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순종의 저주
불순종의 저주
이재훈 목사
신명기 28:15~25
“하나님은 악을 미워하고 저주하시는 동시에 악을 처리하시고 해결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끝은 저주가 아니라 저주가 없는 곳입니다.”
오늘 본문은 불순종에 따른 저주에 대한 말씀입니다. 읽기 불편할 정도로 끔찍한 내용들입니다. 처음 성경을 접하시는 분들은 깜짝 놀랄만한 내용들입니다. 성경은 읽고 듣기 좋은 명언들이 나열되어 있는 줄 알았는데 이런 저주의 내용들이 있는 것을 보고 받아들이기 어려우실 수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하신 분들에게도 신명기 28장 후반부에 나오는 저주의 말씀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 하나님이 주신 준엄한 말씀입니다. 저주라는 단어가 하나님께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랑, 자비, 긍휼, 용서등의 단어들만 하나님께 해당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영국의 무신론자 ‘ 리처드 도킨스’ 가 쓴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에서 “이런 부분 때문에 성경은 믿을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다”고 혹평을 했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구약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은 틀림없이 허구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중에서 가장 불쾌한 인물이다. 공공연하게 질투하고, 옹졸하고, 부당하고, 용서를 모르는 권위적 인물인데다 복수심이 강하고 피에 굶주린 종족 말살자이며,여자와 동성애를 혐오하며, 인종차별주의자며, 영아를 살해하고 심지어 자식까지도 살해하는 인물이다.”
이 내용은 오늘 본문을 근거로 성경을 믿을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책이라고 비판한 것입니다. 이 책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그의 주장이 옳기 때문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옳은 생각은 아닙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대변해 주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저주는 인간들의 저주와 다릅니다. 인간들의 저주는 자기 자신도 불의하고,죄악 가운데 있고, 복수심과 질투심, 그리고 과장된 미움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저주는 철저하게 악을 미워하시는 저주입니다. 선하시고 악을 미워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나오는 저주입니다.
악을 저주하시는 하나님
선이란 악이 무슨 일을 하든지 유약하게 끌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선은 악에 대하여 저항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대적하는 것입니다. 악을 미워하고 저주하는 것입니다.악에 대한 행동입니다. 만약 성경에 하나님이 저주하시는 내용이 없다면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 아닙니다. 잠언 8장 13절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12장 9절에서는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악을 미워하시듯 우리도 악을 미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란 하나님이 악을 미워하시듯 우리도 악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선하신 하나님이 악을 미워하시기에 그분을 경외하는 자들도 악을 미워해야 합니다. 악을 미워할수록 선한 것입니다. 악을 저주하시는 하나님은 선하신 분입니다. 악은 우주적인 반역입니다. 세상은 날마다 하나님을 반역하는 우주적인 싸움터입니다.
아마도 악에 편승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책을 내면 낼수록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악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볍게 생각하는 악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우주의 통치자이시며, 만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배역하고 반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통치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통치자라고 반역하는 것입니다. 그런 세상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항상 머물러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자들의 모든 불경건과 불의에 대해서 하늘로부터 나타납니다”(롬 1:18).
이 세상에 가득한 불경건과 불의에 대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마치 먹구름이 가득 끼어 언제 비가 올지 모르는 상황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판하시는 하나님
성경의 역사는 하나님이 악을 미워하실 뿐 만 아니라 악에 대하여 행동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증거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냈습니다. 노아 시대에는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쓸어버리셨습니다. 열 가지 재앙으로 당시 최강대국이었던 이집트를 심판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사용하셔서 가나안 족속을 심판하셨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앗시리아로, 남왕국 유다는 바벨론으로 심판하셨습니다.
