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 17일 | 뒤늦게 깨달은 전능자의 주권
■ 1월 17일 | 조정민 목사
뒤늦게 깨달은 전능자의 주권
다니엘 4장 28~37절
우리에게 어떤 고난이 있을지라도 회복이 있음을 믿으십시오.
고난과 광야는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되찾기 위한
주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입니다.
깊은 고난 속에서 주님을 만나기를 바랍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통해 기적을 경험한 신
앙은 진정한 신앙이 아닙니다.
2장에는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해몽한 다니엘에게 절하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또한 왕은 다니엘의 세 친구가 일곱 배나 뜨겁게 한 풀무 불에서 걸어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장면입니까. 그때 그는 놀라운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큰 나무에 관한 꿈을 꾸었습니다. 이번에도 왕은 다니엘을 불러서 꿈을 해석해달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은 왕이 의로운 삶을 살면 재앙이 닥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줬습니다. 그러나 왕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기적을 보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눈으로 목격했지만 그의 신앙은 자라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느부갓네살 왕이 고난 가운데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신앙은 고난을 만나면서 자라게 됩니다.
남이 풀무 불에 들어가서 살아나온 것을 보았다고 자신의 신앙이 자라지 않습니다. 신앙은 우리가 고난 가운데 들어가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 자라는 것입니다. 오늘 혹시라도 깊은 고난 가운데 있다면 여러분을 깊이 만나기 원하는 하나님의 뜻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교만의 결과
“이 모든 일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일어났습니다. 12개월이 지난 뒤 어느 날 왕이 바벨론 왕궁의 옥상을 거닐고 있었습니다. 왕이 말했습니다. ‘내가 세운 이 성 바벨론은 위대하지 않은가? 나는 내 큰 힘과 권력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위해 이 도시를 건설했다.’”(28~30절)
느부갓네살 왕은 왕궁을 걷다가 자신이 건설한 큰 도성을 보면서 이것은 위대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감탄했습니다.
“그 말이 왕의 입에서 떨어지기도 전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왔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선언한다. 이 나라의 왕의 자리는 네게서 떠났다.’”(31절)
하나님께서는 왕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왕의 권위를 빼앗아 갔습니다. 이제 더 이상 느부갓네살에게 왕의 권위는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언의 은사, 신유의 은사 등의 능력을 갖고 있지만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사용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그 순간 가지고 있던 능력을 앗아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줄 알면서도 사랑받은 자로서 살지 않고 하나님과 그 외의 것들 사이에서 우리의 삶이 오락가락하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 중심이 아닌 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하나님이 이루어 놓으신 일에 자신의 몫을 가지고 슬그머니 끼어드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어느새 옛사람으로 돌아가는 교만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직분이 높아졌다고, 사역이 달라졌다고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자신의 몫을 찾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자신의 몫을 챙길 때 권위를 빼앗아 간다고 경고하셨습니다.
“너는 사람들에게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며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다. 네가 이렇게 일곱 때를 지내고 나면 높고 높으신 분이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고 누구든지 그분이 원하시는 사람에게 그 나라를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32절)
그렇게 왕의 권위는 떠나고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통해 느부갓네살 왕에게 말씀하신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쫓겨나 소처럼 풀을 먹었습니다. 그 몸은 이슬에 젖었고, 손톱은 새 발톱처럼 자라났습니다.
드디어 광야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광야로 부르신 이유는 교만과 위선의 때를 벗기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이 광야로 부르실 때가 있습니다. 부르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
리를 깊이 만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기적이 있는 곳, 풍요로운 곳, 은혜와 사랑이 넘치는 곳에서는 우리 모두가 슬그머니 은혜의 때를 덮어쓰지만 광야로 내몰리고 나면 그때 비로소 우리는 살아계시고 이 세상의 주권자이시며 지존자이신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광야와 고난은 축복입니다. 여러분이 깊은 고난 가운데 있다면 하나님께서 온전히 여러분에게 시선과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믿기 바랍니다.
진정한 회복의 시작
“정해진 기간이 지나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을 우러러 눈을 들었다. 그때 나는 제정신이 돌아와 높고 높으신 분께 감사하고 영원히 살아 계시는 그분을 찬양하고 영광을 드렸다. 그분의 다스리심은 영원할 것이며 그분의 나라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34절)
고난은 영원히 계속되지 않습니다. 고난의 때가 끝나면 회복의 때가 시작됩니다. 회복이 오면 제정신을 차리게 됩니다. 제정신을 차렸다는 것은 인간의 자리인 피조물의 자리로 돌아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의 자리에 있고 우리는 피조물의 자리에 있는 것이 바로 제자리입니다. 그러나 많은 인간이 그 피조물의 자리를 떠나서 타락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원죄입니다.
말씀을 보면 처음에는 느부갓네살 왕이 마음껏 높아졌습니다. 이제 왕은 내려갈 수 없는 곳까지 떨어졌습니다. 광야의 삶을 통해 회복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제정신이 들었습니다.
제정신 차린 사람들이 사는 방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높고 높으신 분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제정신이 돌아오면 감사하는 삶이 시작됩니다. 우리가 아무 조건 없이 하나님으로부터 은혜 받은 것을 깨달을 때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찬양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리에 계신 것이 합당하다는 것을 인정하며 고백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다. 영광이란 하나님의 빛 가운데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빛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둠에 거하지 않고 하나님의 빛을 따라가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순종하는 믿음·정금 같은 믿음
“그분은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기시고 하늘의 군대와 세상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분의 뜻대로 행하신다. 어느 누구도 그분의 손을 막을 수 없고 ‘무슨 일을 이렇게 하느냐?’고 말할 수 없다.”(35절)
네 번째는 ‘무슨 일을 이렇게 하느냐?’고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닥친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 불평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제정신을 차리고 하나님께 돌아와서 구원의 삶이 시작되면 더 이상 불평과 불만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조건에 따라서 흔들리는 신앙인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빼앗긴다 하더라도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으로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더 이상 신앙생활의 불평과 불만이 없어야 합니다.
진정한 회복은 제정신을 차리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고난이 있을지라도 회복이 있음을 믿으십시오. 고난 가운데서 느부갓네살 왕은 진정한 주권자가 하나님임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려드리며 존경한다. 그분이 하시는 일은 모두 진실하고 그분이 행하시는 길은 의롭다. 그분은 언제든지 자기를 스스로 높여서 행하는 사람들을 낮추실 것이다.”(37절)
하나님은 하나님의 길이 있고 우리는 우리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뜻이 되어야 한다는 본질로 돌아오면 우리의 삶에는 감사와 찬양이 넘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슨 일을 보이시든지 그 뜻에 순종할 것입니다.
진정한 순종은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들에 대해 묻거나 따지지 않는 것입니다. 고난과 광야는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되찾기 위한 주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입니다.
우리는 깊은 고난 속에서 주님을 다시 만나야합니다. 그분을 만나지 않는 신앙, 사람 속에 묻혀있는 신앙으로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이번 특별새벽부흥집회를 통해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십시오. 올 한 해 어떤 고난 중에 있더라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진정한 믿음, 정금 같은 믿음이 생기길 바랍니다.
/ 정리 오은지 기자 oej@onnuri.org
작성자 온누리

