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 20일 | 알고도 죄를 범하는 어리석음 | 이재훈 목사
■ 1월 20일 | 이재훈 목사

알고도 죄를 범하는 어리석음
다니엘 5장 17~24절
모든 권세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권세가 하나님의 것임을 잊을 때부터 교만은 시작됩니다.
모든 지도자들은 자신의 권세가 하나님의 권위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권위의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더 높은 위치에 앉은 지도자에게 필요한 것은 더 멀리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높은 위치에 앉은 지도자가 더 멀리 보기 보다는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을 즐기기 시작할 때, 그 나라는 위기를 맞게 됩니다.
바벨론 제국의 벨사살 왕은 모든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다니엘을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왕을 만난 다니엘은 문제부터 해결해주지 않았습니다. 벨사살 왕과 바벨론 제국의 문제를 먼저 지적합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문제는 문제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러한 문제가 나타났는지 살피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교만에는 멸망이 따르고 거만에는 몰락이 따른다.”(잠 16:18)
교만에는 멸망이 따른다는 것은 분명한 역사적 진리입니다. 중세교회의 역사에서는 인간에게 치명적인 일곱 가지 죄가 있다고 했습니다. 교만, 시기, 분노, 나태, 탐욕, 탐식, 탐색입니다. 이중 교만을 죄의 뿌리이자 가장 치명적인 죄로 여겼습니다. 나머지 죄들은 다 분별하기가 쉽습니다. 시기하는 모습은 눈을 보면 압니다. 나태한 모습은 몸으로 드러납니다. 물론 교만도 겉으로 알 수 있지만 그것은 낮은 차원의 교만이기 때문입니다. 깊은 차원의 교만은 자기만 모르고 주변 사람들은 다 아는 것입니다. 그것보다도 더 깊은 차원의 교만은 자신도 모르고 다른 사람들도 모르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속을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교만의 가장 무서운 점입니다.
벨사살 왕의 죄 ‘교만’
스코틀랜드 교회의 존경받는 로버트 머레이 맥체인 목사는 “나는 내가 교만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아직 그 교만의 절반도 알지 못했다”라는 고백을 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드는 회심한지 20년 후에도 “자기 마음속에 바닥을 알 수 없고 무한히 깊은 교만 때문에 신음했다”고 합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나는 로마에 있는 교황과 모든 추기경들보다 내 자아라는 교황을 더 두려워한다”고 고백했습니다. 한국교회의 신실한 지도자였던 박윤선 목사는 “여러분, 나를 너무 존경하고 높이지 마십시오. 나는 80년 묵은 죄인일 뿐입니다”라는 고백을 했습니다. 참된 겸손을 소유한 사람은 자신의 겸손조차도 인식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니엘이 지적하는 벨사살 왕의 죄는 교만입니다. 바벨론 제국의 멸망의 원인도 나라 전체가 교만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벨사살 왕과 바벨론 제국의 교만의 특징은 첫째로 ‘교만한 사람은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다니엘이 지적하는 벨사살 왕의 교만은 그는 과거 느부갓네살 왕이 교만으로 문제는 되었는지 똑똑히 보았지만 그 과거의 실패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왕이여, 높고 높으신 하나님께서 왕의 아버지 느부갓네살에게 나라를 주시고 큰 권력과 영광과 위엄을 주셨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가진 큰 권력으로 인해 모든 민족과 각기 다른 언어를 말하는 사람들이 그 앞에서 떨고 두려워했습니다. 그 왕은 죽이고 싶은 사람은 죽이고 살리고 싶은 사람은 살리며 명예를 높이고 싶은 사람은 높이고 낮추고 싶은 사람은 낮추었습니다.”(18~19절)느부갓네살 왕은 하루아침에 쫓겨났습니다. 그 원인을 마음이 높아진 교만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스스로를 높이는 교만한 사람은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않습니다. 벨사살 왕은 느부갓네살 왕이 가졌던 최고의 권력, 권세를 가지고 누렸지만 그 권세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잊었습니다.