심판은 구약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피상적으로 읽는 사람들은 신약에 오면서 하나님의 심판이 희미해지거나 사라졌다고 생각하는데 정반대입니다. 신약에서는 심판을 구약보다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분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도신경의 신앙고백도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고 말합니다.요한복음 5장 22절에서는 “아버지께서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은 다시 세상의 심판자로 오실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하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위협도 가하지 않고, 간섭도 하지 않으며, 심판도 하지 않는 신을 원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신이 범신론(pantheism)입니다. 신이 있다고 믿지만 산에도 있고, 들에도 있고,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만물에 내재하는 신이라는 것입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인간에게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고, 인간에게 옳고 그름을 요구하지 않고, 그저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필요할 때만 쓰고, 인간이 중심이 되어서 인간에게 도움만 주는 신을 원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복종하고, 순종하고, 심판 받아야 할 신이 아니라 인간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신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만들어진 신입니다. 진정한 신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며,간섭하시고, 심판하시되, 만물을 구속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악에 대하여 심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불순종을 저주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저주는 하나님의 강력한 경고
여러분, 순종이라는 단어를 불순종으로, 복이라는 단어를 저주로 바꾸면 정확하게 동일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만약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 순종하지 않고 내가 오늘 네게 주는 그분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삼가 따르지 않으면 이 모든 저주들이 네게 닥쳐 너를 덮칠 것이다”(15절).
지난주에 살펴 본 복들을 뒤집는 내용입니다. 놀라운 것은 복에 관한 말씀보다 저주에 관한 말씀이 세 배나 많다는 것입니다. 복에 관한 구절은 14구절인데 저주에 관한 말씀은 54구절이나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저주를 좋아하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인간들이 순종할 가능성보다 불순종할 가능성이 훨씬 많다는 것입니다. 복을 받는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저주로 나아가는 삶에는 쉽게 빠져든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우리를 저주의 삶으로 인도하는 요소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선택해야 하는 길은 넓은 길이 아니라 좁은 길이라는 것입니다.
시편에 많은 신앙 고백과 하나님에 대한 찬양, 간구가 있지만 가장 많은 내용을 차지하고 있는 말씀은 순종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복과 악한 자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입니다. 저주가 이미 결정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저주가 향하지 않도록 미리 경고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소름끼치는 저주를 퍼붓는 것을 좋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저주의 말씀을 더 많이 하신 것은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시고 보호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강력하게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사랑에서 나온 경고의 말씀들입니다. 이 경고의 말씀들은 축복의 단락과 마찬가지로 우리 생활의 모든 영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개인, 가정, 경제, 사회, 나라, 민족, 생물들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저주는 광범위하게 주어집니다.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악(惡)’
“이 모든 저주들이 네게 닥칠 것이다. 그 저주들이 너를 따라가 네가 멸망할 때까지 너를 따라잡을 것이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 순종하지 않았고 그분이 네게 주신 그 명령과 규례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45절).결코 피할 수 없고, 눈 감을 수 없으며, 벗어날 수 없는 하나님의 강력한 저주가 임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모든 경고와 저주를 가져오는 불순종의 다양한 원인과 모습들이있습니다.
“네가 그분을 버린 그 악으로 인해 여호와께서 네가 손을 대는 모든 일에 저주와 괴로움과 질책을 보내 네가 멸망하고 갑작스러운파멸에 이르게 하실 것이다”(20절).악이란 하나님을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버린 그 자체가 악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버린 것 자체가 악이며, 하나님의 저주를 불러올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상태입니다.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고, 적극적 순종상태에 있지 않으면 그 자체가 악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악한 일이나 나쁜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웃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적극적으로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으로 사랑하는 것은 지극히 일부입니다. 더 적극적으로 사랑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네가 번창하는 때 네 하나님 여호와를 즐겁고 기쁘게 섬기지 않았기에”(47절)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쁘고 즐겁게 섬기는 삶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그 자체가 악한 상태입니다. 하나님을 더 기뻐하고 즐거워하지 않으면 이런 삶에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하나님이 주시는 번성함보다 하나님을 더 기뻐하기를 바랍
니다.“만약 네가 이 책에 쓰여 있는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삼가 따르지 않고 영광스럽고 두려워할 이름, 네 하나님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으면”(58절).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우리는 대적을 두려워하고,대적에게 복종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영광스러운 이름을 높이지 않을 때 수치스러운 이름을 뒤집어쓰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인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 삶 속에 하나님의 진노가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대로 이루어진 사례들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과 열국의 역사에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완전히 쏟아지지는 않았지만 소나기처럼 내렸습니다. 아직 하나님의 진노의 근원이 다 쏟아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겠습니까. 불순종에 대한 저주와 심판의 경고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악을 미워하시고, 우리에게 경고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악을 처리하시는 분이십니다. 세상에 가득한 진노의 먹구름을 해결하시는 분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하나님도 이 세상이 진노의 먹구름으로 가득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게 진노가 쏟아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 난제를 해결하신 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예수님의 십자가 부활은 악에 대한 하나님의 승리입니다.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왜 있었습니까. 끔찍한 악이 만든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정치, 경제, 문화, 도덕,종교, 영적인 영역에 가득한 악의 결과를 담당하셨습니다.악의 결과를 십자가에서 못 박히심으로 받아내셨습니다.예수님의 죽음은 그분 한 분만의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의 의로운 사람이 죽은 것으로 끝난 사건이 아닙니다. 그분은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셨고, 노하시는 하나님이 내리신 해결책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슬러 대적하는 조문들이 담긴 채무 증서를 제거하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 가운데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또한 십자가로 권력들과 권세들을 무장 해제시키시고 그들을 공개적인 구경거리가 되게하셨습니다”(골 2:14~15).
