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충격, 부흥의 물결’ 6 / 내 생명을 받으소서
여섯째날 / 말씀: 하용조 목사사도행전 20장 24절오늘 본문을 기초로 사도행전에 나오는 영성의 세 가지 줄기에 나누려고 합니다. 사도행전의 첫 번째 영성은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나타나심, 성령의 다스리심과 인도하심의 영성입니다. 사도행전은 성령님이 하신 일을 이야기한 책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끌고 가는 것은 목사가 아니라 성령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전체의 주제는 성령님의 다스리심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은 바람처럼 불처럼 임하신 성령님을 충만을 경험하며 방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성의 기도가 방언의 기도로 바뀌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성의 기도도 하십시오. 그러나 이것을 넘어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주시는 기도를 하시길 축원합니다. 온누리교회 목회를 하다보면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신기하기도 합니다. 사실 온누리교회의 큰 목회를 내 힘으로 한다고 생각하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하시고 나는 따라간다고 생각하면 신나고 재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따라가는 ‘뒤처리반’입니다. 능력이 없다고 걱정하시 마십시오. 실수와 실패뿐이라고, 어리석다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따라가면 협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무식한 자도, 가난한 자도 다 쓰시며 하나님의 도구로 만들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불쏘시개로 만들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세 가지 영성초대교회 때 성령님을 부어주시고 교회를 세워주신 것처럼 현대에 있어서 교회의 주인도 성령님이십니다. 아무리 큰 교회도 이런 원칙이 없으면 교회는 분열하고 사라지게 되고 아무리 작은 교회라도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면 살아납니다. 청소년 집회 패션(Passion)을 생각해보십시오. 청소년들 문제가 많다고 얘기하지만 패션에 가면 기도하는 젊은이가 있습니다. 하루 3시간씩 기도하고 금식하며 찬송하는 젊은이가 있습니다. 정신이 나가서 그런 게 아닙니다. 성령 받아서 그렇습니다. 세상은 어두워도 하나님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들 때문에 희망이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두 번째 영성은 팀워크의 영성입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혼자 일하지 않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에게 동시에 성령이 임했습니다. 개인적으로 혼자하려는 신앙은 위험합니다. 신앙은 서로 보완하는 것입니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이방이든 유대든, 유식이든 무식이든 모두 다 하나님의 나라에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공동체로 합심해 기도하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그렇게 할 때 능력이 나타납니다. 초대교회의 역사를 보면 탁월하고 카리스마가 있는 한 개인이나 지도자에 의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은사에 따라 팀워크를 이뤘습니다. 특히 중요한 건 사도들이 스데반 등 집사들을 세우고 평신도와 함께 사도행전을 써 나갔다는 사실입니다. 베드로나 스데반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시오 성령님이십니다. 온누리교회도 예수님이 주인입니다. 하용조 목사가 초점이 될 수 없습니다. 저는 그냥 사라질 것이며 예수님은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이것이 비전교회를 만들고 네트워크를 해 서로 협력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모두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섬기는 동역자들입니다.세 번째 사도행전의 영성은 헌신과 열정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열정을 빼고 나면 아무 것도 남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비참한 교회는 열정을 잃어버린 교회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문 여는 그런 교회가 아니라 365일 쉬지 않고 문을 활짝 열린 교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언제 가도 먹을 게 있고,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고, 사랑이 넘치는 그런 교회여야 합니다. 교회를 10년마다 부쉈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많이 써서 바꿀 정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문이 닳을 정도로 아낌없이 교회를 쓰길 바랍니다. 이것이 살아있고 열정이 넘치고 생명력 있는 교회입니다. 언젠가 일본 고베를 간 적이 있는데 그 곳의 한 회사가 발상의 전환을 실천해내고 있었습니다. 연못에 갔더니 물 위에 돌이 떠 있었습니다. 원리를 보니 밑에 받침을 받쳤더군요. 건물 창문도 밑쪽으로 만들었습니다. 익숙한 문의 사이즈를 바꿔버렸습니다. 교회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교회가 날마다 성령 안에서 새롭게 변해가길 원합니다. 나이와 직업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령을 받고 미치도록 사십시오. 죽을 때 미치도록 살지 않았다면 남는 게 없습니다. 초대 사도들은 세상의 목표를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단 하나,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저는 대학교 때 CCC를 다니면서 전도에 미쳐있었습니다. 이를 보다 못한 아버지께서 김준곤 목사님께 전화를 해 말려달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대학교 때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지금 이 목회를 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결국 예수님께 헌신한 것만이 남습니다. 사도행전의 사람들은 예수에 미쳐 균형감각을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역사를, 교회를,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사도행전입니다. 사도행전 20장 22~23절을 읽겠습니다.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성령님과 수많은 예언자가 예루살렘에서의 환난을 예고했는데도 바울은 예루살렘을 향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도행전 19장 21절을 보면 로마로 가야겠다는 열정 때문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주신 목표와 비전을 발견하라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성과 환경이 사람을 이끌고 가지 않습니다. 비전이 이끌고 갑니다. 본문에서 ‘내가 달려갈 길’은 인생의 목표입니다.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은 곧 사명을 강조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에겐 인생의 목표와 사명이 중요합니다. 내 생명을 다 바쳐도 아깝지 않다는 도전입니다. 무엇이든지 생명을 바꿀 만한 일이 아니면 가치가 없습니다. 남는 게 없습니다. 목숨을 걸고 한 것만이 남습니다. 나머지는 시간이 지나면 다 사라집니다. 직장 잡고 결혼하고 애 낳고 그저 그렇게 살다 죽는 것을 원하십니까. 목숨을 걸만한 것을 붙잡으십시오. 대담한 계획을 세우십시오. 할 수 있을 까 묻지 마십시오. 며칠 전 CGNTV 후원의 밤에서 받은 감동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한 회사의 대표가 후원으로 10억을 결정한 일이 있었습니다. 대담한 도전을 한 것입니다. 저는 하루종일 그 자매를 위해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담한 도전을 하면 주위 사람들이 눈을 뜨게 됩니다. 가능한 것들은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습니다. 대담한 목표를 설정하십시오. 여러분이 생명을 걸면 대한민국이 변할 줄로 믿습니다. 비즈니스를 해도 목숨을 걸고 하십시오. 이것이 영성입니다. 바울은 로마를 붙잡았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붙잡을 것입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목표와 대담한 비전이 있길 원합니다. 내가 잘되고 돈 벌고 명예를 갖겠다는 것이 아니라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겠다는 거대한 미션이 여러분의 삶에 피어나길 소망합니다. / 정리 차명권 기자salt@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