 어떤 단어가 대응되는지를 찾았습니다. 그렇게 찾은 단어가 ‘ 디아데케’ 입니다.구원적 약속, 유산적 약속을 의미합니다. 한 사람이 죽음으로 인해서 효력이 발생하는 약속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가 영어 ‘Testament’ 로 번역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단어는 ‘ 베리트’ 라는 단어의 의미를 전부 담아내지는 못합니다.
구원을 위하여 언약을 맺으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인간과 언약을 맺으신 것 자체가 엄청난 겸손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언약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약속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맹세, 서약, 계약, 언약이 필요하지만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언약이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인간과 언약을 맺으셨을까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 인간 스스로 구원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루셔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이 이루신 구원을 인간이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것을 다 하신다 할지라도 인간이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믿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구원은 적용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완벽하게 행하시지만 문제는 인간에게 있습니다. 인간은 믿음조차 없기 때문에 형성시켜줘야 합니다. 그 도구가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낮추고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언약을 통해서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언약을 따라 순종하면 하나님이 마치 빚진 자처럼 우리에게 모든 것을 응답하십니다. 신명기에 나오는 하나님은 ‘ 언약의 하나님’ 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요구하십니다. 이 명령의 근거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으신 언약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과 호렙 산에서 맺으신 언약 외에 여호와께서 모압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으려고 모세에게 명령하신 언약의 말씀들입니다”(1절).
하나님이 호렙산(시내산)에서 모세와 맺은 언약 외에 모압에서 언약의 말씀을 추가로 주셨습니다. 그 말씀은 새로운 내용이 아닙니다. 보충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언제나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동떨어진 언약이 아닙니다. 모세를 통해 호렙산에서 주신 것입니다. 그 언약을 모압 평야에서 보충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과 언약을 맺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언약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다양한 시대에 다양한 형태로 주어졌지만 목적이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놀라운 기적을 보여주신 것도 언약을 믿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깨닫는 마음, 듣는 귀, 볼 수 있는 눈
“모세가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러서 말했습니다. ‘ 여호와께서 이집트 땅에서 바로에게, 그의 모든 신하들에게 그의 온 땅에서 하신 모든 것을 너희의 눈으로 보았으니 이는 곧 너희 두 눈으로 똑똑히 본 큰 시험들과 이적들과 놀라운 기사들이다’”(2~3절).
왜 이 놀라운 출애굽의 기적이 있어야만 했습니까.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때문입니다.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을 지키시기 위해서 출애굽의 기적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출애굽 당시 백성들은 기적만을 보니까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기적은 우리에게 참된 믿음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기적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기적이 하나님의 약속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깨달을 때에만 하나님을 진정 신뢰하는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그러나 오늘까지 여호와께서는 너희에게 깨닫는 마음이나 볼 수 있는 눈이나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지 않으셨다”(4절).
출애굽의 놀라운 기적을 경험했어도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는 가운데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의 언약의 의미를 깨닫기 전까지는 깨닫는 마음, 듣는 귀, 볼 수 있는 눈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깨닫는 마음, 듣는 귀, 볼 수 있는 눈입니다. 이것은 전인격적인 믿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을 광야로 이끄신 것입니다. 광야는 마음과 눈과 귀를 여는 장소입니다. 평야에서는 볼 수 없었고, 풍족한 환경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생생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게 되는 것입니다.“여호와께서 너희를 광야에서 이끌고 다니신 그 40년 동안 너희 옷은 해지지 않았고 너희 발의 신발도 닳지 않았다. 너희는 빵을 먹지 않았고 포도주나 다른 술을 마시지도 않았다. 여호와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주께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임을 알게 하려는 것이었다”(5~6절).
광야는 하나님이 얼마나 언약에 신실하신하나님이신지를 체험하는 장소입니다. 왜 광야에서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함을 체험합니까. 붙잡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이 모두가 네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하며 또 여호와 하나님께서 오늘 너와 함께 맺는 맹세에 참여해 네게 맹세하셨던 대로 또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셨던 대로 그분께서 오늘 너를 세워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분은 네 하나님이 되시려는 것이다”(12~13절).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와 백성들에게 주셨던 언약의 목적은 그들을 그분의 백성으로 삼고 ‘ 네 하나님’ 이 되시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언약의 백성들이 계속 실패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완악하기에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이삭,야곱 모두 그랬습니다. 모세 시대 백성들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창조하신 피조물들을 통해 영광 받으시는 일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백성들을 변화시키십니다. 새로운 형태의 언약을 보여주십니다.
언약에 순종하고, 구원과 복을 누리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마음과 너희 자손들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시고 너희가 그분을 너희 온 마음과 온 영혼으로 사랑하게 하셔서 너희를 살게 하실 것이다”(신 30:6).
새 언약은 예수님이 처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주신 말씀입니다.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켜 주십니다.불순종해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 이스라엘의 멸망이요, 바벨론 포로 사건입니다. 멸망의 한 복판에서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이다. 내가 이스라엘의 집과 유다의 집과 새 언약을 맺을 날들이 오고 있다. 이 언약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붙잡고 이집트 땅에서 나오게 하던 날, 내가 그들의 조상과 맺은 언약과는 같지 않다. 내가 그들의 남편이었음에도 그들은 내 언약을 깨뜨렸다. 여호와의 말이다. 여호와의 말이다. 이것이 내가 그날들 후에 이스라엘의 집과 맺을 언약이다. 내가 내 율법을 그들의 생각 속에 주고 그들의 마음에 기록할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될 것이다”(렘 31:31~33).
하나님이 언약을 맺을 날이 오고 있습니다.이 약속이 예레미야 시대에 주어졌습니다. 당시는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시대입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한다는 것은 언약이 실패함으로 저주가 역사 속에 임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멸망으로 끝내시는 분이 아닙니다.“내가 그들에게 나를 아는 마음을 주어 내가 여호와임을 알게 할 것이다.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이는 그들이 그들의 온전한 마음으로 내게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렘 24:7).
여러분, 모든 언약의 저주를 예수님이 피 흘리심으로 담당하셨습니다. 왜 피가 필요합니까. 언약이 요구하는 것은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언약의 저주를 예수님이 담당하시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새 언약을 주셨습니다. 옛 마음은 십자가에서 제거되고 새 마음을 우리에게 이식해 주심으로 새 언약의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새 언약 가운데 있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의지하고,성령 안에 있다면, 하나님께 요구할 수 있습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얻어낼 수 있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다스림 가운데 있기 때문에 그분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언약에 순종하는 자들은 구원과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새 언약의 관계 속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십시오.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십시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언약의 축복을 누리십시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