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새벽부흥집회 2월 4일 말씀 | 하용조 목사
이렇게 기도하라
본문: 누가복음 10장 25절~11장 13절
하나님 앞에 나갈 때에는 어린 아이처럼 나가기 바랍니다.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십시오. 하나님께 요청하십시오. 그것은 창피한 일도 부끄러운 일도, 자존심 상하는 일도 아닙니다. 아주 당당한 자녀의 도리입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행위를 통해 영생을 얻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면적 자기성찰입니다. 구원은 행위에 있지 않습니다. 믿음에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율법사는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행위를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얼마나 새벽기도 많이 나오고, 봉사를 많이 했느냐는 행위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더 먼저 우선하는 것은 내가 아니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먼저 강조해야 합니다.
말씀대로 살라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는 율법사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는지 물으셨고, 이에 율법사가 대답했습니다. 10장 27절입니다.“‘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해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고’고 했고, 또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했습니다.”이 이상 완벽한 대답이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율법사의 대답을 향해 “그래, 그 말이 맞다. 그럼 그대로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들은 흔히 “가난한 자를 위해 삽시다”라고 말하면 자기가 가난한 자를 위해 사는 줄로 착각합니다. 율법학자는 자신이 옳다는 것을 보이려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그러면 누가 제 이웃입니까?”라고 말하니까 예수님은 강도 만난 사람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레위인도 제사장도 아닌 한 평범한 사람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들어 강도를 도왔습니다. 사랑보다 더 깊은 단어가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어떻게 사랑하십니까. 불쌍히 여깁니다. 불쌍히 여긴다는 건 죄의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기름과 포도주로 상처를 싸매주고 자기 짐승에다가 태워주었습니다. “세 사람 중에 누가 이웃이냐”는 말에 율법학자가 대답합니다. “자비를 베푼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맞다.” 예수님의 대답이 또 재밌습니다. “그렇게 하라.” 오늘 주제는요 그냥 “그렇게 하라”입니다. 은혜 받았다고 눈물 흘리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그렇게 살라는 것입니다.오늘 본문에 마리아와 마르다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마르다는 일 중심이고, 마리아는 예수님 중심입니다. 예수님이 이 자매의 집을 방문했을 때 마리아는 다른 것을 다 포기하고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누가 더 예수님을 위해서 좋은 일을 했느냐 하는 게 이 본문의 요점입니다. 교회에서도 예수님을 위해서 일을 하다보면 예수님을 놓칠 때가 참 많습니다. 성경을 읽기 위해서 촛불 한 자루 훔치는 것처럼 목적은 좋은데 그것을 이루는 방법이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해답보다 중요한 것은 감동입니다. 적어도 내가 나의 삶에 대해서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목적을 분명하게 해서 신앙생활 할 때 시험에 들지 않고 불평도 하지 않게 됩니다. 여러분, 사역 많이 하십시오. 그러나 원망과 불평 없이 하고, 남하고 비교하고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마르다가 불평하자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나 때문에 고생하는 거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마리아는 더 좋은 걸 택했기 때문에 빼앗기지 않을거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국 인생은 지나놓고 보면 “당신이 무엇을 했느냐”보다 “당신이 하나님 앞에서 누구냐”는 것이 남습니다.
주님이 주신 기도
본문 11장 1절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엄청난 사역에도 굉장히 평온하셨습니다. 순간순간 예수님은 홀로 밤이 맞도록 산에 가셔서 새벽 오히려 미명에 기도하셨습니다. 기적을 베풀 때마다 인기와 대중을 떠나서 하나님과의 단독자로 만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보면 위로가 되고 안심이 되고 편안해집니다. 바쁜 사람 만나면 편안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의 모습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우리 교인들을 편안하게 만나주지 못하고 있는 저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2절부터 예수님은 기도를 가르칩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우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기도는 배우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기도는 알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성령이 임하면 성령님이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서는 기도의 전부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제일 첫 번째 기도는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라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기도는 대상을 분명하게 해야 됩니다. 두 번째는 내 기도도 아니고 땅의 기도도 아니고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영화롭고 영광스럽게 되기 위한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옵소서”입니다. 우리 기도의 내용에는 항상 하나님의 나라가 있어야 합니다. 네 번째로는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여 주옵소서”라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를 계속 하고 있는 한 여러분들은 절대로 잘못된 기도를 할 수가 없습니다. 바른 신앙은 바른 기도를 하게 하고, 잘못된 신앙은 잘못된 기도를 하게 합니다. 다섯 번째로 중간인 기도의 허리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일용한 양식 달라는 기도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을 무시하지 않으셨습니다. 너무 영적인 것만 기도하지 않았고 내 삶의 필요한 것들을 요구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것은 정상입니다. 건강을 구하고, 밥을 달라고 하고, 위기에서 건져달라고 하는 것은 다 정상입니다. 이 같은 기도를 우습게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들이 엄마에게 와서 “어머니 죄송하지만 밥 한 그릇만 동냥해 주시겠습니까?”라고 합니까? 아들은 엄마를 딱 보자마자 “엄마 밥 줘”라며 당당하게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그게 자식입니다. 하나님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구하는 것은 정상입니다. 미안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11장 4절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모든 사람을 용서한 것같이 우리 죄도 용서해 주소서. 그리고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소서”라는 부분을 놓고 자기는 이렇게 기도 못하겠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내가 용서한 것만큼만 내 죄를 용서한다면 자기는 용서받을 게 하나도 없다라는 겁니다. 이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가 내 죄를 용서해주신 것처럼 나도 다른 사람을 용서하며 살게 해 주옵소서”라고 이해하면 좋습니다. 일곱 번째로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입니다. 우리의 기도 가운데 영적 전쟁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우리를 집어삼키려고 하기 때문에 언제나 영적전쟁을 경계하고 마귀를 경계해야 합니다. 마귀는 우습게 생각할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겁먹을 존재도 아닙니다.
아이처럼 구하라
예수님께서는 이제 기도의 태도, 자세에 대해 이야기를 하십니다. 한밤중에 찾아와 빵 세 덩어리를 달라고 끈질기게 요구하는 친구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친구라는 이유만으로는 그가 일어나 빵을 갖다 주지 않을지라도, 끈질기게 졸라 대는 것 때문에는 일어나 필요한 만큼 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비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앞에 나갈 때에는 어린 아이처럼 나가기 바랍니다.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십시오. 하나님께 요청하십시오. 그것은 창피한 일도 부끄러운 일도, 자존심 상하는 일도 아닙니다. 당당한 자녀의 도리입니다. 그래서 9절에 유명한 말이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찾을 것이다.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오늘 여러분이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축복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단도직입적으로 가세요. 빙빙 돌리고 멋지게 말하고 이러지 마시고 그냥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실 것입니다. / 정리 차명권 기자 salt@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