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부흥집회

특별새벽부흥집회 2월 11일 말씀 | 하용조 목사

종말의 때를 사는 지혜를 가지라 본문: 누가복음 12장 49~59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늘 덕을 베풀고 여유를 가지고 사랑하고 사십시오. 다 따지고, 다 해보고 그러면 서로 힘들고 어려워집니다. 그저 웬만하면 ‘통과. 괜찮아. 다음에 그러지마.’ 그리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많은 희망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주셨는데 때로는 칼날 같은 말씀도 전하십니다. 49절을 보십시오.“내가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는데 이미 그 불이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더 바라겠느냐?”불을 지르러 오셨다는 것은 심판하러 왔다는 뜻입니다. 잘못된 것은 심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불을 붙이러 오신 예수님 우리 몸에 암이나 염증이 있으면 그걸 도려내야 다른 곳에 전염되지 않습니다. 그냥 놔두면 온 몸이 다 썩습니다. 잘못된 것을 끊어내는 것, 도려내는 것이 옳게 사는 방법이고, 의롭게 사는 방법입니다. 농부들을 보면 사과를 다 따지 않습니다. 진짜 좋은 사과를 얻기 위해서는 미리 열매를 솎아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불을 주러 왔다”고 하신 말씀은 ‘널 죽이러 왔다’거나 ‘널 망하게 하러 왔다’는 뜻이 아닙니다. ‘너를 깨끗하게 하러 왔다’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난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난은 하나님께서 내게 더 새로운 차원의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내 잘못된 것을 다 제거시키는 작업입니다. 50절에 예수님께서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고 하신 것은 불세례나 물세례가 아닙니다. 고난의 세례입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세상에 와서 십자가를 지셔야 할 것을 아셨습니다. 이 십자가는 고난의 세례입니다. 뭐든지 각오하면 쉽습니다. 고난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두려움이 어려운 겁니다. ‘망하면 어떡하지?’ ‘돈 없으면 어떡하지?’ ‘죽으면 어떡하지?’ 이렇게 미리 두렵다고 생각하니까 무서운 겁니다. 고난을 겪기로 결정하면 고난은 무섭지 않습니다. ‘고난아 와라’하고 부딪쳐가는 겁니다. 그러면 다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겨낼 능력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할렐루야.예수님도 자기가 받아야 할 고난의 세례를 아시고 사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얼굴은 빛이 나는 겁니다. 십자가 앞에서도 당당하게 가셨던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또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51절을 보십시오.“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아니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이 말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 다 망가뜨리려고 왔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진정한 평화를 주러 오셨습니다. 그런데 진짜 평화를 위해서는 가짜 평안이 구분이 돼야 합니다. 가짜 평안하고 진짜 평화하고 섞어놓으면 진짜 평화가 없어집니다. “내가 평화를 주러 왔다고 착각하지 마라.” 이 말은 예수님께서 분열과 평화를 섞어놓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불의와 정의를 적당히 얼버무려놓는 것이 아니라 불의를 깨끗하게 분리시켜서 심판하는 것입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좋은 게 좋은 게 아니고 구분해 걷어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요한복음 15장에서는 하나님의 가지치기라고 말합니다. 썩은 나무는 쳐내라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축복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축복이 아닌 것을 걷어내십시오. 그것이 바로 축복입니다.   시대정신을 배워라 예수님은 위선자에 대해 “너희가 땅과 하늘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떻게 지금 이 시대는 분간할 줄 모르느냐?”고 하셨습니다.(54~56절) 시대마다 시대의 흐름, 시대의 정신이 있습니다. ‘이 시대를 분간하지 못하느냐’라는 뜻은 시대의 흐름, 시대의 정신을 분간하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자연현상은 잘 알면서 어떻게 지금 이 시대의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느냐? 과거의 시대정신으로 살지 말아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어떻게 이 악한 시대, 잘못된 시대는 분별하지 못하느냐? 그것이 위선이다’고 하십니다. 시대정신을 구분하지 못하고 시대에 아부하는 것이 위선이라는 것입니다.11장에 예수님께서 위선자에 대해 말씀하신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위선자의 특징은 남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비판하고 고발함으로써 자기가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착각합니다. ‘나는 정의로우니까 불의한 너를 비판하겠다’는 겁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이 위선자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위선자는 마음속에 숨은 욕심이 많습니다. 위선자는 숨은 욕심을 겉으로는 절대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리 새끼처럼 조용히 숨죽이고 있다가 먹을 게 생기면 탁 하고 집어 챕니다. 위선자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입니다. 위선자는 쉬운 것은 자기가 하고 어려운 것은 다른 이를 시키는 사람입니다. 위선자는 인사받기 좋아하고 높은 자리 있기 좋아합니다. 위선자는 예언자의 무덤을 만들면서 예언자를 죽이는 사람입니다.오늘 본문에 기록된 이 위선자는 자연현상은 이해하면서도 시대정신은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또 하나 있습니다. 57절을 보십시오.“어찌해서 너희는 무엇이 옳은지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이 말은 판단했는데 못한 척 했다는 겁니다. 위선자는 다 압니다. 자기가 잘못한 것도 알지만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변명하고 도피하고 합리화 합니다. 알면서 왜 안 하느냐는 겁니다.  그런데 위선자가 위선의 껍질을 벗으려면 걱정이 됩니다. 위선을 벗으면 벌거벗는 겁니다. 위선을 떨며 만들어놨던 인간관계가 깨지고, 지키고 있던 자리가 다 흔들립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위선의 옷을 벗고, 가면을 벗어야 합니다. 그것이 자유입니다. 그것이 평화입니다. 이것저것 위선을 붙인 상태로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다 벗어야 하나님을 만납니다. 위선을 벗은 마음, 겸손한 마음, 그것을 가리켜 가난한 마음이라고 합니다. 화해하며 사는 삶 58절, 59절을 보겠습니다. “너를 고소하는 사람과 함께 관원에게 가게 되거든 너는 도중에 그 사람과 화해하도록 최선을 다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너를 재판관에게 끌어가고, 재판관은 너를 형무소 관리에게 넘기고, 형무소 관리는 너를 감옥에 처넣을지 모른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마지막 1렙돈까지 다 갚기 전에는 그곳에서 나올 수 없을 것이다.”1렙돈은 8분의 1 앗사리온으로 지극히 작은 돈입니다. 한 앗사리온이 참새 두 마리 값입니다. 그러니까 아주 작은 단위까지 다 계산된다는 것입니다. 화해 안하면 못 빠져나온다는 겁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가능하면 싸우고 살지 말고 화해하고 살아라. 그렇게 따지면 결국 재판소에 간다. 재판소에 가면 먼지가 나온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이 말씀을 해석하기가 굉장히 예민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다 적당히 넘어가라는 소리냐? 억울해도 화해하고 그만두라는 소리냐?’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보면, 선한 사람의 약점을 쥐고 힘들게 하는 악인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온순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가능하면 화해하고, 싸우지 말고 살라는 것이 오늘 성경의 말씀입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늘 덕을 베풀고 여유를 가지고 사랑하고 사십시오. 다 따지고, 다 해보고 그러면 서로 힘들고 어려워집니다. 그저 웬만하면 통과시키세요. ‘통과. 괜찮아. 다음에 그러지마.’ 그리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나 그냥 당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불 지르러 왔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불의나 썩은 것은 빼내고, 늘 화해하면서 사십시오. 세상 다 지나가는 겁니다. 원수라도 축복해주며 사십시오. 왼뺨을 대주고, 속옷을 주고, 십리도 가주십시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전성희 기자 shee@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