모든 권세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교만은 자신의 권세가 하나님의 것임을 잊을 때부터 시작됩니다. 모든 지도자들은 자신의 권세가 하나님의 권위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권위의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리더십을 가리켜 ‘권위의 청지기가 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은 권위의 청지기로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아버지 뜻대로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지위와 권세에 대한 굶주림이 있습니다. 권세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인간이 그 권세를 탐내고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했을 때 권세는 사탄의 권세 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 세상의 권세를 무너뜨리셨습니다. 모든 권세의 주인이 다시 예수 그리스도가 되신 것입니다.
하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겸손’
교만이란 자신에게 권세를 주신 주인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본문 23절에는 “오히려 왕은 하늘의 주인을 거역하고 자신을 높였습니다”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선하고 성실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힘이 든다고 말합니다. 그 사람보다 내가 더 악한 것처럼 보여 말문이 잘 안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이 경영자이고 부하 직원들이 있습니다. 매우 착하고 성실하고 진실한 직원이 한 명 있는데 그 직원이 가진 문제는 주인을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 직원을 인정하겠습니까. 반면 일은 그 사람보다 조금 못하고 성격도 조금 못되고 실적도 적지만 당신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과 일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보시기에 어떤 사람을 인정하시겠습니까.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주인을 다른 사람이라고 여기면 주인이 볼 때 그는 악한 종입니다.
가장 악한 것은 주인을 바꿔버리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권세를 주신 하늘의 주인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교만의 가장 근본적인 뿌리입니다. 따라서 겸손이란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하나님 중심의 태도가 겸손인 것입니다.
두 번째로 교만한 사람은 ‘자기 생각대로만 한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이 높아지고 고집을 부리며 자기 생각대로만 행동해 그는 왕위에서 쫓겨나 그 영광을 빼앗겼습니다.”(20절)
고집은 때로 믿음처럼 보이지만 정반대의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믿음과 고집이 비슷해 보이는 점은 끈기가 있고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론은 고집의 열매는 분열이고 다툼이며, 믿음의 열매는 화합과 능력과 은혜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매달리는 것이고 고집은 내 뜻에 매달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음이 끝까지 믿음으로만 자라가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철로에서 이탈하는 순간 그 믿음은 고집과 아집과 편견이 됩니다. 믿음의 길을 가는 것은 아주 조심스러운 길입니다. 믿음을 순수하게 지키며 하나님 뜻에만 매달리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성령의 힘으로만 물리치는 ‘교만’
세 번째는 교만한 사람은 ‘알면서도 자신을 낮추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벨사살이여, 왕은 그의 아들로서 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마음을 낮추지 않았습니다.”(22절)
가장 교만할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저희와 같은 교만이 죄라고 설교하는 목회자들입니다. 영적 원리를 잘 알면서도 고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4장 17절을 보면 “그러므로 누구든지 선을 행할 줄 알면서도 행하지 않으면 이것은 죄를 짓는 일입니다”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죄란 선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행치 않는 것입니다. 결국 교만으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신이 그 영광을 가로채게 됩니다. 23절의 마지막을 보십시오.
“오히려 왕은 하늘의 주인을 거역하고 자신을 높였습니다. … 그러나 정말 왕의 생명을 손에 쥐고 왕의 모든 갈 길을 이끄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않았습니다.”(23절)
성경은 악한 사람들, 타락한 사람들만 교만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성실하게 하나님과 동행했던 모든 사람들도 교만에 빠졌다고 말합니다. 개혁을 일으켰던 히스기야,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던 다윗 왕,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도 결국 교만 때문에 무너졌습니다.
교만은 절대로 스스로 물리칠 수 없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고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하늘의 능력을 덧입어야만 교만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믿음과 교만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믿음과 짝이 될 수 있는 것은 겸손뿐입니다. 우리 모두 교만을 내어 버리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겸손으로 위장한 모든 교만이 우리로부터 벗어지길 바랍니다. 진정한 겸손에 이르기를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정리 정지은 기자 jji@onnuri.org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