여러분, 채무증서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지불해야 할 죄악의 대가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쏟아질 진노의 소나기를 모두 제거하셨습니다. 삶 속에서 끊임없이 하나님을 버리고, 불순종하고, 감사하지 아니하고, 죄악에 속해 살아감으로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저주들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성육신 하신 그분의 몸에 이 상에서 행할 수 있는 최악의 일을 행하게 하심으로써 악을 처리하신 사건입니다. 십자가는 권력과 권세들을 무장해제 시켰습니다. 악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를 그분의 몸으로 짊어지셨기에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은 신명기 28장의 저주가 이미 처리된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바른 백성들의 집이 심판에서 넘어가듯 하나님의 모든 진노의 저주가 넘어가는 역사가 십자가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악과 저주가 온전히 제거된 세상을 약속하셨습니다. 악이 없는 세상은 인공지능이 발전하면 오는 세상이 아닙니다.그런 곳을 우리는 ‘ 유토피아’ 라고 합니다. 유토피아는 헬라어로 ‘ 후 토포스’ , 그런 곳은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약속된 세상은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에 나옵니다.
“그 후 천사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 강을 내게 보여 주었습니다. 강물은 도성의 길 한가운데로 흐르고 있고 강 양쪽에 있는 생명나무는 매달 열매를 맺어 열두 열매를 맺고 나뭇잎들은 나라들을 료하는 데 쓰입니다. 또 다시는 저주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도성에 있고 그의 종들이 하나님을 섬길 것입니다”(계 22:1~3).
그 영광스러운 나라를 위하여
신명기 28장에서 끊임없이 경고했지만 역사 속에서 저주들이 쏟아졌습니다. 저주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있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살아날 길은 십자가를 붙잡는 것뿐입니다. 십자가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진노가 해결되었고, 모든 악의 세력들이 무장해제 되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영광스러움을 통해서 우리에게 저주가 없는 곳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허락되었고, 부활을 통해서만 갈 수 있는 곳은 저주가 없는 세상입니다. 저주가 없다는 것은 배반이 없다는 것이고, 악이 없다는 것입니다. 악이 완전히 소멸되고 처리된 곳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저주가 없는 곳입니다. 악의 저주와 권세가 사라진 곳입니다.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 받은 이들, 영화롭게 된 이들, 더 이상 죽음이 없는 영원한 생명 가운데 하나님만 온전히 섬기는 나라가 우리에게 약속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악을 미워하고 저주하시는 분인 동시에 악을 처리하시고 해결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끝은 저주가 아니라 저주가 없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의 악과 저주를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해결하시고, 그 영광스러운 나라를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악에 대한 모든 저주를 처리하고, 새로운 나라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직도 이 땅에 악이 있고, 악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가 머무는 땅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땅을 살아가며 악을 미워하고, 악을 저주하며, 악에 속한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악의 모든 권세를 깨뜨리시고 승리하심을 통해서만 악을 이길 수 있습니다.다시는 저주가 없는 천국을 소망하며 이 땅에서 악에게 승리하는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