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새벽부흥집회 2 / 주 안에서 죽는 자
말씀: 하용조 목사
본문 요한계시록 14장 13절
오늘은 계시록에 나타난 두 번째 축복을 나누기 원합니다. 두 번째 축복은 14장 1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13장은 용의 이야기입니다. 14장은 어린양 신부의 이야기입니다. 12장은 짐승의 이야기입니다. 11장은 교회와 사탄과의 싸움입니다. 14장에 어린양 신부의 축제와 승리가 나옵니다. 어린양 신부의 축제의 클라이맥스가 바로 13절의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이 말씀과 동일한 고백을 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죽음에 대한 오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있습니다. 죽음은 슬픔, 비극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슬퍼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죽음은 인생의 종말이요 끝이 아니라 출발이요 시작입니다.
그렇습니다. 죽음은 인생의 종말이요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싫어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죽음은 영원한 생명의 시작입니다. 진정한 삶의 시작입니다. 따라서 죽음은 저주가 아닙니다. 늙어서 죽든지, 병들어 죽든지, 사고를 당해 죽든지 크리스천의 죽음은 저주가 아니라 부활이요 승리요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싶은 내용입니다. 저는 죽음이 가까울수록 여러분의 얼굴이 빛나기를 축원합니다. 기쁨으로 가득차기를 축원합니다. 죽음을 환영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누구나 다 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핍박을 받고 죽는 것이 축복입니다. 더 큰 축복은 순교입니다. 이것은 완전한 축복입니다.
저희 교회 고 박모세 선교사님이 단동에 교회를 세우러 가셨다가 1월 1일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고 김사무엘 선교사님은 이라크에 가셨다가 혈액암으로 두 달 만에 하나님 나라로 가셨습니다. 최근에 인도네시아 선교사로 가셨던 전광호 박사님이 급한 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중국 한 선교사 가정은 부인과 딸이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터키 선교사님의 딸이 풍토병으로 죽었습니다. 이태화 형제는 매주 고향으로 내려가 복음을 전하다가 서울로 돌아오던 중에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600여 명의 선교사를 현지에 보내는 가운데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왜 이렇게 귀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데리고 가실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죽음은 내 곁에 있구나’ ‘이것이 우리의 운명이구나’ ‘예수믿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죽기로 결정하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 진지해집니다. 내가 믿고 있는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있습니다. 종교적인 향락인지 내 생명을 걸어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성도의 죽음은 축복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죽음이 영광스럽고 의미가 있고 축복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 죽음을 해결한 사람만이 떳떳하게 살 수 있습니다. 후회 없이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이 설교를 생각하다가 한 선교사님을 모셨습니다. 이분은 카자흐스탄에서 선교를 하시다가 추방을 당하셨고, 필리핀에서 사역을 하시다가 작년에 카자흐스탄으로 다시 들어가셨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아내가 살해를 당했습니다. 한재성 선교사님입니다.
아내 몫까지 사랑하고 싶습니다
-선교지에서 아내 잃은 한재성 선교사 간증-
선교사가 교회를 방문하는 것은 복되고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거절할 수가 없어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왔습니다. 1997년 4월에 카자흐스탄에 파송을 받았고, 그곳에서 3년간 사역을 하다가 비자 문제로 추방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필리핀에서 4년간 교회를 개척하면서 카자흐스탄에 다시 들어갈 수 있기를 기도했고, 2004년 4월 다시 그곳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카자흐스탄으로 다시 간지 5개월만인 9월 13일 아침 혼자 집을 지키던 아내가 괴한들에게 살해당했습니다. 제가 집으로 들어가려고 했을 때는 이미 괴한들이 아내를 살해한 후였고, 저는 쇠파이프로 머리를 맞고 쓰러졌습니다. 사람들은 그래도 한선교사라도 살았으니 감사하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물론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때 아내와 함께 죽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합니다.
아내를 떠나보내고 5일째 되는 날 현지에서 장례식을 했습니다. 현지식으로 강단 아래에 아내의 시신을 뉘여 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가 끝날 무렵 찬양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내가 네 아내를 받았느니라.’ 그래서 너무 힘들지만 두 손을 높이 들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제 아내를 가져가십시오. 다 가져가십시오.’ 마치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에서 아들 이삭을 바치는 심정으로 제 아내를 드렸습니다.
한국에 들어와서도 마음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10월 달에 중보기도 컨퍼런스에 참석했습니다. 그때 강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 이곳에 아내를 잃은 한 남자가 와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그 일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었던 일입니다. 이제는 조금 쉬면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 가운데로 들어가십시오.”
이 외에도 많은 분들이 예언과 환상을 통해 저에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저는 성경책에 피가 묻어 있기에 피가 튀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다시 카작에 갔을 때 아내가 죽을 때 성경책을 꼭 움켜잡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괴한들은 그 책에 중요한 것이 들어있는 줄 알고 흉기로 손을 찔렀다고 했습니다. 저는 왜 그런 고문의 흔적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었는데 아내는 마지막까지 하나님이 말씀을 붙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예수님의 피가 묻어있습니다. 그러나 제 성경책에는 거기에 더해서 제 아내의 피가 묻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그 땅으로 다시 보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7월달에 갔었는데 깜짝 놀랐던 것은 제 아내의 영혼이 그 땅에 만연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 아내가 저를 그 땅으로 부르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욕심이 생겼습니다. 아내의 피 값을 받아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 민족을 바라보는 순간 이 전보다 더 사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내 아내를 죽인 민족이지만 그들이 사랑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담대함이 생겼습니다. ‘나는 당신들에게 예수님을 믿으라고 말할 자격이 있다. 예수님의 피 값으로도 부족함이 없는데 거기에 난 아내의 피 값까지 돌려받고 싶다.’
선교는 순교입니다. 저는 그 일 이후로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렇게 죽을 수만 있다면 너무 좋겠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담대함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다시 오실 주님을 맞고 싶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고후 5:13)이라고 말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죽을 수 있고 주님을 위해서 미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서철 기자 chol@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