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새벽부흥집회 2월 13일 말씀 | 하용조 목사
하나님 나라는 무엇과 같은가 본문: 누가복음 13장 18~30절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을 믿는 순간에 예수님의 부활, 생명, 능력, 새로움이 내안에 접붙여지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나도 모르게 자랍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지만 항상 사모할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지만 저 땅을 사모합니다. 그러나 이 땅과 저 땅은 구분된 것이 아니라 동시에 존재합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나라 안에 사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눈물과 고통과 한계와 외로움과 갈등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 살면서 새 하늘과 새 땅, 하나님의 나라를 품고 사는 사람들은 두 세계를 왔다 갔다 하면서 삽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아주 신나고 멋있게 아름답게 살 수 있습니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그렇지 않음은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자라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 자리를 잡고 자라난다는 사실은 기대요, 상상이요, 희망입니다.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 오늘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두 가지 비유를 들어 주셨습니다. 첫째는 겨자씨 비유고 두 번째는 누룩의 비유입니다. 먼저 겨자씨 비유를 보겠습니다. 18~19절에서 겨자씨는 작은 것을 상징합니다. 겨자씨는 극히 작지만 자라서 나무처럼 커지면 새들이 와서 깃들일 정도의 나무가 됩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나라로 비유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처음 내 마음에 임할 때 그 범위가 광범위해서 규정하기 어렵습니다. 보통 나라라고 하면 토지, 국민, 주권이라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나라가 아니고 영적인 세계입니다. 하나님은 영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듯이 하나님의 나라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중요한 개념은 토지가 통치의 개념입니다. 하나님이 지배하고 다스리는 영역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이 계시는 그 장소에서 영향력과 통치력이 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인 순간에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 들어온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는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물건처럼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기 때문에 작은 씨와 같다는 것입니다. 예수라는 작은 씨,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씨앗이 심겨진 것입니다. 생명은 신진대사입니다. 끊임없이 허물을 벗고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을 믿는 순간에 예수님의 부활, 생명, 능력, 새로움이 내안에 접붙여지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나도 모르게 자랍니다. 겨자나무가 되는 것처럼 성장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자란다’ 어떤 사람은 자라다가 멈추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갈밭, 길가 밭, 가시덤불밭, 옥토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씨를 심으면 30배, 60배, 100배로 쑥쑥 자랍니다. 쓴 뿌리가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뿌리를 내리는데 방해가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특징은 ‘자란다’입니다. 우리에게 유아기, 청소년기, 장년기가 있듯이 하나님의 나라도 더욱 자라서 큰 나무를 이루어 새가 깃들일 정도가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성장해야 합니다. 날마다 성숙하고 변해야 합니다. 사람들로부터 변했다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눈빛과 걸음걸이, 가치관이 달라지고 돈 쓰는 것이 달라져야 합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날마다 ‘새롭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놀랍다’라는 말을 듣는 것이 정상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다는 말은 좋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세상에 태어나 30년 동안 준비하고 일하셨습니다. 삶이 있습니다. 귀신 들린 자, 문둥병자, 소외된 사람들에게 친구가 되어 주시고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여기서 발전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성령이 오시고 성령의 시대가 전개됩니다.우리도 똑같습니다. 우리 인생은 유치하고 부족하지만 한 일 년 지나보면 달라집니다. 지혜롭고 총명하고 아름답고 매력 있고, 늙어가는 것도 예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서 자라나는 것입니다. 껍질을 벗고 내 안에 생명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수없이 허물을 벗고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의 옷을 입고 생명이 흘러넘치게 해야 합니다. 샘물은 계속 나오는 것입니다.“그것은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가져다 가루 3사톤에 섞었더니 결국 온통 부풀어 올랐다.”(21절)두 번째 하나님의 나라는 누룩입니다. 누룩은 보이지 않지만 그것이 들어가면 밀가루나 곡식의 반죽이 커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내 안에 들어오면 성장도 하지만 모든 것에 영향력을 주어 부풀게 만듭니다. 영향력을 주어서 성숙하게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날마다 변하고 성장하고 새롭고 완숙해지는 것입니다. 3사톤은 약 열 명이 먹을 수 있는 밀가루입니다. 거기에다 누룩을 넣으면 그렇게 부풀어 오른다는 것입니다. 이것에서 배우는 진리는 예수 믿으면 자라고 완숙해지고 극대화된다는 것입니다. 절제와 자기포기의 ‘좁은 문’ 22~24절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와 좁은 문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다 넓은 문으로 들어가려 하지만 구원은 좁은 문과 같다는 말입니다. 대문을 활보하고 들어가지 않고 겸손히 머리 숙여 작은 문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하나님의 나라의 그림입니다. 구원은 숫자가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지 사람들은 물었지만 예수님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자격의 문제라고 말합니다. 큰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작은 문으로 머리 숙여 조심스레 들어가는 것을 구원과 연결시켰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로 대문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을 사모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가난한 자, 작은 문, 겸손을 좋아합니다. 작은 문은 절제, 자기포기를 의미합니다. 25절에서 주인이 문을 닫았다는 말은 구원은 영원하지만 시간은 영원하지 않고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구원받을 만한 때에 구원받으라는 말입니다. 지금이야 말로 구원받고 복 받고 은혜 받을 때입니다. 늦게 와서 문을 두드려도 안 열립니다. 하나님이 기억하는 기도와 봉사 26~27절에서 ‘주님 저 아시잖아요. 여기 새벽기도에서 예배드렸잖아요’라고 말해도 주님은 ‘모른다’라고 말한답니다.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봉사하고 귀신을 쫓았다고 말해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해 많이 했다고 했는데 주님은 모른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주님을 위해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주님이 기억하는 봉사를 해야 합니다. 내가 기억하는 봉사를 하면 안 됩니다. 여러 가지를 많이 했지만 주님이 만일 모르신다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주님이 아셔야 합니다. 기도도 주님이 아셔야 합니다. 골방에서 하는 기도, 오른손이 한 것을 왼손이 모르지만 주님이 아십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내 뜻과 너희 뜻은 다르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주님이 좋아하시는 것인지를 질문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들은 잘 구분하고 절제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내 생각이 다릅니다. 끊임없이 자기를 겸손하게 해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의 뜻인지 묻고 구별하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뜻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때 겸손해야 합니다. 빨리 하나님의 뜻으로 바꿔야 합니다. 영적인 진리에 있어서 중요한 결론은 30절입니다.“보라. 나중에 시작했으나 먼저 될 사람이 있고 먼저 시작했으나 나중 될 사람이 있다.” 더 절제하고 자기를 돌아보십시오. 오만하지 마시고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십시오. / 정리 박영주 기자 pyjoo@onnur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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